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투란도트 ㅣ 미래그림책 26
윈슬로우 펠스 그림, 마리아나 매이어 글, 이선오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요즘 계속 중국이 배경인 책을 읽게 된다. 스스로 찾아서 읽은 것도 있고, 이 책처럼 우연히 만나지기도 한다. ‘투란도트’는 중국의 공주 이름이다. 우리에겐 푸치니의 오페라 제목으로 유명하다. 그 오페라를 한 번도 본 적은 없건만 푸치니도 투란도트도 익숙한 이름이라, 읽는 내내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림책이지만 읽어내려 갔다는 표현을 써야 할 정도로 글은 많은 편이다. 글이 꽤 문학적이다. 번역인데도 문학적인 멋을 잘 살려서 한 문장 한 문장이 등장인물의 내면 묘사나 배경묘사를 충실히 해준다. 비의를 찾아 읽으라고 속삭여주는 듯 상상력을 자극하는 글이다. 그림 또한 그런 글에 뒤질세라 무척 신비롭다. 중국이 배경이고, 푸치니는 이탈리아 사람이며, 미국인이 그림을 그린 탓인지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동양적인 소품을 사용했음에도 그림의 분위기는 퓨전이다. 어찌 보면 동양풍이고 어찌 보면 서양풍이라 호기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림도 한 장면 한 장면이 아주 극적이다. 오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오페라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카메라의 앵글을 보는 느낌도 난다. 색상과 소재 하나 하나 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그림이다. 투란도트의 냉정한 얼굴 표정과 얼굴빛은 차가운 공주의 심장을 대변하지만 공주의 입술이나 상사화?엔 붉은 빛을 둠으로 희망을 밝혀준다. 면지의 그림이나 가장자리에 달의 변화를 디자인화해서 띠를 두른 것, 뒤로 갈수록 따스하게 변하는 색상들은 기존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었을 때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투란도트는 백호를 대동하고 나타난다. 투란도트의 얼음심장을 녹일 인물 칼리프는 청룡을 상징한다. 청룡과 백호라는 중국 신화의 동물들을 상징하는 두 주인공의 만남이 어떻게 결론이 맺어 질까. 뻔한 결말이긴 하지만 그 의미하는 바는 크다. 전통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민초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이야기’의 역할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너무 익숙한 것은 내칠 수도 있고 끌어안을 수도 있다. 투란도트라는 이름은 익숙하기에 내쳐질 뻔 했다. 투란도트라는 그림책 한 권으로 참 신비한 경험을 했다. ‘이야기’가 주는 매력에 흠뻑 빠진 것도 재미가 있었지만, 그 이야기가 동서양을 넘나들면서 예술가의 혼을 자극해서 무대에 올려지기도 하고 그림으로 그려지기도 하며 문학적인 글로 태어나기도 했다는 것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또 삶과 이야기의 그 결과물은 사실은 그 개인 것이 아니라 고래로 이어져 내려 온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삶의 족적이 진하게 묻어 있다는 것, 자연과 뗄 수 없는 인간의 삶과 생명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신화와 옛이야기의 향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