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 우드, <해빗> 



누구나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그것이 편견이거나 선입견이거나 잘못된 통념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의 희열. 그러나 책을 통한 희열도 그순간 뿐일 때가 얼마나 많은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흔히 겪는 일이다. 우리는 변화를 원하고, 강력한 의지를 세운다.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고 자평하며 벌써 절반 정도는 목표를 완수한 것처럼 뿌듯함을 느낀다. 하지만 만약 실패하면? "너는 충분히 간절하지 않았던 거야!", "너 정말 최선을 다한 거 맞지?"라는 주변의 지적에 깊이 공감하며 가망 없는 또 다른 목표를 세우기 시작한다. 가련한 사람! 이런 소모적인 반복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어, 불행하게도 암과 같은 병마와 맞서 싸워야 하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한마디로 '우리의 의지력이 전부'라는 게 이 사회의 정신이다. 좋은 습관을 들이겠다는 목표에 대해 사람들은 그 사람의 정신력을 평가하는 것으로 주제를 축소한다. "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에게 하는 잔소리의 형태(?)를 조금씩 바꾸었다. 인용문에 나온 두 문장을 나도 예전에 아이에게 자주 말로 했다. 스스로에게도 했다. 늘 그랬던 것 같다. 결과는 자책. 내가 못나서, 끈기가 없어서, 용기가 없어서, 소극적이라서, 의지가 약해서, 엄마로서 모자라서.  




"하지만 예상은 틀렸다. 참가자들의 삶에서 습관이 차지하는 비중에는 개인차가 발견되지 않았다. 개인적인 성격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이 습관에 의존하는 수준은 모두가 똑같았다." 


"정기적으로 출퇴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약간 더 체계적인 하루를 보냈다. 그들의 행동 대부분은 말 그대로 습관적이었다. 이와는 달리 어린아이와 함께 사는 사람은 습관의 가짓수가 약간 더 적었다. 타인의 영향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더 유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우리 삶에서 타인의 존재는 혼란을 증폭한다." 


위안이 되는 구절. '개인적인 성격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갖는 죄책감을 좀 덜어내어도 되는 것인가. 

주부도 출퇴근 시간이 있어야 한다. 예전에 어느 책에서 인상깊게 읽고 따라 해본 적이 있다. 늦게 귀가한 아이가 밥 달라고 하자 엄마가 "나 8시에 주방에서 퇴근했으니 니가 알아서 챙겨먹"으라고 말하는 거다. 딱 한번 해봤다. 나 주방에서 퇴근했다! 하지만 주방에서만 퇴근이고 나머지 영역에서는 퇴근일 수 없었...... 뜬금없이 이런 생각. 

"타인의 존재는 혼란을 증폭시킨다." 완전 동감합니다. 혼란은 처음부터 올 수도, 중간에 훅 올 수도, 끝까지 숨어있다 나를 무너뜨리며 나타날 수도 있어요.ㅠㅠ 




"이 모두가 말할 것도 없이 어리석은 행동이다. 하지만 그만큼 습관의 힘이 강력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차를 모는 게 서툰 초보 운전자만이 의식적 자아에 의지하면서 순전히 운전에만 모든 주의를 집중한다. 오직 그들만이 도로에서 마땅히 경험해야 할 공포와 긴장을 느낀다. 그리고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이들은 이 놀랍도록 복잡한 기계를 다루는 법을 터득하고선 습관에 핸들을 넘겨준다. 자신은 딴생각과 스마트폰의 뒤편으로 물러나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습관의 양면성이다. 습관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의식적 자아의 실행제어기능은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습관을 제대로 활용하면 가치를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이익을 얻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가공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 


정말 적절한 예가 아닐 수 없다. 운전. 몸에 익은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일. 옆지기가 가끔 보는 블랙박스 어쩌구 프로그램을 보면 운전에 관한 터무니없는 행동들이 등장한다. 운전을 하는 것도, 길을 걷는 것도, 공포로 느끼게 된다. 내가 아무리 조심하고 방어해도 소용없다는 생각. 남의 생명을 위협하는 '습관'. 




" 아침은 의식적 자아가 개입하기에 가장 불리한 환경이다. 대개 우리는 아침에 서두른다. 자녀의 책가방에 숙제를 밀어 넣는 동시에 찬장 위에 놓인 그릇을 무의식적으로 집어 든다. 음식이라는 걸 알고 있고, 과일과 채소만으로 식단을 꾸려 건강을 되찾은 이웃의 사례를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행동은 바뀌지 않는다. 꽤 익숙하게 들리지 않나? 왜 우리는 아침식사는 그토록 철두철미하게 챙기면서 그것만큼이나 삶에 활력을 주는 습관인 채식주의는 철저하게 외면하는 걸까? 

 사실 우리는 할 수 있다. '아침을 챙겨 먹으려는 경향'도 슴관이고, '고기보다 과일과 채소를 더 많이 먹으려는 경향'도 습관이고, '고기보다 과일과 채소를 더 많이 먹으려는 경향'도 습관이다. 단지 전자가 후자에 비해 훨씬 더 강력하게 작동할 뿐이다. 식사는 습관 형성의 기본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는 드문 예다. 자주 발생하고, 주로 비슷한 상황에서 행해지며, (적어도 처음에는) 보상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그런데 왜 어떤 식사 습관(아침식사)은 몸에 착 붙고, 어떤 식사 습관(채식주의)은 그렇지 않을까? 앞에서 배웠듯이, 단지 뭔가를 알기만 해서는 습관이 길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 순간 세상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무엇을 어떻게 인식할지는 이성이 아닌 우리의 습관이 결정한다." 


채식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 끄덕끄덕. 육식은 습관이다. 관습이며 통념이기에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 뿐이다,라고 이야기해도 통하지 않는 습관의 벽. 나쁘다는 걸 알지만 그만두지 못하는 습성. 




"누구나 죽을 때까지 양치질을 반복하지만 양치질의 달인이 되진 못한다. 우리는 수십 년간 출퇴근을 반복했지만 여전히 일하기는 죽기보다 괴롭다. 이불 빨래, 욕실 청소, 쓰레기 분리 배출, 걸레질... 이런 예를 들자면 끝도 없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이런 일에 꾸준히 시간과 노력을 바친다. 이 모든 게 탁월함을 추구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절대 아니다. 반복이 습관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건 잘 알겠다. 하지만 그것이 충분조건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더 나아가, 우리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 





"습관은 더 나은 삶을 이끈다. 단지 생산성의 차원만이 아니다. 우리는 생각이 너무 많다. 지나치게 많은 생각은 불안을 낳고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고 삶은 금세 헝클어진다. 과도한 생각은 정작 중요한 일을 완수하는 데 불쑥 장애물로 등장해 우리를 괴롭히기도 한다. 이에 대한 처방으로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라는 치료법이 관심을 얻고 있다. 머릿속에서 길을 잃지 말고 본질을 자각하라는 개념이다. 과거의 실수에 얽매이거나 앞으로 맞이할 과제를 앞서 고민하지 말고 '지금' 그리고 '여기'에 집중하라고 주문한다. 습관은 아마도 이런 마음의 '비평가 상태'를 달성하는 가장 자연스럽고도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습관적 마음은 철저하게 무심한 마음이다. 이 마음은 인생의 과제를 올바른 위치에 정렬시킨다. 그리고 권한을 위임한다. 교차로에 자리를 잡고 노선을 배정한다. 아이들은 언제 잠자리에 들지 결정하는 데 집착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자신의 상황에 주어진 수면 신호에 반응해 늘 하던 대로 잠이 든다." 


요며칠 내 머릿속을 딱 꼬집어 말하는 부분이다. 책을 읽은지는 며칠 되었고, 읽을 때 아 정말 그렇다, 지금, 여기, 라고 주문을 걸었음에도, 새로 생긴 고민거리로 이삼일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이럴까 저럴까 이러면 어떡하지 저러면 큰일인데, 걱정도 사서 하고 심지어는 불쑥불쑥 옛날의 이불킥 실수들을 떠올리면서 혼자 부끄러워하고 나를 새롭게 싫어했다. 이런 식이라면 하루종일 청소만 해야 할 판이다. 




"이런 습관의 권태는 오래된 결혼 생활에서 절정을 이룬다. 결혼 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부는 서로에 대해 생각하는 일을 줄여나간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다. 무의식 밑에 깔린 습관에 조종당하는 것뿐이다. 아침에 늘 함께 일어나고, 항상 같이 밥을 먹고, 매주 주말을 함께 보내고... 이런 일에는 아무런 생각이 필요없다. 우리 삶은 워낙 복잡하고 번잡하니까. 이번 주말에 남편이 무슨 일을 할지 궁금해할 필요도 없다. 경험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권태가 세를 넓히고 부부의 감정은 차게 식어간다. 인정하긴 싫지만 불타올랐던 열정은 완전히 사라졌다. 새 소파가 더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이 점차 침몰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바로 이때 런던 지하철 통근자들이 겪은 습관 단절의 효과를 결혼 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짧은 별거는 일시적인 단절 효과를 낸다. 출장이나 여행이 좋은 기회다. 짧은 의견 충돌이나 논쟁도 이와 유사한 단절 효과를 낼 수 있다. " 


유의할 점 : 단절 효과를 노리다가 완전한 상태의 단절을 경험할 수 있음.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본 횟수는 몇 번인가? 혹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이웃의 새 게시물을 확인하지는 않았는가? 모르는 단어가 나와 인터넷에 검색해보겠다는 핑계를 대고 유튜브나 트위터를 켜지는 않았는가? " 


윽 찔린다. 나는 물론이고 네 식구가 인터넷의 노예가 된 기분이 든다. 집에만 있어 더욱 그러하다. 폰이나 컴퓨터를 가진 지구상의 인간들이 더 디지털중독자가 되는 데에는 코로나가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습관이라고 했으니 폰과 거리두기 습관을 만들어야 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그러나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게 습관이라 하지 않았던가? 나는 이렇게 또 딜레마에 빠진다. 생각하지 말고 행동을 하라구! 




"많은 사람이 헛된 목표와 동기를 세운 뒤 자신을 착취하며 침몰하고 있다. 실현할 수 없는 과제를 수립해놓고 그 목표 지점과 점점 멀어지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좌절하다 눈물을 흘린다. 자기혐오에 빠져 보잘것 없는 능력과 인내심을 자책하며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길을 택한다. '무기력'은 생각보다 합리적이고 손해 볼 일 없는 선택지다. 적어도 밑져야 본전이니까. 그럴수록 우리는 입을 앙다물고 앞으로 나아간다. '네가 늘 포기하고 실패하는 건 네 인내심과 의지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다 거짓말이다. 꿈꾸던 삶과 실제 삶이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점검해야 한다." 


거짓말이라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난 속고 있었어! 단순하게 살자.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점검하라 했으니 일단 내 생활을 되돌아보...............니 역시 난 안 돼...라는 생각이 들고 마는데... 흑.... 이렇게 또 지는 건가. 지고 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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