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발 로드 - 결혼자금 들고 떠난 달콤하고 짜릿한 공연따라 세계일주
유경숙 지음 / 동아일보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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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동안의 세계일주라니, 생각만 해도 꿈만 같다. 하지만 흔하디 흔한 여행책 중에서 단연코 이 책을 집어들을 수 있는 건 아마 매력적인 두 가지, 여행과 공연을 동시에 바라다볼 수 있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공연 기획자인 작가는 비즈니스적인 목적을 가지고 떠난 여행에서 우리나라 공연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페스티벌 속의 묘미라든지, 그 나라에 녹아든 정서에 관한 고찰을 많이 하고 돌아온 것 같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리고 여행의 끝 속에 남아있는 것은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날개 없는 천사가 인간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아마 여행 중에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값진 여행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초대형 뮤지컬만이 상업적인 목적을 띠고 홍보를 하듯, 거리마다 즐비한 포스터. 해외 유명 작품이 들어서자 마자 매진되는 지금 우리나라의 공연장 현실은 불보듯 뻔하다. 순수한 의미의 공연은 적어지고 그저 돈이 되는 작품만을 들여오는 배급사의 어쩔 수 없는 욕심과 그에 동하여 유명한 것만을 고집하는 관객들의 과도기적 태도 또한 그 의미를 더 퇴색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 속에 직접 카메라를 들고 떠난 작가의 기록을 보고 있자니, 수많은전세계의 페스티벌과 공연이 있는 파라다이스를 향해 달려가고 싶은 마음 뿐이다.  

사실 유명한 작품을 보고도 실망하는 경우가 있고, 아주 허름한 소극장에서 부르는 애절한 노랫소리에 감동을 받는 예상치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예를 보면 모두가 같은 것만을 좇아가지 않아도 되는데, 라는 생각에 잠긴다. 하지만 작가가 세계 곳곳을 누비며 돌아다본 전세계의 공연시장은을 보며 우물안 개구리처럼 잠자코 있었던 나는 충격을 받았다. culture shock. 흔히 쓰는 이 말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이토록 가슴에 와닿게 느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이디어가 샘솟는 현장. 그곳을 바라다보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언어로 된 시를 외국어로서는 그 의미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서 노벨상을 받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스페인의 마임 페스티벌을 보면서는 언어없이도 누구나 그 의미를 느낄 수 있을 거야, 라는 발상.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면서 점점 더 서양의 것만 좇아가는 현실에 반발하는 듯 열리는 아프리카의 전통 축제.

아이디어라면 무궁무진하고, 어딘가에 이미 존재하고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눈을 더 크게 뜨고, 머릿속 저 끝에, 가슴 속 감성공간의 그 무엇을 끄집어내어 발전시킨다면 이토록 아름다운 여행에 한 발 더 가까이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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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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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지 오래라는 생각을 한다. 생각의 편린 속에 모든 것을 가두어 놓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편이 오히려 일상적이고 지나치게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나에 대한 고민과 집착의 골이 더욱 커져 어느 사이엔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도, 내뱉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의지가 강해졌을까. 아마도 정반대일 것이다. 한없이 작아지는 우리만의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용기마저 박탈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만큼 ‘선생님’이라 불리우는 책 속의 화자의 고백이 더없이 간결하고 깊게 파고드는 이유이다.

여름방학 중에 바닷가에 놀러간 친구로부터 엽서를 받고 떠나는 여행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바닷가에서 어느 외국인과 함께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 그와 가까워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를 두고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부르기 시작하고, 그가 자주 가는 찻집에 앉아 만나기를 기다린다. 강렬한 태양빛이 비추는 바다에서 그와 함께한 그 해 여름. 그리고 헤어질 때 말했다. 도쿄에 돌아가서 선생님의 댁을 방문해도 되겠느냐고. 앞뒤 말도 없이 그러라는 선생님의 말에 휴가가 끝난 그 시간부터 둘은 친구가 된다.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고 근대 소설 속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류의 이야기지만 가슴 속 깊이 지워지지 않는 이유는 선생님이 남겨놓은 유서 때문이다. 선생님의 부인인 사모님과도 어색했던 첫 만남을 뒤로 하고 자주 만나게 되고 그들은 자주 어울리지만 선생님의 어깨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를 기다리며 시간은 흘러간다. 아주 기쁜 일에도 크게 웃지 않고, 슬픈 일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 선생님은 말한다. 때가 되면 내가 여지껏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마음속으로만 지니고 있던 그때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쉽게 말을 꺼내놓지 못하는 선생님의 행동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미치게 된다. 매월 조우시가야에 묻혀 있는 선생님 친구의 묘를 찾아가는 것을 보며 성숙하지 못했던 나’는 그토록 고통을 넘어선 표정의 초연함으로 살아가는 선생님에 대한 궁금증만 커지게 되고 그러는 사이에 지방에 계신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말을 듣게 된다. 졸업을 하고 집에 내려간 ‘나’는 9월에 다시 만나자는 선생님의 모습을 뒤로 하고 아버지의 병환의 골이 깊어진 것에 정신을 빼앗겨 어서 만나자는 선생님의 말을 따를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받는 한 통의 편지.

선생님이 죽기 열흘 전부터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써놓은 그 편지 의 내용은 가슴이 먹먹하고 무겁다. 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루하루 책만 보며 살아갔던 선생님, 인간이라는 것을 증오하며 그 누구와도 엮이지 않으려 했는지. 그리고 부인에게 불쌍하다고 말했던 이유. 왜 그렇게 세상의 모든 짐은 짊어진 것처럼 마음의 문을 닫아놓고 인간의 끈을 놓고 살았는지에 대한 가슴어린 충고와 변명, 그리고 결국에는 ‘나’라는 한 인간을 통해 사죄하려고 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무너질 듯이 누군가를 사랑하던 때도 있었고, 내일이 오지 않을 것 마냥 정처 없이 시간을 보낼 때도 있던 사람. 어떻게 보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 같은 이야기지만 다시 돌려 생각해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만큼 내 자유와 내게 온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자 만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에 갑자기 찾아온 시련과 고통을 어떻게 이겨내고 내일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인지는 내 의지와 달려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도 왜 선생님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만 할 수가 있었을까. 그것보다 더한 일을 겪고도 살아가는 사람이 있지 않나, 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런 생각이 스친다. 내 삶에 일어난 일들, 내 안의 고통, 더불어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나만이 겪었던 일은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시킬 수도 없다는 것을. 상대적인 잣대로 들이대기에는 나만 알고 있는 내 가슴속의 마음이 누구에게도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시키려고 마음을 드러내 보이고 싶지만 그러다가도 한없이 나를 가두어버리는 게 인간이라는 약한 존재다. 곁에 서서 위로도 해보고 잊어버리라는 말을 들어도 내 마음속의 치유는 온전히 나만의 몫인 것이다. 그래서 아마 선생님은 죽을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어쩌면 나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단숨에 기억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미약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절대적인 나만의 슬픔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어서이다.

열흘 동안 꼬박 써내려간 선생님의 편지를 마주하고 읽기를 끝마칠 때까지는 아주 짧은 시간이 흘렀다. 인간의 고백이라는 건 듣기 힘든 것이지만 한 번 듣기 시작하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마음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을뿐더러 혹여 듣게 된다 하더라도 그 안에 내가 완전히 동화되어 버릴 수 없는 신비한 무엇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아니 절대로 겪고 싶지 않은 일들을 마주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그저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거릴 수 있는 내 안의 의지를 강하게 키워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마음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면 그건 마음이 아니다. 머리로는 할 수 있다고 위로해보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고통의 심연은 저 푸른 바닷속 빛이 들어오지 않는 그 곳보다도 어둡고 쓰라린 곳일 테니까. 생명체가 찾아들지 않는 그런 상자 안에 나를 가둘 수밖에 없는 곳일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다 하더라도 이제부터는 다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기에는 선생님의 고백이 처절하고 더 진실하게 다가오기에 아주 조금은 그 우울하고 더딘 기억 속에 깊이 빠져 있고 싶다. 내가 겪지 않은 그 누구의 고통을 발판삼아 한걸음 내딛기에는 그 감정의 폭이 너무 넓어서이다. 하지만 내 마음을 조금 열고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마음 속 미약한 진실이라도 내비추어 본다면,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것이라면 그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떠오른다. 아주 조금이나마 내 자신만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게 다라면 그보다 더 안 좋은 일은 없을 테니까. 인생의 양면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었다면 애초에 나는 없었을 테니까. 그저 꼭두각시마냥 끌려 다니는 일상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머리가 생각하는 대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아주 더디더라도 한 발씩 내딛는다면 수면위로 떠오를 저 끝의 태양만큼이나 아주 빨갛고 불에 타듯 넘실거리는 열정의 내일이 내 눈앞에 있기에, 오늘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의 나를 마주보며 살아가는 기회를 마련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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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7 11: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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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인 러브 판타 빌리지
로라 위트콤 지음, 나선숙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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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있는 사람의 몸 속으로 영혼이 들어간다. 버려져 있다고 하기에는 그만큼 충분하지 않지만, 비어 있는 그 몸으로 들어가 새로운 영혼이 육체를 조금 더 활발하게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게 어쩌면 더 나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떠돌아다니는 영혼, 헬렌은 지금까지 인간의 뒤 그림자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호스트를 지킨다. 스스로는 지킨다고 하지 않지만, 그 옆에서 흔적없이 돌아다니는 일종의 조언자 같은 느낌으로. 전에도 여러 사람의 곁에서 떠돌았지만, 바로 전의 호스트를 떠나 지금의 호스트는 브라운씨다. 고등학교 선생님인 그의 옆에서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의 스침을 행하면서 돌아다니는 헬렌. 세상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아직까지 헬렌을 알아차리는 그 누군가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헬렌은 말한다.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지면 그건 너무 신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섬뜩할 것이라고. 어느 날, 그런 헬렌을 바라다보는 시선을 느낀다.  

윌리엄 블레이크, 브라운 씨가 가르치는 교실에서 헬렌을 쳐다보는 한 소년의 시선이 느껴진다. 혹시나 해서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아, 알아차리지 못했구나, 라고 안도하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그 소년. 그리고 헬렌에게 말을 건다. 무서워하지 말라고. 자신도 혼령이었다가 비어있는 몸인 이 곳에 들어온 것 뿐이라고. 제임스, 혼령의 이름이다.  

그렇게 시작된 그 둘의 사랑은 섬뜩하기는 커녕 사랑스럽기만 하다. 인간이라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인 사랑은 절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생각하는 모든 존재에게 행해지는, 어쩌면 가만히 있는 사물에게까지 그 영혼이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특별한 감정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헬렌은 빌리의 몸인 제임스를 만질 수 없고, 그런 헬렌을 바라보는 제임스도 헬렌을 바라보면서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는 그 둘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던 중에 정신이 비어있는 듯한, 정확하게는 말하면 살아있지만 그 삶에 대한 어떤 여유와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것 같은 비어있는 몸, 제니를 발견하게 된다. 헬렌은 그 몸속으로 들어간다. 약간의 짜릿함과 기대감을 가지면서도 두려움을 느끼면서.  

아주 독특하고 섬뜩한 소재로 이렇게 로맨틱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가 지긋이 상상은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이야기가 가슴깊이 전해질 줄은. 상상했던 것이 눈앞에 펼쳐지게 될 때 전보다 더 짜릿한 흥분이 지나가게 되는 데 바로 이 책이다. 하지만 단지 혼령들의 사랑이이야기라는 독특한 소재만이 이 책의 매력은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는 것인가. 살아 있다고 해서 누구나 다 똑같이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일시적인 방황이나 자괴감으로 인해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반면에, 그러한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사람 또한 있게 되는 것이다. 이 혼령들이 이러한 비어있는 몸 속으로 들어가서 자극제가 되는 것이다. 혼령이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그 순간은 인간의 기억에서 없어져 버리겠지만, 그 후의 일은 전보다 더 활력있는 삶이 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소중하다고 하는 것이다.  

포기하고 살아갈 때 즈음, 내 삶이 가장 힘들 때 즈음, 헬렌이나 제임스 같은 혼령이 내 몸속으로 들어와 자극시켜 줄 그날이 한 번씩은 올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건 그 이후에 밝아오는 빛을 기다리며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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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 여행에 미친 사진가의 여행본능을 불러일으키는 포토에세이
신미식 사진.글 / 끌레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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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방을 둘러메고 집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바람결에 스치듯 저 끝까지 뻗은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갑자기 멈추고 싶은 순간이 있다. 숨을 들어마시고는 참는다. 찰칵, 경쾌한 소리. 셔터를 누르고 싶은 바로 그 순간. 사진은 여행의 기록이기에 앞서 그 찬란한 시간과 공간을 담고 싶은 나의 욕망이다.  

읽는 이로 하여금 압도하지 않는 글을 써내려 간다는 건 어쩌면 더욱더 감미로운 이야기다. 사진을 찍는 그라서 그럴까. 작가이기에 앞서 여행을 다니고 그 곳에서 찍은 사진을 펼쳐놓고 써내려간 그의 글들을 읽다보면 경이로움보다는 친근감이 든다. 거기다가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칼로 주욱 그어서 책에 있는 사진들을 방의 한쪽 벽면에 걸어놓고 싶은 마음도 든다. 그만큼 사진과 글에 대한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곳에 가면 누구나 다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있어,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셔터만 눌러대도 그림이 되는 그러한 곳이 있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런 사진을 찍고 글을 쓴 작가에게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건, 그를 사진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바로 이거다. 그 사진을 찍기 까지 발품을 팔아 걸어가고, 오르고 순간의 호흡을 참고 프레임 안에 그 모습을 담아내려는 노력. 그 노력이 사진을 대신하고 사진이 그 노력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노력에 따른 여행길이, 그 이전에 여행을 떠나기 위한 용기가 없었다면 사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열정을 보여주며 그 결과물인 이 책을 들고 열정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그 곳으로의 초대.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보면서 이 곳에 가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고 다시 주저한다. 여행은 용기있는 자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새삼 느끼게 된다. 누구나 다 여행을 꿈꾸지만 여행을 하는 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꿈꾸고 있는 그 곳. 당장 내일이 될지도 모르는 그 여행을 부추기는 이 책을 읽으며, 그 날을 꿈꾼다. 언제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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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로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3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숙자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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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놓아버린 후에야 알 수 있었다. 하나씩 더 가지려고 할 때마다 다가오는 것들은 무의미했고, 그 소유욕을 버리고 나니 버지니아 울프가 하고 싶은 말들이 천천히 스며드는 느낌이었다고 해두고 싶다. 흘러가는 이야기에 내 감정을 맡기고 나니 오히려 쉬워서 이토록 더 아릿하게 기억이 남아있는 건지도.

매끈하게 빠진 겉을 두드려 보고 실제로 그 안의 모습이 어떤지를 봐야 알 수 있는 그들. 램지 가족은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나름대로의 고민과 불일치를 가지고 있다. 등대지기 아들을 그리워하는 램지 부인. 신경질적이고 가부장적인 램지 씨의 곁을 지키는 현모양처. 하지만 그녀의 과장된 말투와 몸짓. 누구나 램지 부인을 좋아하지만 그녀가 홀로 가지고 있을 아픔들은 그 성격으로 인해 더욱더 감출 수 있는 것이 되어버린다. 또, 노처녀이면서 화가로서 살아가는 릴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다른 사람이 보아 해석해 주고 나서야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자신이 없는 그런 모습. 

삶에 대한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나락으로 떨어질수록 감당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어버리지만 나름대로의 치유책을 가지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남들이 보았을 때는 하찮아 보이는 고민거리일지라도 그 사람의 속은 아무도 모른다.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보여주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지만, 보여준다고 한들 그게 나 아닌 누군가에 의해서 풀어질 것들이던가. 만약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면 이처럼 누구나 삶을 살아가는 게 어렵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채로 살아간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후, 그동안 램지 부인은 죽었고, 딸인 프루도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아들 앤드루도. 전쟁이 있었던 10년 동안 수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갔고 램지 부인을 추모하러 10년 만에 다시 그 별장으로 모인다. 하나둘씩 그날의 일들을 생각하면서. 별다른 사건이 있지도 않았고,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로서 저녁식사를 했던 그 사람들이 점차 모이는 것을 보면서 느낌이 묘해진다. 같은 공간, 10년 전의 그 곳에 있었던 일을 추억하며 만나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곁에 없다. 

곱씹어보게 된다. 그저 그 날의 일. 그리고 10년 후의 재회. 지나치게 단순한 이야기로서 보여주는 게 무엇인지. 하지만 마지막 등대에 다다를 때 즈음의 제임스와 캠,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 램지 씨가 배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그 모습이 스쳐간다. 마무리 되지 못한 그림을 바라보며, 다가오는 램지 씨를 바라보는 릴리가 그림의 마지막 획을 긋는 그 모습도.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을 말하고 있구나, 라고. 배에 탄 제임스와 캠은 아버지인 램지 씨를 증오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욕망을 한없이 가라앉히면서 등대로 간다. 하지만 등대에 내리려 할 때 즈음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참된 모습을. 

되돌아보고 또 되돌아보면, 깊게 생각하고 다시 한 번 반대로 생각해보면 단순한 일인데. 우리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현실에 불만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야 없겠지만, 그 정도의 깊이 차이는 누구나 다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정신적인 것으로든 물질적인 것으로든 그 현재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이 모든 이야기를 파헤쳐 보면 알게 되는 그 의미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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