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예수님을 혁명가라는 입장에서 조명한

책을 읽었더랬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정의'를 이야기하는

바울을 소재로 했네요. 그리고 약간 정치적으로도 흐르는...

정치하는, 정의를 말하는 바울을 이야기하며 자크 데리다를

끌어들입니다. 모든 것을 의도대로 연출하는 것은 물론

저자 테드 제닝스입니다. 데리다가 직접적으로 바울을

얘기한다기 보다는 데리다의 논점들에서 바울을 찾는다가

더 맞는 표현일 수 있겠네요. 어렵습니다. 천하의 데리다인 관계로..

 

신학을 또는 신앙을 인문학적 철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개인적으로 찬성하는 편입니다. 특히 이 책처럼 신앙을 이해하는데

철학을 끌어들이는데에는 별로 불편함도 느끼지 못합니다.

간혹 인문학자라는 사람들이 종교를 폄하하는 불편한 발언을

하긴 하지만, 그것도 그 사람들의 생각이니 제가 뭐라고 말할

입장도 아니지요. 그런데 교회에서는 좀 다르게 전개됨을 느낌니다.

인문학을 무시하죠. 신을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추앙하는 것은 좋으나

인문학적 성과를 무시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네요. 포용한다는 면에서

기독교인들은 스스로도 인정하지만 관대하지 못한 편입니다. 다른

분야에 비해서 말이죠. 일면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미리 방어기제를

펼칠 필요는 없다고 보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좋은 시도인 것 같습니다. 그냥 저의 생각이긴 하지만

제 생각에 이 책은 '바울은 옳다'라는 전제를 깔고 가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어쩔 수 없이 옳다라고 보여지기도 하지만, 그냥 좀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많이 어렵네요. 저는 이 책의 제목과는 반대로 오히려 바울을 읽으며

데리다를 생각하는 게 편했다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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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적 측면에서의 예수님이 아니라 사람 예수를 말할 때

일반적인 평가는 혁명가, 축귀자(퇴마사), 마술가 등으로

일컬어지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 당시가 정말 혼란한 시기였고

메시아도 많고, 귀신 쫓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많았던

시대였다고 하네요. 그러니 일반 역사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업적은 별로 특이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그러니까 기록될

만한 가치가 없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이죠.

사대성인으로 추앙받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입지네요.

 

기독교에서는 성경을 토시 하나 버리지 않습니다. 기록된

모두가 사실이라는 입장이죠.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표되는

입장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즉 진심으로 목사님들이 그렇게

믿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부 진보적인 교단에서는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이 아닌 인간적인 예수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대표적 교리는 삼위일체, 즉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은 하나다라는 입장입니다.

 

이 책은 그런 거 간단히 무시합니다. 저자가 청년기에 기독교에

심취했던 과거는 있으나 어쨌든 이슬람인이라는 것도 한몫

하는 것 같습니다만, 기적, 표적, 이적은 중요하지 않고 그런건

개인의 신앙적 자유이므로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죠.

성경적 예수가 아닌 역사적 예수를 다루는 책인 관계로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좀 껄끄럽긴 합니다.

 

어쨌든 예수님 당시의 시대 상황과 역사적 증명, 기독교의 역사 등

나름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몇몇 더 궁금한 것들을 심도있게

다루지는 못하지만, 대략적인 감을 잡는데는 도움이 되는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생애보다는 그 주변인물들의

이야기가 더 재밌고 유익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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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자유다."

여기서 자유란 무엇으로부터도 억압받지 않는 상태입니다.

민주주의든,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종교든

그것이 무엇이든 시에 방해되는 것은 단호히 거부합니다.

문학하는 사람이라면, 예술하는 사람이라면 그 무엇에든

얽매이면 안 된다는 것이죠.

 

"시인은 스스로 혼자 도는 자이다."

끈을 감아 던지면 혼자 도는 팽이처럼

시인은 자기만의 언어로 자기만의 생각을 자기만의 형식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합니다. 요즘말로 차별성이라고 해야 하나..

책에서는 '단독성'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내용,

언어를 흉내내면 시인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 책을 읽으며 저는 또 망상에 빠집니다. 저를 생각하는 것이죠.

시인의 시와 출판사의 책.

독자를 의식하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독자를 의식하는 출판사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죠. 즉 독자가 읽어주길 바라긴 하지만,

독자의 입맛에 맞출 생각은 없는 시와 책이 있거든요. 무엇이 옳은지는

역시 독자의 판단이겠죠. 저는 어느 쪽일까요...

 

한 편으로는 변명도 하지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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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기간입니다.

우리 대표팀 경기라고 챙겨보는 인간도 아니고,

당연히 남의 팀의 경기도 결과만 알아보는

축구 팬 입장에서는 "얜 뭐야?"라고 말 할 수 있는

별 자격없는 인간입니다.ㅋㅋ

 

매회 월드컵마다 이변은 있었겠지요.

어쨌든 이번엔 이변들이 많이 일어나네요.

아직 16강을 가리는 중이라 속단하기에는 이른 감도 있지만

우승 후보들의 조기 탈락도 보이고,

주목 받지 못하던 팀이 이변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도 그럴라나.

 

공격위주의 게임을 운영하든, 수비위주로 하든

축구는 어쩌면 '버티는' 게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지막에 기회가 오거나, 잘 지키면 감격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공격을 하면서 버티느냐 전통적인 우리 방식인 수비를

위주로 버티느냐는 팀의 색깔에 따라 달라지겠죠. 그 버티는 것도

능력일 수 있겠네요. 여기서 또 제 방식의 일반화 오류를 범하자면,

'버텨야 한다.'입니다.

 

삶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절망의 순간들도 요즘엔 더 많이 보이고요.

어떻게 버틸 것인가는 개인이나 기업의 선택이기도 하고, 과연

버틸 필요가 있는가도 판단해야겠죠. 하지만 저는 버팀을 선택합니다.

버팀으로 여러 사람 힘들어질 수도 있겠지만, 안 버텨도 여러 사람

힘들어지는 건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여기서 버텨야 그래도 가능성이

조금이라고 있다고 보여지니까요.

 

단, 지키는 것과 버티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 대표팀은 지키려는 성향이

좀 보이려고 하는 것 같네요^^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 화이팅!!!

어쨌든 저도 버티G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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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연기를 할 때,

모든 행동과 말과 호흡까지도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무대 위에서 우연이라는 단어는 없는 단어라는 것이죠.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

 

꿈을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생각에 참 난감한..

꿈을 어찌 표현한단 말인가...

어쨌든 제가 표현한 꿈은 인과관계가 결여되어 있는

우연 투성이의 무논리로 일관됩니다.

선생님 가라사대, "꿈에도 논리가 있단다."

 

이 책은 꼭 꿈 이야기 같습니다.

논리가 없는 것 같은데 꼭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인과관계 등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올 것 같네요.

좀 짧아서 싱거운 맛도 있지만 그림이 워낙 좋습니다.

글 보다는 일러스터 '카트 맨쉬크'와의 공동작업으로

더 유명한 시리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 X 아트 :

상승효과가 기대되는 소설과 아트의 만남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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