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를 좋아한다. 어린시절에 집에 책이 많지 않아 학교에서 책을 빌려봐야했다. 학교에도 책이 많지 않아 같은 책을 여러번 빌려봤어야 했기에 계속 봐도 질리지 않을 동화책을 빌려오곤 했다. 그때 가장 좋아했던 것은 <오즈의 마법사>였다. 오즈로 날라간 도로시가 내가 되기를 꿈꾸며 내가 얻고 싶은 것들을 상상하며 행복해하곤 했다.
어른이 되고서는 잊고 살았던 동심을 찾아주었기에 동화를 좋아한다. 동심, 어린시절의 추억, 그 시절에 내가 한 생각들, 경험들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선물이다. 앞으로 너무 빨리 걸어가려 할 때, 누군가를 이기려고만 할 때, 세상의 잣대에 스스로 작아지려 할 때마다 동화책을 읽으며 꿈을 생각하고 환하게 웃음짓던 어린 나를 떠올렸다. 그러고 나면 너무 빨리 걷느라 놓치고 있었던 것들과 소중한 것이 무언인지 알게 된다. 그렇게 삶에서 소중한 것을 되새김질 해주는 것이 내게는 동화였다.
내게는 힘이 되어주는 동화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일을 좋아하게 되면서 아이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동화를 좋아하는 아이를 만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동화 속 이야기는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고, 그게 어떻게 말이 되냐고 묻는 아이들을 만날때면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동화가 주는 선물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은 커져만 가는데 아이들에게 동화는 너무나 진부한 이야기며 시시한 이야기가 되어간다. 동화를 읽을 때보다는 게임을 할 때 스트레스가 풀리며 신이 난다는 아이들. 현란하고 자극적인 게임들은 아이들에게 잔잔한 동화의 매력 속으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아이들에게 판에 박히거나 지루하지 않은 동화를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했다. 참을성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긴 동화는 흥미를 유발하기 보다는 질리게 한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짤막한 동화를 들려주고 그것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하는 것이 더 큰 효과를 유발한다는 것이 조카들을 보면서 얻은 결과였다. 아이들은 듣는 만큼, 말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자신의 생각을 누군가가 들어주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조카들과 내 대화는 한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것에 관해 아이의 생각을 듣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비슷한 상황극을(솔직히 말하면 상황극이 아니라 아주 우스운 연극) 해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아이들과 함께 하기에 참 좋은 책이다. 제목 그대로 짤막한 동화이다. 책에서 가장 긴 동화가 3장을 넘기지 못한다. 처음에 책을 훑어보면서 실망을 했다. 어른인 내가 읽기에는 너무 짧았기 때문에. 하지만 읽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아하!'라고 감탄사를 내뱉기도 했으며 혼자 웃기도 했다. 책을 들고 조카들에게 읽혀주었더니 아이들은 '한번더'를 외치며 손뼉을 치며 웃기도 하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제 친구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고 어린 주호는 내내 그림만 가르키며 내말을 따라하며 웃었다. 책 속의 파스텔빛 귀여운 그림들도 아이들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닭을 잡을 땐 날개를 잡고
토끼를 잡을 땐 귀를 잡아야 해.
뱀을 잡을 땐 머리를 잡고
쥐를 잡을 땐 꼬리를 잡아야 해.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을 사로잡을 때는 마음을 잡아야 해.>
이 동화를 읽다가 아이들은 마음을 어떻게 잡아라는 질문을 내게 했고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아이들에게 꼭 안아주면 된다고 했다. 책 덕에 포옹에 뽀뽀까지 덤으로 쉽게 하게 되어 아이들과 함께 덩달아 나까지 신났던 일이 생각난다.(클수록 아이들은 포옹과 뽀뽀를 해주지 않는다--;;;)
<비 오는 날 버스 정류장
버스에서 내린 한 아이가 우산을 쓰고
집으로 가려다 말고, 우산에 이런 쪽지를 써 붙였어요.
"앞마을 가실 분, 같이 가세요.">
책에서 내가 뽑은 최고의 동화는 이것이다. 우산을 나눠쓰지 못하는 겁이 많은 어른이 된 내게 이 동화가 채찍질을 하기도 하고 마음을 뜨겁게 만들기도 했다. 비오는 날 해봐야지란 상상도하며 혼자 미소를 지었다.
<짧은 동화 긴 생각>이란 제목,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짤막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아이들은 긴 이야기에도 집중하고 생각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현실은 동화 속 세상이 아니라지만 동화 속 세상에 다녀온 아이들이 자라나면 세상은 동화로 바뀔지도 모른다. 삭막해지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한시간의 컴퓨터 게임이 아니라 배려가 담긴 동화일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는 아이들의 사고력을 키워주는 <논리, 논술 레벨 업!>이 담겨있다. 아이들에게 할 질문을 뽑아놓고 답변요령도 제시해주고 있다. 부모님을 위한 코너이다. 그런데 이 친절한 배려에 나는 입이 써진다. 아이들과 부모님이 동화를 읽고 서로 이야기하다 보면 나올 충분한 대화들이 질문으로 적혀질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바쁜 부모님과 바쁜 아이들이 넘쳐나는 현실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괜히 마음이 가라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