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출판도 다른 문화예술처럼 기부나 정부지원,

기업보조, 스폰서 등으로 연명해야 할 때가 오는 건

아닌지 합니다. 지금도 출판 펀딩이나 정부지원이

있긴 합니다만, 일부의 혜택일뿐이고 기업후원은

자비출판 아니면 전무하다고 할 수 있죠.

하긴 우리의 영웅 박태환 선수도 홀로서기 하는 판에

출판이야..뭐.. 요즘의 출판을 이끌어가는 것이 그래도

상업출판인데 외부지원 운운하는 것도 좀 기분이 좋지는

않죠. 그래도 살아야하고 유지되어야 하는 산업이기에..

그냥 그렇다는 것이죠.

 

 

19세기 러시아는 명망있거나, 전도가 유망한 예술인 즉 작가, 배우, 화가 등의

성장에 후견인의 영향력이 컸던 것 같습니다. 물론 유럽도 그랬고, 척박하지만

우리의 과거도 그랬던 것 같네요. 근데 좀 음성적이긴 하네요. 어쨌든 우리가

아는 내로라하는 러시아 작가들이 이 시대에 포진되어 있기에 부러워서 말이죠.

푸쉬킨,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체홉. 이들이 다 아닌가.

이들은 당대의 작가이며, 역사가이며, 사상가이며..뭐 시대의 구루들이죠.

 

요즘 우리의 문학은 뭘까?를 생각케 하는 책이였습니다. 저는 출판쟁이니까

요즘의 출판은 뭘까?를 생각케 하기도 하지요. 한때는 우리도 시대를 선도하고

사상을 최일선에서 알리고, 사람들에게 생각할거리를 제공하는 그런 역할을

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19세기의 저들처럼 말이죠. 현재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사명과 소명을 다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죠. 뭐라 답하기 궁색합니다.

마음 한켠에는 '그래도 뭐..'라는 생각도 있지만 딱히 탐탁치 못하기 때문이죠.

 

남의 탓입니까?

내 탓이지요. 스스로를 출판쟁이라 일컫는..

제가 못난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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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연다는 것이 뭘까요?

인간은 누구나 관계를 맺고 삽니다. 그것이 인생이고 삶이지요.

그러니까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관계 맺기 아닌가 합니다.

로빈슨크루소의 경우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관계를

맺을 수 없는 특수한 경우는 제외해야 겠죠.


그렇다면 관계가 무엇인지가 궁금합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말이죠. 관계란 무엇일까요? 내가 로빈슨이라면 뭘 할수

있을까요? 먼저 살아야 하니까 먹을 것을 찾을 것 같네요.

입는 것과 자는 것은 그 다음인 것이죠. 먹을 것이 안정적으로

주어지면 의와 주가 다음 당면 과제로 떠오를 것입니다.
아이고,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네요.

편하게 살아야 하니까요. 어쨌든 지금은 먹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이조차도 관계의 시작

이라고 생각합니다. 맨손으로 무엇을 잡든가 취하든가 해야

되잖아요. 그것이 관계인 겁니다. 나와 먹을 것과의 관계.

그런데 산다는 것은 단지 먹고 사는 것 가지고는 만족스럽지 못한 것

같습니다. 먹는 것뿐만 아니라 입어야 하고 자야 하시까요. 더 나아가서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잘 자야 합니다. 인간의 관계는 이 '더'가

항상 개입되는 것 같습니다. 욕망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관계를

'더'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진정, 진심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고 싶어집니다. 그냥요.

속이는 것은 진정성이 없습니다. 내가 올바르다면 그 진정성을

상대방이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올바른 관계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연다는 것은 나의 진정성이 '표현'되야 하는 것

아닐까요. 진정성은 진심입니다. 다른 말로 '사랑'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네요. 밑바탕에 사랑이 있어야 관계가 튼튼해 진다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연다'라는 것은 타인에 대한, 다른 어떤 것에 대한

사랑이 깔려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문제는 이 '사랑'이

말처럼 쉽지 않다라는 것이죠. 정말 그것이 문제네요.

식상한 결론이네요.

 

어쩌면 인생이 식상한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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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땅이라 불리우는 나라는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이스라엘을 들 수 있겠죠. 세계의 원성에도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나라입니다. 이외에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도 신의 땅이라 볼 수 있겠네요. 당연히 불교도

생각나는데 대표적인 나라가 떠오르지 않네요. 그냥 막연히

티벳이 생각나는 이유는 살아있는 성인 '달라이 라마' 때문인 듯.

 

저자는 대표적인 이슬람 국가라기 보다는 핵 보유국으로 유명한

파키스탄을 여행합니다. 생각이 짧은 저는 세계의 지붕은 네팔로만

갈 수 있는 줄 알았는데 파키스탄을 통해서도 갈 수 있었네요.

등반을 위한 한 달, 개인적인 여행으로 한 달. 총 두 달 동안 청정의

산과 무더위의 평지를 오가며 순진구무한 반짝이는 영롱한 눈을 가진

깨끗한 영혼들로 인해 영원히 잊지 못할 힐링을 역시나(?) 하고 돌아옵니다.

 

무슬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특히나 그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말이죠. 부록처럼 있는 무슬림에 관한 오해와 진실 같은

이야기들은 그 두려움을 약간 삭혀주네요. 그렇죠. 극도로 선한 사람과

그 반대의 악한 사람은 아주 소수죠. 대부분은 때로는 착하고 때로는 악한

그냥 저 같은 보통 사람이겠죠. 증명이라도 하듯 여행자들에 관해서는 

코란에도 기록되어 있고, 그래서인지 파키스탄 인들의 저자 일행에 대한

친절과 우정이 기억에 남네요.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대를 지날 때 누군가 묻습니다.

"탈레반은 어디 있습니까?" "(웃으며) 어디에나 있죠."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죠. 종교적 이유가 있겠지만, 그들도 평소에는 밭 갈고,

장사하고, 웃고, 울고, 이웃과 여행객들과 친구가 되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 말이죠.

 

누구나처럼 저도 세상에 평화가 깃들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모두가 친구인 그런 세상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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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야, 오로라, 바이킹, 죽기전에 가봐야 할 곳, 복지, 경제, 신화, 디자인 등.

  북유럽은 그 자체가 브랜드화 되버린 느낌입니다. 언젠가부터 북유럽 디자인

  출판되더니 지금은 경제경영, 인문에 실용 분야까지 다양하게 출간되고 있고

  성적도 나름 괜찮은 편입니다. 서점에서는 언제 어느 때나 북유럽 관련 이벤

  트를 진행해도 반응이 좋을 정도라는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그 만큼 입에서

  입으로 그 관심이 끊이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겠네요.

 

  '50개의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이야기'는 말 그대로 키워드로 북유럽을 이야

  기 합니다. 여행서는 아니지만 여행서 느낌도 듭니다. 책은 역사에서부터

  경제, 브랜드, 관광지, 기업브랜드 등 다양한 관점에서 특정 나라에 국한하기

  보다는 좀더 넓게 북유럽이라는 지역에 대해 이야기 하죠. 저자의 직업이

  직업이니 만큼 분석적이기도 하지만 여행서처럼 매우 쉽습니다. 가보고 싶

  다라기 보다는 북유럽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죠.

 

  반면 '북유럽처럼'은 북유럽에 관한 대표적인 여행서가 아닌가 합니다.

  지역 정보도 정보지만 저자 특유의 문체가 읽는 재미를 더 하는 책이죠.

  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덧 독자는 저자가 되어 놀기도 하고, 투정부리기도

  하고, 사우나에서의 난감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년에 북유럽 여행을 준비하고 계신 분들은 이런 책들을 챙겨서 보는 것도

  여행을 위해 유익한 시간이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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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기억력 감퇴를 실감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어려운 책이 아님에도

꽤 읽은 다음에 깨달았습니다.

'어? 읽은 책이잖아..'

 

삶을 긍정하는 책은 보통 '사랑'을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이 책 역시

사랑을 말합니다. 삶을, 가족을, 동료를,

이웃을, 지역을, 국가를, 사람을, 환경을,

지구를, 우주를, 신을 말이죠. 다른 책과

다른 것은 주인공이 죽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신과 신경은 멀쩡한 상태로

몸이 굳어지며 서서히 하루하루 죽어가는

자신을 직시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을,

삶을 사랑하는 것이죠. 그것은 생에 대한

집착과는 다른 성질의 것입니다.

 

나와의 화해이기도 하고 동료친지이웃들과의

화해이기도 하며 인류와 신의 피조물들과의

화해이기도 한 평화의 메세지입니다.

최소한 저는 그렇게 느꼈네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나의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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