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굴뚝청소부
이진경 지음 / 그린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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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관한 간단한 인문서적을 원했는데, 빌리고 보니 ‘철학학개론’같은 책이다. 읽는 둥 마는 둥 페이지만 넘기고 나니 허무한 기분이 들고, 또 이 책을 읽었다고 말하기 뭐한 상황이긴 한데 어쨌건 기록이니까 적어둔다. 아직은 이런 철학의 다양한 이론에 대한 책을 읽기엔 내 머리가 따라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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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 윤대녕 산문집
윤대녕 지음 / 푸르메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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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의 글을 읽고 싶어 오랜만에 찾아보았지만 지난 2~3년 간 책을 내지 않았더라. 교수 생활이 생각보다 바쁘신 걸까. 아쉬운 마음뿐이다. 그래서 전에 발간되었지만 읽지 못했던 책을 빌려보았다. 

 

이 책은 윤대녕이 등단 이후 이런 저런 매체에서 써 온 수필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그간 윤대녕이 이런 저런 에세이를 아예 안 쓴 것은 아니고, 책을 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낸 책들은 수필과 소설 중간쯤에 위치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수필 그 자체였다. 윤대녕의 소설들이 대부분 윤대녕 그 자신의 목소리처럼 느껴졌었기 때문에 오히려 작가 자신의 모습을 잘 보기 힘들었다면, 역설적으로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생생한 윤대녕을 느낄 수 있다.  

 

여타 수필들이 작가의 어떠한 ‘깨달음’ 이나 ‘고차원적 사고’, ‘교훈’ 따위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이 책은 오로지 윤대녕 자신이 느낀 감정들은 아주 덤덤히 담아낸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일은 너무도 담백하게 느껴진다. 읽을수록 전에 가졌던 작가에 대한 애정이 점점 커져만 간다. 후반부 윤대녕이 읽은 책들에 대한 감상을 쓰는 부분에서도 그런 흐름은 유지되는데, 이토록 감상적인 감상문은 처음 보았다. 어떠한 책에 대한 감상이라는 2차 창작조차 그 자신의 특색으로 이토록 진하게 보일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역시 윤대녕은 소설이 좋다. 그의 새로운 소설책이 나오길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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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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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이야기로 가득 찬 소설을 읽고 있으면 정말로 책 읽을 맛이 난다. 퀴즈쇼라는 특유의 소재와 어우러진 열 두 개의 커다란 이야기들을 읽고 있고 있으면, 이 매끄럽고도 적절한 구조에 감탄을 하게 된다. 하나씩 풀려가는 정답과 람의 과거 이야기는 묘하게 중첩되는 동시에 평행선을 그린다. 각각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독립성을 지니며 아주 재미있는데,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굵은 줄거리를 이루는 모습을 보는 일도 너무 즐겁다. 더운 여름날, 에어컨을 킨 방의 침대에 누워 읽고 싶은 그런 책이다. 

 

하지만 다 좋은데 역시 마무리가 조금 아쉬웠다. 끊임없이 긴장감을 안고 가던 이야기가 마지막 부분의 커다란 매듭이 풀리는 순간 길을 잃고 휘청댄다. 돈을 받은 람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밋밋했다. 그럼 어떻게 끝났어야 했냐고 물어본다면, 난 작가가 아니다라고 밖에 말 못하겠지만, 그 이상의 이야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나 큰 기대였을까. 아니다. 우린 독자로서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의 즐거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겠지만, 용두사미한 기분이 드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다. 

 

이 책을 원작으로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과연 두 시간 안에 이 책의 많은 이야기를 얼마나 구사할 수 있었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동시에 큰 걱정도 된다. 이 책을 영상화 한다면 13부작 정도의 드라마가 적당할 것 같은데, 그런 일을 해줄 사람이 어디 없을까. 적어도 이 책의 판권을 사서 기본 구조만 떼다가 드라마를 만든다면 그 드라마는 정말로 훌륭할 것이다. 그만큼 이 소설의 구조는 너무도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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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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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과 김연수의 산문집을 읽다가 흥미가 생겨, 이 책과 슬럼독 밀러어네어의 원작인 ‘Q&A’를 빌렸다. 한 작가의 처녀작이 갖는 의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중대할 텐데, 그 이유는 역시 그간 살아온 그의 인생을 모두를 쏟아 부었기 때문일 거다. 모든 예술 작품은 그 작가의 자식 혹은 연장선과 같은데, 그 중 첫 작품은 가장 작가와 가까우면서 농도가 짙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이 작가는 첫 작품이 아니라 몇몇 작품을 쓰고 난 뒤에 처녀작 같은 작품을 냈다. 베른하르트 슈링크는 추리소설로 데뷔한 후 몇몇 추리소설을 쓰고 난 뒤 이 작품을 냈는데, 그 전의 작품들은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 작품이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처녀작이라는 생각을 했다. 극히 자전적으로 보이는 내용과 그 안에 담겨진 묵직함은 그런 생각에 더욱 무게를 실어 주었는데, 다소 에로틱한 흥미 위주로 흘러가는 듯한 초반부(그러나 단순한 외설로 보기엔 너무 매력적인 이야기다.)를 지나고 나면 우리는 어떠한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그건 너무도 어려운 문제인데, (이 뒤론 스포일러) 자신이 사랑하게 된 여인이 알고 보니 나치의 밑에서 일을 했었던 거다. 하지만 그녀가 그 일을 하게 된 것에는 나쁜 동기는 없었고, 그녀가 끝까지 숨긴 비밀(문맹) 덕분에 그녀는 종신형까지 선고 받는다. 이 상황에서 주인공과 우리는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과연 한나를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나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판사야 보다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있겠지만 한나와 주인공의 사연을 알고 있는 우리가 그것을 판단하기란 너무도 어려운 문제다. 물론 작가가 나치를 미화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지만 세상의 많은 일은 겉에서 보는 것과 곁에서 보는 일에서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 작가가 결국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얘기가 아니었을까. 

 

물론 그런 문제들을 논의하기 전에 이 작품이 갖는 이야기 자체로도 이 책은 너무도 빛나지만 말이다. 정말로 영화가 보고 싶어지는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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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 6 열린책들 세계문학 141
앙투안 갈랑 엮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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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책이 드디어 끝났다. 6권을 모두 합치면 2000여 페이지가 되는 정말로 긴 작품이었다. 책 자체의 이야기만으로 놓고 본다면 이 책은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는 책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러한 작품적 재미의 차원을 넘어, 이 책이 고전이 된 이유를 살펴보면 그것은 조금 생각할 거리를 준다. 

 

이 책이 고전이 된 이유는 이상하리만큼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제국주의 시대에 열강이었던 프랑스의 저명한 동양학자가 이 책을 번역해 엮었기 때문이다. 가장 아시아에 대한 환상이 가득했던 시대에 나온 아시아의 재미있는 책이라니. 이 책은 단숨에 유럽 사람들의 마음을 잡았다.  

 

천일야화는 중국의 삼국지나 우리나라의 고전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하나의 판본이 있었던 게 아니다. 구전되어 내려오다가 글로 옮겨진 문학들이 대부분 그렇듯 수많은 이본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 아랍 세계의 정신을 담고 있던 이 다양한 문학들을 하나로 모으고 또 엮은 것이 바로 앙투안 갈랑이었다.  

 

그가 그러한 다양한 이본이 존재하는 천일야화에서 원하는 이야기를 모아 엮어 낸 책이 바로 이것이었던 거다. 결국 천일야화의 원본은 우리의 춘향전이나 삼국지가 그렇듯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가 한 일은 그림형제가 한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이야기들은 채취한 곳이 다른 곳이었던 것 뿐. 그리고 당시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동양에 대한 환상이 높았던 유럽 사회에 이 책은 말 그대로 ‘히트’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레 고전화 한 것이다. 결국 이 책이 아랍 사회에 그대로 머물렀더라면 아랍 사회만의 고전이 되었을 것인데, 유럽 지식인들의 노력에 의해 세계적인 고전이 된 것이라는 거다. 

 

물론 앙투안 갈랑의 문화, 문학사적 업적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또한 천일야화가 가진 고전적 작품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고전이 된 과정은 역시 생각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건 현대의 노벨문학상에 대한 문제와도 같다. 결국은 정치적인 상인 노벨문학상이 문학의 가치를 재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이 책이 고전이 된 과정 또한 결국 정치적인 문제였을 뿐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의 춘향전이 한국적 고전에 머무른 것은 단지 우리나라의 힘이 부족했던 것과, 서양의 저명한 학자가 소개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무척 허무해진다.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거다. 각 나라의 그만의 고유한 문화가 있고, 그것은 결코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각각의 문학과 문화는 아름답고 가치가 있다.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노벨문학상 발표 시즌마다 모 시인의 집 앞에 진을 치고 설레발을 그만 치란 말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지 않아도 그 시인의 글은 충분히 아름답다. 그 상을 탄다고 시가 더 아름다워지는 건 아니다. 고전을 읽는 것도, 고전이 아닌 다른 나라의 좋은 문학을 읽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결코 문화적인 자격지심에 빠질 필요는 없다. 좋은 책은 비교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고 완성된다. 무엇과도 비교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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