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0.7 밥벌이의 지겨움-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6월

사람들이 라디오헤드를 좋아하는 이유가 힘들때 힘이 되어 줬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단지 멋좀 부리려고 하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좀 기분이 많이 않좋았었는데, 기분전환이라도 하려고 이 책을 봤다. 책을 보다보니 나쁜 기분들이 말 그대로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마음은 생에 대한 긍정으로 가득 찼었다. 

책은 김훈의 수필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진심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묘사는 보는 사람의 마음마저 울린다. 또한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것도 많지만, 그것보다 다른 것들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것이 더욱 마음으로 다가왔다. 나도 평소에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조리있게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을 보는 것은 즐거웠다. 또, 김훈의 생각은 넓다. 좌우를 따지는 식의 흑백논리를 그는 싫어한다. 나의 동쪽이 너의 오른쪽이라는 그의 말은 언듯 보면 쉽지만 그것이 마음에서 우러나오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나는 안다.

중간의 자건거 여행의 한토막인 듯한 글들을 읽을 때는 조금 집중력이 흐트러졌었다. 나는 김훈이 자연에 대해 알지 못하는 단어를 잔뜩 써가며 묘사하는 것에는 그리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물론 내 탓이겠지만.

마지막에 부록 형식으로 기형도의 시에 대한 평과 김훈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본문의 내용보다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다.  

책 곳곳에서 보이는 '개'나 '현의 노래'의 한 조각인 듯한 글들을 마주할 때도 매우 반가웠음은 두말 할 것 없었다. 

우연찮게도 애독자 엽서를 보낸 출판사에서 김훈의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을 보내줬다. 도서관에서 훑어 봤을 때는 그리 재미있어 보이지 않았다. 읽을 생각하니 또 마음이 무거워 지지만,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도 그렇게 걱정했지만 결과는 너무도 좋았다. 밥벌이의 지겨움도 사야겠다.

2005.10.10 보너스 트랙-코시가야 오사무

보너스 트랙 - 제16회 일본판타지소설대상 우수상수상작
코시가야 오사무 지음, 김진수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5년 9월

역시 책은 읽고 사야한다.일본 팬터지 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고 하고, 소개글이 그럴싸하길래 가볍고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샀는데, 그냥 그랬다.

재미 없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지만, 특별히 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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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추가.

아무래도 자꾸 생각나서 더 써본다. 구조라던가 이야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편.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조금 천천히 말했어야 할 이야기들을 너무 급히 말했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었다. 이야기도 여러개를 펼쳐놓고 대충 마무리 해버린다. 두 권 정도로 조금 더 자세히, 천천히 서술했다면 좋은 책이었을 듯하다.

2005.10.15 변화의 땅-로저 젤라즈니

변화의 땅 - 딜비쉬 연대기 2, 이색작가총서 3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너머 / 2005년 9월

요즘 내가 책을 잘 안봐. 내 탓이지 뭐. 시간 없다는 변명은 하지 않는다. 

저주받은 자, 딜비쉬의 후속편으로 출간연도는 저주받은 자, 딜비쉬보다 먼저지만 발표된 시기나 이야기상 후속편에 해당한다. 딜비쉬의 궁극적 목표-원수인 젤레락을 죽이는 여정을 그린 소설로 작가 특유의 위트와 재치가 좋다. 러브크래프트와 기타 다른 소설들을 패러디 한 부분이 있다는데, 지식이 부족한 나로써는 그런 것까지 알아채기는 힘들었고, 마법을 과학처럼 묘사한다던가 이야기 구조가 복잡하며 탄탄한 것은 상당히 좋았다.  

골이 벼서 별로 할 말이 없다. 재밌으니까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시간 나면 앰버 연대기나 한 번 더봐야겠다.

2005.10.20 반 고흐, 영혼의 편지-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ㅣ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반 고흐라는 작가는 워낙에 유명하기 때문에 이름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은

1.귀를 잘랐다.

2.인상파다.

3.고갱하고 친하다.

정도였고, 아는 그림은 귀를 싸맨 초상화, 반 고흐의 방, 병에 꽃힌 해바라기 정도였고, 그것도 대충 훑어 본 것이었다. 이 책을 보기는 참 잘한 것 같다. 

책은 반 고흐가 동생 테오, 가족, 동료 작가들과 주고 받은 편지를 엮어 놓은 것으로 구성되어있다. 특히 주로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이 중심이다. 책 날개에 써 있기를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는 무려 668통(확실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정도가 된단다. 편지 이외엔 특별히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없던 시대라서 그렇겠지만 편지를 쓰고 답장을 한다는 것만이 대단히 부러웠다. 내뱉으면 끝인 말과는 달리 편지는 퇴고가 가능하다. 부럽다. 

편지를 훔쳐 본다는 죄책감이 약간 들긴 했지만, 그것은 마찬가지로 타인의 일기를 훔쳐 보는 기분으로 필자의 진실성이 느껴져 고흐라는 작가가 입체성을 띄게 되었다. 고흐의 그림에 대한 열정과 동생 테오의 소중함, 테오가 형을 사랑하는 마음 따위를 여과 없이 느낄 수 있었다. 인사치례적인 편지가 아닌, 마음을 써 내려간 편지들이었다.  

고흐의 편지엔 항상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고, 항상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그렇게 엄청난 노력이 있었기에 고흐의 그림은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천재는 없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고, 컬러로 된 책에는 많은 고흐의 그림들이 있었다. 나는 주로 초기에 그린-농부를 비롯한 일하는 사람들-그림이 좋았다. 후기의 그림은 이해하기가 힘들었고, 느낌도 잘 오지 않았다.(그래도 꽃을 그린 그림들이나 해바라기 그림은 너무 좋았다.) 항상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들의 그림을 보라고 테오에게 말하는 고흐의 편지는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요즘의 어중이 떠중이 그림쟁이들은 그럴싸하게 그림 그려 놓고는, 사회적 지위나 명예 따위에 집중하거나, 비싼 돈 주고 팔아먹는 그림에만 열중하는 한심한 놈들이 많다는 것은 대충 알고 있다. 고흐에게서 분명히 느낀 것은 그림에 목숨 걸고 그리지 않는 한 좋은 그림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고, 쌀을 벌기 위해 그리는 그림은 나쁘지 않지만 돈을 벌기 위해 그리는 그림은 나쁘다는 것이었다. 고흐는 생에 유화는 단 한 점만 팔았고, 유화 외에는 몇 개의 그림을 더 팔긴 했지만 밥값도 못 벌었다. 고흐는 자신의 그림이 팔리지 않는 것에 많이 고민했는데, 그것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과 테오에 대한 미안함 그 이상의 것은 없었을 것이다. 고흐의 편지에서 보건데 그는 그림 그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그림 그리는 것에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림 그린다면서 뒷목 뻣뻣하게 치켜들고 콧대나 세우는 것들아. 철 좀 들어라. 

사실 가장 크게 감동을 받은 것은 고흐의 광기 따위가 아니라 테오와의 관계였다. 고흐라는 작가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고흐 자신의 노력과 능력뿐 아니라 테오라는 동생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건 비단 테오의 재정적 지원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고흐는 스무 살도 넘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테오는 그런 형을 경제적으로 원조 해주기로 한다. 그림이 팔리지 않는 고흐는 매번 돈을 받기만 하는 테오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거의 매번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것에 대해 미안하는 말을 편지에 쓰는데, 테오 또한 거의 매번, 신경 쓰지 말라고, 형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즐겁다고 말한다. 고흐는 그런 테오에게 돈 이상으로 마음의 안식처를 얻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형제의 형제애를 뛰어넘는 사랑은 절대적으로 감동이었다. 고흐가 서른 일곱의 나이로 자살한 뒤, 테오 또한 갑작스레 건강이 악화되어 육개월 후 병사했다고 한다. 고흐가 이렇게 될 것을 알았다면 절대로 자살을 하지 않았다고 나는 확신한다.

 요즘 어째 책도 잘 안보고 봐도 시원찮은 책만 봤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이 책은 정말 좋았다. 고흐의 문재 또한 상당한 수준이어서 문장 자체로도 즐거웠다. 무엇이든 그 분야의 최고가 되려면 일단 높은 수준의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고, 성공엔 그 높은 수준 만큼의 열등감과 고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냥 대충 사는 한이 있더라도 고통 받고 싶지 않다.

2005.10.27 인간실격-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아동네 누나가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는 말을 아동에게 들어서 빌리게 되었는데, 재미있었다. 1900년대 초기에 활동한 작가인데, 그 시대가 개화기여서 그런지 동시대의 작가 나츠메 소세키가 생각이 났다. 

작품은 한 인간의 수기로 진행되는데, 지금 와서 읽어도 깊이가 있고, 사람에 대한 성찰이 뛰어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작가의 자전적 수기가 아닌가 짐작한다. 작가 소개에 나온 이야기와 소설의 굴러가는 이야기가 매우 흡사하다. 다만 조금 더 풍자와 자조를 섞은 듯하다.

하여튼 참 처참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더욱 재미있었던 것은 뒤에 짧게 실린 직소라는 단편이다. 성경은 잘 모르겠지만, 유다라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인데, 유다는 예수의 제자였는데 예수를 팔아 넘겼다는 그 사람같다.

흔희 팩션이라고 불리는 요즘에 와서야 유행하는 장르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역사적 인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로, 예수가 아니라 예수 주변의 인물이라는 것이 재미있었다. 누군가에게 말하는 듯한 문체로 진행되는데 아주 흥미로웠다. 작가는 글솜씨가 매우 뛰어났다.

하지만 예수쟁이들은 되도록 보지 않길 바란다. 작가적 상상력을 표현의 자유로 받아들이는 것은 상식이지만, 자신과 가까운 일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사람이다. 괜히 읽고 쓸데없이 주절대기보다는 읽지 않는 쪽을 권하겠다. 작품 내 유다의 시각은 분명 예수쟁이들을 떠들게 하게 될 것이니까. 

책 좀 많이 보고 살아야겠다.(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