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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8월
평점 :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지 오래라는 생각을 한다. 생각의 편린 속에 모든 것을 가두어 놓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편이 오히려 일상적이고 지나치게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나에 대한 고민과 집착의 골이 더욱 커져 어느 사이엔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도, 내뱉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의지가 강해졌을까. 아마도 정반대일 것이다. 한없이 작아지는 우리만의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용기마저 박탈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만큼 ‘선생님’이라 불리우는 책 속의 화자의 고백이 더없이 간결하고 깊게 파고드는 이유이다.
여름방학 중에 바닷가에 놀러간 친구로부터 엽서를 받고 떠나는 여행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바닷가에서 어느 외국인과 함께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 그와 가까워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를 두고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부르기 시작하고, 그가 자주 가는 찻집에 앉아 만나기를 기다린다. 강렬한 태양빛이 비추는 바다에서 그와 함께한 그 해 여름. 그리고 헤어질 때 말했다. 도쿄에 돌아가서 선생님의 댁을 방문해도 되겠느냐고. 앞뒤 말도 없이 그러라는 선생님의 말에 휴가가 끝난 그 시간부터 둘은 친구가 된다.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고 근대 소설 속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류의 이야기지만 가슴 속 깊이 지워지지 않는 이유는 선생님이 남겨놓은 유서 때문이다. 선생님의 부인인 사모님과도 어색했던 첫 만남을 뒤로 하고 자주 만나게 되고 그들은 자주 어울리지만 선생님의 어깨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를 기다리며 시간은 흘러간다. 아주 기쁜 일에도 크게 웃지 않고, 슬픈 일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 선생님은 말한다. 때가 되면 내가 여지껏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마음속으로만 지니고 있던 그때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쉽게 말을 꺼내놓지 못하는 선생님의 행동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미치게 된다. 매월 조우시가야에 묻혀 있는 선생님 친구의 묘를 찾아가는 것을 보며 성숙하지 못했던 나’는 그토록 고통을 넘어선 표정의 초연함으로 살아가는 선생님에 대한 궁금증만 커지게 되고 그러는 사이에 지방에 계신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말을 듣게 된다. 졸업을 하고 집에 내려간 ‘나’는 9월에 다시 만나자는 선생님의 모습을 뒤로 하고 아버지의 병환의 골이 깊어진 것에 정신을 빼앗겨 어서 만나자는 선생님의 말을 따를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받는 한 통의 편지.
선생님이 죽기 열흘 전부터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써놓은 그 편지 의 내용은 가슴이 먹먹하고 무겁다. 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루하루 책만 보며 살아갔던 선생님, 인간이라는 것을 증오하며 그 누구와도 엮이지 않으려 했는지. 그리고 부인에게 불쌍하다고 말했던 이유. 왜 그렇게 세상의 모든 짐은 짊어진 것처럼 마음의 문을 닫아놓고 인간의 끈을 놓고 살았는지에 대한 가슴어린 충고와 변명, 그리고 결국에는 ‘나’라는 한 인간을 통해 사죄하려고 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무너질 듯이 누군가를 사랑하던 때도 있었고, 내일이 오지 않을 것 마냥 정처 없이 시간을 보낼 때도 있던 사람. 어떻게 보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 같은 이야기지만 다시 돌려 생각해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만큼 내 자유와 내게 온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자 만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에 갑자기 찾아온 시련과 고통을 어떻게 이겨내고 내일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인지는 내 의지와 달려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도 왜 선생님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만 할 수가 있었을까. 그것보다 더한 일을 겪고도 살아가는 사람이 있지 않나, 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런 생각이 스친다. 내 삶에 일어난 일들, 내 안의 고통, 더불어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나만이 겪었던 일은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시킬 수도 없다는 것을. 상대적인 잣대로 들이대기에는 나만 알고 있는 내 가슴속의 마음이 누구에게도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시키려고 마음을 드러내 보이고 싶지만 그러다가도 한없이 나를 가두어버리는 게 인간이라는 약한 존재다. 곁에 서서 위로도 해보고 잊어버리라는 말을 들어도 내 마음속의 치유는 온전히 나만의 몫인 것이다. 그래서 아마 선생님은 죽을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어쩌면 나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단숨에 기억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미약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절대적인 나만의 슬픔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어서이다.
열흘 동안 꼬박 써내려간 선생님의 편지를 마주하고 읽기를 끝마칠 때까지는 아주 짧은 시간이 흘렀다. 인간의 고백이라는 건 듣기 힘든 것이지만 한 번 듣기 시작하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마음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을뿐더러 혹여 듣게 된다 하더라도 그 안에 내가 완전히 동화되어 버릴 수 없는 신비한 무엇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아니 절대로 겪고 싶지 않은 일들을 마주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그저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거릴 수 있는 내 안의 의지를 강하게 키워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마음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면 그건 마음이 아니다. 머리로는 할 수 있다고 위로해보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고통의 심연은 저 푸른 바닷속 빛이 들어오지 않는 그 곳보다도 어둡고 쓰라린 곳일 테니까. 생명체가 찾아들지 않는 그런 상자 안에 나를 가둘 수밖에 없는 곳일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다 하더라도 이제부터는 다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기에는 선생님의 고백이 처절하고 더 진실하게 다가오기에 아주 조금은 그 우울하고 더딘 기억 속에 깊이 빠져 있고 싶다. 내가 겪지 않은 그 누구의 고통을 발판삼아 한걸음 내딛기에는 그 감정의 폭이 너무 넓어서이다. 하지만 내 마음을 조금 열고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마음 속 미약한 진실이라도 내비추어 본다면,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것이라면 그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떠오른다. 아주 조금이나마 내 자신만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게 다라면 그보다 더 안 좋은 일은 없을 테니까. 인생의 양면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었다면 애초에 나는 없었을 테니까. 그저 꼭두각시마냥 끌려 다니는 일상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머리가 생각하는 대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아주 더디더라도 한 발씩 내딛는다면 수면위로 떠오를 저 끝의 태양만큼이나 아주 빨갛고 불에 타듯 넘실거리는 열정의 내일이 내 눈앞에 있기에, 오늘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의 나를 마주보며 살아가는 기회를 마련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