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정말 좋아할 만한 이야기야˝
라며 언니가 건네 준 책은 오르한 파묵의 <내이름은 빨강1.2>이었다. 당시 난 오르한 파묵도 내이름은 빨강도 듣도 보도 못한.…하지만 내이름은 빨강이라니…제목은 무척이나 끌려서 도전의식이 불끈 솟았다. 그리고 곧바로 좌절했다. 그 후 3년여에 걸쳐 <내이름은 빨강>을 세 번쯤 손에 들었다 세 번 다 완독에 실패했다. 처음엔 정말 재미 없어서. 두 번짼 재미를 좀 느꼈는데 끈기가 없어서. 세 번짼 뜯어먹듯 읽으려다 제 풀에 지쳐서.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내 이름은 빨강>을 완독한 듯한 착각에 빠졌고 늘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기에 거의 세 번 읽었다고 할 수있는 <내 이름은 빨강1>의 어떤 문맥은 이렇게 튀어나오는 경지에 이르렀다. `내 이름은 애니시다요…`로 시작하는 어떤 장, 묘사 된 골목길 방안의 정경 이런 것은 한 컷 한 컷 뇌리 속에 박혀있다.

그리하여 나는 또 1권부터 읽어야 할 것이기에 늘 숙제 같았던 오르한 파묵을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두 명의 의인에 의해 비슷한 시기에 <하얀 성>으로 만나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내이름은 빨강1.2>보다 얇아서 만만해보였고 눈앞에 딱 나타난 실체에 감격해서 손에 들었다가 앉은 자리에서 완독에 성공. 심지어 이거 딱 내 스타일인데 싶은 재미까지 맛보았다.

어젠 바람과 비가 잠을 깨우더니(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소리를 즐겼다) 오늘은 그 미친듯한 바람이 아니라, 어쩌다 한 번 지나가다 흔드는 바람, 누가 진짜로 문을 흔드는 느낌. 그렇다 지금 나는 무서운 것이다. ㅠ.ㅠ
눈을 감고 있으니 소리에 더 예민해져서 눈을 뜨고 <하얀성> 리뷰를 찾아 읽다가 여기 까지. 암튼 계속하자면. 그래서 결국 나는 <내 이름은 빨강1,2>을 빨리 읽고 싶어 졌다. 그리고 <검은 책1.2>까지. 오르한 파묵의 다른 책들도 다 읽고 싶지만 일단 이 세 색깔부터 정복하는 걸로. <검은책>은 최근에 소설가 한강의 추천도서에 있어서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홍대 인근에서 하는 대안연구공동체 -21세기 현대문학 읽기 강좌 목록에 있어서 훅 더 맘이 갔다. 나는 늘 세미나식 강의를 듣고 싶었는데.공부해가고 발표하고 토론하고. 이런 게 진짜 공부이고 듣기만 하는 강의는 내 것이 되기 힘들다고 생각했기에. 근데 넘 늦어버렸다. 마음은 청춘이지만 물리적인 한계 또한 엄연한거여서 욕심내지 않으려고한다. 하지만 제도권 밖에서 들을 수 있는 이런 강좌들이 더 활성화되고 안정적으로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미 듣는 강좌들이 있어서 더 들을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토요일 오후, 격주라는 조건은 정말 매혹적이다. 직장, 거리를 커버할 수 있는!! 부산, 청주, 광주, 포항…이 왜 생각나지? 검은책을 읽다가 포기했다는 ㄷ님이 이 순간에 왜 생각나냐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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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4 0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04 0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04 0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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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6-05-04 15:53   좋아요 0 | URL
찔레꽃 향기도 참 좋죠~~~~~
사진 보니 여행가고 싶어요^^
 
작은 것들의 신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5
아룬다티 로이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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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는 우연히 마주친 벌거벗은 타인이었다. 그녀의 '삶'이 시작되기 전부터 알았던 사람이었다. 한때 그녀를 이끌고(헤엄치며) 어여쁜 어머니의 음부를 통과했다.

 낯선 사람과 삶의 시작 전부터 알던 사람이라는 두 가지 경우 모두 그 양극성은 견디기 어려웠다. 해소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극단의 그 거리. 132쪽

 

차코는 자신의 방에 있었다. 진수성찬을 즐기다 들켰다. 로스트치킨,감자튀김,스위트콘과 닭고기 수프, 파라타빵 두 개와 초콜릿 소르를 곁들인 바닐라 아이스크림, 배 모양의 소스 그릇에 담긴 소스, 차코는 종종 자신의 야망은 과식하다 죽는 것이라 말하곤 했다. 맘마치는 그것이 억압된 불행을 보여주는 확실한 징후라고 말했다. 차코는 그런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저 '식탐이 많을 뿐'이라고. 162쪽

 

마거릿은 차고에게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치 차코가 그녀의 선반에 그의 오슬 놓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런데 그라면 아마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혼을 요구했다. 166쪽

 

"차코? 사람들이 자기 자식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야 하는' 게 꼭 필수적인 가요?"

"규칙은 없어." 차코가 말했다. "하지만 대개 그렇지."

"차코, 예를 들어서요." 라헬이 말했다. "그냥 예를 드는 건데요, 암무가 나와 에스타보다 소피 몰을 더 사랑할 수도 있나요? 아니면 차코가 소피 몰보다 날 더 사랑한다던가요. 예를 들면 말이에요."

"' 인간 본성'에선 무엇이든 가능하단다." 차코가 예의 '낭독조'로 말했다. 갑자기 분수 머리를 한 어린 조카딸은 의식하지 않고서 이제 어둠에 대고 이야기했다. "사랑.광기.희망.무한한 기쁨."

 그 '인간 본성에서 가능한' 네 가지 중에서 무하아한 기쁨이 가장 슬프게 들린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차코의 말투 때문일지도 몰랐다.

 무하아한 기쁨. 거기엔 교회의 어감이 묻어 있었다. 온몸에 지느러미가 난 슬픈 물고기처럼.

차가운 나바이 차가운 다리를 들어올렸다.

담배 연기가 구불구불 밤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뚱뚱한 남자와 어린 소녀는 잠들지 못하고 침묵 속에서 누워 있었다. 168쪽

 

사랑이라는 지독한 끈이 거의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가슴을 조였다. 그는 잠들지 못하고 누워서 공항으로 떠날 시간을 헤아려 보았다. 172쪽

 

무언가 땅 밑에 묻혀 있다. 풀밭 아래. 23년간 내린 6월의 비 아래.

잊힌 작은 것.

세상이 전혀 그리워하지 않을 것.

시곗바늘이 그려진 어린아이의 플라스틱 손목시계.

두시 십 분 전.

어린아이들 한 무리가 걷고 있는 라헬을 뒤따랐다.

"안녕, 히피" 하며 아이들이 25년이나 늦어버린 질문을 던졌다. "이름이 뭐예요?"

그때 누군가 라헬에게 작은 돌을 던졌고, 그녀의 어린 시절은 그 가느다란 팔을 마구 흔들면서 달아났다. 179쪽

 

암무는 알레피에 위치한 바라트 여인숙의 어느 지저분한 방에서 죽었는데, 누군가의 비서 일자리 면접을 보러 갔던 곳이었다. 그녀는 홀로 죽었다. 천장 선풍기의 소음을 벗삼아, 등뒤에 누워 그녀에게 이야기할 에스타도 없이. 서른 한 살이었다. 늙지도 않은 젊지도 않은, 하지만 살아도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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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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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세 잔 마셔서 잠자기를 어느 정도 포기했는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 집안으로 들어 온 기분 때문에 잠이 깼다. 바람이 비가 그냥 불고 내리는 게 아니라 문을 열어 달라고 흔들다가 방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다. 폭풍우 치는 바다 위 난파선을 탄 기분. 템페스트가 절로 생각난다. 어찌나 다방면에서 흔들며 쏟아지는지 가만히 누워 빗 소리와 바람 소리를 구별해 듣는다. 이정도 흔들면 나가서 문을 열어 주어야 하나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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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쓴다는 것 - 일상과 우주와 더불어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조영렬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목이 마르다는 것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눈부시다는 것

문득 어떤 멜로디를 떠올리는 것

재채기를 하는 것

당신 손을 잡는 것

 

다니카와 슌타로 '산다' 중

 

저도 뭔가를 쓰려고 할 때는 가능한 한 제 자신을 텅 비우려고 합니다. 텅 비우면 말이 들어옵니다. 그러지 않고 내 안에 말이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판에 박은 표현으로 끌려가버리지만, 가능한 한 텅 비우면 생각지도 못한 말이 들어온다. 그런 느낌입니다. 호흡법과 닮은 데가 있는 듯합니다. 아마도.

45쪽

 

말은 의식의 표면에 있는 말보다 의식 아래에 있는 말이 재미있다. 그쪽이 새롭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혼돈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혼돈 속에 온갖 언어경험이 다 들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러니까 시인이라는 것은 역시 흔히 유통되는 말보다 좀더 앞의 말이라고 해야 좋을지....말이 되어가고 있는 말에서 말을 찾아내는 그런 게 있지 않나 싶습니다. 48쪽

 

요컨대, 시인이란 너무나 미성숙한 인격이라는 겁니다. '오늘 하얗다고 말하고 내일 검다고 말해도 전혀 상관없다. 시인에게 그것은 양쪽다 진실이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어제는 하양이었던 게 오늘은 검정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뭐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73쪽

 

저는 키 작은 대머리 노인입니다

벌써 반세기 넘는 동안

명사와 동사와 조사와 형용사와 의문부호 따위

말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오다보니

굳이 말하자면 無言을 좋아합니다.

 

자기 소개 (일흔 살 버전) 중 일부

 

역시 저 같은 나이가 되지 않으면 '저는 키 작은 대머리 노인입니다'라는 식으로 쓸 수 없습니다. 전에는 조금 허세를 부리며 썼었지요. 시적인 표현으로. 이런 식으로 일상적으로, 비교적 이렇게 직접적으로는 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81쪽

 

* 잘된 시는 어떻게 짓는 것입니까?

그런 걸 알았으면 고생 안했겠지요.(웃음) 모릅니다.

시라는 게 공부해서 잘 쓰게 되는 그런 건 아니잖아요.

음, 그러니까 그거는 매우 어려운 점이지만, 잘 쓴다 못 쓴다 하는 것도 매우 주관적인 거지요. 그리고 잘 썼지만 뭔가 상투적인 문구가 말끔하게 늘어서 있는 정도는 시도 있거든요. 그런 거는 못 쓴 시보다 재미가 없어요.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온몸으로 파악한 언어로 쓴 시가 좋은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의외로 세상에 유통되고 있는 상투어구를 죽 늘어놓아 시처럼 보이는 시를 쓰고 마는 경우도 많지요? 그런 거는 역시 재미가 없어요.

 

말하자면 타인의 말이기는 해도, 남에게 배운 말이 자기 경험을 거쳐 자기 말이 되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자기 말이 된 말이 나와주면, 그것은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88쪽

 

갓 딴 사과를 베어먹었던 적도 있고

바다를 향해 홀로 노래했던 적도 있다

스파게티 먹으며 수다를 떨었고

커다란 빨간 풍선을 불었던 적도 있다

당신을 좋아한다고 속삭이고 그리고

짭짤한 눈물의 맛도 이제 알고 있다

그런 나의 입술....

 

이제 비로소 - 당신에게 드립니다

온 세상이 소리를 죽인 이 밤에

 

다니카와 슌타로 '드립니다' 전문

 

언어는 의미에 얽매이기 마련이지요. 아무래도.

특히 음성으로 소리를 내서 청중에게 전달하는 경우에는

그 말의 어조, 소리에 관련된 요소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것을 순수하게 파고들면, 아무래도 음악이 되어버리는데요.

저는, 물론 좋아하는 시는 있습니다만,

예를 들어 제가 좋아하는 모차르트의 음악 한 대목과

좋아하는 시 한 구절을 비교해서 어느 쪽이 소중하냐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모차르트의 음악이 소중하거든요.

그러니까 늘 시는 음악을 좇지만

따라잡지는 못한다는 기분이 강합니다.

108쪽

 

시라는 것은 산문과 달라서, 의미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울림이라든지 이미지라든지 여러 가지 것을 동원해서 언어라는 놈을 전달합니다. 그러니까 무의미한 것을 시에 씀으로써 거꾸로 그 의미 이전의 세계를 만져서 느끼고 손으로 더듬어....존재 자체의 리얼리티 같은. 뭔가 언어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느끼게 만든다, 그것이 시가 맡은 역할의 하나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112쪽

 

저는 비교적 처음부터 언어를 신용하지 않아서,(웃음) 시도 줄곧 신용하지 않는 입장에서 해온 셈입니다만, 그래도 인간은 절대로 언어에서 도망칠 수 없지요. '신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언어로 말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그것은 당연히 전제로서 존재하는 것이겠습니다만, 그 '넌센스'라는 것이 지닌 불가사의한 매력이 있꼬, 그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안 된다고 그저 부정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갸, 그렇게 생각합니다. 116쪽

 

* 무엇이든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게 철석같이 믿는 사람도 있는데요.

 

저는 절대로, 언어라는 것은 정말로 부자유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어라는 게 모순을 싫어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현실은 모순되어 있지 않으면 현실이 아닌 거지요. 그것을 언어는 표현랄 수 없다. 그러니까 언어에 의지하는 것은, 어떻게 하더라도 인간의 현실을 놓칠 가능ㅅ어이 있으니까, 늘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19쪽

 

의미의 세계와 무의미의 세계가 있서, 그것이 서로 보완하고 있다고 말하면 될까요. 그 양쪽에 리얼리티, 현실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만. 120쪽

 

현실의 일상생활만이 아닌, '산다'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아마도 산다는 것 전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죽음이라는 것을 계산에 넣어야 한다. 그리고 죽음을 시야에 넣지 않으면 산다는 것 전체를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비교적 젊은 시절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134쪽

 

시인으로서의 목표 따위는 없습니다만,

인생에서의 목표는, 이제 즐겁게 건강하게 죽고 싶은 게 목표입니다.

노후의 즐거움은 역시 '죽는 것'이지요.

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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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시를 써 온 시인의 육성을 듣는다는 것.

인터뷰집의 묘미,

60년의 지혜를 미리 당겨 알 수 있다는 것(과연?)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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