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땅을 수행처로 찾아 온 분들의 초년시절이랄 수 있는 행자수련기록을 모아놓은 책 속에는
그들이 스승으로 모셨던 여러분의 선지식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불교의 대표선승이셨던 성철스님은 당연히 많은 제자들에 의해 자주 언급되었고,
그밖에도 여러분의 스승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많이 감화받은 분으로 거명된 분은 오래 전에 돌아가신 指月스님이십니다.
스님은 평생 상좌를 두지 않고 수행하셨기 때문에
여타 이름난 스님들과 달리 사후에 법어집이나 회고록조차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스님에 대한 단편적인 예화만 파편처럼 이런저런 선지식 이야기편에 소개될 뿐
세월이 갈수록 스님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 가운데 지월스님을 회고하는 한 장면을 소개합니다.
아마 예순다섯, 여섯쯤 되셨을 것이다.
찾아온 병고를 받아들이시며, 수술도 마다하고 병원에서 돌아와
해인사 경내를 말없이 둘러보시던 그분의 조용하고 담담했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성철스님께서 방으로 찾아와 예의 그 투박한 음성으로 그랬다.
"아파요?"
아무 말씀 없이 조용히 웃음을 지을 뿐 스님께선 별 말씀이 없으셨다.
"몸 바꿔야 되겠네요."
스님께선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셨다.
"그럼 먼저 가소."
지월스님께선 바로 다음날 고요히 몸을 바꾸셨다.
매년 새해를 여는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요란을 떠는 것도
한해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맞아들여 새롭게 살아보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새해, 새학년, 새학기...새로운 인생.
그런 의미에서 책에서 이야기하는 초/발/심/이 중요한 것은 소개된 예의 행자들 뿐 아니라
이 땅 위에 뜻있게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
특히 삶의 좌표를 잃은 많은 현대인들이 꼭 되집어 보아야 할 부분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