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9월 5주

정유미는 겁먹은 듯 소심한 눈빛의 배우다. 무언가를 말할 때 머뭇거리기도 한다. 그런 정유미가 영화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단역이든 개의치 않고 그녀의 필모그라피를 쌓아온 배우 정유미, 그녀는 지난 2004년 단편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으로 데뷔했다. '사랑니'(2005), '가족의 탄생'(2006), '좋지 아니한家'(2007), '네번째 시선'(2008),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 등 장르적 특성이나 예술성 짙은 영화들에 참여했다.  그런 그녀가 2010년 그녀에게 중요한 두 작품을 만나게 된다.

내 깡패같은 애인(2010)   

<줄거리> 
싸움 하나 제대로 못하지만 입심 하난 끝내주는 삼류건달 동철
“감당 안되게 깡 센 옆방 여자를 만났다!”
깡패라면 ‘가오’ 하나만은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싸움 하나 제대로 못해 민간인에게도 맞고 다니는 삼류 루저 깡패. 설상가상으로 옆집에 어떤 여자가 이사 오고 나서는 지금껏 지켜온 작은 자존심마저 흔들린다. 이 여자는 겉보기엔 참하게 생겼는데 나이도 어린 게 날 보고도 전혀 기죽지 않은 채 ‘옆방 여자’라고 부르면 눈에 힘부터 잔뜩 주고서는 바락바락 대든다. 하지만, 이 여자… 어쩐지 잘해주고 싶다!  

열혈 취업전선에 뛰어든 깡만 센 여자 세진
“옆방엔 깡패 같지도 않은 깡패가 산다!!”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되겠다는, 찬란한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했다. 보란 듯이 멋진 회사에 취직해서 반대하던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지고 이제 남은 건 깡 밖에 없다. 게다가 이사한 반지하 옆방에는 나름 기대했건만 하필이면 깡패가 산다. 맨날 맞고 다니는 깡패 같지도 않은 깡패라니 마주칠 때마다 실망감만 커져간다. 게다가 웬걸 이 남자, ‘옆방 여자’라고 부르며 꼬박꼬박 아는 척, 오만 참견을 다한다. 그런데, 이 남자… 왠지 싫지 않다!

‘깡’은 없지만 입만 산 깡패와, ‘스펙’은 없지만 깡만 있는 여자!
두 남녀가 매일 부딪치며 벌이는 격렬한 반지하 반동거가 시작된다.

서로 살아온 배경도, 취향도, 꿈도 너무 달라서 평생 만날 일 없을 것만 같던 두 남녀가 옆방 세입자로 만나 사사건건 부딪치는 그들의 이야기 <내 깡패같은 애인>. 

충무로를 대표하는 노련한 배우 박중훈과 충무로가 기대하는 여자배우 정유미가 만났다. 연기경력 24년을 맞은 베테랑 연기자 박중훈은 그동안 굵직한 작품들을 통해 폭 넓은 연기력을 선보여 왔다. 그런 대배우와 랑데뷰하게 된 정유미는 <내 깡패 같은 애인>을 만나 물 만난 고기처럼 완벽한 연기호흡을 선보인다. 인간미 넘치는 자연스러운 연기로 유쾌함을 선사하는 박중훈과 대선배 박중훈 앞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는 정유미가 풋풋한 자신만의 매력을 마음껏 뽐내며 영화를 조화롭게 이끌어 나간다. 

정유미는 이 영화에서 댄스 실력도 선보인다.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어보지만 좀처럼 면접기회가 오지 않는 세진, 모처럼 얻은 면접 날 다짜고짜 춤춰보라는 면접관의 요구에 두 눈 질끈 감고 무반주에 박자까지 넣어가며 춤을 춘다. 너무 귀여운 모습이었다.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정유미는 깡패 앞에서도 절대 기죽지 않을 만큼 강단 있는 세진의 캐릭터를 정유미화하여 연기했고 세상에 정유미라는 존재를 각인시켰다. 든든한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박중훈의 연기이지만, 그 못지 않게 배우 정유미라는 가능성의 재확인하는 영화이다. 

옥희의 영화(2010)  

<줄거리>  

영화과 학생 옥희 역할의 정유미, 영화 강사 혹은 영화과 학생 진구 역할의 이선균, 그리고 영화과 송교수 혹은 영화감독 송감독 역할의 문성근. 이 세 배우/인물들은 네 가지의 다른 이야기 속에 등장하면서 각 이야기 사이의 겹침과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어느 겨울 세 남녀 인물 사이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어떤 정서가 네 이야기를 또 하나로 모으게 된다.

<주문을 외울 날>
삼십대의 독립 영화감독 진구는 생활비를 벌려고 대학에 시간강사로 나가고, 출근길 집을 나서며 그가 만든 주문을 외운다. 진구의 하루는 처에게 잔소리를 듣는 걸로 시작해, 학교에선 아둔한 여학생으로 인해 열을 낸다. 학과장인 송교수와는 예술영화의 미래에 대한 허망한 대화를 나누고 우연히 송교수의 비리에 관한 소문을 듣게 된다. 교강사 회식에서는 술에 취해 송교수에게 그 소문에 대한 진실을 묻다가 핀잔을 듣는다. 밤에는 자기가 만든 단편을 틀고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데 한 여자로부터 대답하기 정말 힘든 질문을 받고 곤란에 처하게 된다.

<키스 왕>
이십대 영화과 대학생인 진구는 자기 작품에 대해 송교수에게서 칭찬을 듣는다. 평소 좋아하던 여학생 옥희를 쫓아 아차산으로 찾아간 그는 옥희에게 사랑의 맘을 고백하지만 반응은 시큰둥한 것 같다. 뒷골목에서 헤어지는 옥희와 송교수는 비밀스런 연인 관계인 것처럼 보이지만 진구는 그 사실을 모른다. 진구는 옥희에게 다시 사랑을 고백하고 키스를 한다. 진구는 그날 저녁, 상을 타지 못하자 어지러운 맘으로 옥희의 집으로 찾아가고 옥희의 집 앞에서 밤을 꼬박 새운 진구는 새벽에 결국 옥희의 집으로 들어가서 그녀와 섹스를 하게 된다. 둘은 이제 사귀게 되는 것일까?

<폭설 후>
오십대의 영화감독 송감독은 생활비 때문에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나가지만 겨울 계절학기 강의엔 학생이 아무도 나와 있지 않다. 아무리 폭설 때문이라도 학생들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며 수치심에 빠진 송교수, 동료교수에게 다음 학기부터는 나오지 않을 거라고 선언을 해버린다. 그런데 옥희라는 여학생이 잰 걸음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잠시 후 진구라는 남학생도 도착한다. 두 학생과 솔직한 질문과 대답시간을 가지는 송교수. 수업이 끝나고 스산한 맘에 감독은 혼자 낙지를 사먹는다. 그게 체하고 골목에서 낙지를 토한다. 송감독은 자기가 학교를 그만 둔 것이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옥희의 영화>
영화과 여학생 옥희는 자신이 사귀었던 한 젊은 남자와 한 나이 든 남자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 아차산이란 곳에 만 일 년을 사이에 두고 각 남자와 한 번씩 찾아왔던 경험을 영화적으로 구성했다. 그 산에서 각 남자와의 경험을 공간별로 짝을 지어놓고 보여준다. 주차장, 산 입구, 정자 앞, 화장실, 목조 다리 앞, 산 중턱 등의 공간에서의 각 남자와의 모습이 짝지어 보여지면 두 경험 사이의 차이와 비슷함을 구체적으로 보게 된다. 그런 구성 덕에 우린 옥희와 두 남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어떤 총체적 그림을 보고 있다고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어떤 방문>중 홍상수 감독의 전작<첩첩산중>에서 만난 정유미, 문성근, 이선균이 다시 뭉쳤다.  홍상수 감독 특유의 실제 상황과 같은 영화 내용에서 정유미는 타이틀롤인 영화과 학생 옥희 역할을 맡았다. 세 배우의 연기는 정말 놀랍다. <밤과 낮>, <첩첩산중>을 거쳐 다시 홍상수 감독과 작업한 이선균은 때론 고집불통이지만 때론 순수하기 짝이 없어 귀여워 죽겠는 홍상수식 남자를 더없이 멋지게 연기한다. <오! 수정>, <첩첩산중>에서 문성근은 다정하고도 외로운 지식인층 중년의 남자를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쓸쓸하게 연기한다. 이런 대단한 배우들의 속에서 주눅들지 않고 자유로운 감각을 만개하고 있는 정유미의 연기는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옥희와 진구와 송교수가 어우러지는 영화에서 단연 정유미라는 배우는 홍상수식으로 풀어낸 삶의 이야기를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해 보인다. 그래서 캐릭터를 잘 잡아냈고, 관객들은 그녀를 보며 공감하게 되고 영화에 집중하게 된다. 똑똑한 여베우다. 이제 그녀, 더이상 주목할만한 배우가 아닌 한국 대표 여배우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다.  

차우(2009) 

<줄거리> 
10년째 범죄없는 마을 삼매리에
원인 모를 토막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산 속 깊은 곳에 위치한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마을 삼매리. 주말 농장 준비로 바쁜 이 곳에 어느 날, 참혹하게 찢긴 시체가 발견되면서 마을 사람들은 순식간에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뒤이어 발생하는 무차별적인 살인 사건들…이번 사건으로 손녀를 잃은 전직 포수 천일만(장항선 분)은 이 모든 것이 변종 식인 멧돼지 ‘차우’의 짓임을 확신한다.

한편, 서울에서 좌천되어 가족과 함께 삼매리에 내려온 다혈질 김순경(엄태웅 분)의 노모가 행방불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차우’에 의한 짓임을 예감한 김순경은 천일만이 결성한 추격대에 합류하게 된다. 마침내 동물 생태 연구가 변수련(정유미 분), 전문 사냥꾼 백포수(윤제문 분)와 수사를 담당한 신형사(박혁권 분)가 가세한 5인의 추격대가 식인 멧돼지 ‘차우’를 잡기 위해 산으로 향하는데…
인간 사냥에 나선 식인 멧돼지 차우와 5인의 추격대의 대결을 긴장감 넘치는 빠른 전개로 풀어가는 영화 <차우>. 이 작품에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대표 연기파 배우로 꼽히는 엄태웅, 정유미, 장항선, 윤제문, 박혁권이 식인 멧돼지와 목숨 건 사투를 벌이는 5인의 추격대로 뭉쳤다.   

인간 사냥에 나선 식인 멧돼지 차우와 5인의 추격대의 대결을 긴장감 넘치는 빠른 전개로 풀어가는 영화 <차우>.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대표 연기파 배우로 꼽히는 엄태웅, 정유미, 장항선, 윤제문, 박혁권이 식인 멧돼지와 목숨 건 사투를 벌이는 5인의 추격대로 뭉쳤다. 그 중 여자는 정유미가 유일하다. <가족의 탄생> <좋지 아니한가> 등에서 엉뚱하고 발랄한 이미지로 사랑 받은 정유미는 그간 많은 작품들을 차별화된 강인한 여전사와 같은 이미지로 구르고 뛰고 달리고 넘어지고 날고...액션의 강도가 높은 역도 무난히 소화하며 다른 배우들과 환상적인 연기 호흡을 자랑한다. 정유미는 리허설에서 또한 대역 없이 액션을 소화하는가 하면 날 것의 흑염소 고기와 애벌레를 먹는 등 여배우로서 상상하기 힘든 연기를 직접 소화해냈다. 물이끼로 가득한 미끄러운 바위 위를 달리는 등 몸을 사리지 않은 액션 연기 덕분에 이들의 몸은 촬영 내내 하루도 성할 날이 없었단다. 넘어져서 다치는 것은 예사였고, 발목을 삐거나 피를 흘리는 크고 작은 상처를 감수해야 했다. 불평 한마디 없이 이를 악물고 연기에 임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고도 한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어 준 영화 <차우>에서 그녀는 단연 돋보이게 기억되는 배우이다. 

정유미라는 배우는 좀 약해 보이는 그냥 신인 여배우 같았다. 그러나, 2010년 그녀는 <내 깡패같은 애인>, <옥희의 영화>에 출연하며, 신인 여배우가 아닌 그녀의 존재감을 영화계에 널리 알리며, 충무로에서 비중있게 주목해야 하는 여배우로 스멀스멀 성장해 있었다.  앞으로의 그녀의 필모그라피에 더해질 작품 하나하나에 기대를 갖게 하며, 이제 그녀는 진정한 배우로 성장해 가는 중요한 지점에 서 있는 듯 하다. 어떻게 멋진 배우로 발전할는지 그녀의 성장을 지켜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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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생각앤 2010-10-04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옥희의 영화는 알라딘 상품 이미지가 없어서 다른 그림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