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나의 여행
임영신 지음 / 소나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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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서 심호흡을 길게 해본다. 심호흡과 함께 책을 읽는 동안 메모했던 메모지를 보며 머리 속을 가슴 속을 정리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가장 먼저 할 일은 이 책의 리뷰를 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부족한 글솜씨지만 간절한 마음만은 못난 글이어도 닿을 수 있다는 바램으로 이 글을 적어본다. '알려야 한다' 이 생각만이 머리속을 하루종일 떠돌았다. 내가 이제야 알게된 진실, 그리고 깨달음을  알려야 한다고 되뇌였다. 리뷰를 적은 후에 할 일은 이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권하는 일이다. 많이 읽혀지고 손에서 손으로 전해져야 되는 책이 있다면 바로 이 책일 것이다. 평화란 그렇게 손과 손으로, 관계에서 관계로 시작되는 것이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평화가 길입니다.>

 

신영복교수님의 붓글씨가 책을 펴자 먼저 반긴다. 작가가 평화를 찾아 여행하는 내내 되뇌였던, 지금도 품고 있다는 평화가 길이라는 글을 신영복선생님께서 써주셨다. 신영복선생님의 제자이기도 한 작가를 보며 '신영복 함께 읽기'란 책을 읽으면서  내내 바랬던 소망이 떠올랐다. 선생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였다. 선생님을 잘 모르지만, 그 분 옆에 있으면 나도 한그루 나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선생님의 숲에 사는 행복한 나무를 꿈꾸었다. 내가 꿈꾸던 선생님의 친필 붓글씨와 글이 책을 읽기도 전에 마음을 울렸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 동안  눈물을 더 많이 흘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영복선생님과 작가와 아무 상관이 없다해도 나는 울었을 것이다, 분명.

 

자식들에게 평화를 가르치기 위해, 평화를 지키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학교에 채 들어가지 않은 아이 둘을 두고, 남편을 두고 임영신이란 몸집이 작은 여자가 길을 떠난다. 평화를 찾아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평화의 증인이 되기 위해 가슴 속에 가족의 사랑을 담고, 이라크로 떠난다.

 

#이라크 안에 세계가 있습니다.

-왜 위험한 이라크로 가려고 하냐는 이라크 대사관 영사의 말에 임영신은 답한다. 이라크 안에 세계가 있다고 이라크가 파괴되는 것은 이 세계과 파괴되는 것이라고. 그것을 이라크에 가서 말하고 싶다고 답한다.

 

 이라크전쟁, 나는 나와는 상관 없는 일로 그저 눈으로, 귀로 들리는 소리만 들으며 나몰라라했다. 그런 내게 임영신, 그녀가 직접 눈으로 보고 알려준 현실은 너무나 참담했다. 달마다 죽어가는 5천명의 아이들과 전쟁으로 인해 장애를 얻은 아이들을 보며 울지도 못하며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부모들이 끝내 울음을 터트리는 곳이 이라크다.

 

이라크, 그 곳에 세계가 들어있다. 한국, 그 곳에도 세계가 들어있으며 어느 나라도 세계가 들어있다. 그런 세계가 모여 더 큰 세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와는 다른 세계라고 나는 무관심으로 일관한 것이다. 하나의 구멍이 생기면 퍼즐은 절대 맞지 않는다. 그대로 바람이 불어와 그 바람에 무너지고 만다. 하나의 작은 세계도 지키지 못하는데 어떻게 큰 세계를 지키겠는가.  이라크 안에 세계가 있다라는 저 말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참 다행이다.

 

#일상을 지키는, 지킬 수 밖에 없는 이라크인들.

-이라크 전쟁의 시작이 발표되고 많은 수의 외국인들, 보도 특파원들이 이라크를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그들이 살고자 떠나는 이라크 땅에 살아가는 이라크인들이 남는다. 떠날 수도 없는 이라크인들, 떠날 생각도 하지 못하는 그들, 그리고 고향을 지키기 위해, 일상을 지키기위해 이라크로 돌아오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울렸다.

 

이라크에 남은 사람들이 말한다. 전쟁이 우리들의 일상을 바꾸어 놓을 수 없다는 걸 그들에게 보여줄 거라고. 우리가 전쟁보다 강한 일상을 가졌다는 걸 보여줄거라고 말하며 전쟁 그 속에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무슨 권리로 그들의 일상을 파괴할 수 있을까. 어떻게 나는 미국이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전쟁이라는 말을 믿었을까. 전쟁이 그들의 땅을 파괴 시킬 수는 있지만 삶은 파괴할 수 없다는 말에 눈물을 떨구며 사죄한다. 한때는 우리의 과거이기도 했던 그 아픔을 몰랐던 것을 이렇게 눈물로만 사과하는 것에 고개가 수그러진다.

 

#평화는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만으로 지켜질 수 있는 거니까요.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쟁의 참상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 끔찍한 상황에서도 울지 못하고 차고 건조한 마음을 가지며 진실을 담을려고 노력하는 이들도 있으며 한달에 5달러를 받고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도 있었으며 생명을 내놓고 시위를 하는 이들, 병원만은 지키겠다며 스스로 자원해서 병원을 지키는 이라크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말한다.

 

평화는 바라기만 해서 지켜지는 것은 아니라고. 머리 속에만 있는 평화가 우리 세계를 지켜주지는 않는다고.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제대로 보고 지키는 방법을 배우라고 말한다. 1년만 평화여행을 떠나길 권한다는 말에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평화를 경험하고 평화란 누구에게나 골고루 돌아가야함을 깨닫고 평화를 지키기위해서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 그것을 실천해보고 싶은 마음이 뜨겁게 가슴에서 솟구친다.

 

#관계에서 관계로

-이슈는 지나가고 관심은 잊혀지지만 관계는 계속된다는 그말을 그대로 옮겨적으며 이 책으로 나도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쉽게 끓어오르고 쉽게 식고마는 이슈를 관심을 기울여 보고나서 그것을 관계로 발전시키면 평화를 지키는 것에 한걸음 다가가게 되는 것이란 믿음이 생긴다. 함께 해주는 것,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어주는 것 그 시작이 평화의 첫걸음이지 않을까.

 

 

<"We are here with you"

우리가 여기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 당신과 함께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 당신과 함께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 당신과 함께 울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 당신의 이름을 억울한 죽음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었다면 지금 떠나야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일 것이다. 나역시도 꿈꾸기만 하고 있으니.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우선 내 주위의 사람에게, 그 사람은 또 주위 사람에게 그렇게 권하게 된다면 평화에 관한 책을 읽었다는 관계를 맺으며 함께 평화로 이르는 길에 다가서는 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북한과의 아슬아슬한 상황, 뒷짐만 지고 있을 상황은 아니다. 언제가는 우리가 '북한 속에는 세계가 있습니다.'란 팻말을 들며 미군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 전에 평화를 찾아 여행을 떠나야한다. 여행 떠나고자 하는 마음, 평화를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마음, 그 자체가 평하를 지키는 것, 평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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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제국 - 개정판
이인화 지음 / 세계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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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제국> 개정판이라고 했다. 100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라는 말이 이제야 책에 흥미를 가지는 나를 자극했다. 얼마나 잘 만들어 졌길래 개정판이 새로 나오는 것일까라는 기대와 요즘 유행하고 있는 팩션의 흐름에 발 맞추어 나온 것인가라는 궁금증으로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이러면 어떻고 저려면 어떻겠는가! 책은 독자에게 어떠한 배경을 뒤로하고도 그 책을 읽는 독자가 재미와 감동, 생각할 꺼리를 얻었다면 어떠한 이유로 개정판이 나왔다 한들 용서가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또한 13년전의 제목 그대로 나와주어서 이 책을 샀을 때 속았다라는 느낌은 들지않게 해주어 전의 독자들에게는 착한 책이라며 쓰다듬어 주고픈 책일 것이다. 어쨌든 13년 전에 나와서 베스트셀러였음에도 읽어보지 못했으며, 영화로도 <영원한 제국>을 보지 못한 내게 책은 개정판이 이전의 책보다  훨씬 읽기 편한 글자와 행간이었다.(이모네 집에 있는 개정판 이전에 나온 책을 궁금한 맘에 살펴보며 다른 점이 있나 비교해보았다.)

 

#고맙다. 개정판!!

-지나칠 뻔했다, 이런 책을. 손에 내려놓기가 안타까웠던 책이었다.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역사에 대한 지식은 중학생 아이들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할  내게 '정조 독살설'에 대한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흥미로움과 함께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초반부를 읽을 때만 해도 이 책을 그렇게 빠져서 읽을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시경이나, 주나라, 익숙하지 않은 인물들과 단어들이 초반부의 책장 넘기는 손을 더디게 만들었다.

 

배경없이 읽어도 괜찮은 책인가라는 걱정을 하며 꼼꼼히 읽기를 하던 눈동자는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안달이 났고 결국 그 안달에 못이겨 눈과 마음이 시키는 대로 읽어내려가느라 넘기는 손길은 바빠졌다. 눈길, 숨길, 손길이 삼박자를 맞추며 책을 읽는동안 리듬을 만들어낸다. 지루할 틈은 없다. 360페이지를 넘는 책의 내용이 지루하지 않았다는 것을 책을 덮은 다음에야 생각해냈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주인공 이인몽을 쫓느라, 정조의 속마음을 쫓느라, 금등지사의 행방과 적힌 내용을 상상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제야 긴 호흡을 내뱉어 본다. 숨에서 단내가 난다. 숨가쁘게 읽게 한 책, 이제 호흡을 고르며 책을 제대로 봐야겠다.

 

#하루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취성록>이란 책이 동경에 공부하러 간 '나'의 손에 발견된다. 그 속에 들어있는 조선시대 정조24년에 살인사건이 '나'의 흥미를 끌게 되고 '나'는 그 엄청난 사실을 말하고 싶어 임금님의 당나귀귀를 본 이발사의 마음이 되어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그 소설이 내 손에 있는 책이다. 살인사건은 단 하루만에 일어나고 마무리(?)된다고 말한다. 300페이지가 훌쩍 넘는 책이 단 하루만에 일어난 일을 적은 거라는 것을 나에게 믿으라고 말한다. 정말일까라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긴다. '나'는 그 시대를 현실감있게 재현하기 위해 '나'대신 이인몽이란 임금에 대한 충성만으로 삶을 지탱해온 홍문관 관리를 선정한다. 그런데 '나'는 이인몽의 눈길로 서술하면서도 가끔 끼어들어 상황설명을 하면서 나를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나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니 그런 당황은 고맙기도 하다.

 

하루만에 일어난 이야기였다. 읽으면서도 하루라는 시간동안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날 수가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으며 피곤에 지친 이인몽에게 눈을 붙일 시간을 주고픈 마음에 애가 닳았다. 하루라는 시간동안 인생이 바뀌어버린 사람들이 책에는 너무 많았다. 비밀을 파헤쳐 버리고 굳건한 나라를 세우고 싶은 사람들, 자신들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비밀을 묻어두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의 대결이 하루라는 시간동안 이어진다. 그 하루라는 말에 책을 두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책 속의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나는 그저 읽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음에도 그거라도 해야했다. 나라도 알아줘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면서 내가 증인이 되어줘야겠다며 말하며 종이를 넘기며 이를 꽉 물기도 하고 안타까운 숨을 몰아쉬기도 했다.

 

#정조대왕, 대왕이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다.

-정조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저 괜찮은 왕이였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정조를 말할 때 이제야 사람들이 대왕이라는 칭호를 왜 붙이는지 알게 되었다. 11살에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정치싸움의 희생양으로 잃게 되었고 그를 죽이려는 움직임에도 아비 잃은 슬픔을 꾹꾹 눌러담아 가슴에만 놓아둘줄 알았기에 그는 왕이 될 수 있었다. 연산군처럼 어미 잃은 슬픔을 광기로 표출하지 않고 아비를 죽이게 한 정치세계를 바꿀려고 했고 왕이 바로 서야 백성을 보살필 수 있다고 믿는 왕이 되었다. 영조대왕과 사도세자의 안타까운 현실은 읽으면서도 내내 올빼미라는 시를 되뇌이게 되고 이 시를 읽었을 정조는 어떤 마음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니 연산군처럼 광기를 내뿜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랄 따름이다.

 

지식정치를 내세우며 학문을 게을리지 하지 않았으며 신하들에게도 고전을 읽게 함으로써 신하의 도리를 잊지 않게 하려했다. 신하들보다 뛰어난 지식으로 인해 신하들을 가르치는 형태로 강연을 바꿔나가기도 했으며 지식만이 아닌 무예에도 강해 매일 50개의 화살을 쏘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했다고 한다. 49개의 화살을 모두 명중시키는 비범한 재주에도 신하들을 배려해서 마지막 한개는 일부러 다른 곳으로 쏘는 따뜻한 마음의 왕이기도 했다. 정치또한 여러 분야에서 인재를 등용하여 외척세력들을 견제하였고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 이 시기에 찬란한 문화들이 꽃피기도 했다. 하나만은 고집하지 않고 열린자세를 취했던 정조, 그에게는 대왕이라는 칭호가 전혀 아깝지 않다.

 

 

#영원한 제국, 내 나름의 해석.

-'영원한'이란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영원을 약속하는 사랑, 영원을 꿈꾸었던 진시황도 좋아하지 않는다. '영원'이란 말처럼 허무한게 어딨을까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그 말을 쓸때의 감정의 진실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다만, 누구나 알다시피 영원함이란 현실을 초월한 것이다. 현실 속에서 영원함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영원한'이 들어간 <영원한 제국>이란 제목을 보며 영원한 제국이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단어를 분명 싫어했음에도 책을 읽어내려가며 정조는 분명 죽은 사람임을 알면서도 그의 영원한 제국이 실현되기를 바라고 바랬다. 어리석은 바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책의 끝까지 다달아서도 나는 그 희망을 놓치 않았다.

 

영원한 제국은 있지 않다. 다만, 백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영원한 제국을 만들려던 왕의 노력과 그런 왕을 따르려다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한 신하들이 기억되며 그들이 이루고 싶었던 영원한 제국을 우리는 머리속으로, 마음 속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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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의 눈물 1 뫼비우스 서재
마이클 코디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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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천주교 신자가 된지 얼마되지 않은 친구가 몇일 전에 세례를 받았다며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하며  그때 받은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이제서야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을 하였다. 그 말에 내내 듣기만 하던 나도 한마디 한다. "뭔데?" 내가 무슨 잘못된 소리라도 한 것처럼 친구는 화들짝 놀라며 모르냐고 한다. 그러면서 너는 종교가 없어서 모를 수도 있겠다며 안타깝다는 말투로 종교가 주는 위안을 말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 친구의 말에 그렇구나라는 말로 대답을 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나는 내게 왜 그 친구가 그렇게 동정어린 목소리로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종교가 없다는 것이 왜 동정을 받을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친구가 나를 동정하는 이유는 하나였으며 그 이유는 대학교 다닐 때 벤치에 혼자 앉아있으면 와서 선교를 하고는 했던 교회동아리 아이들이 교회를 믿어야한다는 이유와 같았다.

 

"주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

 

유신론자로 아니며 불신론자도 아닌 내게 종교는 종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다. 종교를 가지지 않는다는 내 말에 가끔 내세를 믿지 않나봐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덮어두려고 했던 고민에 빠지고 만다. 내세를 믿는데 종교가 없으면 정말 지옥에 가는 걸까? 불교를 믿지도 않으니 극락에도 가지 못하고, 기독교를 믿지도 않으니 천국에도 갈 수 없는 것일까? 그럼 나와 같은 무신론자들은 죽고나면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가끔 그런 생각들로 밤을 보내다보면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 죽음 이후의 세계는 유신론자, 무신론자 둘다에게 분명 상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려봐도 쉽사리 상상하기에는 궁금증이 채워지지 않는 세계이며 살아가고 있는 동안 내내 그것에 고민하게 만든다.

 

인간이면 누구나 생각해봤을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마이클 코디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마이클 코디의 작품 중 2개를 읽고 나서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나를 보며 스릴러란 장르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내가 이미 마이클 코디에게 푹 빠져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작가의 많은 작품을 읽다보면 실망한 작품도 있기 마련이다. 기다림과 함께 읽게 된 세번째 책을 손에 잡으면서 솔직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미 앞의 작품에서 기대이상의 놀람과 감동을 받은 터라 이번 작품이 괜찮다하더라도 나를 만족시키지 못해 실망하면 어쩌나라는 걱정을 하며 책을 읽어내려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을 펼친 후로는 밥먹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을 빼고는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기 위해 밤을 지새느라 이른 아침에 잠이 들어야했으며 스릴러란 장르에도 불구하고 기억하고 싶은 구절들을 표시해두느라 손길은 바빠졌다.

 

#사후세계, 그 너머의 진실

-마이클 코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소재 선택이다. 누구나 궁금해하던 것을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이야기한다. 이번에 그가 택한 소재는 '사후세계'이다. 사후 세계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것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였을 거란 추측을 해본다. 누구나 죽는다라는 사실은 죽은 사람을 보낸 남은 이들에게 그 사람은 죽고나서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자신이 소중하게 아꼈던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고 현실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상실감이다. "좋은 곳에 갔을 것이다."라는 말에 겨우 살 수 있는 가족들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좋은 곳에 갔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사후세계를 체험한 사람도 있으며 귀신을 봤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럼 사후세계는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그곳은 정말 천국과 지옥으로만 구분되는 곳인가? 그곳에서 사람들은 정말 행복하고, 혹은 고통을 받고 있을까?라는 질문들이 몰려온다.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죽었다가 살아온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로 인해 우리는 더 사후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그 너머의 세계를 밝혀내려고 한다. 이런 우리의 궁금증은 가까운 미래 '영혼프로젝트'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긴장감 넘치는 탄탄한 구성

 

-마이클 코디의 작품에서 칭찬할 것 중 하나는 탄탄한 구성이다. 헛점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한 그의 책은 잘 짜맞추어진 퍼즐같다. 전의 작품들에서 아쉬웠던 묘사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 더욱 생생하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은 가까운 미래, 29년 후에 부패한 가톨릭을 버리고 새로운 영혼진리교라는 종교의 시대가 왔다.

이 종교의 교황 사비에르는 사후의 실체를 파헤칠 <영혼 프로젝트>를 위해 수백만의 불치병 환자를 대상으로 비밀리에 행하고 있다. 그의 뒤를 봐주는 천재과학자이지만 희귀병으로 인해 빛을 볼 수 없어 어둠 속에서만 살아야하는 브래들리박사가 빛의 속도로 빠른 처리속도를 자랑하는 '루시퍼'란 광컴퓨터를 개발하여 인류를 옵티넷의 시대로 이끌며 악의 축으로 나온다. 이들에 맞서서 등장하는 사람이 샴쌍둥이로 분리수술을 하는 도중 동생이 죽게 되면서 언니의 뇌의 일부분을 공유하게 되면서 편두통에 시달리는 엠버이다. 엠버는 뇌파를 검사하기 위해 신호 해석장치를 개발한 마일즈에게 뇌파검사를 받게 되는데 그 속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영혼 프로젝트>에 맞서게 된다.

 

독특한 인물들은 책의 흥미를 더하게 하고 알고 싶은 진실이 밝혀지면서 허탈하게 끝날 줄 알았던 것과는 달리 그 이외의 반전에 몸에 소름이 돋았다. 작가의 머리 속은 어떻게 되여있길래 이런 구성을 생각해 낼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기대를 뒤짚으며 기대 이상을 주는 것은 마이클 코디의 작품의 공통점이 될 것 같다. 앞으로는 기대를 하지 않고 읽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벌써 다음에는 어떤 놀라움을 전해줄건지 마음이 앞선다.

 

#루시퍼의 눈물, 그 의미

-루시퍼에 대해 내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사실은 사탄이란 것이었다. 루시퍼하면 자연스레 악이 떠올랐다. 책의 첫장에 루시퍼는 '빛을 가져오는 자'라는 뜻이라고 나와있다. 빛을 가져오는 이가 사탄이라니 내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건가라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루시퍼에 대한 생각에 코끝이 시큰해진다. 대체 우린 누구를 천사라 하고 누구를 악마라 할 수 있을까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동기와 결과, 어떤 것이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일까를 생각하게끔 한다.

 

#숙제를 꼭 내주시는 마이클 코디 선생님

-스릴러란 장르는 영화나 책을 통해봐도 보고나면 거기서 끝인 경우가 많다. 그것을 읽거나 보는 동안만 손에 땀을 쥐고, 머리회전을 하게 된다. 그 후에는 그저 잘 만들었네, 잘 봤네라는 말로 끝내기 일쑤이다. 그런데 마이클 코디의 작품은 다르다. 그는 인간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종교, 그 사이에는 강이있다. 그 강을 건너볼 수 있게끔 다리를 놓아준 것이 작가이다. 작가는 이제 그 다리를 건너며 그것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정립은 독자의 몫으로 남기고 있다. 누가 그 다리를 건너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리의 길이가 얼마나 길지는 모르지만 그 다리를 건너며 나는 숙제를 열심히 풀어볼 생각이다.

 

죽음을 떠올리면 사람들은 열심히 살고 싶어지는 경우와 삶의 덧없음을 깨닫고 삶을 관조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죽음을 말하면 나는 열심히 살고 싶어지는 경우이다. 그래서 죽음을 말하는 책이 좋다. 제대로 살고 싶다는, 열심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끔한다. 그것이 죽은 자들에 대한 최선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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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파운드의 슬픔
이시다 이라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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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언제였던가, 중학교에 다닐 때쯤 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무엇이 그리 슬프다고 짝사랑하는 오빠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면서 눈물을 모으면 얼만큼의 무게가 나올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정말 유리병을 하나 장만해 눈물을 담아보기로 했다. 그걸 그 오빠에게 보여주면 그 오빠 마음이 동할거라는 친구들의 격려도 한몫을 했을거란 생각이 든다. 여차저차해서 유리병을 장만해 울어보려고 하는데 눈물이 흐르지 않는 것이다. 유리병을 들고 울려고 애쓰는 내 모습이 어린 내게도 슬퍼보이기는 커녕 무슨 코미디처럼 보여 유리병을 손에 쥐고 털썩 그자리에 주저앉아 웃음을 터트리다가 결국 울고 말았다. 물론, 유리병에 눈물은 담지 않았으며 그 어린 짝사랑도 거기서 끝이 나고 말았다. 슬픔과 함께 하다가 웃음으로 끝난 내 짝사랑.

 

<1파운드의 슬픔>을 보며 그 때의 유리병을 떠올렸다. 대체 얼마나 되는 것일까? 눈물을 얼마나 모으면 1파운드가 될까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책을 쳐다보았다. '이시다 이라'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 나로서는 저 작가의 글 냄새도, 글 분위기도 짐작할 수가 없었다. 다만 제목이 핑크빛보다는 짙은 슬픔의 빛깔을 띠고 있다는 생각에 가을이기도 하고  마음껏 울어볼 요량으로 읽고싶었던 것이다. 

 

결론은 '속았다'이다. 눈물을 펑펑 쏟는 슬픔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책은 눈물보다 가슴을 울리는 슬픔을 내게 전해주었다. 행복해지기 전의 가슴의 아픔, 행복할 때의 가슴의 아픔을 말하고 있다. 슬픔의 무게를 재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일까? 눈물방울을 모아서 슬픔을 잰다고 해도 그 슬픔이 진정한 슬픔의 무게일 수 있을까? 그 시절에는 슬픔을 무게로 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만큼 어렸고 눈 앞의 것을 전부라고 믿었다. 이제야 책을 읽으며 그 시절의 나를 쓰다듬으며 슬픔의 무게는 얼만큼이건 그건 분명한 슬픔이라고, 슬픔에는 무게따위가 있을리 없다고 말한다. 슬픔에게 무게나 깊이라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이제야 말한다.

 

슬픔에 비교대상이 있을리가 없다. 심장 옆의 몇파운드의 슬픔을 때어내던 그 슬픔으로 사람은 죽는다. 그것이 순간이든, 영원이든. 다행인건 사랑의 슬픔에 죽을 것 같이 아프다가도 신비하게도 사랑에 치료가 된다는 점이다. 상처는 남겠지만 그 상처는 다음 사랑의 좋은 예방약이 된다. 사랑은, 사랑으로 상처받지만 사랑으로 밖에 치료할 수 없는 것이다.

 

책은 30대의 사랑을 그리며 10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프고, 외롭고, 지치고, 힘들고, 홀로 서려는 감정등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로 집결된다. '사랑, 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말이다. 마치 예전에 보았던 영화 '러브 액츄얼리(ove Actually)'가 떠오른다. 어떠한 형태의 모습이건 어떠한 빛깔의 감정이건 그건 모두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던 영화. 그 영화를 보며 눈은 쉴새없이 주인공들을 쫓았지만 손은 옆에 있었던 남자친구의 손을 꼭 잡으며 '우리도, 저들처럼'이라는 마음을 전했다. 그 사람과 헤어지고도 그 영화를 봤을 때의 설렘과 아림, 그리고 손을 잡았을 때의 온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책 속의 주인공들을 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지금은 옆에서 손을 잡을 사람이 없어 아쉽지만 나는 분명 이 책을 다음에 만날 사람에게 선물하며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을 내내 떠올렸다고 말 할 것이다.

 

나이가 숫자를 더해가면서 내가 가졌던 사랑에 대한 의구심은 왜 갈수록 더 불안해지는 것일까였다. 10대에는 20대의 사랑은 핑크빛일 거라는 생각을 했고 20대인 지금은 시간이 흐를 수록 왜이렇게 사랑이 흔들리고 어려운 건지, 사랑을 하면서도 불안했고, 사랑을 하지 않을 때는 외롭고 힘이 들었다. 분명, 나는 30대의 사랑은 안정이라는 것에 뿌리를 둔 사랑이라며 환상을 갖고 있었지만 20대의흔들리는 사랑으로 그것에 점점 더 확신이 없어졌다. 책을 읽으며 30대의 사랑도 20대와 마찬가지로 흔들리고 불안해하겠지만 그곳에는 한뼘 더 성장한 내가 있을거란 생각을 해본다. 흔들리면서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흔들림마저 사랑하고 싶게끔 만드는 책이었다.

 

속았지만, 사랑의 아픔을 기대했던 책이였지만 이 책으로 인해 내가 얻은 것은 그 이상이다.

'사랑, 할 수 있다는 희망' 아주 열심히 할 수 있다는 희망이, 하고 싶다는 희망을 준 책이었다. 분명

나는 이 책을 커플이 아닌 솔로들에게 추천할 것이다. 나 혼자 사랑에 대한 열망에 빠질 순 없다. 내 솔로 친구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린 서로에게 소개팅을 해주느라 바쁠 것이다. 열심히, 건강하게 사랑이 하고 싶다.

 

(책 속의 이야기를 하나도 설명하지 않은 것은 다음에 읽을 독자의 즐거움과 가슴떨림을 뺏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이다. 당신, 사랑 하고 싶으세요? 혹은 하고 계시나요? 그럼 이 책을 적극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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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 왕을 찾아서
페터 학스 지음, 우베 핸취 그림, 송소민 옮김 / 푸른나무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이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처럼 다른 사건들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목동 파리스가 아프로디테를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뽑으면서 상으로 헬레네를 얻게된 후로 오디세우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헬레네를 얻은 파리스는 트로이로 도망을 가고 오디세우스를 포함한 그리스 여러왕국은 트로이와 전쟁을 시작한다. 그 후로 20년동안 오디세우스를 보지 못한 페넬로페와 바다를 떠도는 오디세우스에게 보답받지 못할 사랑을 한 칼립소이야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이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아이들에게 오디세우스는 어떻게 이야기 될지 궁금해서였다. 그러나 제목을 오해하고 책을 골랐다. <오디세우스 왕을 찾아서>란 제목은 말 그대로 왕을 찾아 떠나는 여행기였다. 내가 아는 오디세우스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가 아니여서 처음에는 실망스런 마음을 안고 읽었다. 그래도 책은 실망시킨 것이 미안한지 지루하지 않게 술술 넘어간다. 내 손에서도 이렇게 빨리 넘어가는 데 모험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더욱 빨리 읽힐거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주요 내용은 오디세우스의 아들인 텔레마코스 왕자가 포세이돈의 저주로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10년동안 바다를 떠돌고 있는 오디세우스왕을 찾아오는 것이다. 텔레마코스 왕자는 오디세우스가 전쟁이 난지 9년만에 트로이 목마를 만들기 위해 목재와 설계도를 가질러 몰래 들렸다가 간 후에 생긴 아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왕비의 입장도 곤란해지고 아들인 왕자도 아버지 얼굴한번 보지 못하고 어머니께 구혼하러 온 이상한 남자들을 더 많이 보며 천덕꾸러기로 있어야했다.

 

그런 아들이 아버지를 구하는 해결책을 내기 위해 선생님을 모집한다. 텔레마코스 왕자를 도와주기 위해 선생님으로 변장하고 나타난 사람은 아테나여신이다. 지혜의 여신은 텔레마코스와 함께 오디세우스왕을 찾는 모험을 하는 동안 왕자에게 공부를 시키며 스스로 성장하게끔 도와준다. 아마 아테나가 신의 손으로 한번에 왕을 찾았다면 나는 책을 덮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테나는 왕자에게 중요한 결정이나 행동을 할 때는 왕자의 뒤에서 지켜보기만 한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혹은 얻기위해서는 자신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거라고 생각했다.

 

오디세우스에게 왕자가 있었다는 것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러니 당연히 그 왕자가 오디세우스를 찾으러 가는 이야기는 내게는 참 생소한 것이었다. 책은 어린이 눈높이에 알맞게 우리가 알고 있던 신들의 이미지를 재밌게 만들어놓고 모험 중간마다 위험요소를 집어넣어 긴장감을 주었다. 칼립소가 댄스클럽을 운영한다는 이야기에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포세이돈의 부인인 소금꽃여신의 그림에 웃음을 터트렸다.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건 한 사건마다 쉽게 해결되는 것으로 인해 긴장감이 그리 고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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