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에 다윗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며 역사상 최고 중 최고의

왕입니다. 영웅이죠. 그런데 다윗도 세계의 영웅들처럼

고난과 역경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왕이 되기까지요.

왕위에 올라서도 여러 우여곡절을 겪기는 합니다만,

전 상황과 비할 바는 아닌 듯 합니다.

 

다윗을 보면 삼국지의 유비가 생각납니다. 우리나라에는

누가 있을까요? 오래 전에 '태조 왕건'이라는 드라마에서

왕건을 꼭 유비처럼 다뤘던 기억이 납니다. 삼국지의 형식과

비슷하게 그렸던 것 같습니다. 유비와 왕건의 주변에 측근들이

있습니다. 이 측근들의 속을 무던히도 태웠죠. 나쁘게 얘기하면

우유부단하고 무능한 것이고, 좋게 보면 신중하고, 덕이 있었던

것이죠. 모든 상황이 완벽하게 만들어졌을 때 나아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명분을 중요시하고 예를 중요시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윗의 측근들도 다윗 때문에 고생 좀 했습니다.

1대 왕인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몸부림 칠 때, 다윗이

오히려 사울을 없앨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물론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이유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피를 묻힐 수 없다는 이유죠. 측근들의

속은 몹시 타들어갑니다. 결단하고 잠깐의 시간이면 이런

도망자의 신세가 끝인데 말이죠. 고생 끝, 행복 시작!!!

그들의 한숨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모든 권리, 즉 스스로의 주인됨을 내려놓고

신에게 맡긴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럼 나는 뭔가?'라는 의문도 따르고, 자칫 아무 것도 않하고

광신도의 길로 빠질 수도 있지요. 그건 옳지 않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틀린 것은 신의 입장에서도 틀린 것이 겠죠.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요.

 

어쨌든 나의 선택입니다. 나를 내려놓고 신에게 맡기는 것도,

나를 믿고 결단하고 밀어붙이는 것도 나의 선택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선택했고, 유비는 명분을 따랐습니다.

나의 선택은???

사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이루어지는 건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요즘에 간혹 책을 읽지 않는 사회라고 하면서 '부끄럽다'는

내용의 기사나 글을 종종 봅니다. 다른 나라의 숫자와 비교하면서

말이죠. 저의 직업이 직업이니 만큼 안타깝다는 생각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다, 안 읽는다가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인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안 읽는 대신 뭔가를 그만큼 보고,

읽고, 느끼고,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뭐..그런 생각도 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열하일기'는 좋았습니다. 열하일기는 아시다시피

여행서입니다. 지금은 고전인문이지요. 그것도 대표적인...

제가 보기에도 그냥 여행서는 아니니까요. 당시의 정치, 경제, 문화

국제관계 등을 살펴볼 수 있고, 연암의 사유체계도 엿볼 수 있고,

그 사유가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도 당연히 알 수 있고

말이죠.

 

갑자기 요즘에 누구와 비교할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얼핏 '알랭드 보통'이 떠오르네요.

나름의 사유체계도 있고, 지향하는 바도 있는 것 같고,

또 나름 쉬운 것도 같고 말이죠. 물론 다른 점도 있겠지만...

누가 연암 박지원과 알랭드 보통을 비교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여튼 연암의 사유는 사유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을 적용하고

활용해서 방안을 찾아보고 실천하려고 노력해던 것 같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끊임없이 움직이는 부지런한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몸은 바쁘나 정신줄은 놓은 요즘 세상에 연암의 삶의 태도와

방식은 좋은 본이 되는 것 같습니다.

 

비도 오니 여행을 가고 싶어집니다.

연암과는 달리 잡생각만 하겠지만 말이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적으로 '나만의 글'이란 세상에 없는 법이다.(116p)

 

연암의 '호질'의 발견과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호랑이가

고매하다고 소문난 선비를 꾸짖는 이야기인 '호질'은

연암의 창작이 아니고, 열하행 중에 산해관의 어떤 한

골동품점에 걸려있던 것을 베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베끼는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조금

각색하게 된 원인이 되지요. 하지만 원문의 말하고자 하는 바를

왜곡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저자(고미숙)의 생각을 나타낸 것이 바로 위의 글입니다.

 

어쩌면 삶이 다 그렇지요.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행하는

모든 것이 다른 어떤 것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기획을 해야하는

저도 기존에 나온 책들의 영향을 당연히 받습니다. 새로운 기획은

없다고 봐야죠. 기존의 것을 약간 트는 정도로 차별화하고

새롭다고 말하는 것 아닐까 합니다.

 

표절과는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닮는 다는 것, 모방한다는 것, 쫓는 다는 것... 뭐, 배운다는 것도

그렇고, 책을 읽는 이유도 그렇고 그런 것들이 예로부터 우리가

살아 온 방식이고, 우리 후손들 또한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호곡장(好哭場) : 아, 참 좋은 울음터로구나!(97P)

 

요동벌판을 마주 한 연암의 벅찬 가슴이, 그 어떤 무언가가

메아리 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누구나 궁금한 것. '왜 하필

울음일까?' 연암은 이제 막 태어난 갓난 아이의 비유를 듭니다.

어떤 아이든 태어나자마자 울죠. 좁은 공간(세상)에서 확 트인

넓은 공간(세상)의 빛과 맞닥뜨린 그 순간의 충격과 환희, 감격.

그 결과가 울음이고 울음터인 것이죠.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네요.

 

아침마다 딸내미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오늘도 역시나 엄마한테

시비를 겁니다. 성질은 날카롭고, 행동은 느릿느릿. 지각을 각오하고

그냥 둬 봅니다. 언제까지 저러나... 아홉 살인데 아직도 시간 관념이

없나 보네요. 교실들어가는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 주시는 따님.

 

늦으막히 저도 딸을 따라 나섭니다. 걸음이 느려서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빠르네요. 딸의 등교 시간보다 늦은 아이들이

몇몇 보입니다.

"쟤는 우리 애보다 더 하네.ㅋ" 느릿느릿 하늘보고 땅보고 터벅터벅..

더 늦은 어떤 아이는 엄마의 길을 막고 대성통곡을 한다.

 

"너의 충격의 울음터는 학교 운동장이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벗은 제2의 나다.'(26P)

 

북학파라 불리우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 같습니다.

그들과의 오래고 깊은 교류가 '제2의 나'라고 할 정도로

깊어진 것이죠. 몇몇이 오랜 동안 우정을 나누는 것이야

지금도 종종 보여집니다만, 연령대도 다양하고 개성과

직종도 다양한 이들이 깊은 교감을 이룬다는 것은

지금으로선 많이 낯선 상황인 듯 합니다.

 

저도 오랜 친구들이 있고, 가끔 만나도 참으로 반가운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과연 '제2의 나'라고

할 수 있을지는... 그들에게 많이 미안해지네요.

 

그들이 그리워지는 오늘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