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에 있는 사진 때문인지, 읽는 내내 비비안 마이어가 생각났다. 자기 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여인의 느낌. 개인의 일은 철저하되, 어딘지 모르게 사회성이 부족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잘 살아가고 있었던.
150쪽이 안되는 이 착한 책은 '독자들의 저속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언론이 어떻게 한 개인의 명예와 인생을 파괴해 가는가를 철저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저 근면하게 살며 차곡차곡 삶의 기반을 일구어 왔을 뿐인 한 여인의 진술은 왜곡, 허위 보도를 일삼는 언론의 언어, 그리고 그에 폭발적으로 호응하는 군중의 욕설과 극명하게 대조되며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평범한 개인이 "살인범의 정부"가 되고 "테러리스트의 공조자", "음탕한 공산주의자"가 되고 마는 과정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아도 결코 낯설지 않은 장면'을 보여준다.
흔한 말로, 욕심 없이 성실히 사는 서민의 전형이 어떻게 인권을 유린당하고 파멸의 길로 가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거창하게 인권, 까지 가지 않아도 사생활이 까발려지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해 변명할 여지 없이 매도 당하는 것, 그 상황이 온다면 아마 나는 변명하지 않고 입을 다물 것 같다. 입을 열기에 그 횡포는 넘 거대하고 기막히게 다가올 것 같다. 굳이 황색 언론이 아니어도 인테넷과 SNS의 세상을 사는 지금의 우리는 카타리나 블룸과 같은 상황에 처하거나, 그러한 상황을 만드는데 일조할 확률이 높은 시대에 살고 있다.
계획성 있는 지성과 관련된 정확성은 감옥이나 관리소 어디에나 전혀 원하는 바가 아니다.132쪽
친절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최소한 그 기사를 조금은 믿는 눈치였습니다.143쪽
그렇다. 한 번 노출되어 버리면 대중은, 아니 그를 잘 알고 있는 사람조차도 '조금은 믿는 눈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원래대로 회복할 길이 없다. 상처 받았다는 말을 쉽게 하지만, 억울함으로 인해 생긴 상처는 상흔이 쉬이 없어지지 않는다. 카타리나 블룸처럼 정확하게 성실하게 살아 온 사람들이 더 이런 상황에 노출되기 쉬운 것도 삶의 아이러니다.
최근에 유시민씨가 '썰전'에서 이 책을 언급했는데, 부디 이 기회에 이 책이 좀 더 읽히는 책이 되었음 한다. 150쪽이 안되니 국어 선생님들은 논술 책으로 많이 활용해 주면 좋겠다. 비록 이 책은 언론이 개인의 인권을 훼손하는 폭력성을 다루었지만, 개인과 개인 집단과 개인의 문제로도 충분히 확장해서 생각해봄직하다. 요즈음의 아이들에게라면 특히나 필요한 생각거리이고 어른들이라고 다르지 않음이다. 내 명예를 지키는 것이 소중한 만큼 남의 명예 또한 지켜줘야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