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표 이야기 -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정표.김순규 지음, 이유정 그림 / 파랑새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낮에 읽어서 다행이라고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책을 덮고 나선 길에는 아이가 서있다. 해맑다는 말은 얼굴만을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픈 사람이라고 아픔만을 이야기 햐는 것은 아니라고 알려준 한 아이가 내가 가는 길 곳곳에 서 있어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 하루였다. 아이만 서 있는 것은 아니였는지도 모른다.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놓여진 물 웅덩이는 발에 닿기도 전에 아스라히 하늘로 올라가버린다. 아이를 하늘로 보내놓고도 먼저 보낸 아픔에 흘린 어머니의 눈물이지는 않았을까.
<정표 이야기>란 솔직한 제목의 책은 정말 정표의 이야기이다. 백혈병에 걸린 정표가 쓰기 시작한 일기와 엄마의 글이 하루를 이야기 해준다. 이 일기는 정표가 하늘로 가기 전까지의 기록이 담겨있다. 1년 9개월, 그 시간동안 아이가 겪었을 아픔과 눈물, 어머니의 한숨이 책 한권에 다 들어있는데도 책을 든 손이 너무 가벼워 눈물이 나왔다.
아이가 겪었을 참담한 하루만이 있을거란 내 기대와는 달리 정표의 일기는 밝게 빛이 났다. 까만 하늘에 있다고 해서 별도 까만 것이 아니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정표는 까만 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닮았다. 정표가 별이라면 까만 하늘을 백혈병이란 어둠보다 더 무서운 병이다. 하지만 정표는 그 백혈병이 드리운 까만 하늘에서 누구보다 밝게 빛났다.
3월 3일 학교에 가야하는데 코피가 멎지 않아 병원에 간 정표는 백혈병이란 진단을 받고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이는 지루한 병원 생활에서 하루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한다. 유희왕 카드를 좋아하고 청국장을 좋아하는 해맑은 아이는 아픔을 너무 잘 참아서 오히려 눈물이 나게 하고 견디기 힘든 시간동안 자주 웃을려고 노력해서 오히려 눈물이 나게 한다.
정표는 자신의 병 앞에서 도망가려 하지 않고 왜 하필 나냐는 물음으로 시간과 눈물을 낭비하지 않았다. 어서 병을 낫기 위해, 다 나아서 힘드신 부모님께 효자아들이 되기 위해,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은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몸에 있는 힘이란 힘은 모두 짜내는 아이였다. 겨우 13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자신의 몸 안에 있는 힘을 모두 써서 병과 이겨내려고 했다.
아이의 글씨가 너무 예뻐서 그림을 너무 잘 그려서 글을 너무 잘 써서 나를 놀라게 한 아이.
그 아이가 빛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어머니는 끊임없이 정표의 학교 선생님, 정표의 친구, 자신과 같은 처지의 어머님들, 대통령님께도 이메일을 보낸다. 정표를 도와달라는 말도 있지만 감사하다는 말이 더 많은 어머님의 이메일은 나를 놀라게 한다. 아픈 자식을 둔 것만으로 팍팍한 심정이셨을텐데 오히려 누군가에게 힘을 주시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정표가 고스란히 물려 받았나보다.
골수이식을 정표가 받았을 때 나는 정표가 어떻게 되었는지 다 알면서도 바랐다. 정표가 살아주기를. 가족 중에도 맞는 골수가 없어 어떡하냐는 정표의 말에 엄마가 살려준다는 말을 했을 때 정표가 얼마나 믿었는지 알기에, 엄마의 심정이 어땠을지 알기에 맞는 골수가 나타났을 때 다 알면서도 그걸 몰랐다는 듯이 나는 빌었다. 아이의 일기가 희망과 기쁨으로 넘치던 그날의 일기를 잊지 못한다. 그 행복을 지켜보기만 해서 미안하다는 말만 되뇌었다. 정표의 일기가 시간이 흐를수록 짧아지면서 눈물을 흘리는 시간은 길어졌다. 정표의 엄마도 나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정표. 학교 친구들만큼 열심히 공부를 못해서 늘 걱정이던 정표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친구 누구보다 아주 열심히 잘했다고. 이 책은 정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정표가 원한 것, 엄마가 원한 것은 정표의 이야기를 읽고 많은 사람이 아픈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우리 주변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아주길 원한 것이다. 그리고 건강하게 이 책을 읽고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도.
별을 닮은 아이 정표가 하늘에서 밝게 빛나며 엄마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으며 밤하늘을 보며 나도 화이팅이라고 외쳐본다. 정표야, 고마워! 열심히 살아줘서! 그리고 사랑을 전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