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5.20 [시론] 북 어뢰보다 두려운 것은 우리의 무능이다./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

모든 정황이 기계처럼 척척 들어맞으며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결정적 증거물이 속속 드러나자 살인범이 누구인지 명확해지는 <원초적 본능>의 후반부, 더 이상의 반전은 없을 것 같다. 이 영화의 매력은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순간에도 또 다른 반전의 여운을 남긴다는 데 있다. 계속 의심할 수 있는 여지를 허락함으로써 우리를 지적으로 자극하게 되고 진지한 자세를 촉구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건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남길 때 진상규명의 가치가 더욱 높아진다. 

민·군합동조사단이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면 곧바로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힐 것 같다. 필자도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불신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조사에 대해서도 ‘합리적 의심’의 여지는 있다. 

첫번째, 북한이 잠수함을 동원해 함정을 피격하고 도주하기까지 어떻게 우리는 감쪽같이 모를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잠수함 탐지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어뢰 발사시 발생하는 음파도 탐지하지 못했고, 사건 직후 도주하는 적도 찾아내지 못했다.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북한 연어급 잠수함이란 것이 아무리 뛰어난 성능을 갖고 있다고 해도 도주 중 어디선가는 수면 위로 올라왔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구축함과 초계함, 지상레이더, 대잠헬기, 정찰기, 초계기 그 무엇도 역할을 하지 못했다. 또한 미국의 군사위성과 최첨단 무인정찰기를 비롯한 연합정보자산도 아무런 역할이 없었다. 이것이 가능한가?

두번째, 이렇듯 우리를 기만하면서 단 한 번에 완벽히 작전을 성공할 정도로 북한군이 탁월한가 라는 점이다. 합동조사단은 연어급 잠수함이란 생소한 전력에 대해 그 제원과 성능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존재 자체가 신비스러운 수중무기를 보유한 북한군이라는 존재를 부각시킴으로써 국민을 더욱 공포에 빠지게 하고 있다. 중병에 걸린 북한 체제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엄청난 군사적 역량이 뿜어져 나오는 메커니즘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한 북한군의 혁신성, 대담성, 결단력을 과연 무엇으로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이런 정황 전체가 의문이다.

작년에 국방부는 “향후 남북간 분쟁은 대규모 지상전 교전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며, “여기에 잘 대비하면 국지적 충돌에 대한 대비도 저절로 되는 것”이라며 청와대를 설득했다. 그 결과 우리 국방정책, 정보, 작전, 군사력 건설의 기본 전제와 가정의 핵심은 “해군과 공군은 대북 우세인데 육군만 북한의 70%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전차, 자주포, 다연장포, 장갑차를 사 오는데 국방예산을 더 집중했다. 이렇게 개악된 국방개혁안에 이명박 대통령이 “계획이 잘 수립되었다”며 거침없이 재가해준 때가 작년 6월이다. 군사정세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대통령과 국방장관, 합참의장이 매너리즘과 안보불감증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누가 그랬다는 말인가?

우리에게 두려운 것은 북한의 어뢰가 아니다. 우리의 무능과 무지다. 아무도 이 사태에 책임지지 않고 과거 정부에, 야당에 책임을 전가하는 그 독선은 더 두렵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합조단의 조사결과에 대해서도 또 다른 반전을 불러올 수 있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계속 남겨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에 대한 공포와 불안밖에 남는 것이 없고, 여기에 끌려다니며 앞으로 시작될 ‘잃어버릴 10년’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Epitaph  

                                  King Crimson

The wall on which the prophets wrote  

Is cracking at the seams.

Upon the instruments of death 

The sunlight brightly gleams.  

When every man is torn apart 

With nightmares and with dreams,  

Will no one lay the laurel wreath 

When silence drowns the screams.   

 

Confusion will be my epitaph. 

As I crawl a cracked and broken path 

If we make it we can all sit back And laugh. 

But I fear tomorrow Ill be crying, 

Yes I fear tomorrow Ill be crying   

 

Between the iron gates of fate,  

The seeds of time were sown,  

And watered by the deeds of those 

Who know and who are known; 

Knowledge is a deadly friend 

When no one sets the rules. 

The fate of all mankind I see  

Is in the hands of fools.   

-------------------------------------------------------------------

               묘비명 

                                  킹 크림슨 

 

예언이 새겨진 벽이 갈라지고  

죽음의 도구들이 햇빛으로 번쩍인다.  

사람들이 악몽과 희망으로 분열되어 있을 때  

승리의 월계관을 쓰는 자 아무도 없으리  

절규가 침묵에 묻혀버릴 때.  

 

혼돈은 나의 묘비명이 되리라  

내가 깨어지고 갈라진 길을 기어갈 때. 

만약 우리가 해낼 수 있다면 

모두 편히 앉아 웃을 수 있으련만.  

그러나 나는 내가 울부짖게 될 내일이 두렵다. 

그래 나는 내가 울부짖게 될 내일이 두렵다.   

 

운명의 철문 사이로 시간의 씨앗은 뿌려졌고

안다는 자, 알려진 자들이 물을 주었다. 

누군가 정칙을 수립하지 않는다면 지식이란 죽은 것일 뿐. 

나는 알고 있네 인류의 운명이 바보들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을.  

 

Trans. by Blue Ocean 

------------------------------------------------------------  

예전에는 에피타프와 같은 장중한 노래들을 좋아 했었다. 

중학생 시절에 테이프에 녹음해 놓고 수도 없이 이 노래를 들었던 것 같다. 

사실 노래를 열심히 들으면서도 가사내용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영어에 좀더 익숙해지고 가사 내용을 파악해 보니 

무척이나 의미 심장한 가사이다. 

마치 우리의 현실을 노래하고 있는 듯하다. 

얼마나 비극적인가. 

우리의 운명이 바보들의 손아귀에 놓여 있다는 것이.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를 보며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천안함 장병들의 명복을 빈다.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리라는 믿음을 간직하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록 보컬리스트 로니 제임스 디오가 위암으로 사망했다 한다. 향년 67세. 로니 제임스 디오는 리치 블랙모어가 이끌었던 레인보우의 보컬리스트를 거쳐  블랙 사바스에서 잠시 활동하다 '디오'라는 독자적인 그룹을 결성, 맹활약했다. 그러나 내 기억에 남아 있는 로니 제임스 디오는 역시 레인보우 시절의 로니 제임스 디오이다. 

블랙 사바스나 디오는 모두 악마주의를 표방하는 바람에 우리나라에서는 소수의 매니아들에게만 알려졌을 뿐이다. 이들은 기독교적 가치관에 도전하는 듯한 제스쳐를 썼지만 온순한 코미디언이 되어 버린 듯한 오지 오스본의 경우 등을 볼 때 그냥 쇼맨십을 겸한 위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로니 제임스 디오는 아프리카 기아 구제를 목적으로 한 밴드도 결성하여 활약했다고 하니 그의 악마주의는 사실 휴머니즘의 다른 측면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디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다.  

"나는 미워하는 사람이 없다. 설마 없기야 하겠냐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디오가 보컬, 블랙모어가 기타를 연주했던 레인보우의 대표곡 Temple of the King은 내가 아주 좋아했던 노래 중의 하나였다. 가성이 강한 로버트 플랜트나 오지 오스본에 비해 선이 굵은 그의 목소리가 내게는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그의 명복을 빌며 오래간만에 Temple of the King을 감상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제 우리나라도 이벤트 성 사건에 휘둘림이 없이 남북문제를 보다 거시적인 틀에서 풀어가야 하지 않을까.

한겨레 5.17 [세계의창] 김정일이 중국에 간 이유 / 셀리그 해리슨

북한이 천안함에 어뢰를 발사했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만일 북한이 그랬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의 남북정상선언을 회당에 안치하고, 남북공동성명을 부인했다. 북한의 보복을 불러온 측면이 있다. 이는 만일 북한이 그런 일을 저질렀을 경우, 북한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두 번의 정상선언을 거부하는 것은 북한에 남한이 또다시 북한의 붕괴와 흡수통일을 바라고 있다는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시점에서 필요한 건 이명박 정부가 두 정상선언을 분명히 받아들이고 비핵협상을 진행하는 것이다. 남한은 북-미 양자 비핵협상, 남북한·미국의 3자 평화협상, 그리고 6자회담 재개 등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비핵화는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과 같이 진행되어야 한다. 물론 현실은 집권당내 강경파들이 이명박을 반대 방향으로 몰아갈지도 모른다. 미 국방부와 국무부 관리들의 말에 따르면, 지난 6일 워싱턴을 방문한 박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은 미국 관료들을 만나 서해에서의 한-미 합동 해군훈련,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 등을 촉구했다고 한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전의 군사적 긴장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남북한 양쪽의 군사비 증강을 뜻한다. 어떤 분석가들은 군사비 증강이 남한의 경제발전에 득이 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존 페퍼(미 정책연구원 외교정책포커스 소장)는 한미경제연구소(KEI) 보고서를 통해 “군사비가 경제적 이득이 된다는 것은 매우 미약한 수준이고,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서재정 교수(존스홉킨스대)는 논문에서 “남한의 군사비용은 정부, 군, 방위산업체의 긴밀한 네트워크인 ‘군산복합체’에 의해 주도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1990년대 중반 한국의 방위산업체에 326명의 전직 장성과 장교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페퍼는 연간 70억달러 규모의 북한 국방비 규모로는 남한(200억달러)을 따라올 수 없다고 지적한다.  

 남한에서는 군산복합체들이 군비감축의 반대 최전선에 서 있다. 북한에도 노동당내 강경파와 결합된 군산복합체가 있다. 김정일 치하에서 이들은 더 강해졌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경제적 요인 때문에라도 군축이 불가피하게 된 측면이 있다. 이에 반해 남한은 빠른 경제성장으로 말미암아 국내총생산에서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북한에 비해) 높지 않아 실제 국방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에도 군축 압력이 북한만큼 크지 않다. 미군의 존재도 군축을 시급하게 만들지 않는 또다른 이유다. 그러나 방위비가 복지비로 전이된다면, 남한의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남한은 선진국에 비해 국내총생산(GDP)에서 의료, 복지, 사회보장 비용이 매우 작다.

최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과도한 군사비 증가를 줄이려는 의도가 포함돼 있다. 나는 1998년 탈북 직후 황장엽이 했던 예언적 인터뷰를 기억한다. 그는 “중국은 김정일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 애쓰고 있는 중이다. 식량난과 경제침체가 계속되면, 김정일은 도움을 얻기 위해 중국에 항복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북한이 중국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중국의 나진항 개발을 허용해 중국의 오랜 숙원인 동해 진출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으로 연결될지 모른다. 이명박의 (대북 강경) 정책은 북한의 중국 의존도를 높였고, 이는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의 전략적 지위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는 결국 장기적으로 미국과 남한의 비용증가로 귀결될 것이다.


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틀 후면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에 대한 정부의 발표가 있을 모양이다.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로 보아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지어지는 듯한 분위기인 것 같은데 이 발표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인 것 같다.  이 사건의 발생과 수습의 전 과정이 한반도에 얽힌 중층적인 역학관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 중층성은 남북관계는 물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인 이해관계를 포괄한다. 우리시대를 상징하는 듯한 이 사건에 대한 깊이 있는 독해와 대응이 필요할 것 같다.


한겨레 (5.18) [세상읽기] 천안함 사건, 깊이 읽고 대응하기 / 박명림

국민 모두가 가족과 함께 울었던, 갑작스레 다가온 비극 천안함 사건을 현실과 역사에서 어떻게 가치롭게 자리매김할 것인가? 급작스런 사건일수록 우리는 당혹과 이념편향을 넘어 냉정하게 현실적 미래적 이익을 타산하여 깊고 길게 성찰하고 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천안함 사건의 의미는 국민 생명 보호의 문제이다. 국민 생명 보호의 일차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전쟁 방지를 포함해 그 국민엔 군인도 포함된다. 금강산 박왕자씨 희생, 개성공단 유성진씨 장기억류에도 불구하고 - 남북관계 개선이든 대비 강화든 - 대책을 수립하지 못한 정부는 끝내 군인 46명을 잃고 말았다. 최초 국민 생명 보호 실패에 대해 정부는 책임지고 재발 방지책을 수립했어야 했다. 그러나 평시에 무고한 국민 46명을 잃고도 아직도 군과 정부의 누구도 책임지거나 처벌받지 않고 있다.

둘째, 국가안보와 국민통합의 위기 문제이다. 부모봉양·가난·가족생계·학업 등 천안함 희생자들의 해군 지원과 승선 사유는 그들의 죽음 못지않게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 희생의 반대편에서 국가 최고위직들 - 대통령·총리·국정원장·대통령비서실장·대통령정책실장·감사원장·여당원내대표·재경부 장관… - 은 너무도 많이 군대를 가지 않았다. 개별적 병역면제의 사유를 고려하더라도 한국에서 ‘국민개병제’는 사실상 ‘계층차병제’ ‘하층개병제’로 전이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민주화 이후 국가 고위직의 최고 병역면제율을 보여준다. 신분·직업·재산에 관계없이 국가방어 의무를 수행하는 국민개병제의 최대 성과는 국가안보·국민평등·국민통합·애국심의 획기적 제고였다. 천안함 사건이 대비시켜준 일반국민과 보수정부 핵심 인사들의 병역사항은 국민통합과 애국심을 누가 보수했는지 묻게 한다.  

셋째, 남북관계와 국내정치 차원이다. 한 번의 말이나 사건으로 악화된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간의 남북관계사는 잘 보여준다. 그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국가안보를 강화하는 가운데 이번 희생을 어떻게 의미 있는 현실과 역사로 승화시킬 것인가? 요컨대 지금은 남은 임기 2년 반 동안의 남북관계 단절, 북핵대화 중단, 한반도문제 주도권 상실, 한반도 상황 불안화의 계기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남북관계 안정, 북핵대화 재개, 한반도문제 주도권 복원, 한반도 상황 안정화의 계기로 삼을 것인가, 중대 갈림길인 것이다. 대통령은 지금 역사와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쪽은, 외부와의 적대를 통해 내부단결을 제고하고 핵무장을 가속화하려는 북한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일부’ 대결주의나 군부의 책임회피 논리에 빠져 ‘북한 전체’를 이롭게 하는 선택을 해선 안 된다. 남북 대결과 북한 공세의 상황에서도 냉혈적인 실용주의로 대화를 추진한 박정희의 뚝심과 현실주의를 빌려오길 바란다. 남은 임기 2년 반을 허송한다는 것은 결국 임기 5년 전체의 남북관계·한반도 문제에 해당한다. 게다가 2000년 4월 정상회담 발표와 16대 총선 결과, 2002년 2차 북핵위기 도래와 노무현 당선, 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과 이명박 당선에서 보듯 남북관계와 국내선거는 직접적 상관관계가 없을 만큼 민주화 이후 한국 시민의식은 성숙해졌다. 그렇다면 정권 또는 국내정치 차원의 북풍 활용 유혹은 당연히 벗어버려야 한다.  

넷째, 국제 차원이다. 1894년 작은 농민봉기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대응은 결국 청·일에 대한 초청과 전면개입·청일전쟁으로 상승되고, 그것은 끝내 한국의 부유국가화로 연결되었다. 한국은 작은 문제조차 전체적 국제상황에 따라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부분으로 전체를 깨선 안 된다. 20년의 노력으로 힘겹게 구축한 한-미 동맹 공고화와 한-중 협력 강화의 병행, 한-미 안보동맹과 한-중 경제협력의 이중주를 천안함 사건 하나로 훼손해선 안 된다. 또 중국에 대한 발언권 상실은 6자회담·북핵·남북관계·한반도 문제의 발언권 위축으로 연결된다.

천안함 사건으로 희생당한 영혼들을 가장 잘 기리는 길은, 그들의 희생에 바탕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공고히 하는 일이다. 비극을 국가 덕성의 발휘 계기로 삼는 이성적 리더십, 지금 그것은 대통령과 정부에 달려 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 정치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