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헤겔 프리즘 총서 12
찰스 테일러 지음, 정대성 옮김 / 그린비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헤겔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책. 번역도 읽을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규칙적으로 눈에 띄는 대로 구매해오던 바흐친 번역본들을 모두 모아봤다. 바흐친 연구서인 <바흐친의 산문학>까지 해서 우리말 바흐친은 대부분 구비되지 않았나 싶다. 문제는 이 모든 책들을 읽어주는 것뿐.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간간히 들여다본 바흐친은 그의 삶의 역정으로 보나 그가 다룬 주제의 광범위함으로 보나 참으로 신비로운 사상가이다. 문예비평가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가 건드린 영역의 포괄성을 고려하면 사상가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모처럼만의 헌책방 나들이를 했다가 풍성한 소득을 한 것 같다. 새책으로는 바흐친의 <예술과 책임>, <프로이트주의>, 옹프레의 반철학사 4권인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을 절반에 가까운 가격으로 구매했다.  바흐친은 나에겐 아직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불가사의한 사상가인데 책만 주섬주섬 모으고 있는 중이다.1927년에 벌써 <프로이트주의>란 책을 냈다는 것도 (그것도 소련에서!) 놀랍기만 하다. 반철학사는 소위 '철학사'에서 주목받지 못한 사상가들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흥미가 가는데 코플스턴의 '철학사'와 비교해가면서 읽으면 유익할 것 같은 생각이다.

슈레버의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을 구매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슈레버는 프로이트, 라캉, 카네티의 책에서 사례 연구의 하나로 비중있게 취급되는 사람인데 번역본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이 출판된 걸 알게 된 이후 마음 속 구매 리스트에 올려두었었다. 신경병환자의 사례까지 기울일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지 구매를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헌책방에서 발견하곤 얼른 집어들었다. 개인적으로 슈레버의 책과 더불어 니진스키의 <영혼의 절규>, 알튀세르의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를 광인에 의한 자기 분석서의 3대 서적으로 분류해 본다.^^

그리고 들뢰즈의 <니체,철학의 주사위>, 이택광의 <무례한 복음>도 이번 헌책방 순례에서 함께 구매한 책들. 쌓여가기만 하는 책들을 언제 다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구매할 당시에는 마치 책을 다 읽은 듯 즐겁다. 

헌책방 서가를 순례하다가 발견한 재미있는 에피소드 한가지. 데리다의 <글쓰기와 차이> 번역본을 논술과 글쓰기 책들이 모인 코너에서 발견한 것. 데리다의 저서 한권이 철학이나 인문학 코너가 아닌 이오덕 선생의 <우리글 바로쓰기> 등등 논술이나 작문 관련 서적과 같이 분류되 있다는 건 참으로 재미있다. 사실 위에 놓여 있는 <복수의 여신> 이란 책도 부조화이긴 하다.^^

  최근 람혼 님의 <사유의 악보> 중 (물론 전에 블로그에서 읽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데스카 오사무의 만화세계를 다룬 <아톰의 철학>이라는 책을 철학 코너에서 발견하면서 느꼈던 기묘한 감정을 술회하는 대목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와 유사한 경험을 이번 헌책방 순례에서 하게 된 것이다. 작문 관련 서적을 구매하고자 했던 고객이 데리다의 두툼한 <글쓰기와 차이>를 펼쳐보곤 과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이 두툼하고 난해한 책이 '작문'에 도움이 된다고 느낄 사람이 있을까?  이 책이 이 코너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팔릴 수 있을지 궁금해 진다.^^ 사실 내가 잠재적 고객일 수 있었으나 이 번역서에 쏟아진 악평 탓에 선뜻 구매하지 못했다. 다음에 갔을 때도 이 책이 있을까? 아직 있다면 내가 구매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북에서 쏘아댄 포격으로 연평도가 불타고 있었다. 또 터졌구나 또 당했구나…. 십여 명의 병사가 중경상을 입고 꽃 같은 나이의 두 해병이 전사하고 육십 줄의 두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텔레비전 뉴스에 비감을 삼켰다.

당장 불안했다. 섬 주민들의 피란 행렬이 줄을 잇는 화면을 응시하며 이럴 수는 없다고 분노했다. 남쪽의 선제공격을 운운하지만 수많은 도민이 고기를 잡고 땅을 갈며 사는 줄 뻔히 알면서 백오십 발의 대포를 쏘다니.

처참하게 부서진 집과 마을을 놔둔 채 황급히 섬을 비우고 떠나온 사람들의 겁먹은 표정에 지난날의 전란마저 겹쳤다. 등 굽은 할머니의 지팡이에서, 엄마 손을 꼭 잡은 아이의 눈에서 6·25를 떠올린 것이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다 아는 대로 연평도는 휴전선에 가까운 서해 어장의 중심이다. 전남 영광군의 칠산 앞바다와 함께 조기철 파시로 유명한 곳인데 직접 가보지는 못했다. 말로만 들었거늘 어쩌다 남북대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기막힌 참변을 당했다.

앞으로도 북의 무모한 도전이 더 계속될지 모른다는 예측에 마음이 조마조마한데, 북은 우리의 그만큼 경황없는 심리적 혼돈을 기왕의 경험으로 미리 안다는 듯 큰소리를 땅땅 친다. 이판사판 억척을 떤다. 사소한 예로 치부하면 그만이되 이를테면 평양방송 진행자의 시퍼렇게 날이 선 어투가 더없이 강퍅하다. 들어 버릇해서 그러려니 여기지만 한복으로 곱게 차린 여성 앵커의 연설조 의음(擬音)에 소름 돋는 날도 있다. 
 

그런 식으로 체제를 굳힌 지 육십 년도 넘는 사회를 나라 안팎의 북한 전문가들이 별별 궁리를 다하여 수소문하고자 기를 쓴다. 하지만 치고 빠지기 잘하는 측에서 불쑥불쑥 내미는 황당한 ‘과제’를 검색하기 바쁜 모양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한낱 서생이 무얼 알까마는 소박한 눈치로 바라보면 그렇다. 대통령의 초기 지침에 대한 말바꾸기 논란은 한층 민망스럽다. 낮과 밤이 달랐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런저런 발언에는 아닌게아니라 요령부득인 것이 많다. ‘G20’을 전후하여 난데없이 등장한 ‘국격’ 또한 모호했다.

내 독단임을 전제하고 말하건대 그와 같은 발제는 혹시 몇 년 전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군 후지와라 마사히코의 <국가의 품격>을 염두에 둔 게 아닐까. 아니라면 미안한 노릇인데 그 책은 지극히 단순하고 편협하다. 다른 계제에 이미 썼지만 국수주의도 그런 국수주의가 없다. 이 세상에 일본이 제일이라는 나르시시즘에 스스로 들려 싱겁다.

그야 어떻든 우리 사회는 이번 사태를 놓고 외치는 일전불사 수준의 용감한 소리가 마구 쏟아져 판을 더욱 어지럽게 만든다. 미리미리 대비하지 못한 책임이 큰 축일수록 남의 의견에 너무 날카롭게 신경을 쓴다. 막상 전쟁이 터지면 제일 먼저 동곳을 빼기 쉽다는 비아냥이 예전부터 떠돌았던 걸 상기한다.

따라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격앙된 정세를 틈타 행세할지 모를 억지 국론통일 분위기 말이다. 실컷 체험한 잘못된 구습이다. 쑥대밭이 된 연평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슬픈 분통에 편승하여 여론을 이상한 곳으로 끌고 갈까 무섭다.

다행히 경제는 순조롭고 남북 분란에 어느덧 면역이 된 사람들은 생업에 열중하여 차분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국민을 달래고 안심시켜도 시원찮은 고위 인사들의 늦게 잡고 되게 치는 모양이 안 좋다.

생사람을 해치고도 도도하기 짝없는 저들의 늘 오만한 콧대를 꺾고 싶은 심정은 다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냉철하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는 말이 맥 빠지게 들릴지언정 그게 곧 민주국가의 힘 아닐까. 응징할 때 응징하더라도 지금은 긴 눈으로 나라의 앞날을 겨냥해야 한다고 믿는다. 확전을 피하고 냉정하게 대처하는 게 수다. ‘화약고 발칸반도’ 아닌 ‘화약고 한반도’ 소리를 면하기 위해서도.

(한겨레 신문) 최일남 소설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유리의 기술 

                               정병근 

유리창에 몸 베인 햇빛이
피 한 방울 없이 소파에 앉아 있다
고통은 바람인가 소리인가
숨을 끊고도, 저리 오래 버티다니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이자
햇빛은 비로소 신음을 뱉으며 출렁인다
고통은 칼날이 지나간 다음에 찾아오는 법
회는 칼날의 맛이 아니던가
깨끗하게 베인 과일의 단면은 칼날의 기술이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풍경의 살을 떠내는
저 유리의 기술,
머리를 처박으며 붕붕거리는 파리에게
유리는 불가해한 장막일 터,
훤히 보이는 저곳에 갈 수 없다니!
이쪽과 저쪽, 소리와 적막 그 사이에
통증 없는 유리의 칼날이 지나간다
문을 열지 않고도 안으로 들이는 단칼의 기술,
바람과 소리가 없다면 고통도 없을 것이다
 

정병근 <번개를 치다> 중 - 문학과 지성사
 

# 햇빛 좋은 날 창밖을 보다가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 
   단순한 인식을 파괴해 버리는
   시인의 상상력이 놀랍다.

# 유리는 칼날이요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풍경은
  그 칼날에 베어진
  회와 과일이다.
  과연 칼날에 의해 잘 정리된
  회와 과일은 맛이 있다.

# 그러나 실재는 유리 칼날 뒤에 있다.
  인식하지 못할지라도 그것은 늘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자기 목소리를 내고야 만다.
  베어진 후에 고통이 천천히 찾아오듯이..... 
  진실은 관계된 전체일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