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 오후 4시의 평화
조병준 지음 / 그린비 / 199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보험 세일즈를 하는 대학 동창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지금껏 다른 일을 하다가 새롭게 영업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에 보험 컨설턴트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 그는 삶의 위험성을 말하면서 현대인의 수명이 팔십 가까이 된다는 얘기를 했다.


  팔십년을 살면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알면서 또는 더 가까이 친구로 벗하면서 지낼까? 학생 시절에는 매년 학년이 올라가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생기지만,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에 나오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사귈 기회가 적어진다. 허물없이 누군가를 편하게 대할 마음에 여유가 세상살이에 줄어들어만 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예전에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니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알면서 지낼 수 있을 것 같니? 아마도 한반 인원인 50명이 넘지 못할 거야. 그러니 주변 사람들에게 늘 친철 해라.” 그 당시 오십이 넘으셨던 선생님 말씀에 “예” 하고 대답은 했지만, 그냥 흘려보냈다. 서른이 넘은 나이가 된 지금 주변을 돌아보니 이제야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친했던 친구들도 세월의 무게에 연락도 끊겨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지 못한다. 늘 가까이 지냈던 친구들도 이제 새로운 가정을 갖게 되어 자신이 책임져야 할 울타리 사람들을 위해 밤낮으로 쫓기며 지낸다. 이제는 친구 보다 더 관심과 책임을 쏟을 가족이 생겼기 때문이다.


  친구란 어떤 존재인가? 늘 가까이에서 우리에게 끝없는 믿음과 신뢰, 때로는 따끔한 충고를 부담 없이 던질 수 있는 이들이다. 비록 공간적으론 멀리 있고 자주 보지 못하고 가끔 만나더라도 어제 본 듯 편안한, 심리적인 거리감이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다. 가족과 더불어 내 삶에 따뜻한 동반자가 바로 그들이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 선생님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의 그가 바로 친구라고 생각한다.

 

  조병준님의 “제 친구들과 인사하실래요? - 나는 천사를 믿지 않지만, - 오후 4시의 평화”는 그가 인도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의 집에서 수년간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친구들과 그의 얘기이다. 친구와 술은 오래 될수록 진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친구로 다가오는데는 시간보다는 마음의 교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얼마만큼 생각과 마음을 나누었느냐에 따라 하루밤 사이에도 우리는 누군가와 친구가 될 수 있다. 생각과 마음의 공유, 그리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쌓은 믿음이 시간이 지나도 어제 만난 듯 반갑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란 말로 표현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살아있는 성인으로 불리었던 테레사 수녀님이 떠나신 후에도 그분의 생각을 쫓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속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다. 시장경제 논리가 세상 곳곳에 영향을 미치는 지금의 현실에서 삶에 다른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과 같이 숨쉬고 있음에 위안이 된다. 편안함(어쩌면 사회 가치들이 그렇게 느끼라고 조작했을 수도 있겠지만)을 주는 자신의 울타리를 떠나 사회적 가치와 배치되는 일을 아무런 대가 없이 할 수 있는 용기. 자신만의 가치와 원칙, 신념이 분명한 사람들이며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response + ability)을 가진 사람들이다.  인생의 의미가 “돈”이 아닌 사람들. 그들의 삶과 용기에 부러움을 느낀다. 마음과 다르게 현실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과 어느덧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가 사회적 가치(돈)가 있는 것이 중심이 되었음을 발견할 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줄어듬을 느낀다.


  하지만 자극(Stimulus)에 대한 반응(Response)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내게 있음을 알고 있다. 자주 감정적이나 대응적이 되기도 하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믿는다. 더욱이 내 주변에는 나를 깨우쳐 줄 친구들이 있다. 그들이 내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격려과 충고를 줄 것이다. 그들과 함께 따뜻한 영혼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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