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내가 살았던 집의 마당엔 사시사철 꽃이 피었다. 마당이 그리 넓지 않았던 터라 한켠이라곤 하지만 마당의 반을 차지할 정도의 화단엔 늘 꽃이 있었다. 채송화 봉숭아는 기본이요 내가 늘 신비롭게 여기면서도 무시했던 족도리꽃과 과꽃 수국등이 있었다.
채송화와 봉숭아 과꽃, 수국은 그 후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유독 족도리꽃만은 그 이후로 볼 기회가 없었다. 내가 살던 지방과 지금 살 던 곳이 지리적으로 많이 떨어져 있어선지 족도리꽃은 그렇게 내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그러던 꽃이 재 작년 부터 살금살금 눈에 띄기 시작했는데 기회는 주로 이런 경우였다. 차를 타고 가다 농가 담벼락 한 귀퉁이에 족도리 꽃을 발견하곤, 목마른 자가 물가를 향해 달려가는 심정으로 "빽~해~!" 소리를 질러도,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엔 드디어 제대로 걸렸다. 주차를 할 수 있을 뿐더러 흐드러진 여러 송이의 꽃이 있어 종자채취까지 가능했기 때문이다. 향기가 아니라고 내가 무시했던 그 은근한 풀비린내를 풍기며 농가 마당에 흐드러진 족도리풀을 본 순간 난 사뭇 감동의 도가니로 빠져 들 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도 꽃이 이뻐 다가가면 그 풀내 때문에 금방 물러 나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좋아하면서도 다가갈 수 없었던 꽃이라고나 할까..
이제 새로 보니 종려나무의 비늘 마냥 큰 줄기대에 오종종 붙은 잎새하며 한 올 한 올 펼쳐 보이는 꽃잎의 향연들. 해바라기 마냥 한 꽃대에 한 송이의 꽃이 피는 것이 (아마 생물학적으로 따지면 한송이로 보이는 것일 뿐 여러 송이일 것이다) 도도함 마저 느끼게 했다. 어쨌거나 타향살이를 하는 입장에서 본 내 유년의 꽃은 잠시나마 애상적인 그리움을 불러 일으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