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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 스토리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밤 12시. 그 시간은 어렸을 때(사실은 지금도) 신비로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믿었던 적이 있다.(어쩌면 지금도) 방에 있는 인형들에게도 인형들만의 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그 시간은 아마도 12시가 아닐까란 생각을 했었다. 그 시간이 되기 전에 인형들이 놀 수 있을거란 생각에 일찍 잠자리에 드는 나름대로 새나라의 어린이였다. 작은 내방은 인형들이 놀기에는 턱없이 작았기에 인형들만이 드나드는 문이 내 방 어딘가 있을거란 생각에 방을 구석구석 살펴보느라 온 방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엄마를 화나게 했던 적도 있었고 인형들의 위치가 바뀌었나를 인형들 몰래 확인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브레이브 스토리>의 표지를 봤을 때 인형들이 드나드는 '문'이 떠오르며 어린시절의 내가 가졌던 환상도 함께 떠올랐다. 문을 열면 내 어린시절의 추억도 함께 열릴까란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빛의 문으로 들어가 내 어리시절을 잡을 수 있을까란 기대와 신비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거란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내가 처음 접한 판타지 책은 <해리포터>였다. 해리포터를 만났을 때 그당시 20살이였음에도 어린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어린시절 한번쯤은 생각해보았을 마법에 대한 환상이 눈앞에 펼쳐지자 아이처럼 빠져들었다. 그 신선함은 다음편을 향한 더딘 기다림으로 사라지고 어린이를 위한 판타지라고 생각되는 문체에 흥미를 잃어갔다. 흥미를 가졌다가 금새 시들어진 내게 판타지는 어린이를 위한 장르라고만 생각했다.
아이들에게만 환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현실적이 전부라고 믿고 사는 어른들에게 필요한 것이 환상이 아닐까? 환상과 현실을 구분지을 수 있는 어른에게 판타지는 잊혀진 꿈을 생각나게 하고 어린시절의 따뜻함, 무엇이든 꿈꿀 자유, 무모한 용기등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 현실을 열심히 살게하는 힘을 준다. 그때의 용기, 자유를 기억해내게 하여 더 열심히 살게 한다. 문제는 어른이 읽을만한 판타지를 찾는 일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기대했던 것은 어른이 읽을만한 판타지였다.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는 무게의 책을 기대했던 내게 아직 1권만 읽었지만 합격점을 주고 싶다.
주인공은 와타루, 초등학교 5학년.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모범적인 가정에서 자라고 있다고 겉포장되어있지만 초등학생이 살기에는 너무나 조용한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픔의 싹과 함께 와타루에게 환상의 세계, 비전(vision)의 문이 나타난다. 형체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목소리, 전학을 온 독특한 아이 미쓰루,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빌딩의 계단에 있는 비전으로 갈 수 있는 문.
그문을 발견한 와타루가 당신이였다면? 와타루가 나였다면? 그 문을 거부할 수 있을까? 그 곳에 가면 단 하나의 소망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면 당신은, 나는, 그 문으로 발을 내딛지 않을 수 있을까? 작가의 세심한 내면묘사에 와타루는 이미 내가 되기도 하고 아이는 몰라도 된다고 무조건 숨기려하는 어른이 되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이에게 어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무엇일까? '애들은 몰라도 돼.'일 것이다. 어른의 결정으로 어른만 삶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어른보다 더 많이 흔들리는 것은 아이들이다. 아무것도 알 필요없다는 말이 주는 무서움을 겪어보지 않은 아이가 있을까? 분명 자신이 어렸을때도 그랬음에도 자신의 아이에게 그 무서움을 되풀이해서 겪게한다. 와타루의 부모역시 와타루에게 그 막막한 두려움을 주게 되고 와타루는 겁이 많은 우리와는 달리 그 두려움을 자신의 힘으로 알아가려 하고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비전으로 떠난다. 겁이 나지 않을리가 있겠는가, 슬프지 않을리가 있겠는가, 그래도 떠나는 길을 택한 건 그 아이의 용기라기 보다는 소망이 더 크기 때문이다. 어른이 짓밟아놓은 그 아이의 일상,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내고 싶은 사랑이 더 크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다.
이제 그 아이는 떠났다. 그 아이와 함께 나도 떠난다. 말없이 응원하기 위해. 너를 닮고 싶은 어른이 여
다고 말해주기 위해.
미야베 마유키란 작가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이 내게는 작가의 첫작품이었다. 사람들이 이 작가에게 반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같다. 2권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펼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