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1 - 신들의 보물에서 반지전설까지, 시대를 초월한 상상력의 세계
안인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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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동안 그리스 로마신화에 푹 빠져서 읽고 또 읽은 기억이 난다. 이름이 헷갈려서 이름을 외울려고 읽은 기억도 있고 학원에서 아이들과 틈틈이 놀 때 신화 이야기를 해주면 아이들의 눈망울이 수업때와는 달리 똘망똘망 해지는 게 보기 좋아서인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세상의 존재하는 것들의 이유를 말해준다는 것이었다. 과학적인 설명보다는 신들의 손에 의해서 그들의 사연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좋아했던 것 같다. 또한 신화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끝이 없이 이어질 이야기라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끝이 있어서 더욱 좋은 신화를 만났다.

 

북유럽 신화는 알프스 산맥 이북의 광범위한 유럽 지역에 퍼져있던 신화이다. 그리스 신화보다 더 앞섰건만 빛을 발하지 못한 것은 왜일까? 저자는 그 이유에 대해 문자를 들고 있다. 그리스 신화는 기원전 8세기 이전에 씌여진 것에 비해 북유럽 신화는 13세기에 문자로 정착 되었다고 한다.

 

북유럽 신화 속의 신들은 완전하지 않다.

최고의 신인 오딘은 애꾸눈이다. 그가 애꾸눈이 된 사연을 말하자면 오딘은 세상을 다르스기 위해 지혜가 필요했다. 그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끈질긴 노력과 오랜 탐구와 경험이 필요했다. 그래서 젊은 시절 오딘은 지혜를 얻기 위해 미미르의 샘을 찾아가 눈을 주고 지혜를 얻었다. 이 세계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우리가 애꾸눈인 오딘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몸만을 위함이 아닌 세계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애썼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딘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받은 거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지혜보다 더 귀한 보물은 없으니까. 지혜를 상징하는 미미르 역시 훗날 머리만 남아 샘을 지키게 된다.

 

그리스 신들의 화려함이 없는 북유럽 신들의 모습은 충동적이기도 하고 외모가 끌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북유럽 신들은 본능과 욕망에 충실하다. 화려한 가면으로 자신을 가리기 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 갖고 싶은 것을 있는 그대로 들어낸다. 그 모습이 친근한 건 인간의 마음과 비슷하기 때문인 건 아닐까?

 

종말을 알고 내달리는 북유럽 신들의 모습 역시 인간의 유한한 삶과 혹은 유한해 보이는 지구의 삶과도 닮아있다. 북유럽 신화는 게르만 종족이 이동하던 5세기의 모습이 담겨있는데 한 종족이 전멸했던 역사가 신화에 들어가 있다. 몰락과 죽음 이것은 신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내게 북유럽 신화는 충격이었다.

 

 게르만 종족이 북유럽 신화에 들어가 있다는 것은 즉, 인간의 유한함과 종말, 죽음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신화는 우리에게 주는 경고는 아닐까? 오딘신은 인간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 꿀술을 전해준 것은 아닐까? 훌륭한 시인이 되게 해준다는 꿀술을 인간에게 주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글로써 전하게 함으로써 경고를 하는 건 아닐까? 제대로 살라는 경고를.

 

종말이 예고된 신들의 이야기라고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분명 그리스 신화보다 화려하지 않지만 북유럽 신화 역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북유럽 신화에서 가장 좋아하게 된 로키신의 이야기가 좋았다. 장난꾸러기지만 스스로 만든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고(해결하는 과정이 그리 깔끔하지는 않지만;;;;) 보물에 눈멀지 않는 불의 신 루키는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 루키가 신들에게 전해주는 보물 이야기는 흥미롭다.

 

저자는 책을 두권으로 나누어 1권에서는 '보물'과 '모험' 2권에서는 '예언'과 '종말' 을 이야기 한다. 내게는 1권의 이야기는 황금빛의 이야기가 많았다면 2권은 어두운 빛을 내뿜는다. 어둡다해도 빨려들어가게 하는 이야기인 2권이 더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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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
이응준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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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 탓일까? 아니면  창 밖의 바람이 내게 이야기 하길 기다린 듯 창문을 열자마자 내 얼굴로 달려든 탓일까? AM 03:11. 이 새벽에 잠들지 못하고 찬 바람에 소름 돋은 팔을 모른 척하며 깊은 어둠을 응시하고 있다. 짙은 어둠은 완전한 검은색이 아니라 그 사이에 바람의 색이 뭍어있는 것 같다.

 

깊고 깊은 수렁 속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바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럴 때 생각나는 책이 얼마 전에 읽은 <약혼>이다.  이응준의 명성도 모르는 내가 이 책을 접하게 된 건 사랑이야기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지인이 추천해 준 책이기 때문이다. 사랑이야기라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지인이 말한 독특한 사랑이야기라는 말을 흘려들었던 나는 책의 독특함에 휩싸여 한동안 이 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난감했다.

 

깊은 어둠도 모잘라 그 곳에 안개가 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가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었다. 짙은 어둠과 안개로 휩싸인 책 속에서는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나에게 숨쉴 틈을 주었으며  투명한 이슬이 맺히는  문장들이 나를 빠져들게 했기 때문이다. 안개가 물방울이 된 느낌이랄까. (그 물방울을 느낀 건 책을 두 번째 읽고 나서였다.  한번의 만남으로는 그 속내를 알기 힘든 책이 많은 것 같다. 하긴 사람도 만남의 횟수마다 다르게 느껴지는데 많은 사연을 닮고 있는 책이야 오죽할까.)

 

<약혼>이라는 행복한 제목은 검은 표지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둠이 그 행복의 빛을 막고 있다. 하지만 행복이란 녀석이 워낙 강력해서 그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빠져나올 구멍을 만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책을 읽고서 떠오른 노래가 있었는데 <소울메이트>란 드라마에 나온 'This is not a love song' 이었다. 이 책은 그저 그런 사랑이야기기 아니었다. 사랑이야기라고 부르기엔 삶의 무게가 무거웠던 주인공들이 등장해서 가슴을 옥죄게 만들기도 하고 그들의 힘든 한숨을 그저 멀리서 지켜보게 만든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숨과 함께 나온 입김과 뿌연 담배 연기를 멍하니 바라보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작가가 만든 독특한 사랑이란 강에 주인공들과 빠져 있거나 작가의 아름다운 문체에 취해 있었다.

 

<약혼>은 총 9가지의 단편소설로 되어있다. 이 중에서 내가 조금이나마 이해한 것이 6개 아직은 더 읽고 생각해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가 3개이다. (그 중 1개는 뒤에 해설을 보고서도 도통 감을 잡지 못했다. 그 작품을 여러 번 읽다보면 이해가 될 수 있길 혹은 나만의 해석이라도 내릴 수 있길 바라본다. 그 중에서 한가지 이야기를 말해보자.

 

<누구는 누구에게 사랑했다고 말한다. 나는 모른다.

누구는 누구에게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나는 모른다.

누구는 누구에게 너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사랑했거나 사랑하지 않았거나, 나는 모른다. 나는 너를 모른다.

나는 묻고 싶다. 예전에 내 곁에 있던 그대여,

그때 정말 내 곁에 있기나 했던 것입니까? 나는 모른다.>   -내 어둠에서 싹튼 것

 

책이 첫 이야기인 <내 어둠에서 싹튼 것>의 내용은 한 남자의 애인이 자살했다. 그의 애인은 구년이나 그를 짝사랑했다고 고백한 후 애인이 된 지 칠 일째 새벽에. 아무도 그가 그녀의 애인임을 믿어주지 않았다. 가끔 자신의 분신을 본다는 그녀의 자살은 주인공 남자는 방관만하며 지켜보았던 삶에 개입하게 된다. 섬뜩한 이 세계로. 그녀가 남긴 염주와 함께. 그녀의 죽음과 함께 그의 교수님이셨던 문교수님도 간암으로 죽음을 맞게 되고 주인공은 죽음이란 사건(?)으로 인해 자신과 교수 그리고 그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고 산책을 한다. 교수의 유언에 따라. 그의 모습에서 나는 무엇을 본 걸까? 분노? 해탈?

 

약혼에 실린 9개의 단편들을 만나면서 헤어질 때면 나는 안개 속으로 인사를 하는 여인인 된 것 같았다. 선명해보이지 않는 인사, 헤어짐이 아닌 인사를 하는 기분. 그 아련함을 짧은 단편들과 인사할 때면 나는 아련함을 느꼈다. 다시 꼭 만나야 할 친구를 안개 속으로 보내는 듯한 기분과 안타까움 혹은 이른 아침 사랑하는 이를 타지로 보내는 서글픔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직은 이 책과의 만남이 끊어지지 않길, 다시 또 만나길 약속해야겠다. 그가 하고픈 말을, 그의 인사를 잘 보고 싶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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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표 이야기 -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정표.김순규 지음, 이유정 그림 / 파랑새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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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읽어서 다행이라고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책을 덮고 나선 길에는 아이가 서있다. 해맑다는 말은 얼굴만을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픈 사람이라고 아픔만을 이야기 햐는 것은 아니라고 알려준 한 아이가 내가 가는 길 곳곳에 서 있어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 하루였다. 아이만 서 있는 것은 아니였는지도 모른다.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놓여진 물 웅덩이는 발에 닿기도 전에 아스라히 하늘로 올라가버린다. 아이를 하늘로 보내놓고도 먼저 보낸 아픔에 흘린 어머니의 눈물이지는 않았을까.

 

<정표 이야기>란 솔직한 제목의 책은 정말 정표의 이야기이다. 백혈병에 걸린 정표가 쓰기 시작한 일기와 엄마의 글이 하루를 이야기 해준다. 이 일기는 정표가 하늘로 가기 전까지의 기록이 담겨있다. 1년 9개월, 그 시간동안 아이가 겪었을 아픔과 눈물, 어머니의 한숨이 책 한권에 다 들어있는데도 책을 든 손이 너무 가벼워 눈물이 나왔다.

 

아이가 겪었을 참담한 하루만이 있을거란 내 기대와는 달리 정표의 일기는 밝게 빛이 났다. 까만 하늘에 있다고 해서 별도 까만 것이 아니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정표는 까만 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닮았다. 정표가 별이라면 까만 하늘을 백혈병이란 어둠보다 더 무서운 병이다. 하지만 정표는 그  백혈병이 드리운 까만 하늘에서 누구보다 밝게 빛났다.

 

3월 3일 학교에 가야하는데 코피가 멎지 않아 병원에 간 정표는 백혈병이란 진단을 받고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이는 지루한 병원 생활에서 하루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한다. 유희왕 카드를 좋아하고 청국장을 좋아하는 해맑은 아이는 아픔을 너무 잘 참아서 오히려 눈물이 나게 하고 견디기 힘든 시간동안 자주 웃을려고 노력해서 오히려 눈물이 나게 한다.

정표는 자신의 병 앞에서 도망가려 하지 않고 왜 하필 나냐는 물음으로 시간과 눈물을 낭비하지 않았다. 어서 병을 낫기 위해, 다 나아서 힘드신 부모님께 효자아들이 되기 위해,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은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몸에 있는 힘이란 힘은 모두 짜내는 아이였다. 겨우 13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자신의 몸 안에 있는 힘을 모두 써서 병과 이겨내려고 했다.

 

아이의 글씨가 너무 예뻐서 그림을 너무 잘 그려서 글을 너무 잘 써서 나를 놀라게 한 아이.

그 아이가 빛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어머니는 끊임없이 정표의 학교 선생님, 정표의 친구, 자신과 같은 처지의 어머님들, 대통령님께도 이메일을 보낸다. 정표를 도와달라는 말도 있지만 감사하다는 말이 더 많은 어머님의 이메일은 나를 놀라게 한다. 아픈 자식을 둔 것만으로 팍팍한 심정이셨을텐데 오히려 누군가에게 힘을 주시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정표가 고스란히 물려 받았나보다.

 

골수이식을 정표가 받았을 때 나는 정표가 어떻게 되었는지 다 알면서도 바랐다. 정표가 살아주기를. 가족 중에도 맞는 골수가 없어 어떡하냐는 정표의 말에 엄마가 살려준다는 말을 했을 때 정표가 얼마나 믿었는지 알기에, 엄마의 심정이 어땠을지 알기에 맞는 골수가 나타났을 때 다 알면서도 그걸 몰랐다는 듯이 나는 빌었다. 아이의 일기가 희망과 기쁨으로 넘치던 그날의 일기를 잊지 못한다. 그 행복을 지켜보기만 해서 미안하다는 말만 되뇌었다. 정표의 일기가 시간이 흐를수록 짧아지면서 눈물을 흘리는 시간은 길어졌다. 정표의 엄마도 나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정표. 학교 친구들만큼 열심히 공부를 못해서 늘 걱정이던 정표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친구 누구보다 아주 열심히 잘했다고. 이 책은 정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정표가 원한 것, 엄마가 원한 것은 정표의 이야기를 읽고 많은 사람이 아픈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우리 주변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아주길 원한 것이다. 그리고 건강하게 이 책을 읽고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도.

 

별을 닮은 아이 정표가 하늘에서 밝게 빛나며 엄마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으며 밤하늘을 보며 나도 화이팅이라고 외쳐본다. 정표야, 고마워!  열심히 살아줘서! 그리고 사랑을 전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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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조선풍속사 - 조선.조선인이 살아가는 진풍경
이성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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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조선왕조실록>을 재밌게 본 나로서는 이 책의 출간 소식에 웃어야 할 준비를 먼저 했는지도 모른다. 저번 책처럼 밖에서 보다 혼자 웃는 일이 없도록 집에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펼쳐드는 순간 작가의 엉뚱함에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웃고 말았다. 십대 아이들이 자주 쓰는 말투를 이번에도 역시 책의 흥미를 위하여 곳곳에 숨겨 놓았고 웃음 가루를 책 중간마다 솔솔 뿌려 놓았다.

 

역사를 모르더라도 역사 속 뒤 이야기는 왜이리 재밌게 술술 읽히는 지 손에 잡은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다 읽어버렸다. 역사를 지루하다고 생각한 독자의 호기심 유발을 위해서 쓰여진 듯한 독특한 문체와 독자들이 흥미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소재들로 쓰여진 책은 <조선, 조선인의 살아가는 진풍경>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조선시대 생활에서 궁금하게 여겼던 부분 혹은 국사책만 보느라 조선 생활은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내게는 충격적인 사실도 있었고 호기심 해결 혹은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엽기 조선 왕조실록과 이 책을 보면서 가장 크게 깨닫는 것은 왜 똑같을까?

역사란 언제나 살아있고 숨을 쉬고 있다는 중학교 국사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할 수 없었던 까닭은 그 당시 내게 역사는 교과서에 있는 평면적인 글자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 과거에 일어난 일이 내게는 조금도 생생하게 와닿지 않아서 그저 나와는 상관 없는 과거로 남겨 두었는데 이 책을 통해 내가 깨닫는 것은 살아 있는 역사라는 것이다. 작가가 가볍고 현대 사회에서 십대들이나 화두로 올라오는 단어들을 사용함으로써 읽는 독자로 하여금 현재와 과거가 이어져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 문체로 인하여 작가는 역사를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다며 비난과 질타를 받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식대로 해석한 문체의 의미는 작가가 독자로 하여금 역사에 들어가서 동질감을 느껴보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받아들이기에도 파격적인 단어 몇개만 제외하면 나름대로 작가가 초대한 역사 속에서 거부감 없이 즐기다 온 것 같다. 마당극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고 대학 때 사물놀이 동아리가 광장에서 연극 비슷한 것을 했었는데 학생들의 몰입을 위해서인지 현대에 맞게 말투와 행동을 바꾸어서 공연을 했다. 그 공연을 보며 느꼈던 몇 백년 역사가 눈 앞에 펼쳐지는 생생함을 경험했는데 그것을 책에서 느꼈다.

 

조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책은 유교적 사회에서 이혼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양반들의 이혼전략(?) 부터 영화에서 여름에 상투를 튼 남자들을 보면 얼마나 더울까란 내 궁금증을 해결시켜 준 속알머리 없는 상투, 그 시대 최고의 생화확 무기인 '똥'의 위력 등은 한밤중에 웃게 만들어 같이 자는 친구까지 깨우게 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웃음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어찌 삶을 살아감에 있어 웃음만 나겠는가! 연시내에서 몸을 씻으며 흘렸을 환향녀(還鄕女)들의 아픈 눈물, 유교시대에서 스님들의 뼈아픈 고난과 고통들,  집안 재산을 거덜내는 신참관리들의 면신례는 씁쓸함을 건네주었고 왕의 사냥으로 인해 더욱 휘었을 백성들의 허리, 강대국 앞에서 숨 한번 크게 못 쉬는 아픔까지 책에는 웃음만이 아니라 한숨도 눈물도 가득하다.

 

엽기라고 불릴만큼의 자극적인 이야기 보다는 역사 밖에 서있게 하지 않고 역사 속으로 끌어들여준 책이었다. 그동안 몰랐던 역사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것과 관련된 역사를 찾아보게끔 하였다. 깊이의 부족함은 있었지만 그 깊이를 찾아보게끔 해주는 두레박이 되어주었다. 역사란 우물에서 두레박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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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이 사랑한 천재들 - 클림트에서 프로이트까지 도시가 사랑한 천재들 1
조성관 지음 / 열대림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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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라는 단어보다 빈이란 단어가 익숙한 것은 왜일가?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빈이라는 곳이 나라인가하며 궁금해한 나는 빈이 오스트리아의 수도였다는 것은 뒤늦게 생각이 났다. 빈이란 도시를 나라보다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그건 시대를 앞서간 천재들이 사랑한 도시가 빈이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흔적과 업적으로 인해 빈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빈에서 사람들은 천재적인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쫓으며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게 된다.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말대로  빈은 “2,000년에 걸쳐 국가를 초월한 수도”라고 할만큼 이미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는 예술이 살아숨쉬는 왕국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왜 빈을 사랑했나?

17~18세기 제국의 도시 빈으로 다양한 민족이 모여들었으며 그에 따라 복합문화가 형성되고 합스부르크 왕가는 예술을 장려했으며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빈을 '음악의 수도'로 키웠다. 빈이 음악의 수도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빈에는 프리랜서 작곡가들이 활동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빈 태생이 아닌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역시 빈으로 온 것은 빈에서는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하면서도 생계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때문이었다고한다.

음악으로 시작한 예술은 점점 커져 나가 18~20세기 초에 빈에서 활동한 예술가들은 엄청났다고 한다. 이 책은 그 중 6명의 흔적을 따라 빈을 여행한다. 그 여행길에 작가는 우리에게 피아커(마차)를 타보길 권한다. 마차에 편히 앉아 여행을 떠나는 순간 예술가들의 숨결에 분명 허리를 곧추세울 수 밖에 없다.

 

#왜 클림트는 학교 교과서에 실리지 않았을까?

20살이 넘어서야 클림트를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흥분했던가! 누구나 한번쯤 보았을 클림트의 <키스>.  그 그림에 반했던 왜 그를 이제야 알게 되었냐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그가 생각보다 아주 대단한 예술가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궁금했었다. 그의 작품은 교과서에 실리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은 빈의 첫 여행 테마에서 그 이유를 알았다. 클림트 앞에 붙는 수식어는 '몽환적 에로티시즘'이었다. 클림트의 그림에 반했다고 하면서도 그에 대한 것을 찾아보지 않은 내게 이 여행은 단비 같았다.

 

짧은 여행이라 자세히는 돌아보지 못하고 짤막하게 그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독신이었지만 에로스의 본능이 지시하는 대로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는 클림트. 고속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예술가의 길에 접어든 그를 보며 빈이 얼마나 자유로운 도시였는지를 알게 되었다. 중간중간 시련이 닥쳐도 자신의 길을 꿋꿋이 간 그의 모습에 반하게 되고 그가 평생을 곁에 둔 여인 플뢰게의 마음이 애달파진다. 그가 죽기 전 한 마지막 한마디 "에밀리를 불러줘!"가 귓속을 맴돈다.

 

#자신을 받아준 빈에게 프로이트가 남긴 큰 선물!

<"유대인들은 어떤 억압을 받는 억압에 저항한다. 가장 잔혹한 박해마저도 그들을 절멸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반대로 그들은 실제 삶 속에서 자신의 것을 지켜내는 능력을 보여주며, 그들을 받아들인 곳에서는 그들을 둘러싼 문명에 귀중한 기여를 한다."> -프로이트-<모세와 일신교>

 

유대인은 프로이트는 1860~1938년까지 78년을 빈에서 살았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한 집에서 47년을 살았다고 한다. 빈대학에서의 좌절도 그를 떠나게 하지는 못했다. 모노톤인 그의 삶은 연구의 연속이었으며 빈에서 정신분석의 입지를 다진다. 전쟁으로 인해 빈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프로이트는 얼마나 슬펐을까! 

 

#음악의 도시 빈을 탄생시킨 모차르트와 베토벤

빈에 가면 어디서든 모차르트를 만난다고 한다. 모차르트 커피를 꼭 한번 마시고 싶어졌다. 모차르트는 빈에서 35년의 짧은 인생 중 마지막 10년을 보냈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일화와 그의 편지등이 적혀있어 생생한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모차르트가 겪은 생활고를 알 수 있는 누나에게 보내는 편지와 그의 슬픈 장례식에 가슴이 아린다. 빈 시민들은 모차르트를 보낸지 60년이 지나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지만 모차르트의 시체는 이미 찾을 수 없었다.

 

모차르트가 격려해 주었던 베토벤 역시 빈을 사랑한, 빈이 사랑한 천재 예술가였다. 그가 즐겼다는 산책로를 따라가며 서서히 청각을 잃어가는 그의 고뇌를 조금이나마 짐작해보았다.  자신의 곡을 지휘하고 나서도 기립박수를 듣지 못한 그를 한 여가수가 객석쪽으로 돌려 세워 그는 듣지 못했지만 눈으로 확인했다는 글에서는 잠시 숨을 멈추어야 했다. 모차르트를 허무하게 보낸 것 때문이었을까? 베토벤은 가족도 없이 눈 감았지만 장례식은 1만 명을 넘어선 사람들과 함께 했었다고 한다. 그의 끝모습이 쓸쓸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빈에서 살아 숨쉬는 건축물에서 만나는 아돌프 로스와 오토 바그너

건축에는 아는게 없는 내가 건축의 거장이라 불리는 로스와 바그너를 찾아가는 여행길에 오르면서 그들의 건축물이 기존에 빈의 건축물과 다름에 놀라게 된다. 장식을 범죄라고 말한 로스의 건물은 아무런 장식이 없어 오히려 주변의 화려한 건물보다 더 눈에 띈다. 심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건축물을 빈에서  실제로 보고 싶어졌다. 현대 건축의 거인이라 불린다는 바그너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의 삶이 흐르면서 건축의 모습도 변함을 알게 되었다. 건축에는 전혀 아는게 없는 나지만 그들로 인해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건축물들을 앞으로는 유심히 보게 될 것 같다.

 

#천재 예술가들을 찾아 떠난 여행,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한 건 아닐까? 

빈을 대표하는 예술가 여섯명을 찾아 떠난 여행은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예술가 여섯명으로 빈을 설명한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빈을 사랑한 여섯명의 예술가들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가 담긴 것 같다. 기존의 아는 것과 달리 예술가가 자주 가는 카페나 산책로에 대한 설명은 재밌게 읽기 충분했다. 하지만 빈이란 도시와 그 예술가 사이의 사랑을 썼다고 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빈과 함께한 예술가라는 생각보다는 빈이란 곳에 살았던 예술가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다. 빈과 예술가들의 어우러진 이야기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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