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서울을 찾는다 - 홍성태의 서울 만보기
홍성태 지음 / 궁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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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게 있어서 서울은 언제나 그런 이미지였다. 뭔가 있어보이고, 대단하고, 그 앞에 서면 주눅이 들고. 한 도시에 대해 뭐 그런 느낌을 가질것 까지야 있느냐고,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말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지하철도 없으며, 온 도시에 영화관이라고는 단 세군데 뿐이며, 백화점은 두 곳. 그럼에도 이 모든 시설이 한 동네에만 몰려있는 지방의 낙후된 소도시에 사는 나에게는 그렇지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인가 아빠가 중학생이 되는 기념으로, 아빠와 단 둘이서 여행을 가자며 장소를 고르라고 했을때 나는 주저없이 서울 63빌딩을 외쳤었다. 아빠는 내심 내가 제주도나 경치좋은 섬을 말하길 바랬겠지만. 나에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빌딩을 가 보는게 더욱 중요했었다.

서울이 내게 경외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어렸을때 정말 충격을 받을만큼 잘 사는 친척집에 다녀오고 부터였다. 그때부터 내게 서울은 부의 상징이자 세련과 첨단, 도회적인 이미지 등등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내가 있는 지방 도시도 많이 발전을 했지만 그때만 해도 여기는 서울에 비해서는 시골이나 다름 없었다. 그 친척집에는 나와 같은 또래의 여자애가 있었는데 나는 사는곳에 따라 사람이 그렇게 달라질수 있다는것, 누리는것 자체가 아예 차원이 다를수도 있다는 것에 꽤나 쇼크를 받았었다. 어려서부터 유달리 잘사는것, 좋은것에 대해 집착이 강했던 나에게 있어 서울과 서울 시민들은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누려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되어버렸다.

그 후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찾기 위해 1년간 서울에 머무르면서 나는 생각이 달라졌다. 서울이라고 해서 다 좋은건 아니구나. 가진자에게는 더없이 편리하고 멋진 도시지만 가지지 못한 자에게는 차라리 지방 소도시에서 사는게 훨씬 더 나을 정도로 초라하고 볼품없는 빈민가가 함께 존재했다. (지방에는 빈민가라는 개념이 없다. 동네마다 사는 수준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어느동 하면 부자동네, 어느동 하면 가난한 동네 같은게 없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무슨동에 사느냐가 생활수준을 대변해 주었다.) 당시 내가 살았던 이태원동이 특히나 심했는데 하얏트 호텔을 기점으로 그 아래는 가난하고 남루한. 꼭 기지촌같은 이태원이 있었고 하얏트 호텔 뒷편에는 높은 담에 둘러싸인 초호화판 집들이 몰려 있었다. 그 거리에는 아무도 걸어서 지나다니지 않았으며 24시간 사설경비원들이 골목골목마다 지키고 서 있었으며 밖에서는 집의 외관이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 볼 수 없는, 무슨 요새나 성같은 집들이 전부였다. 호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나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것은 내가 서울에서 받은 두번째의 충격이었다. 그 이후 나는 서울을 떠나서 여태까지 내가 태어난 도시에서 줄곳 살아가고 있다. 이곳도 제법 높은 빌딩이 들어서고 지하철도 놓이고 문화시설도 들어서기 시작했지만 서울보다는 인구밀도가 낮아서 훨씬 사람이 살기에 편하지 않나 싶다.

홍성태의 서울 만보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서울이 얼마나 좋고 대단하며 모든걸 다 누릴수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도시인가를 말 하는게 아니다. 여기서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지. 그게 단적으로 서울이라는 거대공룡같은 도시를 통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높은 빌딩 앞에는 좀 더 높은 빌딩이 가로막아서 일조권과 전망권을 서로 침해하고 침해받고 있으며 사람이 걸어다니기에 좋은 도시가 아니라 오직 차를 끌고 다니기에만 편하도록 되어있는 도시. 거기다 가난한 사람들은 재개발로 인해 점점 더 설땅을 잃어가는 도시가 바로 서울임을 말해주고 있다. 가장 자연스럽게는 부자와 중산층과 가난한 사람이 한데 어울려서 사는 것이겠지만 서울은 그렇지 않다. 부자는 부자들이 사는 동네에 모여살고 중산층은 중산층대로 뭉쳐서 살며 가난한 사람들은 볼품없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산동네로 ?겨난다. 부자들과 중산층은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환경 주변에 얼쩡거리는 꼴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서울이 과연 대한민국 최고의 도시라는 칭호가 어울릴까? 높은 인구밀도로 인해서 끊임없이 소음과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야 하고 녹지공간 하나 없이 콘크리트 바닥과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어차피 자연에서 온 사람에게 좋은 환경은 아니다. 거기다 서울의 무계획적이고 무자비한 개발은 점점 더 서울을 괴상한 도시로 만들고 있다. (주범은 군사정권의 박정희 대통령이나 그가 죽은지 한참이나 지난 지금은 나아졌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도 않다.)

서울하면 부의 상징이고 문화의 메카이자 이 나라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첨단의 것들이 응집되어 있다는 인상이 강했던 나에게 이태원에서의 짧은 생활과 이 책은 많은것을 느끼게 했다. 무엇이든 자연스러운게 좋은거지 어거지로 이렇게 저렇게 뜯어고치는 것은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을 서울이라는 도시는 너무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수치상으로도 드러나는데 삶의 질 지수는 세계 215개 도시중에 90위고 환경지수는 더 낮아서 150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서울은 사람이 사는데 그리 적합한 도시가 아닌 것이다. 뭐든 다 서울로 집중되어 있어서 그런것이지. 만약 서울에 있는 많은 시설들이 지방으로 옮겨간다면 서울은 굳이 아귀다툼을 벌여가면서도 꼭 살고싶은, 혹은 살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현대인들에게 편의성이란 도저히 무시할수 없는 사안인지라 다들 서울에서 살기는 하겠지만 노래 가사처럼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렵니다' 하는 느낌은 없다.

이 책은 현재 서울을 살고 있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특히나 도시계획에 관련된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은 거대한 쇼핑몰이 아니다. 서울도 사람이 살아 숨쉬는 곳이어야 한다. 하지만 자본과 기술은 서울을 편리하고도 삐까번쩍한 백화점쯤으로 만들려고 하는것 같다. 녹지 공간이라고는 조잡한 공원과 길가의 가로수가 전부이고, 개발을 위해서라면 하천도 덮어버리고 산도 다 깍아내는 도시는 결코 인간이 살기에 쾌적한 환경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 서울의 가장 큰 문제는 어처구니 없을만큼 높은 인구 밀도이다. 이 책에는 다뤄지지 않은 부분이지만 결국에는 인간들이 지나치게 많다보니 빌딩은 높아지고 그 빌딩과 아파트를 세우기 위해 자연이 회손되는거 아닌가 싶다. 지금이라도 서울에 있는 주요 시설들의 30%만 다른곳에 옮겨도 서울은 그 불행을 적어도 여기서 멈출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좀 높은곳에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서울도 사람이 사는 도시임을 인정하고 균형있게 국토를 발전시키면 좋겠다. 단 발전이란게 무조건 불도저로 밀고 기초공사를 끝내 콩크리트 더미들을 쌓아 올리는게 아니라는 점도 확실하게 알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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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초 2005-03-04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가끔 서울에 올라가곤 하는데 저런 점은 알면서도 거의 생각하질 않았던 것 같네요. 사람은 나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말이 이제는 사라져야 할듯..

야초 2005-03-04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가끔 서울에 올라가곤 하는데 저런 점은 알면서도 거의 생각하질 않았던 것 같네요. 사람은 나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말이 이제는 사라져야 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