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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제국 - 개정판
이인화 지음 / 세계사 / 2006년 9월
평점 :
<영원한 제국> 개정판이라고 했다. 100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라는 말이 이제야 책에 흥미를 가지는 나를 자극했다. 얼마나 잘 만들어 졌길래 개정판이 새로 나오는 것일까라는 기대와 요즘 유행하고 있는 팩션의 흐름에 발 맞추어 나온 것인가라는 궁금증으로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이러면 어떻고 저려면 어떻겠는가! 책은 독자에게 어떠한 배경을 뒤로하고도 그 책을 읽는 독자가 재미와 감동, 생각할 꺼리를 얻었다면 어떠한 이유로 개정판이 나왔다 한들 용서가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또한 13년전의 제목 그대로 나와주어서 이 책을 샀을 때 속았다라는 느낌은 들지않게 해주어 전의 독자들에게는 착한 책이라며 쓰다듬어 주고픈 책일 것이다. 어쨌든 13년 전에 나와서 베스트셀러였음에도 읽어보지 못했으며, 영화로도 <영원한 제국>을 보지 못한 내게 책은 개정판이 이전의 책보다 훨씬 읽기 편한 글자와 행간이었다.(이모네 집에 있는 개정판 이전에 나온 책을 궁금한 맘에 살펴보며 다른 점이 있나 비교해보았다.)
#고맙다. 개정판!!
-지나칠 뻔했다, 이런 책을. 손에 내려놓기가 안타까웠던 책이었다.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역사에 대한 지식은 중학생 아이들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할 내게 '정조 독살설'에 대한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흥미로움과 함께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초반부를 읽을 때만 해도 이 책을 그렇게 빠져서 읽을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시경이나, 주나라, 익숙하지 않은 인물들과 단어들이 초반부의 책장 넘기는 손을 더디게 만들었다.
배경없이 읽어도 괜찮은 책인가라는 걱정을 하며 꼼꼼히 읽기를 하던 눈동자는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안달이 났고 결국 그 안달에 못이겨 눈과 마음이 시키는 대로 읽어내려가느라 넘기는 손길은 바빠졌다. 눈길, 숨길, 손길이 삼박자를 맞추며 책을 읽는동안 리듬을 만들어낸다. 지루할 틈은 없다. 360페이지를 넘는 책의 내용이 지루하지 않았다는 것을 책을 덮은 다음에야 생각해냈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주인공 이인몽을 쫓느라, 정조의 속마음을 쫓느라, 금등지사의 행방과 적힌 내용을 상상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제야 긴 호흡을 내뱉어 본다. 숨에서 단내가 난다. 숨가쁘게 읽게 한 책, 이제 호흡을 고르며 책을 제대로 봐야겠다.
#하루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취성록>이란 책이 동경에 공부하러 간 '나'의 손에 발견된다. 그 속에 들어있는 조선시대 정조24년에 살인사건이 '나'의 흥미를 끌게 되고 '나'는 그 엄청난 사실을 말하고 싶어 임금님의 당나귀귀를 본 이발사의 마음이 되어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그 소설이 내 손에 있는 책이다. 살인사건은 단 하루만에 일어나고 마무리(?)된다고 말한다. 300페이지가 훌쩍 넘는 책이 단 하루만에 일어난 일을 적은 거라는 것을 나에게 믿으라고 말한다. 정말일까라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긴다. '나'는 그 시대를 현실감있게 재현하기 위해 '나'대신 이인몽이란 임금에 대한 충성만으로 삶을 지탱해온 홍문관 관리를 선정한다. 그런데 '나'는 이인몽의 눈길로 서술하면서도 가끔 끼어들어 상황설명을 하면서 나를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나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니 그런 당황은 고맙기도 하다.
하루만에 일어난 이야기였다. 읽으면서도 하루라는 시간동안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날 수가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으며 피곤에 지친 이인몽에게 눈을 붙일 시간을 주고픈 마음에 애가 닳았다. 하루라는 시간동안 인생이 바뀌어버린 사람들이 책에는 너무 많았다. 비밀을 파헤쳐 버리고 굳건한 나라를 세우고 싶은 사람들, 자신들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비밀을 묻어두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의 대결이 하루라는 시간동안 이어진다. 그 하루라는 말에 책을 두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책 속의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나는 그저 읽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음에도 그거라도 해야했다. 나라도 알아줘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면서 내가 증인이 되어줘야겠다며 말하며 종이를 넘기며 이를 꽉 물기도 하고 안타까운 숨을 몰아쉬기도 했다.
#정조대왕, 대왕이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다.
-정조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저 괜찮은 왕이였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정조를 말할 때 이제야 사람들이 대왕이라는 칭호를 왜 붙이는지 알게 되었다. 11살에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정치싸움의 희생양으로 잃게 되었고 그를 죽이려는 움직임에도 아비 잃은 슬픔을 꾹꾹 눌러담아 가슴에만 놓아둘줄 알았기에 그는 왕이 될 수 있었다. 연산군처럼 어미 잃은 슬픔을 광기로 표출하지 않고 아비를 죽이게 한 정치세계를 바꿀려고 했고 왕이 바로 서야 백성을 보살필 수 있다고 믿는 왕이 되었다. 영조대왕과 사도세자의 안타까운 현실은 읽으면서도 내내 올빼미라는 시를 되뇌이게 되고 이 시를 읽었을 정조는 어떤 마음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니 연산군처럼 광기를 내뿜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랄 따름이다.
지식정치를 내세우며 학문을 게을리지 하지 않았으며 신하들에게도 고전을 읽게 함으로써 신하의 도리를 잊지 않게 하려했다. 신하들보다 뛰어난 지식으로 인해 신하들을 가르치는 형태로 강연을 바꿔나가기도 했으며 지식만이 아닌 무예에도 강해 매일 50개의 화살을 쏘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했다고 한다. 49개의 화살을 모두 명중시키는 비범한 재주에도 신하들을 배려해서 마지막 한개는 일부러 다른 곳으로 쏘는 따뜻한 마음의 왕이기도 했다. 정치또한 여러 분야에서 인재를 등용하여 외척세력들을 견제하였고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 이 시기에 찬란한 문화들이 꽃피기도 했다. 하나만은 고집하지 않고 열린자세를 취했던 정조, 그에게는 대왕이라는 칭호가 전혀 아깝지 않다.
#영원한 제국, 내 나름의 해석.
-'영원한'이란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영원을 약속하는 사랑, 영원을 꿈꾸었던 진시황도 좋아하지 않는다. '영원'이란 말처럼 허무한게 어딨을까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그 말을 쓸때의 감정의 진실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다만, 누구나 알다시피 영원함이란 현실을 초월한 것이다. 현실 속에서 영원함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영원한'이 들어간 <영원한 제국>이란 제목을 보며 영원한 제국이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단어를 분명 싫어했음에도 책을 읽어내려가며 정조는 분명 죽은 사람임을 알면서도 그의 영원한 제국이 실현되기를 바라고 바랬다. 어리석은 바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책의 끝까지 다달아서도 나는 그 희망을 놓치 않았다.
영원한 제국은 있지 않다. 다만, 백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영원한 제국을 만들려던 왕의 노력과 그런 왕을 따르려다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한 신하들이 기억되며 그들이 이루고 싶었던 영원한 제국을 우리는 머리속으로, 마음 속으로 그려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