어제는 종일 선생님이 보고 싶었어요.
이 글을 쓰는 순간 제 머리속의 BGM은 생사를 같이 했던 전우야 정말 그립구나 그리워...
허성희 [전우가 남긴 한 마디] 입니다. 왜죠?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아무렇지도 않았나요...
이현우 [헤어진 다음날] 쯤으로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 모든 것은 선생님이 멱살잡이하며 신랄하게 지도해주신 감정교육 덕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덕분에 저는 좀 '시'와 '거리'를 두게 되었어요. 사랑한다고 덤벼들듯이 다가가던 저는 어제에 두고. 오늘로 건너왔습니다. '시'를 좀 저만치 두고 보려고 합니다. 처음 시작할 땐 시와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제 보니 더 어렵고 더 멀어진 것 같은 이 막연히 외로운 감정은, 다시 설명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 집 마당귀에는 수선화 몇 포기가 살고 있다. 꽃을 잘 알기 위해서는 바짝 다가가야 한다. 암술 수술을 구분하고 꽃잎의 수를 세고 씨 맺는 시기를 기다려 기록해야 한다. 그러면 나는 꽃을 이해하게 된 것일까. 꽃이 인정할까?
김영희의 인생 속으로 파고든 박철수는 결코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 날마다 격정과 권태의 소용돌이 속에서 함께 살지만, 그리고 딸 보람이와 아들 민수를 낳았지만, 이해는 이루어낼 수 없다. 철수는 다른 사람에게 영희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지만 영희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렵다. 쌍방이 그러하다. 그러니 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리가 필요하다. 바람과 햇살과 빗방울이 지나가는 공간을 꽃과 나 사이에 마련해두는 것, 그 대상을 통해 꽃을 바라보는 것. '넌지시'의 태도를 유지하는 게 통째로 풍경이 되는 것. <내술상위의 자산어보>16쪽
그렇게 감옥에 갇혔으면 하고 생각한다
감옥에 갇혀 사전을 끌어안고 살거나
감옥에 갇혀 쓸데없는 이야기나 줄줄이 적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찬란> 기억의 집 中
선생님 저는 감옥에 갇혀야만 넌지시의 태도로 사전을 끌어 안을 수 있는 감정을 가지고 태어났다 봅니다. 누수가 걱정되는 창고는 저도 가지고 있어요. 다만 장마가 지면 창고로 달려가야 할 에너지가 샘솟죠. 그것이 저의 감정의 색깔인 것 같습니다. 한 주 쉬어간 9주이니 봄내 거꾸러지며 부러지며 시를 붙들었노라고, 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죄송합니다. 창작 수업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식의 글쓰기 수업이 전과가 있었어요. 쓰기 수업을 기웃거려 왔고, 쓰지 않는다고 장담해왔습니다. 미래에 관해 먼저 진단하기 전에, 그 순간에 충실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저는 창작 수업은 그리고 쓰기는 뭔가 대단한 사람들만 하는 거창한 느낌이 들어서 저는 감히 그런 의지도 목표도 깜냥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이 제일 거창한 수업이었어요. 시창작이라니..저의 인생에 이런 꽃날도 흐르는구나.했습니다.
독자들은 어떤 작품에 대해 자전적이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의 대답은 이렇다. 모든 소설은 궁극적으로 자전적이다. 작가는 여러 권의 책을 통해 한 편의 자서전을 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런 점에서 누구나 작가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프롤로그
사는 게 무의미했기에 늘 죽음을 생각했고, 그 마저도 무의미해서 언제나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미치거나, 죽거나, 시인이 되거나...언젠가 문학 강의 시간에 뇌리에 박힌 말입니다. 저는 아직 시가 무엇이고 왜 시를 읽고 왜 시를 쓰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계속 찾아가려고 해요. 이승우님의 말을 조금 비틀자면, 모든 시는 궁극적으로 자전적이다. 시인은 여러 편의 시를 통하여 한 편의 자서전을 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의 시를 만들어간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누구나 시인이다.
이 찬란했던 봄날을 통해 우리는 늘 시를 써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무언가 만들어가고 써내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읽어야 겠지요. 천천히 읽고 느리게 살겠습니다. 매일 쓸 수 있다면 더 좋겠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차츰 잦아지는 다른 기대 속에서
<계속 열리는 믿음> 다른 목소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