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인 러브 판타 빌리지
로라 위트콤 지음, 나선숙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비어있는 사람의 몸 속으로 영혼이 들어간다. 버려져 있다고 하기에는 그만큼 충분하지 않지만, 비어 있는 그 몸으로 들어가 새로운 영혼이 육체를 조금 더 활발하게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게 어쩌면 더 나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떠돌아다니는 영혼, 헬렌은 지금까지 인간의 뒤 그림자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호스트를 지킨다. 스스로는 지킨다고 하지 않지만, 그 옆에서 흔적없이 돌아다니는 일종의 조언자 같은 느낌으로. 전에도 여러 사람의 곁에서 떠돌았지만, 바로 전의 호스트를 떠나 지금의 호스트는 브라운씨다. 고등학교 선생님인 그의 옆에서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의 스침을 행하면서 돌아다니는 헬렌. 세상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아직까지 헬렌을 알아차리는 그 누군가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헬렌은 말한다.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지면 그건 너무 신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섬뜩할 것이라고. 어느 날, 그런 헬렌을 바라다보는 시선을 느낀다.  

윌리엄 블레이크, 브라운 씨가 가르치는 교실에서 헬렌을 쳐다보는 한 소년의 시선이 느껴진다. 혹시나 해서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아, 알아차리지 못했구나, 라고 안도하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그 소년. 그리고 헬렌에게 말을 건다. 무서워하지 말라고. 자신도 혼령이었다가 비어있는 몸인 이 곳에 들어온 것 뿐이라고. 제임스, 혼령의 이름이다.  

그렇게 시작된 그 둘의 사랑은 섬뜩하기는 커녕 사랑스럽기만 하다. 인간이라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인 사랑은 절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생각하는 모든 존재에게 행해지는, 어쩌면 가만히 있는 사물에게까지 그 영혼이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특별한 감정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헬렌은 빌리의 몸인 제임스를 만질 수 없고, 그런 헬렌을 바라보는 제임스도 헬렌을 바라보면서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는 그 둘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던 중에 정신이 비어있는 듯한, 정확하게는 말하면 살아있지만 그 삶에 대한 어떤 여유와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것 같은 비어있는 몸, 제니를 발견하게 된다. 헬렌은 그 몸속으로 들어간다. 약간의 짜릿함과 기대감을 가지면서도 두려움을 느끼면서.  

아주 독특하고 섬뜩한 소재로 이렇게 로맨틱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가 지긋이 상상은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이야기가 가슴깊이 전해질 줄은. 상상했던 것이 눈앞에 펼쳐지게 될 때 전보다 더 짜릿한 흥분이 지나가게 되는 데 바로 이 책이다. 하지만 단지 혼령들의 사랑이이야기라는 독특한 소재만이 이 책의 매력은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는 것인가. 살아 있다고 해서 누구나 다 똑같이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일시적인 방황이나 자괴감으로 인해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반면에, 그러한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사람 또한 있게 되는 것이다. 이 혼령들이 이러한 비어있는 몸 속으로 들어가서 자극제가 되는 것이다. 혼령이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그 순간은 인간의 기억에서 없어져 버리겠지만, 그 후의 일은 전보다 더 활력있는 삶이 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소중하다고 하는 것이다.  

포기하고 살아갈 때 즈음, 내 삶이 가장 힘들 때 즈음, 헬렌이나 제임스 같은 혼령이 내 몸속으로 들어와 자극시켜 줄 그날이 한 번씩은 올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건 그 이후에 밝아오는 빛을 기다리며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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