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종일 가스보일러를 설치하느라고 종종 걸음을 했다.

지난 며칠 동안 심하게 신음소리를 토해내며 고통을 호소해도

빤한 살림살이에 거금이 들어갈  게 뻔한 일이 두려워, 갈 때까지 가보자 하는 다부진 마음으로

녀석의 단말마를 애써 외면하였었다.

 

그러나 오늘 새벽 거친 숨을 몰아대던 녀석이 드디어 만 13년의 긴 생애를 마친 것이다.

 

나의 신부를 들이는 의식으로 보일러를 새로 개비하였던 것이니 우리 부부와 인연이 참 질긴 놈이었다.

그간 추운 겨울에 고장을 일으켜서  몇번인가 지청구를 들은 적이 있었어도

인석의 친구들 수명이 10년인 것을 감안하면 거의 장수만세를 노래해도 괜찮겠지만서두,

뜯겨져서 설비기사님의 품에 안겨 나가는 놈의 뒷모습을 보니 왜 이리 마음이 짜~안한 지 모르겠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그 슬픔을 짧은 글로라도 적어 哀而不悲를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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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2-18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흠... 명복을 빈다고는 할 수 없고... ^^

새보일러와 친해지셔서 아직 조금 남은 겨울 마저 따땃이 보내시길 바래봅니다.

stella.K 2005-02-18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니르바나님은 참 정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물건 하나에도 이토록 애정과 기운을 불어 넣으시니 말입니다.^^

파란여우 2005-02-18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흠, 물성(物性)을 노래하신 건가요?...가늘고 길게 사는것이 좋아요^^

니르바나 2005-02-19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님, 명복을 빌어주세요.
바늘 하나에 대한 추모의 정을 글로 남긴 조침문에 비할 순 없지만요.
저 녀석의 좋은 점이 많은 것을 합해도 비난 받았던 것은
종일 가동해서 가스비는 펑펑드는데, 방바닥은 미지근하다못해 썰렁했기 때문입니다.

니르바나 2005-02-19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제가 情은 좀 있는 편입니다.
스텔라님을 향한 은근한 정념의 기운도 만만치 않습니다. ㅎㅎㅎ

니르바나 2005-02-19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 파란여우님의 수양따님에 대한 감정을 드러냈으니
니르바나가 두 모녀 사이에서 샌드위치속 입장이군요.
파란여우님을 향한 저의 가늘고 긴(?) 연정도 숨기고 싶지 않아요. ㅎㅎㅎ

stella.K 2005-02-19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황송할 다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