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성의 신화> 함께 읽기를 시작했다. 알라딘에 며칠 글을 안 올려서^^;; 며칠 전 쓴 것 가져오기. 


서문~ p.146

1장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들 / 2장 더없이 '행복한' 주부의 등장

일반적으로, 그렇다, 일반적으로, '주부'들의 하루일과를 늘어놓는 일은 해봐야 쓰잘데기없는 소리, 영양가 없는 말(영양가 있는 말은 또 뭐란 말인가), 하나마나 한 소리, 들어봐야 뻔한 소리, 다 아는 이야기,로 치부되곤 한다. 특히 경험하지 못한('않는') 자들이 단 한 마디도 듣지 않으려는, 귀에 들어오는 소리는 다 걸러버리는, 지겨운 잔소리라고 여긴다. 정말 그런가? 지겨운가? '주부'는 그 '지겨운' 일을 매일, 주말도 없이, 일년 내내, 이십년 삼십년 그 이상을 한다. 정말 듣기만 해도 지겨운 것은 바로 이 사실이다.

"주부들의 하루는 산산조각이 나 있다. 그들은 한 가지 일에 15분 넘게 보낼 수 없다. 잡지를 읽을 시간도 없으며, 설사 있다고 해도 집중할 힘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86)

이 구절을 읽고 상당수의 여자들은 맞아맞아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남자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없다, 집중할 힘도 없다, 라는 말에는 어떤 설득력도 없다. 이런 말에 여자들의 입장을 상상하여 공감할 남자는 없다. 산산조각난 하루가 어떤 것인지 아는 것과 글자로만 읽는 것은 다르니까. 결국 경험밖에 없다는 말인가. 그러나 인간은 경험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사람을, 상황을, 상상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이 능력이 없는 남자들이 여자의 삶을 짐작하는 일은 가만 두면 그냥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이만큼 말했으면 알아들었겠지, 이만큼 부르짖었으면 이해하겠지, 택도 없는 소리이다.

'집안일', '살림'에 대해서는 말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늘어놓으면 그저 경험담에 넋두리밖에 안 되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설득이라기보다는 천지개벽할 정도의 깨달음이 주어져야 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왜 페미니스트 학자들이 '언어'를 부르짖는지 뼈저리게 느낀다. 말할 언어가 없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단어로 이루어진 언어를 갖고 있지만 우리 언어가 모든 사물과 현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표현해내지는 못한다. 말로 설명하기 너무 어려운 경험, 다들 있지 않은가? 그 말로 설명하기 너무 어려운 경험이 여자들의 경험이 되면, 어려움은 두 배 세 배 열 배 백 배가 되고, 결국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스러진다. 그러나 어떻게? 어떤 식의 말이 되어야 지겹다고 듣기 싫다고 되받지 않을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지겹다고. 지겨운 건 너네들이야.

"그러면 어떻게 여성들은 자신의 삶의 경계 안에 있는 모든 진실을 볼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삶을 이끌어왔으며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진 진실을 내면의 목소리가 거부할 때, 여성은 어떻게 그 목소리를 믿을 수 있을까?"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아이가 있든 없든, 누구나 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의 남편이 어떤 말이든 콧등으로도 듣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 자신의 생활도 나아질 기미가 없을 것이며 이러려고 포기한 경력과 직장과 자유로운 시간들을 앞으로도 후회하면서 그리워할 거라는 사실을. 이만한 남자면 결혼해도 크게 문제될 건 없겠다고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를 속인 사실을. 혼자 사는 여자라고 여기저기서 오만 가지 오지랖으로 공격할 때, 아이만 잘 키우면 된다는 말을 들을 때, 화가 나면서도 조금은 그렇다고 속으로 인정한 사실을.

나는 어떻게 그 목소리를 믿을 수 있었나? 너는 왜 그 목소리를 '아직' 믿지 못하나? 어떻게 말하면 알아들을까?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얼마나 그 목소리를 믿는가. 앞으로 얼마쯤 계속 믿을 수 있을까. 하나 둘 바뀌는 생각들이 행동으로 옮겨가는 데 너무 오래 걸리는 건 아닌가.

"또한 오랫동안 여성들 사이에서 당연히 받아들여졌던 낡은 문제들, 즉 생리 불순, 불감증, 난혼, 임신 공포증, 산후 우울증, 20대와 30대 여성들에게 나타나는 정서 불안과 높은 자살률, 여성의 갱년기 위험, 이른바 미국 여성들의 수동성과 미성숙성, 어린 시절에는 여자아이가 지적 능력이 우수하나 성인이 되면 성공하지 못하는 이런 점들의 불일치, 미국 여성들의 오르가슴의 다양한 범위, 그리고 심리치료법과 여성 교육의 끈질긴 문제 등을 새로운 차원에서 보기 시작했다."(89)

갱년기 증상이 조금 무서웠던 적이 있다. 공황장애라 불리는 것과 증상이 비슷해 사람들이 착각하기 쉽겠다 싶었다. 그 이후 책들을 읽으면서 의심이 생겼다. 갱년기를 혹독하게 겪는 여자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게 정말 갱년기 증상 때문일까. 완경 말고 호르몬 변화 말고 갱년기가 되면 온다는 그 수많은 증상들이, 과연, 정말, 갱년기 탓일까. 어쩌면 말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아닐까. 많은 여성의 질환들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대체로 그 즈음 여자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갱년기'라는 단어로 모든 것을 퉁치는 게 아닐까? 혹시 그 나이 즈음 되면 그동안 잃어버렸던 자아를 깨달은 혼란스러움을 몸이 대신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갱년기 역시 다른 수많은 '여성질환'들처럼 호르몬제를 처방하기 위한 좋은 구실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몸은 정직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떤 식으로든 그걸 알린다. 나이가 들어 좋은 것 중 하나는 점점 정직해지는 몸이라 하겠다.)

갱년기 이야기만 했으나 생리 불순 같은 경우도 스트레스가 주 원인이 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위의 인용 구절에 깊이 공감한다. 저자가 미국 사람이라 미국 여성들이라고 했지만 우리도 다르지 않다. (심지어 이 책은 1973년에 나왔다.) 당연해보이나 당연하지 않음이 계속 밝혀지면 좋겠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남성과 함께 일하는 것이 금지된 여성들이, 진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독립심을 지니는 것이 금지된 여성들은 결국 가정 일에서도 남자가 결정해주길 바랄 정도로 수동적인 의타심을 지니게 되었다. 단조로운 집안일을 하며 자아가 결핍되었다고 느끼는 주부들에게 그것을 메꿀 수 있는 종교적 운동이 필요하며, 공존성이 그것에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광적인 환상은 여성이 입은 피해와 여성상의 공허함을 드러낸다. 남성이 가사를 함께 한다고 해서 드넓은 세상사를 저버린 여성의 피해가 보상될 수 있겠는가? 도대체 부부가 함께 거실을 진공청소기로 청소한다고 해서 가정주부가 어떤 신비하고 새로운 삶의 목표를 가질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118)

"신화가 강한 힘을 발휘할 때 신화는 사실을 가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신화는 그 신화에 모순되는 사실 때문에 더욱 커지고 사회의 평가조차 무디게 만들면서 문화의 구석구석에 스며든다." (133)

'현대판 가정주부의 신화'가 만들어지기 전,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는 것.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여성상이 많았다는 것. 전쟁이 생각보다 훨씬 더 엄청난 결과를 여자들에게 가져왔다는 것. 여성이 "시인에서 잔소리꾼"(74)으로 저도 모르게 변화해갈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 아직도 잘 모르는 것들이 많다는 것.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히는 <여성성의 신화>에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다. 5분의 1을 읽었을 뿐이다.



"그냥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와 내가 아는 다른 모든 여성들이 거짓된 삶을 살아왔으며, 우리를 진찰한 의사들과 우리를 연구한 전문가들이 그런 거짓을 영속시켰고, 우리 가정과 학교, 교회와 정치, 직업들이 그 거짓을 둘러싸고 세워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성들이 더도 덜도 아니라 진정한 인간이라면 여성들을 우리 사회에서 온전한 인간이 되지 못하게 만든 모든 것들이 변화되어야 했다. 그리고 여성들이 여성성의 신화를 깨뜨리고 자기 자신을 인간으로서 진지하게 바라본다면, 자신들이 서 있는 잘못된 기초를 인식하고, 성적 대상으로서 받는 찬미도 거짓임을 알게 될 것이다." - 10주년 기념판 서문 중에서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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