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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 Re-encount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럴땐 참 글재주 없음이 몹시 아쉽다. 잘 만들어진, 그러나 대형 영화에 비해 홍보도, 상영관도 턱없이 부족한 영화가 그냥 스치듯 묻히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가득인데, 힘없는 나로서 해 줄 수 있는 영역이 그나마 잘 봤다는 입소문인데,,그러려면 리뷰를 멋지게 써야는데, 다른 이에게 영화 보고 싶다는 느낌을 줘야는데, 아~~, 근데 어떻게 그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너무 아쉽고 미안하나, 나는 글재주가 특별하지 않으니, 최대한 진실되게 느낌을 열거할 수 밖에 없다. ㅠㅠ
대한극장 멤버쉽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만났다. 회사 근처에 메가박스가 생기면서부터 대한극장을 집드나들듯 하던 발걸음이 메가박스로 옮겨진지 꽤 되었다. 극장홈피를 통해 혜화,동 시사회가 뜬 이후 실로 오랫만에 응모를 했고, 당첨되는 행운이 왔다. 앗싸~~!!
영화는 제목부터 물음표를 가져온다. 혜화동이면 대학로인가? 그럼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눈에 띄는 빨간 목도리를 한 여배우의 신선하고 차분한 이미지의 포스터와 그 눈빛, 자꾸 눈길이 갔다. 그리고 영화 티켓과 함께 받은 전단지를 살펴보는 순간 제목 <혜화,동>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여주인공의 이름 혜화였다. 그럼, 동은 어떤 의미일까?? 혜화의 겨울이야기라서 冬인듯도 하고, 혜화의 마음이 차츰 움직여서 動도 될듯 하다. 혜화의 아이가 나오니 아이 童일수도 있겠네...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한 제목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영화는 시작 되었다.
사랑하는 한수의 아이를 가진 혜화는 학교를 그만 두고, 태어날 아기와 생계를 위해 네일 아트를 배운다. 고등학생인 한수의 손톱도 혜화의 연습대상이다. 그러던 중 한수는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혜화는 어리지만 한수와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혼자 남게 된다. 그 후, 5년...유기견을 구조하는 일을 하는 혜화 앞에 다시 나타난 한수는 죽은 줄 알았던 자신들의 아이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제 5년 전 멈춰진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다.
영화는 빨간 머플러를 하고, 하늘색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여주인공을 카메라가 따라가며 시작한다. 처음에 조금 흔들리는 듯한 카메라워크를 보며 여주인공의 마음 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차분하고 단아한 인상의 배우, 유다인은 제 옷을 맞춤한듯한 조용하지만 미묘하게 변화하는 심리연기를 잘 표현한다. 영화를 이끌어나가야 하는 여주인공으로 그녀는 약한듯 보이나, 강단있고 섬세한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잘 잡아 나간다. 5년이라는 켜켜이 쌓인 시간만큼 성숙해지는 그녀를 보는 것이 참 편안하고 즐겁다.
한수역을 맡은 배우 유연석은 참 눈빛이 좋은 배우이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뒤로 하고 도망갔지만, 혜화앞에 다시 나타나 현재의 복잡미묘한 관계를 배우로서 자기식의 캐릭터로 잘 소화해 내며, 그녀석인듯 몰입했다는 느낌을 관객인 나는 받았다. 그리고 참 잘 생겼다.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관객과의 대화에서 자기 생각을 여유 있는 유머와 함께 말하는 모습에서 더 호감이 갔다.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요소가 너무 많다. 요즘처럼 자극적이고 피튀기는 한국영화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잔잔하고 소소한 이야기라는 점이다.<카모메 식당>같은 일본 영화를 자주 찾던 내게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를 만난 느낌이다. 자극적이지 않고 일상적인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풀어가는 탄탄한 스토리의 힘은 분명 극본을 쓰신 감독님의 섬세함과 따뜻한 감성에서 비롯된 듯 하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버리지 않고 모아둔 손톱을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해낸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은 참 돋보인다. 감독과의 대화의 시간에 알게 된 15년동안 감독자신이 버리지 않고 모았다던 손톱이 소품으로 쓰였단다. 아, 감독 대단하다. 작은 거 하나에도 세심하게 신경 쓴 사려 깊은 연출도 한 눈 팔지 못하도록 영화에 몰입하게 한 가장 큰 힘이 된 듯 하다.
미성년자의 사랑, 미혼모, 그리고 유기견 등 주변에서 쉽게 만나게 되는 일상적인 소재와 사회적 소재들을 침울하고 어둡게 그리지 않고, 따뜻한 감성으로 관객과 조우하게 한 감독의 연출력은 그저그런 영화로 기억되지 않고, 소소하고 잔잔하지만 묵직한 울림을 가진 특별하고 소중한 영화로 기억하게 될듯 하다.
혜화와 한수의 결말을 그렇게 풀어낸 감독의 의도가 더 맘에 든다. 상처입은 그들,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며, 다시 서로 길을 떠난다. 그러나 혜화가 후진하는 순간 그곳에 희망은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혜화, 동을 잔잔하게 나의 강팍한 마음을 따뜻하게 움직여준 動으로 기억하고 싶다.
이 영화, 잘 되야 할텐데...그래서 감독과 배우들의 다음 작품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국 개봉관이 23개란다. 대규모 블록버스터들과 싸워 당당히 살아남았으면 하는 간절함이 더욱 커진다. 신인감독과 신인배우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