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좋은 책은 죽 계속 읽게 되는데 마구 좋은 책은 읽다가 자꾸 덮게 된다. 한숨도 쉬고 숨 고르기도 좀 하면서 그렇게 덮었다 폈다 느릿느릿 읽다가 대개는 그 즈음에 만나는 사람 손에 쥐어주고 만다. 그래서 정말 좋아하는 책들은 집에 없는 경우가 많다. 건넬 땐 분명 난 또 사야지 하는 맘이지만 정작 또 사게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읽다가 숨고르기 해야하는 책들 중의 하나가 <사양>이었다.
오늘 친구랑 좋은 책을 읽고 보이는 양상의 다름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 권의 책에 대해 친구와 반대의 경험을 했다. 나는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몇 페이지 못읽고 덮어 버렸는데 이유는 너무 나같은 꼴이 보기 싫어서 였다. 몇 주 후에 다시 읽긴 했지만 어쨌든 처음의 반응은 그랬다. 친구는 <단순한 열정>이 자기 같아서 좋았고 그래서 단숨에 읽었다고 했다.
또 한 권은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이었다. 나는 <사양>의 분위기, 뉘앙스, 알 길 없었던 작가의 정체성에 깊이 매료되었다. 작중 인물들에게서 부분 부분 뭔가 동질감을 느끼며 가슴 아파했다. 그런데 친구는 그 자기 같은 부분이 싫어서 좋아하기 어렵다고. 자꾸 밀어내진다고 했다.
MBTI검사를 해보면 몸통은 같은데 날개는 반대일 것 같은. 그 친구와 나는 취향이 비슷하고 설명이 필요 없이 통하긴 하지만 어떤 양상은 반대로 나타나는 것이 재밌었다. 양상을 더 면밀히 분석하고 이유를 따져보고 싶었다.
왜일까? 사람이 다른 것이 당연한 데 왜 다른지가 궁금했다.
(이런 친구와 책 얘기를 실컷 할 수 있다는 것, 서로 좋은 책을 권할 수 있다는 것이 순간 참 뻐근하게 좋았는데. 좋은 순간. 아 참 좋다고 느끼는 이 순간이 얼마나 지속 될까하는...허함이 뒤따라오는 건 뭐지)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은 다시 읽기 할 것인데, 일단 앞부분만 비교하면 유숙자 번역이 가장 마음에 든다.
몸이 아프느라 마음이 아플 여력이 없었는데 오늘 다시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다. 마음이 아플 땐 진통제가 필요하다. 내일은 시수업 종강이다. 진통제를 소량만 복용해야겠다. 아주 소량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