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님의 "평창 두메산골 50년 이야기"

김화영 교수가 번역한 카뮈 전집에는 아쉽게도 카뮈가 장송의 <반항적 인간> 서평에 분개하여 <현대>지에 투고한 편집장에게 보내는 글이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사르트르의 재반박문은 근래에 번역된 <시대의 초상>에서 읽을 수 있지만 정작 논쟁을 촉발한 장송의 글과 카뮈의 글은 방곤 교수가 번역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부록에서만 볼 수 있는 상황이지요. 이 번역은 좀 아쉬움이 있기에 김화영 교수의 번역으로 읽었으면 했는데 구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김화영 교수가 장송과 카뮈의 글을 번역해서 잡지에 실었다는 기록은 있는데 찾아보기도 쉽지 않구요. <사르트르와 카뮈>에 이 글들의 번역이 실렸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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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님의 "강상중의 어머니, 김기협의 어머니"

김기협 선생이 김성칠 선생의 아들이란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나 어머니와의 관계가 원만치 않았다는 건 저도 금년 초 경향신문의 이 기사를 보고 알았습니다. 김성칠 교수의 <역사 앞에서>가 아들도 모르게 보관되어 있다가 출판되었다는 사실과 함께요. 제가 가진 <역사 앞에서>를 꺼내보니 1993년에 초판이 발행되었군요. 2월 10일에 초판을 발행했는데 한달도 안된 3월 5일(제가가진 책) 3쇄가 발행된 것을 보니 빠르게 팔려나갔던 것 같습니다. 주의깊게 보지 않았던, 이 책 뒷부분에 실린 이남덕 교수 직접 쓴 후기 (조국 수난의 동반자)를 읽었습니다. 출판 시기가 김영삼 취임전후인데 통일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읽히는 것을 보면 오래간만의 문민정부에 대한 희망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구절이 인상적이군요. "6.25 동란을 누가 먼저 저질렀느냐 하는 것이 이즈음 신문 보도에서도 발표되었었지만, 그것이 밝혀진다고 해서 우리의 고통이 극복되는 것도 아니다. 얼마나 집단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었으면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누었겠는가, 인간이란 왜 전쟁 행위를 해야 하는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에서 해답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인류에게 주어진 커다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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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님의 "가라타니 고진과 새뮤얼 헌팅턴"

그 과도한 소임이 일부의 문학가와 평론가의 의식에는 분명 있었지지만 대중의 의식 속에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소위 민중문학은 의무감에서 소수자가 읽는 소설이었지 시대를 특징지을 만큼 중요한 문학은 아니었던 것 같구요. 결국 대중에게 소설은 재미로 읽는 것이지 거기서 교훈을 얻는다고 생각한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히 종언을 논할만한 중요한 흐름을 소설이 차지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시작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가 말할 수는 없고 보다 보편적인 심금을 울리는 문학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는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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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님의 "가라타니 고진과 새뮤얼 헌팅턴"

제 책상에도 <문자와 국가>가 놓여있습니다.^^ 고진 이론의 많은 부분을 공감하지만 '근대 문학의 종언'테제는 그리 공감이 가지 않더군요. 왠지 뭔가 핵심 주변을 겉도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근대 문학'에 대한 가치 평가가 달랐던 데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진은 '근대 문학'이 근대 사회에서 뭔가 계몽적이고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특수한 위치에 있었다는 걸 전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종언 테제'에 제가 공감하지 못했던 건 한국 문학이 근대 한국의 역사에서 그런 특수한 위치를 갖고 있다는 걸 제가 실감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진이 일본에서 체험한 것을 한국에 있는 저는 체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일본의 나쯔메 소세키, 중국의 루쉰과 같은 문학가가 우리에게는 없었다는 것이지요... 결국 종언을 논할 '특수한 근대 문학'은 원래 한국에는 없었다. 따라서 종언을 논할 필요 없이 여기 한국에선 '시작'을 논해야 한다는게 제 요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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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님의 "비둘기와 매의 시간"

한윤형씨의 양비론은 참으로 무책임하게 보이는 군요. 비둘기의 노력과정에서 일어나는 도발/국지전과 매파의 결과 일어날 수 있는 전면전을 동일시하는 그 사고구조가 참 기이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이택광 교수의 컬럼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인질범이 인질극을 벌이는 경우 그 인질범이 나쁜 놈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겠지요. 중요한 것은 인질범에게서 인질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수우파의 경우 아무 대책없이 인질범이 나쁜놈이고 잡아죽여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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