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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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어린 시절의 일들은 기억 저편에서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다. 시간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일들이 드문드문 한 장의 사진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시절에 함께 뛰어놀고 했을 친구들의 이름도 가물가물하고 살았던 곳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변해버렸다. 내게 있어 어린시절은 추억도 남아있지 않은 자라는 과정 속의 시간에 불과했었나?


  인왕산 산기슭에 사는 초등학생 동구를 만난 것은 일주일 전 주말이었다. 일요일 오후의 허전함을 채우고자 동생이 두고 간 책(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펼쳤다. 어린 아이가 자신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열 살이 조금 넘었을 이 아이의 머리 속은 도대체 몇 살인가? 삶에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너무도 무심히 말을 한다. 몸만 아이지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른 보다 더 세심하다.


  동구는 인왕산 기슭에 살고 있다. 부유한 아래동네와는 비교할 수 없이 좁은 동네지만,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3층집이 있고 이웃간에 정이 살아있는 그런 곳이다. 동구가 들려주는 가족이야기. 사랑하는 어머니와 집안의 불란을 조장하는 할머니와 그것을 조율하지 못하고 어머니께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그리고 초등학생인 동구. 온기가 없는 가정에 동생 영주가 태어나면서 조금씩 웃음꽃이 피어난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대치는 늘 불안하게 가정을 지탱하는 축을 이뤘지만, 영주가 자라면서 보여주는 영특함과 사랑스러움이 그것을 덮을 수 있었다.


  비록 초등학교 4학년이나 되고 생각이 깊고 착한 동구지만 글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하는 난독증을 앓고 있다. 할머니는 지 얘미 닮아서 머리가 모자란 놈이라고 늘 심하게 대하고 부모님은 좀 자라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동구가 사랑하는 박선생님의 따스한 보살핌으로 극복하게 된다.


  초등학교시절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시거나 혹은 멋있는 이성 선생님께 좋은 감정을 갖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동구 또한 자신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시는 박영은 선생님께 풋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또한 주리삼촌과 함께한 자리에서 사회 현실에 대해서 느끼는 그의 감정(내 어린시절에도 그렇게 받아들였듯이)은 어린시절 정의라고 믿었던(교육 받았던) 국가가 맞지 않을 수 도 있겠다는 짐작을 품게 된다.


  할머니와 엄마의 대립, 그로 인해 야기되는 부모의 갈등, 그리고 사랑하는 동생 영주의 죽음으로 동구의 집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할머니는 누워 일어나지 못했으며, 아버지는 상실감으로 늘 술과 함께 지내게 된다. 동구 또한 다시 난독 속으로 빠져들었다. 사랑하는 선생님과 동생, 그리고 어머니가 자신 곁을 떠났다는 자책감에 무너진 어린 소년의 가슴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겠는가? 할머니와 같이 시골 노루머리로 떠날 결심을 하고 마지막으로 정원에 앉아서 나무와 꽃, 새를 느끼는 동구의 모습은 비록 어리지만 삶의 의미를 깨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구의 이야기 속에서 내가 어린 시절 보았던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가슴 한구석이 따뜻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고 가족이 해체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터질 듯한 슬픔 또한 느꼈다. 너무 아름다운 얘기지만, 다시 읽어 볼 용기가 생기지 않은 책이다. 따뜻함과 슬픔을 내게 준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언제 다시 펴볼 수 있을 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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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 오후 4시의 평화
조병준 지음 / 그린비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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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보험 세일즈를 하는 대학 동창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지금껏 다른 일을 하다가 새롭게 영업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에 보험 컨설턴트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 그는 삶의 위험성을 말하면서 현대인의 수명이 팔십 가까이 된다는 얘기를 했다.


  팔십년을 살면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알면서 또는 더 가까이 친구로 벗하면서 지낼까? 학생 시절에는 매년 학년이 올라가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생기지만,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에 나오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사귈 기회가 적어진다. 허물없이 누군가를 편하게 대할 마음에 여유가 세상살이에 줄어들어만 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예전에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니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알면서 지낼 수 있을 것 같니? 아마도 한반 인원인 50명이 넘지 못할 거야. 그러니 주변 사람들에게 늘 친철 해라.” 그 당시 오십이 넘으셨던 선생님 말씀에 “예” 하고 대답은 했지만, 그냥 흘려보냈다. 서른이 넘은 나이가 된 지금 주변을 돌아보니 이제야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친했던 친구들도 세월의 무게에 연락도 끊겨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지 못한다. 늘 가까이 지냈던 친구들도 이제 새로운 가정을 갖게 되어 자신이 책임져야 할 울타리 사람들을 위해 밤낮으로 쫓기며 지낸다. 이제는 친구 보다 더 관심과 책임을 쏟을 가족이 생겼기 때문이다.


  친구란 어떤 존재인가? 늘 가까이에서 우리에게 끝없는 믿음과 신뢰, 때로는 따끔한 충고를 부담 없이 던질 수 있는 이들이다. 비록 공간적으론 멀리 있고 자주 보지 못하고 가끔 만나더라도 어제 본 듯 편안한, 심리적인 거리감이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다. 가족과 더불어 내 삶에 따뜻한 동반자가 바로 그들이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 선생님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의 그가 바로 친구라고 생각한다.

 

  조병준님의 “제 친구들과 인사하실래요? - 나는 천사를 믿지 않지만, - 오후 4시의 평화”는 그가 인도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의 집에서 수년간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친구들과 그의 얘기이다. 친구와 술은 오래 될수록 진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친구로 다가오는데는 시간보다는 마음의 교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얼마만큼 생각과 마음을 나누었느냐에 따라 하루밤 사이에도 우리는 누군가와 친구가 될 수 있다. 생각과 마음의 공유, 그리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쌓은 믿음이 시간이 지나도 어제 만난 듯 반갑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란 말로 표현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살아있는 성인으로 불리었던 테레사 수녀님이 떠나신 후에도 그분의 생각을 쫓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속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다. 시장경제 논리가 세상 곳곳에 영향을 미치는 지금의 현실에서 삶에 다른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과 같이 숨쉬고 있음에 위안이 된다. 편안함(어쩌면 사회 가치들이 그렇게 느끼라고 조작했을 수도 있겠지만)을 주는 자신의 울타리를 떠나 사회적 가치와 배치되는 일을 아무런 대가 없이 할 수 있는 용기. 자신만의 가치와 원칙, 신념이 분명한 사람들이며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response + ability)을 가진 사람들이다.  인생의 의미가 “돈”이 아닌 사람들. 그들의 삶과 용기에 부러움을 느낀다. 마음과 다르게 현실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과 어느덧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가 사회적 가치(돈)가 있는 것이 중심이 되었음을 발견할 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줄어듬을 느낀다.


  하지만 자극(Stimulus)에 대한 반응(Response)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내게 있음을 알고 있다. 자주 감정적이나 대응적이 되기도 하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믿는다. 더욱이 내 주변에는 나를 깨우쳐 줄 친구들이 있다. 그들이 내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격려과 충고를 줄 것이다. 그들과 함께 따뜻한 영혼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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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영한대역
미치 앨봄 지음, 강주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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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앞에서 인간은 솔직해 진다.


  한 사람을 만났다. 나와는 다른 시대와 문화에서 살았지만, 그는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거나 그 땀으로 돈을 벌지 않으려고 대학교수가 되었고 수십년 동안 자신만의 의미와 원칙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이다.

  마지막까지 스승이었던 이, Morrie Schwartz.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이런 가치로 살아온 사람이 우리 살아남은 자(살아갈 자)들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에 대해서 말한다.

  나는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 나도 같은 상황을 맞이할 것이기에. 그런 순간에 후회하는 마음을 줄이기 위해서..


  사회는 변해왔고 변하고 있으며, 변할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도 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도 하나의 가치만을 쫓는 것처럼 느껴진다. 바로 돈이다. 돈이 부요 명예며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 버린지도 꽤 오래 되었다. 아이가 자라서 그 오랜 세월 학교를 다니고 배우고 하는 이유도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아니 남 보다 더 갖기 위해서라고 말한다면 너무 극단적인 얘기가 될 것인가? 어쨌든, 핵심은 이 하나의 가치가 지금의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들려주는 세상과 문화, 가족과 결혼, 그리고 사랑의 지속, 감정, 돈, 죽음의 이야기들이 과연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속에 닿을 수 있을까? 이 책이 꽤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모리의 생각의 씨앗들이 그 사람들 마음속에 자라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자신이 가졌던 기억이나 느낌들이 영원히 지속되리라 믿지만, 특별한 노력이 없다면 순간일 뿐이다. 모리선생님이 준 감동도 특별한 노력을 한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겐(특별한 노력을 한 자가 다수이길 바라지만) 순간의 달콤한 감정의 이완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지금도 사회 속에서 물질적 풍요나 기타 조작된 가치를 쫓거나 매여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라고 특별할 수 있겠나?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이 1999년 정도 되었을 듯 싶다.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던 이십 대 청년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사람처럼 큰 감동을 받았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을 읽었지만, 순간의 감정이완을 맛보았을 뿐이다. 즉, 자극을 받아 들였을 뿐, 반응을 선택하여 의지의 행동을 취하지 않았기에 현실에 대한 불만을 씹을 뿐, 틀 안에서 반복된 일상을 살고 있다.


  달라지고 싶다는 열망에 다시 한번 사로잡힌다.

스스로 원하는 원칙과 가치대로 삶을 채우고 싶다는 희망을 품으며 다시 한번 모리선생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보고자한다.   

 

그는 오랜만에 찾아온 제자 미치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

마음을 나눌 사람을 찾았는가?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 하고 있는가?

마음은 편안한가?

최대한 인간답게 살려고 애쓰는가?


  이 물음의 핵심에는 사랑과 자기 성찰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사랑하는가?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가족, 친구, 연인)이 있는가? 이웃들에게 선한 마음을 갖고 대하는가? 더불어 사는 의미를 느끼고 있는가?

  스스로 살아가는 이유를 알고 있는가? 자신의 삶의 원칙은 깨닫고 지키고 있는가? 내면적 가치를 키우고 있는가?


  그는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Love wins. Love always wins.)

(Love each other, or die.)

 

 미치는 삶에서 생각하는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질문하고 모리선생님은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해준다. 사회나 세상, 가족과 결혼, 사랑의 지속, 감정, 돈 등은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주제들이다. 우리가 부여할 삶의 가치들이 대부분이 이 안의 주제들에 포함된다. 사람은 저마다 성품과 가치들이 다르기 때문에 삶의 중심도 다르게 무게를 두고 살아간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세월이 흐른 뒤 입관할 무렵이 되면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에 단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하겠는가? 믿음과 사랑, 배려의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원칙을 지키며 고민하며 의미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따뜻하게 채워 가는 것이라 믿는다. 숨쉬는 것만이 삶이 아님을, 늘 깨어있는 정신으로 모든 것에 임할 수 있도록 성품을 갖도록 순간순간 노력하고 싶다.  


  죽음을 접하는 사람은 급격한 Paradigm의 전환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자신이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얻으려고 노력했던 가치들(부와 명예 등등)이 자신에게 주어진 제한된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자신의 바라보는 세상과 삶의 의미에 대해서 이전과는 다른 견해를 갖게되는 것이다. 죽음을 앞 둔 사람의 삶의 의미를 듣는 것 자체가 행운이다. 자신의 살아가는 지표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마음에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 삶의 의미를 다시금 반추해 봤길 기대하며... 


If you really want it, then you'll make your dream hap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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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폰더씨 시리즈 4
앤디 앤드루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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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지녔던 원칙과 가치를 지키고 키우면서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은 세월의 무게에 소망했던 꿈들은 기억 저편에서 희미한 옛 추억을 회상하는 술안주가 되어간다. 세상에 변하지 않은 진리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순간순간이 선택이고 그 선택의 가지들이 이어져 지금의 나의 모습을 만들었고 오늘의 내가 미래를 나의 모습을 결정할 것이다.

  한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시기가 되면 우리는 지내왔던 시간들을 돌아본다. 열심히 보냈다는 만족감 보다는 채우지 못한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늘 크며 새롭게 시작하는 새해에는 계획을 착실히 세워서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

  나 또한 이런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변화는 안에서 시작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잠자고 있는 내 영혼을 일으켜 세울 동인이 필요했다. 여러 권의 책들을 살피다가 우연히 난 David Ponder를 만났다. 40대 후반의 평범한 샐러리맨. 사랑하는 아내와 예쁜 딸을 가진 넘칠 것도 부족할 것도 없는 중년이 남자이다. 그런 그가 실직을 당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한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과 금전적인 압박(보통 사람들은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차를 장만하고 생활을 하는데, 갑자기 수입이 사라지면 빚을 질 수 밖에 없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린다. 이게 지금의 우리 현실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딸의 급작스런 입원으로 인해 폰더가 한 선택은 어찌 보면 그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지 모르겠다.


  자신을 놓아 버리니 상황이 바뀐다. 그가 간 곳은 죽은 자의 땅이 아니었다. 그에게 조언을 줄 수 있는 위대한 삶을 살았던 이들을 만나는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

  폰더가 7명의 조언자들을 만나서 조언을 듣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 경험들을 통해서 변한 자신의 미래를 본다. 그것을 보여주면서 작가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미래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의 지금의 모습도 우리의 선택이었고 미래의 우리의 모습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망설임과 외부적 요인이라고 핑계를 찾으면서 했던 행동들이 우리의 무수한 가능성들을 막았다는 것을.

그럼, 과연 우리가 이제 취해야할 행동은 무엇인가?


  내 개인적인 생각에 이 책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과거의 우리의 선택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고,

미래의 우리의 모습도 현재의 우리가 선택하고 행동한 결과에 의해서 만들 수 있다(창조해 낼 수 있다)“ 는 것이다.


  세상사는 이들 중에 과연 얼마의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며 살고 있을까? 삶의 순간순간이 선택이고 그 선택에 의해서 우리의 미래가 변할 거라는 것을 믿는다. 그것은 당연한 인과법칙이니까. 하지만, 그 선택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을 이끌 것이라는 것에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다. 지금의 행동은 선택할 수 있지만, 그 끝의 결과는 알 수 없는 것이므로. 그러나 최소한 자신의 선택의 주인이 되어서 행동한다면 하지 않음으로 갖게 될 후회는 없지 않은가? 즉, 가브리엘 대천사를 만날 필요는 없게 된다. 비록 그 결과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더라도 말이다.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에서 변화를 원한다. 변화의 동기가 되는 자극과 용기를 갈구한다. 책에서 제시해 주는 “너도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자신의 가슴을 덥히는 씨앗이 되고 그것을 키울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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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영웅문 제3부 - 중원의 별 1 - 보급판
김용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8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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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를 할 때 주로 비소설을 읽는 편이다. 삶에 대한 작가들의 진지한 의미들을 내 삶에 스며들게 하고픈 욕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류의 책들이 늘 잘 읽히는 것은 아니다. 내용이 내 배경지식을 뛰어 넘어 버리면 책장 한장 한장을 넘기기가 곤욕이고 나중에는 책을 덮고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싫어 지기도 한다. 이럴때 조금은 가벼울지 모르지만 잔잔한 감동과 재미를 주는 책을 읽는다. 이것이 내가 소설을 고르는 기준이다.

  지금 까지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빠져들었던 책이 두 권 있다. 하나는 이은성씨가 쓴 동의보감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소설 영웅문이다. 때때로 무협소설이나 만화에 대해서 다른류의 책들에 비해서 낮게 바라 보는 시선이 있다. 물론, 나도 무협이란 장르에 대해서 좋은 입장은 아니었다. 그 내용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마으로 받아 드리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편견은 김용씨의 역작 소설 영웅문 시리즈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총 3부로 18권.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각 권이 400쪽이 가까이 됨에도 읽을 수록 그 탄탄한 구성과 재미에 빠져든다. 쉽게 말하자면 한번 책을 들고 가열이 되기 시작하면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다. 대학 시절 겨울 방학때 책을 들어서 몇날을 새벽까지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큰 줄거리는 대부분의 설화나 고전 소설처럼 주인공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딛고 우연한 기회가 변화의 동인이 되는 인물을 만나거나 사건을 겪으면서 오랜 시간의 노력 끝에 범인이 근접할 수 없는 경지의 인물, 즉 영웅의 문으로 들어서는 얘기다. 주인공 장무기가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불치의 병에 걸려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우연히 비급을 얻어서 수 년간 홀로 수련해 세상에 나가 분열된 무림을 하나로 아울러 조국을 침탈한 외적에 항거하는 이야기. 어찌 보면 뻔한 얘기를 작가는 수 많은 등장인물과 완벽한 구성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영웅문 시리즈를 몇 번 읽게 되면 대부분의 중국 무협 영화는 꿰뚤 수 있다. 대부분의 영화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원작의 상상력을 담기에는 영화라는 장르가 한계가 있어서 그 감동을 살리기가 어렵지만 말이다.

  어쨌든 탄탄한 구성은 고전 소설의 최고봉인 삼국지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편한 휴식을 가지고 싶을 때 이 책을 한 번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무언가를 꿈꾸지만, 방향을 찾지 못하거나 실패를 경험했을 때 어떤 일이든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내게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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