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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이야기 ㅣ 비룡소 걸작선 29
미하엘 엔데 지음, 로즈비타 콰드플리크 그림, 허수경 옮김 / 비룡소 / 2003년 3월
평점 :
이 책을 선물해 준 사람은 툭툭 털며 음표들이 우르르 떨어질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날은 꽉 쥐어짜면 눈물이 한가득 흘러내릴 것도 같고 바람이 좋은 날 입김을 후~하고 불면 푸른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 같다. 할 수만 있다면 마법 가루를 구해서 이상한 나라로 보내주고 싶은 사람, 이 곳의 탁한 공기와 차가움에 금세 얼어붙고 마는 사람, 상처를 받으면 구석진 곳에서 혼자 훌쩍이다가 밖으로 나와 빨간 눈으로 화이팅을 외칠 사람이다. 내게 이 책을 준 그녀의 마음을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책을 읽기도 전에 다짐하고 만다.
유독 집에서는 책 읽기를 하지 못하는 나였기에 이 책과의 만남에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700 페이지 정도되는 책의 두께는 밖에 나가서는 읽지 못하겠단 결론을 내리게 했고 잠들기 전 50 페이지 정도를 읽고 자야겠다는 계획까지 세우게 했다. 4월 중순이니 4월 말이면 다 읽겠지라고 행복하던 내 계획은 지켜지지 않았다. 책은 3일 동안 4시간만 자게 만들었고 3일동안 빨간 눈동자를 만들어 줘서 친구들의 걱정을 받아야 했다. 할 일이 없었다면 낮에 가야할 곳이 없었다면 하루만에 책 폐인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미하엘 엔데의 매력은 끝이 없다.
알면 알수록 점점 더 매력적인 작가가 있다. 미하엘 엔데가 내게는 그렇다. 동화는 거기서 거기라는 내 생각을 뒤집어 준 작가도 미하엘 엔데였다. 미하엘 엔데는 말한다. 동화 속 세상은 동화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마법의 세계, 환상의 세계는 우리와 아주 가까이 있다고. 그 세계로 가는 문의 열쇠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다. 그 곳에 가려면 당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며(이건 아이들이 더 잘하는 일이다.) 자신의 내면을 모른체하면 절대 안된다. 또한 절대 의심하면 안된다. 의심하는 순간 환상의 세계로 통하는 문은 모습을 감춘다.
미하엘 엔데의 작품 중 읽은 것은 몇 개 되지 않지만 이 책은 엔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모두 들어있다.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들, 환상세계로 갈 수 있는 열쇠가 책 속에 있다. 그걸 얻는자, 환상의 세계로, 끝없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책의 주인공은 당신!!
학교에서 왕따인 바스티안은 그 날도 친구들을 피해 고서점으로 도망쳤다. 그 곳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착하기만 바스티안은 학교도 집에서도 슬프다. 통통한 몸매를 놀리는 친구들도 싫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넋이 나간 듯한 아빠를 볼 때도 슬픔이 몰려온다. 그래서 였을까? 바스티안은 서점 주인 아저씨가 전화를 받는 순간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책 한권을 훔쳐서 나온다. 그 책의 제목은 <끝없는 이야기>이다. 처음으로 도둑질을 했다는 두려움에 바스티안은 학교에서 자신만의 비밀공간에 들어가서 숨기로 결정한다. 그 책을 다 읽기 전에는 나오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
바스티안이 훔친 책 <끝없는 이야기>는 바스티안을 흥분시켰다. 책과 상상을 좋아하는 바스티안은 결코 끝나지 않는 이야기, 모든 책 중의 책!을 원했었다. 이제 그 책을 손에 넣은 순간 바스티안은 상상할 수 없는 환상 세계로 모험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바스티안의 시선과 책 속 내용이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바스티안을 통해 읽는 독자는 마치 내가 바스티안이 된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판타지라고 불러야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판타지 소설을 신나게 즐기기 위해서는 주인공과의 동일시가 꼭 필요하다. 이 책이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바스티안과 나를 동일시 하게 되었고 함께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캄캄한 밤에 끝없는 이야기의 무대인 환상 세계는 내 눈 앞에 펼쳐지는 듯 했고 바스티안과 나는 두근거림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신기하게도 배고픔은 느꼈다.)
#환상 세계의 아름다움과 모험은 끝이 없다.
끝없는 이야기의 무대인 환상 세계는 아름답다는 말로도 부족하고 신기하다는 말로는 훨씬 부족한 우리가 꿈꾸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순수함이 간직되고 서로 다른 인종들끼리 싸움보다는 이해를 해주는 것이 당연한 곳, 환상 세계는 위험에 처해있다.
환상 세계를 만든 어린 사제는 현실 세계에서 인간이 지어주는 이름을 가져야만 환상 세계를 구할 수 있다. 그 임무를 위해 아트레유라는 귀엽고 당찬 소년과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용 푸후르가 모험의 시작을 알린다. 바스티안은 책 밖에서 아트레유를 부러워하고 그 모험에 동참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정작 기회가 왔을 때는 뒷걸음 치고 만다. 망설임, 그건 바스티안만이 아닐 것이다. 정열에 온 몸을 던지는 것, 그것을 미하엘 엔데가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다. 망설임을 이기고 온 몸을 내던질 수 있는 자만이 환상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겁내지 않고 환상 세계로 들어가는 일뿐!
바스티안과 내가 몸 속 깊은 곳에 있는 용기까지 끌어냈을 때 미하엘 엔데는 우리를 환상 세계로 데려다 주었다. 그것이 모험의 끝이라 여겼던 내게 책은 절반이상이 남아있었기에 황당한 내게 모험은 끝없이 이어지는 것임을 알려주었다. 안타까운 모험, 신나는 모험, 신비로운 모험을 끝없이 하게 되면서 이미 나는 푸후르에 등에 제일 먼저 올라타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도 모험은 계속 된다.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책을 덮고도 인정할 수 없다. 이 책이 끝났다는 것을. 미하엘 엔데는 내내 내게 그렇게 말했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또 하자고. 그렇게 약속 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 이 책이 끝이라니 말도 안된다고 새벽이 밝아올 무렵 혼자 분개하다가 진정하고 이불에 눕자 하나씩 이야기들이 정리된다. 바스티안의 모험이 끝나고 환상 세계가 무사하다고 해도 환상 세계는 언젠가 어린 여제는 이름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 현실 세계의 누군가는 다시 환상 세계로 가야한다. 내가 될 수도 있고, 바스티안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가야하므로. 그래서 우리는 이 끝없는 이야기를 읽고 들려줘야 한다. 환상 세계를 잊지 못하도록!
환상 세계와 현실 세계는 떨어져 있지 않다. 현실 세계의 사람들이 조금만 더 동심을 잃지 않고 망설이지 않고 빠져들 자신이 있다면 환상 세계를 경험한 이는 더 많을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환상 세계는 항상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내가 읽어 본 판타지 중에 최고의 이야기였다. 아이들에게 쉽게 읽힐 듯한데 아무래도 너무 두껍게 나와 아이들이 손을 뻗치지 않는 것 같아 매우 아쉽다. 읽을수록 빛을 발할 책임이 틀림없다.
#책 속의 최고의 구절
<그러나 그건 또 다른 이야기이니 다음 기회에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끝없는 이야기는 절대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