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허접한 글을 보내고 있는 잡지사에서는 원고료가 짠것이 미안한지 늘 영화표 같은걸 보내준다. 그리고 나는 그 영화표로 온갖 생색을 내면서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간다. 이번에 보내준 영화표는 '영어 완전정복'이었다. (그러고 보니 킬빌도 그렇고 영어..도 그렇고 모두 공짜다. 머리가 빠질망정 기쁨을 감추기가 어렵다.)
영어. 나는 영어를 잘 못한다. 예전에 이태원에서 멕시코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버드와이저를 알아듣지 못해서 한참을 버벅거렸었다. 나중에 그 코쟁이가 말한게 버드와이저인줄 알았을때 그 이상한 발음에 약간 충격을 받았었더랬다. 나도 늘 마시는 버드와이저를 알아듣지 못하다니 10년 영어공부가 허상이로고 했었다.
영어 완전정복은 세련된 영화가 아니다. 아예 처음부터 고급스러운 웃음같은걸 주리라 맘먹지 않고 찍은 영화인 것이다. 그 증거로 주인공 이나영의 촌스러운 외모를 보라. 요즘은 정신이 이상하지 않고서는 자기 얼굴 반만한 안경을 끼고 머리는 두갈래로 갈라서 묶는 짓을 하지 않는다. 그건 일부러 나 촌뜨기여요 하고 광고하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정말 촌뜨기라 하더라도 그렇게 하고 다니지는 않는다. 그리고 영화 포스터에는 땡큐와 쏘리만 알아들으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한다. 러브나 헝그리같은 단어도 알고있는 나에게는 무척 수준미달의 영화가 되겠군 하는 자만감을 가지게 해 주어서 참 고마웠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대한민국 9급 공무원인 나영주(이하 캔디)가 일하는 동사무소에 외국인이 나타난다. 자신의 불만을 말하는 외국인. 하지만 아무도 알아듣는 자가 없다. 그날 저녁 회식때 이래서야 되겠냐는 윗사람의 성토. 그리고는 소주병 돌리기를 해서 한 사람이 외국어 학원을 다니기로 한다. 캔디는 삼겹살을 있는대로 쑤셔박다가 말고 덜컥 학원 수강자로 당첨이 된다. 다음 엘비스(이름 기억안남 장혁 분). 그는 어머니가 어렸을때 외국으로 입양시킨 여동생 빅토리아가 고국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과 어머니가 빅토리아에게 말이라도 한마디 붙여봐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 영어 학원을 등록한다. 캔디는 자신이 영어를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엘비스는 자신의 실력을 무척 과대평가 하고 있다. 그 다음부터는 이들의 연애질이다. 중간에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양념처럼 끼여들면서, 캔디를 촌스러워하던 엘비스는 어느덧 캔디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영어 완전정복은 이나영에 의한 이나영을 위한 이나영의 영화이다. 우리나라에서 여성 코믹연기는 김선아를 따를자가 없다고 생각 했었는데 이나영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김선아보다 훨씬 더 웃길수 있겠다 싶다. 사실 김선아보다야 이나영이 조건이 더 좋지않은가? 그 큰 덩치에 정말 이상할 만큼 작은 머리통과 각종 얼빵한 표정을 가능케 해 주는 큰 눈은 김선아에 비해 50점은 먹고 들어가는 셈이다.
영화에서 재미있었던 장면은 레벨테스트를 할때 마치 컴퓨터 오락의 대련게임처럼 화면이 변하는 장면 이었다. 버추어 파이터나 스트리트 파이터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영주가 명성왕후처럼 꾸미고 앉아서는 나는 조선의 국모다 대신 외친 나는 조선의 9급 공무원이다는 정말이지 영화의 압권이었다.
촌스러운 유머를 도저히 보아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영화이다. 하지만 소림축구 같은것에 환장을 하고 고급스럽지 않은 것들에게 왠지 모를 끌림같은걸 느낀다면 한번 봐보기 바란다. 굳이 극장가서 볼 필요까지는 없고 비디오나 디비디로 봐도 충분하다. 다만 혼자보지 말고 최소 둘 이상 함께 봐야 할 영화이다. 그래야 웃길때 옆사람 어깨라도 때리면서 웃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