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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덮고 내가 한 일은 독일의 드레스덴을 인터넷으로 찾아 본 것이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드라스덴은 아름다운 도시였으며 독일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손꼽히는 건물들이 많았다고 한다. 사진만으로 본 드라스덴은 정말 아름다웠으며 건물들 역시 사는 동안 한번은 꼭 직접 보고 싶을 만큼 멋졌다.
하지만 많은 사진들마다 공통된 글은 아직 복구중이라는 것이었다. 미국이 자행한 드라스덴의 폭격 후 50년이 지났음에도 지금도 복구중이라고 했다. 생명이 없는 건물도 전쟁의 흔적을 복구하는데 50년이 걸리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오죽할까란 생각이 들었다. 드라스덴의 폭격 중 살아남은 저자 보네거트와 책 속에서 그의 분신인 빌리 필그림은 오죽했을까!
#제목 살펴보기
1.제 5도살장 -(슐라흐토프-퓐프:Slaughterhouse-Five)
-이 책의 제목인 제 5도살장은 미국인 빌리 필그림이 독일 포로가 되어 드라스덴에 있는 5 도살장에서 지내게 된다. 알다시피 도살장은 동물을 도살하는 곳이지만 전쟁으로 독일 내의 굽 달린 동물은 거의 다 도살되어 텅텅 비자 이번에는 미국인 포로들이 머물게 된 곳이다. 이 곳이 제목이 된 이유는 하나, 드라스덴의 폭격 당할 때 빌리 필그림이 그 곳에 혹은 저자가 그 곳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혹은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
-보네거트의 친구의 부인인 메리에게 보내거트가 약속을 했다. 이 책이 완성되는 일은 없을 테지만 완성이 된다면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이라고 붙이겠다고. 책 속의 약속은 이루어졌다. 책이 완성되었으므로. 전쟁에 나오는 군인들은 모두 젖비린내 나는 애들에 불과하다는 메리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에 더 슬프다. 전쟁에 나가는 젊은이들 중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몇 명이가 되겠는가? 그렇기에 전쟁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제대로 된 판단은 군대나 혹은 정부가 내려준다고 믿으므로. 그저 행하기만 하면 된다. 옳은 일이 아닌 할 수 있는 일을.
<"알다시피, 우리는 여기 있으면서 전쟁을 머릿속으로만 생각해야했네. 그래서 전쟁을 우리처럼 나이든 사람들이 치르고 있다고 상상했지. 전쟁에서 싸우는 것은 아이들이란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어. 면도를 하고 난 얼굴들을 보았을 때, 그건 충격이었네. 나는 혼자 이렇게 말했지. '하느님 맙소사. 이건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이야.'" -p.127>
3.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
전쟁이라고 하는 것에는 승리한 나라는 있을지라도 승자와 패자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죽은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산 사람도 있다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전쟁이 끝난 후에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시름시름 앓아가는 이들만이 남는 건 아닐까? 이 책의 빌리가 그러하며 저자가 그러할 것이며 전쟁을 겪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국가는 전쟁을 원했을지라도 사람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의무가 아니라면 그 섬뜩한 춤을 누가 추겠는가? 평생을 빨간 구두를 신은 채 춤을 춰야 하는데!
#시간여행 혹은 정신분열증,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은가!
책은 시작도 전에 비행접시를 보내오는 행성 트랄파마도의 전보문 형식으로 쓴 정신분열성 소설이라고 말해준다. 주인공 빌리 필그림은 시간에서 해방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의 죽음과 탄생을 여러 번 보았으며 그 사이의 모든 시간을 무작위로 찾아간다고 하니 그가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게 되니 그 말은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여행이 즐거운 것만은 아니라고 하는데 이유는 그의 시간여행은 본인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 아닌 그 시간 속에 사는 자신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여행을 할 때마다 무대가 바뀐다면 그 여행이 즐겁기만 하겠는가!
트랄파마도란 이름도 이상한 행성의 외계인들에게 납치되어 시간 여행을 하게 된 그를 따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주 무대는 대체로 전쟁터였다. 이등병인 빌리는 그저 다른 사람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결국 포로가 되고, 결국 드라스덴 폭격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된다. 그가 살아남은 것은 축복일까를 생각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은 정말 사실인지 의심될 만큼 그의 생은 끔찍하고 안타깝다. 죽음 뒤에도 죽지 않음을 알고 있는 빌리를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하고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 걸까? 그에게 몇 번이나 전쟁터로 돌아가지 말라고 책을 읽는 내내 말하지만 시간여행은 시간 마음인 걸.
처음에는 외계인에게 빌리가 납치된 것을 믿었는데 중반에는 이사람 혹이 미친 거 아냐 라는 심정이었다가 끝에는 그래,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견딜까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트랄파마도가 빌리가 만들어 낸 허구의 세계고 그의 시간 여행은 환각이라고 해도 어떤가? 그가 전쟁의 섬뜩함에도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괜찮다는 생각이다. 트랄팔마도인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게 뭐가 나쁜가!
<“오늘은 그렇소. 다른 날들은 당신이 보았거나 읽은 어떤 전쟁보다 잔혹한 전쟁을 벌이지. 우리가 전쟁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보지 않을 뿐이오. 무시해버리는 거지. 우리는 영원토록 즐거운 순간들만 보며 지내요. 오늘 동물원에서처럼. 이 순간은 정말 멋지지 않소?” > -p.140
#그렇게 가는 거지, 그렇게 보내서 미안했어요.
이 책의 명대사인 '그렇게 가는 거지.'를 책에서 수십 번이 넘게 본 것은 확실하다. 처음에는 이 말을 읽을 때 따라하며 웃음이 낫다. 웃어서는 안 되는 웃기는 책이라는데 나는 웃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게 가는 거지를 5번도 따라하기 전에 그들은 그렇게 가면 안 되는 거였다. 빌리는, 작가는 그렇게 가는 거지를 적을 때마다 혹은 말할 때마다 얼마나 울었을까? 눈물도 나지 않는 울음으로.
전쟁을 경험하게 만들지 않는 책이다. 영웅도 없고 멋진 장면도 없고 전쟁의 잔인함만이 기계적인 모습으로 움직이는 사람만이 있다. 그들이 기계인지 사람인지 누가 구분하겠는가!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그렇게 보내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보내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해서는, 울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주인공 요조의 말처럼 무저항이 죄가 되게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저 의무를 다한 것인데 그것이 평생을 괴로움 속에 살아도 벗겨지지 않는 족쇄가 될 것임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전쟁으로 내보내면 안 되는 것이었다. 전쟁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