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숲에는 거북이가 없다
로이스 로리 지음, 서남희 옮김 / 양철북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서점에 자주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할까? 그 책의 제목도 작가도 처음 듣지만 서점에 들어가게 되면 자연스레 만나게 되는 책이 있다. 구석진 책장에 꽂혀있는데도 한눈에 그 책의 제목이 내 눈에 띄어 들어본 책인가 하고 뒤적거리지만 처음 만나는 책이라 관심을 주지 않고 다시 내려놓는다. 그 후 그 책을 잊을만큼의 시간이 흘러 어느날 다른 서점에 가서 책을 보다가 또 다시 한권의 책이 눈에 띈다. 전에 그 책이다. 왜일까란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그 책을 손에 들고 나오게 되는 것이다. 내 눈에만 띄는 구석 자리에 있던 책을.

 

여섯 살의 엘리자베스가 책의 주인공이다. 이건 엘리자베스의 아주 오래 전 일일 것이다. 하지만 책 속의 엘리자베스는 여섯 살이다. 금발머리가 너무 귀여운 아이는 부모님과 예쁜 어니와 함께 뉴욕에 살고 있다.

 

<거리낌없이 붓질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난 내가 그린, 선이 뚜렷한 언덕과 연두빛 들판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가 좋았다. 무엇보다 멀리 있는 언덕과 하늘이 맞닿은 부분이 좋았다. 내 그림에서 유일하게 그 부분만은 두 가지 물감이 서로 번지게 그렸다. 실제로 시골에서 바라보면 저 멀리 하늘과 언덕이 만나는 곳의 빛깔이 선명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그렇게 그린 것이다.  -p.18>

 

그림을 잘 그리는 엘리자베스는 유치원에서 주는 우유를 먹기 싫어하고 전쟁이 뭔지도 모르고 펄 하버(진주만)가 기습 공격을 받았다는 말에 구멍가게의 아줌마를 생각한다. 엄마가 왜  전쟁이란 말에 눈물을 흘리는지도 모르고 유치원 짝꿍과 손을 잡고 지하철 역까지 달려야 하는 공습훈련과 전쟁이 무슨 상관인지도 모른다. 그저 그 시절에 엘리자베스가 싫어하는 일을 어른들이 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을 뿐이다. "전쟁 때문에!"

 

<그날 저녁, 아빠가 전쟁에 나가게 됐다고 엄마 아빠가 우리에게 말했다.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묻자 태평양이라고 했다.(중략) 그 하늘에서는 여러 빛깔이 부옇게 번져 보일 것만 같았다. 눈물이 끌썽글썽한 눈으로 바라볼 때처럼  -p.21>

 

아무리 전쟁이라고 해도 엘리자베스는 슬프다. 그건 아빠가 전쟁을 하러 태평양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빠의 군복이 아주 멋지고 군복을 입고 장난을 치는 것은 재밌지만 아빠가 가는 것은 싫은 엘리자베스. 그 아이는 말한다. 태평양을 보지 않아도 어떤 곳인지 알 것 같다고. 그 곳은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보는 것처럼 아픈 곳, 슬픈 곳이라는 것을 안다고.

그곳으로 아빠를 보내는 엘리자베스는 슬픔으로 가득차지만 곧 잊는다. 여섯 살은 다 그런거니까. 하지만 아빠가 꼭 돌아오길, 최대한 빨리 돌아오길 바라는 아이다.

 

<나는 어둠 속에서 '말도 안 돼!'라고 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그 날 응접실에 모인 어른 중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가 아기가 필요하대? 남자, 특히 아빠들이 전장에서 죽어 희미하고 아련한 지평선 너머로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엄마와 할아버지와 여자 아이가 아기만 데리고 집에 남겨지다니. 이건 말도 안 돼. 아기는 안아 달라고, 돌봐 달라고 울어 댈 텐데, 안아 주고 돌봐 주던 아빠를 데려가고 그 자리에 훨씬 더 작고 힘 없는 아기를 보내 주다니, 무슨 자연의 이치가 그렇담? -p.30>

 

이 부분에서 웃음을 지어야 할지 숨을 내쉬어야 할지 난감했다. 펜실베니아로 전쟁을 피해 간 엘리자베스는 할아버지 집에서 지낸다. 곧 동생을 낳을 엄마를 위해서 방이 너무 많아 자꾸 헤매게 되는 할아버지 집으로 간다. 그곳에서 엘리자베스는 남동생을 갖게 된다. 남동생이 태어나면 안된다고 그토록 기도했지만 남동생이 태어났지만 엘리자베스는 고든이란 이름의 남동생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고든은 사랑스런 아기라는 것을 알았기에 엘리자베스는 아빠가 무사히 돌아오시길 기도하기로 했다. 꼭 무사히!

 

엘리자베스는 할아버지 집에서 흑인인 테이티 가정부의 손자 찰스와 친구가 된다. 찰스를 좋아하게 된 엘리자베스는 왜 찰스가 자신의 집에 들어오면 혼이 나는지 왜 자신은 찰스가 사는 동네에 가면 안되는지 모른다. 찰스와 자신의 피부색 차이가 대체 무슨 상관인지 알 수 없다. 그건 어른들의 규칙이므로. 하지만 할아버지 집 마당에서 찰스와 노는 것은 괜찮으므로 엘리자베스는 찰스와 함께 재밌게 시간을 보낸다. 찰스와 함께라면 오텀 거리 끝에 있는 숲에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친구들이 그곳에 백살이 넘는 거북이를, 무지무지하게 커져 식탁만한 거북이를 버린다고 해서 무섭지만 찰스와 함께라면 갈 수 있을 것 같은 엘리자베스다.

 

<그건 오래 전 일이었다. '더 이상 나쁜 일은 없을 거야.'라고 했지만 아빠와 난 진짜로 그렇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봄에 우리는 그런 거짓말이 필요했고, 그렇게 시치미를 떼야 했다. 우린 둘 다 너무 큰 것을 잃은 것이다.

-p.215>

 

이 책은 엘리자베스의 성장기이다. 여섯 살에서 일곱살이 되는 시간동안 엘리자베스가 겪은 아픔에 대한 이야기 일 수도 있다. 할아버지가 쓰러지셔서 겪은 아픔과 이웃집에 사는 친구노아가 죽어버린 아픔과 더 큰 아픔을 겪는 엘리자베스는 가슴으로 아픔을 채워나가고 테이티의 손길에 위로받으며 성장해나간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는 아픔보다는 확실히 삶의 아름다운 것들이 더 많았다. 푸르른 숲과 테이티의 따뜻한 품 속, 엄마의 부드러운 손길, 고든의 귀여운 머리카락, 언니의 다정한 목소리 그리고 할머니의 투박하지만 사랑이 담긴 것을 알 수 있는 말투까지 그 시절에는 아름다운 것이 분명 더 많았기에 엘리자베스는 웃는 날이 더 많다.

 

누구나 아픔을 간직 할 수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역시 이전의 아픔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큰 아픔과 슬픔을 겪지만 시치미 떼는 법을 배운다. 어른들이 자신의 아픔을 속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세상에는 아프다고 소리 질러야만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자신의 상처로 인해 누구나 아픔을 간직한 채 시치미를 떼고 있다는 것을 엘리자베스는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보내고 슬쩍 모른척 해줄 수도 있는 마음 깊은 아이가 되어간다.

 

여섯 살 엘리자베스가 감당하기에는 아픈 추억. 그래서 일곱 살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는 엘리자베스. 시간을 흐르고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는 것이다.

 

 

-----------------------------좋았던 구절--------------------------

<나는 루이즈와 루이즈네 식구와 집을 가끔 떠올리며, 거기에 가 있으면 왜 그렇게 행복한지 생각해 봤따. 찰스와 찰스의 엄마와 테이티도, 그리고 내가 가면 안 되는 찰스네 집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문든 우리 가족 모두 언니의 종이 인형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름 잡힌 종이 파일에 깔끔하게 정리된 인형, 분류표까지 붙어 있는 인형. 언젠가 거대한 손이 그 종이 파일을 뒤엎어, 그 속에 든 우리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뒤섞어 버렸으면......그래서 나중엔 우리가 원래 누구였는지, 어디에 속했었는지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결국 그런 것 따윈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p.161>

 

<릴리언은 여느 때와 달리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그제야 난 깨달았다. 그런 행동은 할로윈 축제 때 내가 가면을 쓰는 것처럼 마음을 가리는 것임을.  -p.181>

 

<"넌 우는 게 쉽겠지, 엘리자베스. 너는 잘못을 저지른 다음에 들켜도 울고 발가락만 어디 부딪혀도 우니까. 하긴 나도......나도 잘 우는 편이지.

하지만 네 할머니가 순복음 교회에 오셔서 찰스를 위해 우신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어.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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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되기 전에 꼭 읽어야 할 만화 국어 교과서 1 - 맞춤법 되기 전에 시리즈 4
고흥준 지음, 마정원 그림, 정호성 감수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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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나를 가장 난감하게 했던 것은 아무리 반복해서 말해도 계속해서 틀리는 아이들이 맞춤법이었다. 글을 읽고 듣고 쓰는 것만으로는 맞춤법의 벽을 넘을 수 없다. 나 역시도 맞춤법을 몰라 틀리는 글자가 수두룩하며 한글 프로그램으로 맞춤법 검사를 할 때면 잘못 쓰인 글들을 교정하느라 시간을 많이 보낸다. 아이들의 맞춤법을 교정해주면서도 고개가 갸웃거릴 때가 많다.



몰라서 찾아보았던 맞춤법들도 하루만 지나면 아리송하다보니 시간이 흐르면 다시 제자리인 맞춤법 실력이다. 맞춤법을 제대로 알려면 끊임없이 찾아보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라서 나처럼 어려워하지 않으려면 어렸을 때부터 맞춤법을 바로 알아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 집 화장실에는 성제훈님의 <우리말 편지>가 놓여있다. 몰랐던 우리말이나 잘못 썼던 우리말을 하루에 한 개라도 살펴보다 보니 자연스레 몸에 익숙하게 바른 우리말이 베게 된다.



아이들에게도 일찍 맞춤법을 알려주고 싶지만 아이들은 줄글로만 된 맞춤법 책은 읽으려 들지 않는다. 그런 아이들에게 반가운 책이 나왔는데 바로 <중학생이 되기 전에 꼭 읽어야 할 만화 국어 교과서 1-맞춤법>이다. 책의 장황한 제목보다 내 눈을 끄는 건 맞춤법과 만화라는 단어였다. 메이플 스토리 과학 만화와 한자를 알려주는 마법 천자문을 보고 또 보는 아이들을 얼마나 많이 봐왔던 터라 아이들이 싫어하는 맞춤법도 만화와 함께라면 자연스레 머리에 쏙쏙 들어올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권하기 전에 책을 읽고 나서 제일 처음 든 생각은 다행이었다. 아이들에게 먼저 읽혔다면 분명 아이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당황하는 어른이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중학교에 가기 전에 읽는 책이라고 해서 가볍게 본 내게 책은 충격이었다. 중학교를 넘어 20대 후반인 내게도 잘못 쓰는 단어와 문법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특히 띄어쓰기에서 잘못 쓰는 부분이 참 많았으며 이제는 가물가물한 모음조화와 두음법칙을 다시 배우며 그동안 잘못 써 온 맞춤법들을 바르게 고쳐 쓰느라 혼이 났다. (이 글을 쓰면서도 얼마나 걱정이 되는지 모른다. ^^;;;;)  내게는 여러 이유로 고마운 책이 될 것 같다.


#이거 공부하는 책이야? 너무 재밌는 걸!

덩치가 큰 자이언트 판다 대마왕이 붙잡혀 온 사람에게 맞춤법 문제를 낸다. 많은 사람들이 틀리는 가운데 우리의 맞춤법 용사가 나타나 '모음조화 파괴 장풍'을 쏘며 판다를 물리친다. 장풍으로 마법이 풀린 판다 대마왕은 귀여운 새끼 판다로 바꾸게 되면서 맞춤법 용사와 함께 서울로 돌아온다. 맞춤법 용사는 서울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맞춤법 용사 꼬주 아저씨는 첫사랑 소녀에게 쓴 편지에 맞춤법이 무수히 많이 틀려 창피를 당한 후에 맞춤법 공부로 맞춤법 용사가 된 것이다. (등장인물 소개에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꼬주 아저씨와 판다와 함께 등장하는 어린이 영원이는 아이들에게 친근감 있게 다가온다. 웃음이 나오는 판다의 행동은 자칫 지루하기 쉬운 맞춤법 공부에 활력을 주고 깔끔한 꼬주 아저씨의 설명은 박사님 저리가라다. 또한 영원이는 맞춤법을 초등학교 아이들이 적용할 수 있게 쉬운 예시를 많이 들어준다.


쉬는 시간 담당 판다와 정리 쏙쏙 꼬주 선생님과 수업시간을 도와주는 영원이 학생까지

있는 수업 시간은 지루할 틈이 없다.



#형태소에서 맞춤법 그리고 띄어쓰기까지 한방에!

꼬주 아저씨는 아이들이 잘못 쓰는 맞춤법을 고쳐주고 싶은 착한 마음을 가진 분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아이들에게 이건 이렇게 외우라며 윽박지르지 않고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형태소부터 어간과 어근, 사이시옷과 친구가 되는 방법을 설명과 함께 예도 많이 들어주신다.


예) 사이시옷과 친구가 되기 (우리말과 우리말이 만났을 때)

1.뒷말의 첫 소리가 된소리로 날 때 사용-나뭇가지 [나무+가지=나뭇가지(나무까지)]

2.두 낱말이 합쳐질 때 뒷말의 첫소리 'ㄴ,ㅁ' 앞에서 'ㄴ' 소리가 덧나면 사이시옷을 넣는다.     -냇물[내+물=냇물(낸물)]

3.두 낱말이 합쳐질 때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소리가 덧나면 사이시옷을 넣는다.

-나뭇잎[나무+잎=나뭇잎(나문닙)


예)사이시옷이 들어가지 않는 낱말들도 알아보자.

-대가(代價)시점, 초점, 머리말, 예사말, 동아줄, 인사말, 해님, 위쪽, 아래쪽


아이들이 어느 정도 적응했다 싶으신 꼬주 아저씨는 그 다음은 한 단계 높여서 모음조화를 비롯한 역행동화, 두음법칙 등을 여러 번에 걸쳐 설명해주시고 정리도 한 눈에 알아보게 해주신다. 그것만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잘못 알고 있는 말들을 바로 잡아주시고 띄어쓰기 역시 상세하게 많은 예를 들어서 알려주시기에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예)모음동화

양성 모음-밝고 명랑함-ㅏㅑㅓㅛ (알록달록, 졸졸, 아장아장)

음성모음-무겁고 어두음-ㅓㅕㅜㅠ (얼룩덜룩, 줄줄, 어정어정)


예)잘못 쓰이는 말들

-칠흑(ㅇ) 칠흙(X), 웬(ㅇ) 왠(X)-왠으로 써야 할 때는 '왠지' 하나뿐.

-아등바등(ㅇ) 아둥바둥(X), 며칠 (ㅇ) 몇일 (X),



또한 이 책의 장점인 숨겨진 우리말을 찾아보는 것도 좋았다. 비에 관련된 우리말 중 내가 아는 것이 10개도되지 않았다는 것이 충격이었지만……. 주변의 여러 사물이나 현상 혹은 고사성어 등을 이용해 아이들에게 조금 더 가깝게 맞춤법을 알려주려는 꼬주 아저씨의 자상한 마음이 돋보였다.


#가슴 따뜻한 이야기는 보너스!

좋아하는 일을 하느라 가난한 꼬주 아저씨와 어머니와만 사는 영원이의 우정이야기는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일을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영원이는 꼬주 아저씨께 맞춤법을 배우며 우리말을 소중히 여겨야 하며 맞춤법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 가며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을 하게 된다.


또한 꼬주 아저씨의 첫사랑이 영원이의 어머니라는 암시가 담겨있어 책이 끝난 후에도 살짝 상상 해보게 된다. 꼬주 아저씨와 영원이 어머니의 만남이 책 속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 책의 2편이 나온다면 분명 만날 것 같다. (잿밥에만 관심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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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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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덮고 내가 한 일은 독일의 드레스덴을 인터넷으로 찾아 본 것이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드라스덴은 아름다운 도시였으며 독일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손꼽히는 건물들이 많았다고 한다. 사진만으로 본 드라스덴은 정말 아름다웠으며 건물들 역시 사는 동안 한번은 꼭 직접 보고 싶을 만큼 멋졌다.



하지만 많은 사진들마다 공통된 글은 아직 복구중이라는 것이었다. 미국이 자행한 드라스덴의 폭격 후 50년이 지났음에도 지금도 복구중이라고 했다. 생명이 없는 건물도 전쟁의 흔적을 복구하는데 50년이 걸리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오죽할까란 생각이 들었다. 드라스덴의 폭격 중 살아남은 저자 보네거트와 책 속에서 그의 분신인 빌리 필그림은 오죽했을까!


#제목 살펴보기


1.제 5도살장 -(슐라흐토프-퓐프:Slaughterhouse-Five)


-이 책의 제목인 제 5도살장은 미국인 빌리 필그림이 독일 포로가 되어 드라스덴에 있는 5 도살장에서 지내게 된다. 알다시피 도살장은 동물을 도살하는 곳이지만 전쟁으로 독일 내의  굽 달린 동물은 거의 다 도살되어 텅텅 비자 이번에는 미국인 포로들이 머물게 된 곳이다. 이 곳이 제목이 된 이유는 하나, 드라스덴의 폭격 당할 때 빌리 필그림이 그 곳에 혹은 저자가 그 곳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혹은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

-보네거트의 친구의 부인인 메리에게 보내거트가 약속을 했다. 이 책이 완성되는 일은 없을 테지만 완성이 된다면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이라고 붙이겠다고. 책 속의 약속은 이루어졌다. 책이 완성되었으므로. 전쟁에 나오는 군인들은 모두 젖비린내 나는 애들에 불과하다는 메리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에 더 슬프다. 전쟁에 나가는 젊은이들 중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몇 명이가 되겠는가? 그렇기에 전쟁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제대로 된 판단은 군대나 혹은 정부가 내려준다고 믿으므로. 그저 행하기만 하면 된다. 옳은 일이 아닌 할 수 있는 일을.



<"알다시피, 우리는 여기 있으면서 전쟁을 머릿속으로만 생각해야했네. 그래서 전쟁을 우리처럼 나이든 사람들이 치르고 있다고 상상했지. 전쟁에서 싸우는 것은 아이들이란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어. 면도를 하고 난 얼굴들을 보았을 때, 그건 충격이었네. 나는 혼자 이렇게 말했지. '하느님 맙소사. 이건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이야.'" -p.127>


3.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

전쟁이라고 하는 것에는 승리한 나라는 있을지라도 승자와 패자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죽은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산 사람도 있다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전쟁이 끝난 후에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시름시름 앓아가는 이들만이 남는 건 아닐까? 이 책의 빌리가 그러하며 저자가 그러할 것이며 전쟁을 겪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국가는 전쟁을 원했을지라도 사람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의무가 아니라면 그 섬뜩한 춤을 누가 추겠는가? 평생을 빨간 구두를 신은 채 춤을 춰야 하는데!


#시간여행 혹은 정신분열증,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은가!

책은 시작도 전에 비행접시를 보내오는 행성 트랄파마도의 전보문 형식으로 쓴 정신분열성 소설이라고 말해준다. 주인공 빌리 필그림은 시간에서 해방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의 죽음과 탄생을 여러 번 보았으며 그 사이의 모든 시간을 무작위로 찾아간다고 하니 그가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게 되니 그 말은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여행이 즐거운 것만은 아니라고 하는데 이유는 그의 시간여행은 본인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 아닌 그 시간 속에 사는 자신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여행을 할 때마다 무대가 바뀐다면 그 여행이 즐겁기만 하겠는가!


트랄파마도란 이름도 이상한 행성의 외계인들에게 납치되어 시간 여행을 하게 된 그를 따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주 무대는 대체로 전쟁터였다. 이등병인 빌리는 그저 다른 사람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결국 포로가 되고, 결국 드라스덴 폭격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된다. 그가 살아남은 것은 축복일까를 생각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은 정말 사실인지 의심될 만큼 그의 생은 끔찍하고 안타깝다. 죽음 뒤에도 죽지 않음을 알고 있는 빌리를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하고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 걸까? 그에게 몇 번이나 전쟁터로 돌아가지 말라고 책을 읽는 내내 말하지만 시간여행은 시간 마음인 걸.


처음에는 외계인에게 빌리가 납치된 것을 믿었는데 중반에는 이사람 혹이 미친 거 아냐 라는 심정이었다가 끝에는 그래,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견딜까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트랄파마도가 빌리가 만들어 낸 허구의 세계고 그의 시간 여행은 환각이라고 해도 어떤가? 그가 전쟁의 섬뜩함에도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괜찮다는 생각이다. 트랄팔마도인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게 뭐가 나쁜가!


<“오늘은 그렇소. 다른 날들은 당신이 보았거나 읽은 어떤 전쟁보다 잔혹한 전쟁을 벌이지. 우리가 전쟁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보지 않을 뿐이오. 무시해버리는 거지. 우리는 영원토록 즐거운 순간들만 보며 지내요. 오늘 동물원에서처럼. 이 순간은 정말 멋지지 않소?” > -p.140






#그렇게 가는 거지, 그렇게 보내서 미안했어요.

이 책의 명대사인 '그렇게 가는 거지.'를 책에서 수십 번이 넘게 본 것은 확실하다. 처음에는 이 말을 읽을 때 따라하며 웃음이 낫다. 웃어서는 안 되는 웃기는 책이라는데 나는 웃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게 가는 거지를 5번도 따라하기 전에 그들은 그렇게 가면 안 되는 거였다. 빌리는, 작가는 그렇게 가는 거지를 적을 때마다 혹은 말할 때마다 얼마나 울었을까? 눈물도 나지 않는 울음으로. 


전쟁을 경험하게 만들지 않는 책이다. 영웅도 없고 멋진 장면도 없고 전쟁의 잔인함만이 기계적인 모습으로 움직이는 사람만이 있다. 그들이 기계인지 사람인지 누가 구분하겠는가!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그렇게 보내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보내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해서는, 울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주인공 요조의 말처럼 무저항이 죄가 되게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저 의무를 다한 것인데 그것이 평생을 괴로움 속에 살아도 벗겨지지 않는 족쇄가 될 것임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전쟁으로 내보내면 안 되는 것이었다. 전쟁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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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유 - Everyone Says
이미나 지음 / 갤리온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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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나쁜 거야? 사랑하는게 나쁜 거야? 왜 사랑하지 말라 그래? 내가 잘못 된거야?"
라고 소리를 지르며 서럽게 운 적이 있다. 말을 하면서 억지인 줄 알면서도 소리치는 내게 그 사람은 너무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너무나 당연한 말을 했다. "미안해."라고.  그 해 가을은 그리 춥지 않은 날씨에도 가슴이 얼어붙었으며 해님의 방긋 웃는 얼굴에도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돌아봐 주겠지, 조금만 더 너를 바라보고 있으면 뒤돌아 봐주겠지라는 마음으로 지낸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얼마나 혼자 울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약간 저리다.
 
그 사람의 끝이란 말에 어떠한 기대도 가질 수 없을 때 내게 필요한 건 단 하나였다. 어쩌면 내게 필요했던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나처럼 아픈 이들이었다. 아무리 친구들에게 위로받아도 내 마음만이 세상에서 제일 아픈 것처럼 친구들에게 너희는 나를 이해 못한다며 울고 또 울었다. 그때 만난 책이 <그 남자 그 여자>였다. 이소라의 음도 꽃순이를 자청하며 울고 불며 그 이야기를 들었던 내게 그 책만큼 위로가 된 것은 없지 않았을까 한다. 내 마음을 들여다 본 것처럼 적힌 글들을 보며 얼마나 눈시울을 붉혔는지, 책의 귀퉁이가 얼마나 낡았는지 모른다.
 
내 마음의 상처에 복합 마데카솔을 발라준 사람이 이미나 작가였음에 이번 책도 나오기 전부터 눈에 찜해 두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은 책은 <그 남자 그 여자>의 업그레이드라고 해야 좋을지 한편의 드라마라고 해야 좋을지 연애소설이라고 해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가슴을 아리는 이 이야기가 드라마라고 하자니 가짜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싫고 연애소설이라고 하자니 책 속에 담긴 한숨과 눈물이 너무 무겁다.
 
<모두가 지현과 진철 같으면 좋을 텐데, 사랑이 셋이서도 할 수 있는 것이면 좋을 텐데, 사랑은 둘이 해야 가장 좋은 것이라, 쫓고 쫓고 쫓기는 사랑 속에서 이 주의 세 사람은 슬픈 바보가 되었다. 아니 한 명의 바보가 더 있을 수도 있다. 동희의 소중함을 모르는 이성재 바보, 마음 떠난 사람을 놓지 못하는 김동희 바보, 그런 동희만 쳐다보는 이동욱 바보, 그런 동욱의 마음 아파 어쩔 줄 모르는 이승민도 바보.......>
 
옛 사랑을 못 잊어하는 남자를 사랑해서 그 남자에게 큰 소리 한번 못 내고 항상 행복한 척 하는 여자 김동희,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단짝으로 남아 있으며 남자친구와 헤어진 동희를 보며 더 아파하는 남자 이동욱, 동희를 떠나 결혼한 옛 연인에게 가고서 뒤늦게 동희의 소중함을 깨달은 바보같은 남자 이성재, 오랜 짝사랑에 아파하는 이승민을 그 만큼의 오랜 세월동안 짝사랑하는 안타까운 남자 이승민이 이 책의 바보 4총사이다. 여기에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 떠난 남자를 사랑했던 동희 엄마 송자의 새로운 사랑남의 등장과 풋풋한 사랑을 하는 진철과 지현 은근히 귀여운 동희의 이모 금자씨까지 책은 많은 이들의 한숨과 눈물 혹은 행복한 웃음이 담겨있어 읽는 동안 가슴으로 그 무게를 다 느껴야 했다.
 
가끔 사랑할 때면 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어서 미련한 짓을 하게 될 때가 있다.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자존심을 버리는 말들도 하고, 정말 미련하게 그저 바라만 보며 혼자 울기도 한다. 그런 행동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단념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그러는 것이다. 아프면서도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면서도 일부러 그러는 것이다. 그것밖에 할 수 없어서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되는 게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이다.
 
신기한 것은 사랑하고 있을 때도 사랑하지 않을때도 이미나 작가의 책은 가슴을 내려앉게 한다는 것이다. 이 책 역시 일방향인 사랑들 때문에 속이 타들어가고 내 일인양 눈물을 훔치게 되기도 하고 가장 큰 부작용인 옛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하루종일 흐린 하늘처럼 내 마음도 이 책과 함께 흐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좋았던 것은 흐린 하늘은 비를 내린 후에 반드시 맑게 개인 다는 것이다.
 
이 책 역시 읽고난 후 옛사랑에 아팠던 마음이 참 많이 아물었구나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그 당시에는 죽을 것만 같던 아픔도, 상처도 시간이 흐르면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건 왜일까? 어쩌면 시간이 약이란 말은 시간이 흘러 그 상처를 감당할 나이로 만들어주기 때문은 아닐까? 한 살 더 먹고나자 아팠던 그 일을 떠올리는 내가 신기할 때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약은 아니지만 그 상처를 견딜만큼의 성장을 하게 해준다고.
 
오랜만에 감성자극제가 되어 준 책이었다. 싱그런 봄바람을 타고 어디로든 날라가고프게 만들거나 혹은 사랑을 하고 싶게끔 만드는 책이다.
 
"슈퍼 칼리 플라질리스틱 이쉬틱알리 도시틱!  슈퍼 칼리 플라질리스틱 이쉬틱알리 도시틱! "
 
행복해지는 주문 하나 외워본다. (책에서 지현이가 말한 주문, 메어리 포핀스 영화에서 본거란다)
 
또 하나 잊고 싶지 않은 말이있다.
 
 
"동희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비상금처럼 꺼내 쓰는 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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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문라이트
이재익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달을 좋아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 일까? 시골이 집이라 고등학교까지 차로 한시간이 되는 거리를 통학한 적이 있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면 밤 11시쯤이었는데 그때 차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길이 무섭지 않은 건 달빛 때문이었을 것이다. 까만 밤 차가운 바람에도 혼자가 아닌 것 같아서 달을 보며 집으로 돌아왔다. 달을 밖에다가 두고 나만 돌아온 것이 미안하다는 어느 동화 속 올빼미의 말처럼 홀로 두고 온 달에게 미안해서 창문을 열고 자서 혼난 적이 많았다.

 

달을 계속 올려다 보고 있으면 달빛에 젖을 때가 있다. 달빛에 젖는 밤이면 무언가 신비로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은은한 두근거림이 달을 보는 내내 가슴에 차오른다. 그 두근거림이 좋아서 밤이면 자연스레 하늘을 올려다 보고 간혹 구름이 달에게 이불을 덮어주면 입으로 바람이라도 불어 구름을 벗겨내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만큼 달을 좋아하는 내게 친구가 준 이 책은 손에 잡는 것만으로 두근거렸다. 달과 사랑이야기라니 상상만으로 은은한 두근거림이 전해졌다.

은은한 두근거림으로 인해 달의 눈물을 잊어버렸다.

 

 

#내 사랑 그녀는 달의 왕국에 살지요, 애너벨 리. -준혁과 진영

중학교 때 한번 읽은 이후로 좋아하게 된 포의 시, 애너벨 리를 책에서 만나는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마치 오늘이 보름달이 뜰 때인지 모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환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하며 하늘을 봤을 때 보름달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마는 것처럼.

 

옥탑방에 살며 팝송을 좋아하며 달을 좋아하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남자 준혁.

그 남자의 옆 건물의 옥탁방에 살며 밤이면 달빛을 사랑하는 여자 진영.

 

군대를 다녀왔음에도 연애경험 한번 없는 준혁은 진영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것을 첫눈에 반했다고 해야 하는 걸까? 그 끌림을 난 무엇이라고 해야하는 걸까? 달이 바다물을 당기는 그런 끌림이라고 해야할까? 어찌할 수 없는 처음부터 그렇게 끌리게 되어있는 거였다고 말해야 하겠지. 그들의 사랑은.

 
<"그 눈빛을 알아. 항상 좋은 일만 생겨서가 아니라, 선천적으로 밝게 태어난 눈빛 말이야. 그리고 걸음걸이도 기억해. 가늘지만 선이 곧은 목소리도, 화가 났을 때 떨리는 아랫입술도 기억해. 아직 느껴보진 못했지만, 체온마저도 기억해." -p.67>
 

단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적 없는데 준혁은 그녀에게 끌린다. 갑자기 사라진 그녀를 찾기 위해 학교 강의도 빼먹고 학교 정문만 지키는 준혁은 겨우 진영을 만나 그녀가 그토록 자신에게 도망친 이유를 알게 되고 사랑으로 감싸주며 둘은 사랑하게 된다. 애너벨 리를 사랑한 그 남자처럼 혹은 그 남자를 사랑한 애너벨 리처럼.

 

#달빛에도 그림자가 지는 걸 아나요? -관과 소원

사랑의 달빛에 취한 준혁과 진영은 보지 못하는 그림자가 달빛에 울고 있다. 준혁이를 좋아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말못하는 소원과 그런 소원을 지켜보는 관. 사랑은 이렇게 아프다. 사랑도 셋이 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둘이 하는게 가장 좋은 것이 사랑이기에 남은 사람은 아플 수 밖에 없다. 진영과 준혁은 서로를 바라 볼 수 있지만 소원은 준혁의 등을 관은 소원의 등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사는 건 참 잔인한 엇갈림 같아. 그렇지 않니?" -p.67>

 

길이 엇갈리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힘이 들고 지치는데 사람 마음 엇갈림이야 오죽할까? 읽는 독자야  마음이 급해 그저 소원이가 관을 좋아하면 좋겠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리 쉬울까. 마음의 엇갈림으로 아파하는 소원과 관의 이야기 또한 책의 주는 아림이다.

 

#누구의 질투인가?  사랑을 잃은 오르페우스는 어디로 가야 하나?

영화 <편지> <타이타닉>의 줄거리를 알면서도 고등학교 때 보러가서 실컷 울고 온 적이 있다.

전반부의 행복함은 후반부의 아픔을 더 크게 하려는 의도라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할 틈도 없이 빠져들며 웃음지었으며 후반부의 슬픔에 마음을 다잡을 틈도 없이 울고야 말았다. 뻔한 결말의 사랑이야기라도 그 순간에 나를 몰입할 수 있게 된다면 내게는 상관 없었다.

 

이 책 역시 프롤로그에서 이미 슬픔을 예감했지만 그들의 사랑을 쫓아다니는 것만으로 바빴던 내게 갑작스런 슬픔은 또 어찌할 틈없이 나를 슬픔으로 내몰았다. 책 속 준혁의 말대로 준혁과 진영은 신화 속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떠오르게 한다. 둘이 사랑할 때 오르페우스의 하프는 세상 가장 사랑스런 소리를 연주했지만 에우리디케가 죽고 나자 하프는 죽음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아니, 하프를 켤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오르페우스에게는 저승에 다녀가 에우리디케를 구할 수 있는 기회라도 있었다. 준혁에게도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달을 향해 빌다보면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닿을 수 없는 사람에게 닿고 싶으면 달에게 소원을 빌어봐.

 

<정말 간절하게 달한테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지든가, 미치든가 둘 중 하나가 된대요

달을 영어로 루너(lunar)라고 하잖아요. 루너틱(lunatic)은 미쳤다는 뜻이고.  달은 사람을 살짝 미치게 하는 힘이 있거든요. 달을 보며 끝없이 소원을 빌면, 정말로 소원이 이뤄지든가,

아님 기도가 너무 간절해서 그 소원이 이뤄진 것처럼 정신을 이상하게 만드는 거죠  p.90~91>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였다. 엄마와 떨어져 살 때 엄마가 보고 싶으면 달에게 소원을 빌라는 할머니 말씀에 아주 열심히 소원을 빌었고 엄마는 시간이 되서 오신건지 정말 오시기는 했다. 그 이후로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것은 내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달을 보며 소원 비는 것은 누구나의 습관이 아닐까?

 

오르페우스에게 있는 하프가 없었던 준혁은 달을 보며 빈다. 달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그녀가 달을 좋아하는 만큼 그녀를 사랑한 남자가 달을 보며 빈다. 그녀를, 제발 그녀를 돌려달라고.

준혁에게도 한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는 뒤돌아 보지 않을거라고 말한다. 절대 뒤돌아보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달을 좋아하는 한 여자, 민희가 말한다.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사랑을 했다는 거, 그거 하나면 충분히 행복한 삶 아닌가요? 사랑의 감정을 한 번도 못 느껴보고 끝나는 삶도 많은데. 그리고 시 마지막 부분 기억 안 나세요? 달빛의 밝을 때마다 애너벨 리의 꿈을 꿉니다. 별이 뜰 때마다 애너벨 리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봅니다. 착각 속에서라도 사랑이 계속 된다면, 그걸로도 행복할 거 같아요." -p.188~189>
 
이 말이 귀에 맴돌았던 하루다.
 
#달과 사랑 그리고 2%의 부족함.
달과 슬프지만 운명같은 사랑이야기, 팔에 소름이 돋았던 결말에도 이 책은 아쉽다. 책을 보는 동안 내게 필요했던 것은 이 책으로 내 앞에서 연기를 해줄 배우들이었다. 섬세한 심리묘사에 목이 마른 내게 배우들이 그 심리를 연기로 나타내주길 원했다. 그것만 채워졌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 그래도 그 아쉬움을 채워주었던 것은 책에 수시로 등장하는 올드팝송이었다. 준혁이 휘파람으로 부르는 건즈앤로지스의 patience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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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놓치면 안 되는 일들이 있어. 너무 늦어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일들 말이야." -p.41

 

"난 널 잘 안다고 생각햇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너에 대해 아는건 아무것도 없는것 같구나"

"나도 내가 날 잘안다고 생각햇는데 그게 아니었나봐

내가 누구한테 이렇게 온전하게

미치게 될줄은 몰랐어"  -p67

 

우리 모두 끝없는 우주를 여행하는 별이다. 타인들로 가득한 까마득한 암흑 속에서, 타인이 아닌 의미있는 별을 만나 함께 한다는건 1에다 0을 33개 붙인 수를 분모로 하고 분자를 1로 한 확률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나, 이제 그 힘겨운 여행을 시작하려고 한다.  -p.53

 

"사람들은 말이야. 다 자기만의 사랑하는 방식이 있대.

별자리를 바꿀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실패해도 계속 그런 식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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