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파운드의 슬픔
이시다 이라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였던가, 중학교에 다닐 때쯤 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무엇이 그리 슬프다고 짝사랑하는 오빠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면서 눈물을 모으면 얼만큼의 무게가 나올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정말 유리병을 하나 장만해 눈물을 담아보기로 했다. 그걸 그 오빠에게 보여주면 그 오빠 마음이 동할거라는 친구들의 격려도 한몫을 했을거란 생각이 든다. 여차저차해서 유리병을 장만해 울어보려고 하는데 눈물이 흐르지 않는 것이다. 유리병을 들고 울려고 애쓰는 내 모습이 어린 내게도 슬퍼보이기는 커녕 무슨 코미디처럼 보여 유리병을 손에 쥐고 털썩 그자리에 주저앉아 웃음을 터트리다가 결국 울고 말았다. 물론, 유리병에 눈물은 담지 않았으며 그 어린 짝사랑도 거기서 끝이 나고 말았다. 슬픔과 함께 하다가 웃음으로 끝난 내 짝사랑.

 

<1파운드의 슬픔>을 보며 그 때의 유리병을 떠올렸다. 대체 얼마나 되는 것일까? 눈물을 얼마나 모으면 1파운드가 될까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책을 쳐다보았다. '이시다 이라'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 나로서는 저 작가의 글 냄새도, 글 분위기도 짐작할 수가 없었다. 다만 제목이 핑크빛보다는 짙은 슬픔의 빛깔을 띠고 있다는 생각에 가을이기도 하고  마음껏 울어볼 요량으로 읽고싶었던 것이다. 

 

결론은 '속았다'이다. 눈물을 펑펑 쏟는 슬픔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책은 눈물보다 가슴을 울리는 슬픔을 내게 전해주었다. 행복해지기 전의 가슴의 아픔, 행복할 때의 가슴의 아픔을 말하고 있다. 슬픔의 무게를 재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일까? 눈물방울을 모아서 슬픔을 잰다고 해도 그 슬픔이 진정한 슬픔의 무게일 수 있을까? 그 시절에는 슬픔을 무게로 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만큼 어렸고 눈 앞의 것을 전부라고 믿었다. 이제야 책을 읽으며 그 시절의 나를 쓰다듬으며 슬픔의 무게는 얼만큼이건 그건 분명한 슬픔이라고, 슬픔에는 무게따위가 있을리 없다고 말한다. 슬픔에게 무게나 깊이라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이제야 말한다.

 

슬픔에 비교대상이 있을리가 없다. 심장 옆의 몇파운드의 슬픔을 때어내던 그 슬픔으로 사람은 죽는다. 그것이 순간이든, 영원이든. 다행인건 사랑의 슬픔에 죽을 것 같이 아프다가도 신비하게도 사랑에 치료가 된다는 점이다. 상처는 남겠지만 그 상처는 다음 사랑의 좋은 예방약이 된다. 사랑은, 사랑으로 상처받지만 사랑으로 밖에 치료할 수 없는 것이다.

 

책은 30대의 사랑을 그리며 10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프고, 외롭고, 지치고, 힘들고, 홀로 서려는 감정등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로 집결된다. '사랑, 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말이다. 마치 예전에 보았던 영화 '러브 액츄얼리(ove Actually)'가 떠오른다. 어떠한 형태의 모습이건 어떠한 빛깔의 감정이건 그건 모두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던 영화. 그 영화를 보며 눈은 쉴새없이 주인공들을 쫓았지만 손은 옆에 있었던 남자친구의 손을 꼭 잡으며 '우리도, 저들처럼'이라는 마음을 전했다. 그 사람과 헤어지고도 그 영화를 봤을 때의 설렘과 아림, 그리고 손을 잡았을 때의 온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책 속의 주인공들을 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지금은 옆에서 손을 잡을 사람이 없어 아쉽지만 나는 분명 이 책을 다음에 만날 사람에게 선물하며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을 내내 떠올렸다고 말 할 것이다.

 

나이가 숫자를 더해가면서 내가 가졌던 사랑에 대한 의구심은 왜 갈수록 더 불안해지는 것일까였다. 10대에는 20대의 사랑은 핑크빛일 거라는 생각을 했고 20대인 지금은 시간이 흐를 수록 왜이렇게 사랑이 흔들리고 어려운 건지, 사랑을 하면서도 불안했고, 사랑을 하지 않을 때는 외롭고 힘이 들었다. 분명, 나는 30대의 사랑은 안정이라는 것에 뿌리를 둔 사랑이라며 환상을 갖고 있었지만 20대의흔들리는 사랑으로 그것에 점점 더 확신이 없어졌다. 책을 읽으며 30대의 사랑도 20대와 마찬가지로 흔들리고 불안해하겠지만 그곳에는 한뼘 더 성장한 내가 있을거란 생각을 해본다. 흔들리면서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흔들림마저 사랑하고 싶게끔 만드는 책이었다.

 

속았지만, 사랑의 아픔을 기대했던 책이였지만 이 책으로 인해 내가 얻은 것은 그 이상이다.

'사랑, 할 수 있다는 희망' 아주 열심히 할 수 있다는 희망이, 하고 싶다는 희망을 준 책이었다. 분명

나는 이 책을 커플이 아닌 솔로들에게 추천할 것이다. 나 혼자 사랑에 대한 열망에 빠질 순 없다. 내 솔로 친구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린 서로에게 소개팅을 해주느라 바쁠 것이다. 열심히, 건강하게 사랑이 하고 싶다.

 

(책 속의 이야기를 하나도 설명하지 않은 것은 다음에 읽을 독자의 즐거움과 가슴떨림을 뺏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이다. 당신, 사랑 하고 싶으세요? 혹은 하고 계시나요? 그럼 이 책을 적극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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