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베냐 플라스푈러, <힘 있는 여성 - 페미니즘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문제는 '#남녀임금평등'과 같은 해시태그가 '#미투'와 같은 정도의 반향과 효과를 불러오지 못할 것이라는 데 있다. 언론이 미투만큼 주목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언론의 입장에서는 남녀의 임금 격차가 호텔방에서 권력 있는 남성에게 당한 희롱과 괴롭힘을 상세하게 털어놓는 여성의 이야기만큼 섹시하지 않을 것이다. 

가령 <포커스(Focus)>가 "당신도 직장에서 성적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습니까? 당신의 사연을 이메일로 보내주시면..."과 같은 제보 요청 문구로 여성들의 용기를 부추기는 태도만 봐도 언론의 속마음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적이지 않은 잡지가 앞으로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시의적절한 사연들을 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언론이 미투를 소비하는 매커니즘을 보고 있노라면 프랑스 철학자이자 계몽주의자 드니 디드로의 소설 <입 싼 보석들>이 계속 떠오른다. 술탄이 반지를 돌리기만 하면 그 나라에 사는 여성들의 성기가 술술 이야기를 털어놓는 내용이다." 


"만약 이 대목에서 미투가 '침묵을 깬' 매우 자주적인 행동이라고 반론한다면, 그것은 도덕적 설득력(여성이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고 고백하는 것에 반대할 수 있단 말인가?)에만 의지하는 닳아빠진 논리에 불과하다. 당시에 막을 수 있었을 범죄를 시간이 흐른 뒤에 비난한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 고발한다? 과연 우리가 우리 딸들에게 이처럼 무력한 추종을 자주성과 해방이라고 가르치고 싶다는 것인가? 

실제로 미투는 철저하게 가부장적인 여성상을, 수동성과 부정성으로 점철된 여성상을 부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미투가 양성 관계, 즉 남성과 여성의 구체적 관계에 미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자. 미투의 목표는 정확히 무엇일까? 미투 운동은 남녀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것일까, 역전시키려는 것일까? 아니면 지속적으로 망가뜨리는 것일까?" 


"현재의 토론에서는 욕망 자체가 주축을 이룬다. 미투의 특징은 여성들이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수동적 역할로만 인정한다는 데 있다. 결국 미투 운동은 남성의 욕망에 대처하고 남성의 욕망을 물리치며 남성의 욕망으로부터 여성을 효과적으로 지킬 수 있는 전략을 목표로 삼는다. 이런 노력에서 여성적인 것 자체의 자리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우리는 여성의 욕망에 대해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도저히 도망칠 수 없는 폭력에 노출되었더라도 여성이 섹스에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말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남녀 관계의 중심에 전능한 남근이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세상이 돈다고 주장하는 고리타분한 욕망의 경제학을 뜯어고쳐야 한다. 남성의 욕망이 우월하므로 여성은 그저 반응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 욕망의 경제학 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Yes Means Yes' 규정의 해방적 효과가 근본적으로 의심스럽다는 데 있다. 여기서도 성적 만족을 원하는 공격적이고 힘 있는 남성과 그에게 허락을 하거나 그를 거부하는 여성이라는 도식이 되풀이된다. 슬라보예 지젝의 표현을 빌리면 이런 논리의 귀결점은 여성을 "훨씬 더 굴종적인 위치로 데려다 놓는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여성은 남성이 자신을 정복하기를 원한다고 시인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남성이 그렇게 해주기를 바란다는 공개 설명의 등가물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 


"자주적 여성성을 위한 투쟁, 바로 여기에 모든 여성의 개인적 책임이 있다. 입법자에게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감시하라고 요구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성이 직접 나서서 자주성을 실천해야 한다. 법도 그 책임을 대신해줄 수 없으며 또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생물학을 들먹이며 남성은 공격적이고 적극적이며, 여성은 방어적이고 수동적이라고 말하는 헛소리는 땅에 묻어버리자. 그 무엇도 그런 이분법이 옳다고 입증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여성을 약자의 지위로 추방해버렸던 것은 자연이 아니라 남성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오래된 공포다. 힘 있는 여성을 향한 남성의 두려움이다." 


"프랑스의 여성 정신분석가 엘렌 식수는 <출구>에서 성적으로 불가능한 지위를 박차고 나오라고 여성들을 독려한다.   

"욕망이 있어도 죄, 욕망이 없어도 죄, 불감증이어도 죄, 너무 '뜨거워도' 죄, 동시에 둘 다가 아니어서 죄, 너무 지나치게 엄마 노릇을 해도 죄, 엄마 노릇이 부족해도 죄, 아이를 낳아도 죄, 낳지 않아도 죄, 젖을 먹여도 죄, 안 먹여도 죄."  

이것이 여성이 가진 실존적 딜레마다. 따라서 식수는 여성들이 '꽁꽁 봉해진 거대한 신체의 영토'로 들어가는 문을 발견해야만 자신의 힘을 온전히 활짝 펼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거의 피해자 서사에 매달리지 말고 깨어나 굳은 의지로 미래를 바라보기로 마음을 먹어야만 남성과 동등해질 것이고, 여성을 향한 남성의 공포는 쾌락으로 바뀔 것이다." 


우연히 빌려보고 깜놀. 아주 짧은 분량의 글에 번개 파박! 완전 센데 맞는 말이야. 맞는데... 음, 뭔가 아리송... 다시 정독 요망. 다양한 시각의 페미니즘 책들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군. 하... 여자란 무엇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