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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남은 아름다운 날들
베스 켑하트 지음, 윌리엄 설릿 사진, 공경희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책을 두번이나 읽고 나서야 글에서, 사진에서 푸르름과 바람의 숨결이 느껴진다. 이 책을 첫번째로 읽었을 때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결정 내릴 일들은 머리 속을 갑갑하게 누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질문에 요리조리 피하느라 혼자서 끙끙대며 지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을 읽었는데 글이 무엇을 말하는지 저 사진이 내게 보여주려는 것은 무엇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느끼기 어려웠다고 해야하나.
얇은 책이어서 쉬이 쉬이 읽혀지기는 했으나 책을 덮고나서는 내가 무엇을 읽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고민에 빠졌다. 왜 어떠한 감정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내용이 어려워서도 아니고 읽을 때 소란스런 곳에서 읽은 것도 아닌데 글자만 읽었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은 왜일까? 작가가 전해주려는 챈티클리어 정원(Chanticleer Garden)의 여유로움이나 살아있음이, 그곳의 생생함이 내게 전해지지 않았던 것은 내 속에서 책에 불어넣을 숨이 부족했음이 아닐까. 숨을 쉬고 살아가고 있음에도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장담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건가. 내가 쉬는 숨으로는 작가가 내게 준 선물을 살아 숨쉬게 할 수가 없었다.
책은 작가와 독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이 그러했다. 내게 챈티클리어 정원에서 보고 들었던 모든 것을 작가는 마술을 부려 작고 얇은 이 책에 넣어보내주었다. 마술에서 중요한 것은 콧기름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메마른 삶을 보내고 있었던 내게 콧기름이 어디 나오겠는가. 마음이 말랐다는 것을 그것을 내가 메마르게 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책에게 감사의 뜻으로 콧기름이 나오도록 콧바람을 쐬러 가주었다. 콧바람을 쐬다보면 콧기름도 나올테니 그럼 나는 그 마법의 보따리를 풀 수 있지 않을까하고 바라면서.
챈티클리어 정원은 나무가 숨쉬고 바람이 통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강가가 보이는 의자에 앉아 책으로 여행을 떠나보았다. 작가의 눈길의 닿는 곳, 발길이 닿는 곳, 손길이 닿는 곳을 눈을 감고 상상해보기도 했다. 시원한 강바람을 전해주는 강에게도,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에게도, 두발을 디딜 수 있게해준 땅에게도 눈짓으로 고맙다고 말하며 책을 덮어두었던 펴고 읽기 시작하자 콧바람의 힘이었을까. 사진들이 하나 둘 생생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이런 색이었구나. 소녀가 있는 연못의 물은 저렇게 투명했구나.'라고 혼자 말하며 신이 나서 내 주변의 풍경을 눈으로 찍은 뒤에 눈을 감고는 그곳의 사계절을 상상해보았다. 겨울이면 죽은 것 같은 나무도 강도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금 찬란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 말이다.
미처 알지 못했다. 자연을 둘러본다는 것이 이토록 폐에 상쾌한 숨을 가득 차게 해주고 머리 속을 맑게 해주고 가슴 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지를. 알고 있었는데도 잊고 지낸 것일지 모른다. 고향집에 내려갈 때 상쾌한 공기로 인해 고향에 온 것을 알며 두근거리던 때도 있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잊어버렸을까? 무엇이 그리 바쁘다고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자연을 잊어버렸을까?
작가는 마흔의 나이를 넘겨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마흔이라는 나이는 어떤 나이일까? 십대때 20대인 이모에게 물었었다. "이모의 나이가 되어도 고민이 많아?" "너가 지금 하는 고민은 그때면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20대의 나. 이모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십대때 어떤 고민을 했는지는 꺼낼 틈도 없이 20대의 고민에 푹 빠져살고 있다. 20대의 나 30대의 이모에게 질문한다. "이모 나이가 되어도 삶이 이렇게 힘이 들어?" "너 30살 되면 니가 한 질문 그대로 해주마." 하며 웃기만 하는 이모. 이제 곧 마흔이 되는 이모. 삶이라는 것에 내가 아는 누구보다 많이 고민하던 이모.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이모는 둘째 아이가 커서 자신의 손이 필요하지 않을 때가 무서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때는 자신과 마주해야함을 피할 수 없을테니 두렵다는 이모. 하지만 믿는다. 우리 이모는 당당히 자신의 삶에 맞설 것임을.
책을 읽으면서 왜 사람들이 열심히 이룬 지위, 명예등을 버리고 농촌으로 가는 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과연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내 생애 남은 날을 아름답게 보내기 위해 할 일은 무엇일까? 자연 속에서 작가가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의 선물을 받았기 때문일까? 자연 속에서 고민을 떠올리면 나를 한동안 짓누르던 고민이 한 없이 작아지게 느껴진다. 바쁜 일상 속에서는 고민이 고민을 불러서 덩어리가 자꾸만 부풀어져서 고민에 눌려 숨쉬기도 힘이 들었는데 자연의 신비 앞에서는 고민이 한없이 작아져서 어디서 엉켜있는지와 어떻게 풀면 되는지 보여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 한 걸음 물러나서 보면 전체가 보이는 것과 비슷한 이치가 아닐까? 덕분에 요즘 나를 짓누르던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자연과 일상을 떨어뜨려 놓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닐까한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니까. 자연 속에서 나를 찾는 것은 선물을 풀어보는 것처럼 기대되고 두근거리는 일이다.
딱딱한 책상에서 이 책을 읽기 보다는 자연의 숨결을 느끼면서 읽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