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쓴다는 것 - 일상과 우주와 더불어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조영렬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목이 마르다는 것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눈부시다는 것

문득 어떤 멜로디를 떠올리는 것

재채기를 하는 것

당신 손을 잡는 것

 

다니카와 슌타로 '산다' 중

 

저도 뭔가를 쓰려고 할 때는 가능한 한 제 자신을 텅 비우려고 합니다. 텅 비우면 말이 들어옵니다. 그러지 않고 내 안에 말이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판에 박은 표현으로 끌려가버리지만, 가능한 한 텅 비우면 생각지도 못한 말이 들어온다. 그런 느낌입니다. 호흡법과 닮은 데가 있는 듯합니다. 아마도.

45쪽

 

말은 의식의 표면에 있는 말보다 의식 아래에 있는 말이 재미있다. 그쪽이 새롭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혼돈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혼돈 속에 온갖 언어경험이 다 들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러니까 시인이라는 것은 역시 흔히 유통되는 말보다 좀더 앞의 말이라고 해야 좋을지....말이 되어가고 있는 말에서 말을 찾아내는 그런 게 있지 않나 싶습니다. 48쪽

 

요컨대, 시인이란 너무나 미성숙한 인격이라는 겁니다. '오늘 하얗다고 말하고 내일 검다고 말해도 전혀 상관없다. 시인에게 그것은 양쪽다 진실이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어제는 하양이었던 게 오늘은 검정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뭐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73쪽

 

저는 키 작은 대머리 노인입니다

벌써 반세기 넘는 동안

명사와 동사와 조사와 형용사와 의문부호 따위

말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오다보니

굳이 말하자면 無言을 좋아합니다.

 

자기 소개 (일흔 살 버전) 중 일부

 

역시 저 같은 나이가 되지 않으면 '저는 키 작은 대머리 노인입니다'라는 식으로 쓸 수 없습니다. 전에는 조금 허세를 부리며 썼었지요. 시적인 표현으로. 이런 식으로 일상적으로, 비교적 이렇게 직접적으로는 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81쪽

 

* 잘된 시는 어떻게 짓는 것입니까?

그런 걸 알았으면 고생 안했겠지요.(웃음) 모릅니다.

시라는 게 공부해서 잘 쓰게 되는 그런 건 아니잖아요.

음, 그러니까 그거는 매우 어려운 점이지만, 잘 쓴다 못 쓴다 하는 것도 매우 주관적인 거지요. 그리고 잘 썼지만 뭔가 상투적인 문구가 말끔하게 늘어서 있는 정도는 시도 있거든요. 그런 거는 못 쓴 시보다 재미가 없어요.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온몸으로 파악한 언어로 쓴 시가 좋은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의외로 세상에 유통되고 있는 상투어구를 죽 늘어놓아 시처럼 보이는 시를 쓰고 마는 경우도 많지요? 그런 거는 역시 재미가 없어요.

 

말하자면 타인의 말이기는 해도, 남에게 배운 말이 자기 경험을 거쳐 자기 말이 되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자기 말이 된 말이 나와주면, 그것은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88쪽

 

갓 딴 사과를 베어먹었던 적도 있고

바다를 향해 홀로 노래했던 적도 있다

스파게티 먹으며 수다를 떨었고

커다란 빨간 풍선을 불었던 적도 있다

당신을 좋아한다고 속삭이고 그리고

짭짤한 눈물의 맛도 이제 알고 있다

그런 나의 입술....

 

이제 비로소 - 당신에게 드립니다

온 세상이 소리를 죽인 이 밤에

 

다니카와 슌타로 '드립니다' 전문

 

언어는 의미에 얽매이기 마련이지요. 아무래도.

특히 음성으로 소리를 내서 청중에게 전달하는 경우에는

그 말의 어조, 소리에 관련된 요소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것을 순수하게 파고들면, 아무래도 음악이 되어버리는데요.

저는, 물론 좋아하는 시는 있습니다만,

예를 들어 제가 좋아하는 모차르트의 음악 한 대목과

좋아하는 시 한 구절을 비교해서 어느 쪽이 소중하냐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모차르트의 음악이 소중하거든요.

그러니까 늘 시는 음악을 좇지만

따라잡지는 못한다는 기분이 강합니다.

108쪽

 

시라는 것은 산문과 달라서, 의미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울림이라든지 이미지라든지 여러 가지 것을 동원해서 언어라는 놈을 전달합니다. 그러니까 무의미한 것을 시에 씀으로써 거꾸로 그 의미 이전의 세계를 만져서 느끼고 손으로 더듬어....존재 자체의 리얼리티 같은. 뭔가 언어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느끼게 만든다, 그것이 시가 맡은 역할의 하나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112쪽

 

저는 비교적 처음부터 언어를 신용하지 않아서,(웃음) 시도 줄곧 신용하지 않는 입장에서 해온 셈입니다만, 그래도 인간은 절대로 언어에서 도망칠 수 없지요. '신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언어로 말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그것은 당연히 전제로서 존재하는 것이겠습니다만, 그 '넌센스'라는 것이 지닌 불가사의한 매력이 있꼬, 그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안 된다고 그저 부정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갸, 그렇게 생각합니다. 116쪽

 

* 무엇이든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게 철석같이 믿는 사람도 있는데요.

 

저는 절대로, 언어라는 것은 정말로 부자유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어라는 게 모순을 싫어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현실은 모순되어 있지 않으면 현실이 아닌 거지요. 그것을 언어는 표현랄 수 없다. 그러니까 언어에 의지하는 것은, 어떻게 하더라도 인간의 현실을 놓칠 가능ㅅ어이 있으니까, 늘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19쪽

 

의미의 세계와 무의미의 세계가 있서, 그것이 서로 보완하고 있다고 말하면 될까요. 그 양쪽에 리얼리티, 현실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만. 120쪽

 

현실의 일상생활만이 아닌, '산다'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아마도 산다는 것 전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죽음이라는 것을 계산에 넣어야 한다. 그리고 죽음을 시야에 넣지 않으면 산다는 것 전체를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비교적 젊은 시절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134쪽

 

시인으로서의 목표 따위는 없습니다만,

인생에서의 목표는, 이제 즐겁게 건강하게 죽고 싶은 게 목표입니다.

노후의 즐거움은 역시 '죽는 것'이지요.

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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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시를 써 온 시인의 육성을 듣는다는 것.

인터뷰집의 묘미,

60년의 지혜를 미리 당겨 알 수 있다는 것(과연?)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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