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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이 사랑한 천재들 - 클림트에서 프로이트까지 ㅣ 도시가 사랑한 천재들 1
조성관 지음 / 열대림 / 2007년 2월
평점 :
오스트리아라는 단어보다 빈이란 단어가 익숙한 것은 왜일가?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빈이라는 곳이 나라인가하며 궁금해한 나는 빈이 오스트리아의 수도였다는 것은 뒤늦게 생각이 났다. 빈이란 도시를 나라보다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그건 시대를 앞서간 천재들이 사랑한 도시가 빈이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흔적과 업적으로 인해 빈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빈에서 사람들은 천재적인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쫓으며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게 된다.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말대로 빈은 “2,000년에 걸쳐 국가를 초월한 수도”라고 할만큼 이미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는 예술이 살아숨쉬는 왕국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왜 빈을 사랑했나?
17~18세기 제국의 도시 빈으로 다양한 민족이 모여들었으며 그에 따라 복합문화가 형성되고 합스부르크 왕가는 예술을 장려했으며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빈을 '음악의 수도'로 키웠다. 빈이 음악의 수도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빈에는 프리랜서 작곡가들이 활동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빈 태생이 아닌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역시 빈으로 온 것은 빈에서는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하면서도 생계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때문이었다고한다.
음악으로 시작한 예술은 점점 커져 나가 18~20세기 초에 빈에서 활동한 예술가들은 엄청났다고 한다. 이 책은 그 중 6명의 흔적을 따라 빈을 여행한다. 그 여행길에 작가는 우리에게 피아커(마차)를 타보길 권한다. 마차에 편히 앉아 여행을 떠나는 순간 예술가들의 숨결에 분명 허리를 곧추세울 수 밖에 없다.
#왜 클림트는 학교 교과서에 실리지 않았을까?
20살이 넘어서야 클림트를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흥분했던가! 누구나 한번쯤 보았을 클림트의 <키스>. 그 그림에 반했던 왜 그를 이제야 알게 되었냐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그가 생각보다 아주 대단한 예술가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궁금했었다. 그의 작품은 교과서에 실리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은 빈의 첫 여행 테마에서 그 이유를 알았다. 클림트 앞에 붙는 수식어는 '몽환적 에로티시즘'이었다. 클림트의 그림에 반했다고 하면서도 그에 대한 것을 찾아보지 않은 내게 이 여행은 단비 같았다.
짧은 여행이라 자세히는 돌아보지 못하고 짤막하게 그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독신이었지만 에로스의 본능이 지시하는 대로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는 클림트. 고속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예술가의 길에 접어든 그를 보며 빈이 얼마나 자유로운 도시였는지를 알게 되었다. 중간중간 시련이 닥쳐도 자신의 길을 꿋꿋이 간 그의 모습에 반하게 되고 그가 평생을 곁에 둔 여인 플뢰게의 마음이 애달파진다. 그가 죽기 전 한 마지막 한마디 "에밀리를 불러줘!"가 귓속을 맴돈다.
#자신을 받아준 빈에게 프로이트가 남긴 큰 선물!
<"유대인들은 어떤 억압을 받는 억압에 저항한다. 가장 잔혹한 박해마저도 그들을 절멸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반대로 그들은 실제 삶 속에서 자신의 것을 지켜내는 능력을 보여주며, 그들을 받아들인 곳에서는 그들을 둘러싼 문명에 귀중한 기여를 한다."> -프로이트-<모세와 일신교>
유대인은 프로이트는 1860~1938년까지 78년을 빈에서 살았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한 집에서 47년을 살았다고 한다. 빈대학에서의 좌절도 그를 떠나게 하지는 못했다. 모노톤인 그의 삶은 연구의 연속이었으며 빈에서 정신분석의 입지를 다진다. 전쟁으로 인해 빈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프로이트는 얼마나 슬펐을까!
#음악의 도시 빈을 탄생시킨 모차르트와 베토벤
빈에 가면 어디서든 모차르트를 만난다고 한다. 모차르트 커피를 꼭 한번 마시고 싶어졌다. 모차르트는 빈에서 35년의 짧은 인생 중 마지막 10년을 보냈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일화와 그의 편지등이 적혀있어 생생한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모차르트가 겪은 생활고를 알 수 있는 누나에게 보내는 편지와 그의 슬픈 장례식에 가슴이 아린다. 빈 시민들은 모차르트를 보낸지 60년이 지나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지만 모차르트의 시체는 이미 찾을 수 없었다.
모차르트가 격려해 주었던 베토벤 역시 빈을 사랑한, 빈이 사랑한 천재 예술가였다. 그가 즐겼다는 산책로를 따라가며 서서히 청각을 잃어가는 그의 고뇌를 조금이나마 짐작해보았다. 자신의 곡을 지휘하고 나서도 기립박수를 듣지 못한 그를 한 여가수가 객석쪽으로 돌려 세워 그는 듣지 못했지만 눈으로 확인했다는 글에서는 잠시 숨을 멈추어야 했다. 모차르트를 허무하게 보낸 것 때문이었을까? 베토벤은 가족도 없이 눈 감았지만 장례식은 1만 명을 넘어선 사람들과 함께 했었다고 한다. 그의 끝모습이 쓸쓸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빈에서 살아 숨쉬는 건축물에서 만나는 아돌프 로스와 오토 바그너
건축에는 아는게 없는 내가 건축의 거장이라 불리는 로스와 바그너를 찾아가는 여행길에 오르면서 그들의 건축물이 기존에 빈의 건축물과 다름에 놀라게 된다. 장식을 범죄라고 말한 로스의 건물은 아무런 장식이 없어 오히려 주변의 화려한 건물보다 더 눈에 띈다. 심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건축물을 빈에서 실제로 보고 싶어졌다. 현대 건축의 거인이라 불린다는 바그너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의 삶이 흐르면서 건축의 모습도 변함을 알게 되었다. 건축에는 전혀 아는게 없는 나지만 그들로 인해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건축물들을 앞으로는 유심히 보게 될 것 같다.
#천재 예술가들을 찾아 떠난 여행,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한 건 아닐까?
빈을 대표하는 예술가 여섯명을 찾아 떠난 여행은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예술가 여섯명으로 빈을 설명한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빈을 사랑한 여섯명의 예술가들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가 담긴 것 같다. 기존의 아는 것과 달리 예술가가 자주 가는 카페나 산책로에 대한 설명은 재밌게 읽기 충분했다. 하지만 빈이란 도시와 그 예술가 사이의 사랑을 썼다고 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빈과 함께한 예술가라는 생각보다는 빈이란 곳에 살았던 예술가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다. 빈과 예술가들의 어우러진 이야기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