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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의 세계여행 ㅣ 규장각 교양총서 5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서재길 책임기획 / 글항아리 / 2011년 7월
평점 :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란 곳에서 나오는 국사관련 시리즈 도서들 중 한 권. 전에도 썼지만, 역사에는 거시사와 미시사가 있는데, 우리가 보통 배우는 것들은 거시사. 멀리서 본 역사의 대략적인 흐름인 것이다. 미시사는 말 그대로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건의 중심에 있던 인물들이 아닌, 역사의 기저에서 그 흐름을 만들어 냈던 나와 같은 평범한 한 사람들 한 사람들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미시사적인 측면에서 조선 시대를 바라본 책이다. 그리고 그 테마는 제목 그대로 세계여행.
지금이야 세계여행하기가 무척 편한 세상이지만, 조선시대를 생각해보면 세계를 떠나서 중국이나 일본에 가는 것도 평생에 한 번 겪으면 정말로 특별한 사건이었을 거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평생에 한 번 겪을 일들을 겪은 사람들에 대해서 쓴 책. 이 책엔 열 두 명의 저자들이 각각 12개의 테마로 조선 사람의 세계여행을 서술한다. 마치 논문들을 엮어놓은 책 같다. 사실 여행이라곤 하지만 자발적인 여행은 그 열 두 개의 테마들 중 몇이 되지 않는다. 조선 초기부터의 사례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조선 초, 중기경인 15세기경부터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그 첫 인물도 제주도에서 뭍으로 나오려다가 본의 아니게 표류하게 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다. 외에도 조선통신사의 입장으로 일본에 간 사람들이나, 조선 후기 나라에서 특사로 미국, 유럽에 파견하게 된 경우들도 소개된다. 그 중 역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나혜석의 이야기다.
조선 후기 여류 서양화가로 활동했을 정도로 말 그대로 ‘신여성’이었던 나혜석이, 남편의 포상 덕에 세계 일주를 하게 되는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다. 조선의 신여성으로서 세계의 여성 문화와 선진국의 여성인권에 대한 시각은 시대사적으로 아주 재미있다.
하지만 이 책은 12명의 저자가 만들어서 그런지 다소 난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계여행이라는 테마 아래 하나로 묶여 있다기보다는 12개의 논문들을 모아놓은 뒤, 어렵게 공통점을 찾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한 글을 읽고 다음 글로 넘어갈 때의 가독성이 너무 떨어진다. 마지막 부분은 꾸역꾸역 읽었다.
그럼에도 이 책에 대해서는 분명히 칭찬을 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이유는 역시 이 책이 가진 특수성 때문이 아닐까. 단순한 시대사적인 흐름을 짚는 책은 많지만, 이렇게 하나의 테마를 통해 역사를 보는 책은 무척 드물다. 그리고 조선시대 사람들이 생각한 ‘세계’라는 인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