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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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무수한 책이 있죠. 그 책들이 즐비한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한없이 작아지는 저를 느끼고는 한답니다. "아, 저 책 속에는 어떤 이야기 담겨 있을까? 아, 저 책을 누군가가 참 좋게 이야기 했는데, 읽어 보고 싶다. 아, 저 책은, 아, 이 책은......." 이런 생각들로 우왕좌왕 하고는 하죠.  1년 동안 서점에 감금 당하는 삶을 그려 보고 싶게 만드는 세상, 그런 상상만으로  두근거림을 느껴 봤던 당신이라면 이 책도 감당해 낼 수 있겠지요.

 

 세상에 있는 무수한 책 중 이 책과 같은 책이 있을까요? 이제부터 그 책의 이야기를 할게요. 듣고 혹시 당신도 그 책을 봤다면 내게 이야기 해줄래요? 아하, 제가 말하면서도 웃기네요. 제 손에는 이미 그 책이 있는데 말이죠. 하지만 정말 이 책이 그 책이라는 것이 사실일까요? 훗, 쉽지 않은 책이죠. 그래서 이 이야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 책이 있습니다.

 존재 하지 않는 책, 실제로 존재 하는 책, 쓰기 직전의 책, 쓰고 있는 책. 이 모두는 같은 책이랍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 바로, 이 책이죠.

 

 아, 화가 날 만도 합니다. 그렇다고 제게 화를 내시면 저도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저 어깨만 으쓱할 뿐이죠. 하지만 분명 그런 책이 존재합니다.  혹시 저런 책이 없을까봐 화가 나신 겁니까? 아니면 그런 책이 있을까봐 두려워서 그러신 겁니까? 혹은 책을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분명 저 이야기가 사실일 경우 책을 읽고 싶어 안달이 불안 때문인가요? 분명히 말하지만 저 책은 존재합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란 책은 세상에 나와 있죠. 내 손에, 그리고 언젠가 당신의 손에 들려질 책으로.

 

 제게는 참 힘들었습니다. 그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얼마나 조심했는지요. 그래도 결국 그 책 속으로 저는 들어가고 말았고 어쩌면 들어가지 못한 것도 같습니다. 마치 그건 개미가 되어 큰 빵을 앞에 두고 먹은 것 같기도 하고 안 먹은 것 같기도 한 기분이랄까요?  먹지 않고는 못 배길, 그런 빵을 앞에 두고 개미는 안달이 나죠. 마치 저처럼요.

 

 책으로 향하는 문은 모두 4개 혹은 한개, 혹은 더 많을 수도 더 적을 수도 있습니다. 머리가 나쁜 저는 서로의 관계를 잇느라 참 고생을 했지만 당신은 더 빨리 찾을 수도 있겠네요. 부디 성공하시길. 그리고 너무 많이 믿지 않기를. 누구를요? 훗, 자신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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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비시선 156
함민복 지음 / 창비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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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긍정적인 밥 부분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라는 시인의 말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내 고개짓이 시인에게 보일리 없다하더라도 끄덕여 본다. 그가 볼 수 없다면 내가 강화도로 찾아가 시인에게 전해야 한다고 마음 먹는다.  시인으로 인해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많다고, 더운 여름날 마음에서 땀을 흘리는 사람이 많다고, 나 역시 누군가의 고마운 (지금도 너무 감사한) 추천으로 시인을 알게 되었다고, 이미 시인의 따뜻함을 은은한 달빛 아래서 꺼내보는 사람이 참 많다는 말을 전해주러 가고 싶은 마음을 이렇게 몇 자 끄적이는 걸로 대신한다.

 

 시를 모르고 시를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 지도 알지 못하는 내가 시집을 읽고, 가슴을 아려하고 한 숨을 내쉬어 보며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시를 모르면 어떤가 싶기도 하다. 국문과도 아닌데 시의 속 뜻까지 알지 못하면 어떤가 싶기도 하다. 그저 그의 시가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고 그의 시가 내 마음 같고, 내 마음이 그의 마음 같을 것 같다는 착각을 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 아닐까?

 

 함민복 시인을 만난 건 <눈물은 왜 짠가>를 통해서였다. 그의 시를 읽으며 그의 삶을 떠올린다. 강화도에 살기 전에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던 시인, 그토록 사랑하는 어머니를 홀로 둬야 하는 시인의 아픔, 누군가를 사랑했으나 (지금도 사랑하고 있을지 모른) 떠나보낸 후의 아림, 돈 2 백만원이 자신이 만져 본 가장 큰 돈인 시인의 가난을 들여다 본다. 그의 시는 그가 남긴 마음의 자취인가.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선천성 그리움 전문
 
 나를 반기는 첫 장의 시를 읽고 나서 가슴을 쓸어 내린다. 아, 내가 찾아 다니던 그리움은 모두 타고난 것이었구나.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다니던 그리움이었구나, 빈틈이었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건 왜일까? 포갤 수 없기에 아름다운 거리가 사람과 사람에게는 존재한다는 것, 그 거리에 눈물 흘리고 가슴 아려 한다해도 그 거리로 인해 사람과 사람은 서로 만날 수밖에 없는 거구나라는 생각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이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 해 쓴 시로 이리도 편하게 위로 받아도 될런지 이 따뜻한 위로를 슬프게 받아 들였다.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을 수 없다네

 

어머니 가슴에서 못을 뽑을 수도 없다네

 

지지리 못나게 살아온 세월로도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을 수도 없다네

 

어머니 가슴 저리 깊고 푸르러

 

-가을 하늘 전문

 

 함민복 시인은 어머니를 사랑한다.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 이가 어딨겠냐마는 유독 그의 시에서는 그 마음이 애달프게 전해져 온다. 나이 40 살이 넘도록 혼자서 살고 있는 시인은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의 말대로 시집 한 권팔면 겨우 300 원이 그의 손에 들어오는 데 무슨 돈으로 어머니를 모실까.

 

 어머니라는 이름만으로, 어머니를 닮은 달을 볼 때만으로 가슴에 눈물이 가득 찰 것 같은 시인을 바라보며 내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째서 내 어머니는 내가 한 모든 잘못으로 상처 받지 않았을까. 그 흔적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자식에게 받은 상처를 없애기 위해 어머니들은 얼마나 많은 밤을 가슴을 문질렀을까. 못을 박았던 자리가 남을까 얼마나 아프게 문질렀을까. 얼마나 아프고 시린 밤을 보낸, 보내고 계신 것일까. 시인이 애닯고 어머니가 애닯고 내가 슬프다.

 

하늘에 신세 많이 지고 살았습니다


푸른 바다는 상한 눈동자 쾌히 담가주었습니다


산이 늘 정신을 기대어주었습니다


태양은 낙타가 되어 몸을 옮겨주었습니다


흙은 갖은 음식을 차려주었습니다


바람은 귓속 산에 나무를 심어주었습니다


달은 늘 가슴에 어미 피를 순환시켜주었습니다

 

-몸이 많이 아픈 밤 전문

 

 시인은 아파야 시를 쓴다고, 외로워야 쓸 수 있다는 말을 흘려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시인은 그러한 가 보다. 아프고, 슬프고, 외로운 그 마음을 시로 적는 것인가 보다. 속으로 아프기 위해서 시인은 얼마나 많이 참아내는 것일까? 아픈 시를 적지 않기 위해, 누군가에게 따스함을 전해주기 위해 시인은 얼마나 많이 마음으로 우는 것일까? 그가 많이 아프지 않길, 시인의 마음에 따스함을 선물 해 주고 싶다.

 

 이 시집에 있는 시들이 서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다만 시인이 가난을 노래하고 아픔 받는 삶을 적은 시를 부족한 내가 제대로 느끼지 못한 탓으로 말할 수 없을 뿐이다. 시를 읽는 동안 마음에서 바람이 불고, 밖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적어두고 싶은 시가 많아서 팔이 아팠지만 옮겨 적어봐도 가슴에 바람이 사라지지 않음은 왜일까....? 많은 의문 속에 선명해지는  하나! 그건 함민복 시인의 시는 더 많이 읽혀져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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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한 힘 - 제3의 시 시인세계 시인선 12
함민복 지음 / 문학세계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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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일 이었다.

 여중생의 무릎 위를 웃돌만큼 눈이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아침 수업을 받기 위해 집 현관 앞에 서서 내리는 눈을 보다 겁을 먹고 서있는 내게 아빠가 삽을 들고 손짓하신다. 학교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빠지면 안 된다는 부모님과 함께 살면 참 힘들어라고 속으로 중얼 거리며 삽을 들고 앞장서는 아빠를 따라 학교로 향한다. (그것도 방학 보충수업인데!!!!) 사방이 눈이라는 말은 이런 때 하는 것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아빠와 걷는 길은 어느 새 꿈길처럼 몽환적으로 변했다.

 

 아빠가 삽으로 파 놓은 길에 남은 아빠의 발자국만을 밟으며 가는 길, 그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맞추면서 조금 더 깊어지게 했다. 아빠가 건네 준 소중한 선물, 발자국을 보며 눈물이 왈칵 나려고 했던 것은 왜일까? 왜 발자국에서 아빠의 마음이 느껴지는 걸까? 차가운 눈이 따뜻하게라도 느껴질 것 같아 발자국에 발을 대기 전에 손을 대보다 아빠에게 혼나기도 했다.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발자국을 밟는다는 건 참 좋은 일이구나 라고 웃으며 학교에 간 그 날 아침 (물론, 학교는 휴강이었다;;;;;) 학교에서 있다가  홀로 집에 다시 돌아가는 길에 내 발자국이 조금 더 깊어진 것을 확인했다. 누군가가 밟고 갔구나, 아, 아빠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 그 사람도 가슴이 따뜻해졌을까?

 

 마음 발자국을 밟고 지나가는 길은 행복하다.

 시에 적힌 시인의 마음 발자국을 밟고 걸으며 난 행복했다. 아, 행복이란 말 이외에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읽은 시인의 시집은 이 시집과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였다. 두 시집 시인의 말에서 시인은 시에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했다. 그 말이 내 겨울의 추억과 겹쳐진다. 시인이 남겨 준 마음 발자국에 내 마음을 대보며 한참을 앉아있다 다시 일어나서 걸었다, 뒤에 따라올 사람을 위해 나도 마음을 내려놓으며. 

 

 길이 아니었던 곳에 길을 만들어 준 시인, 차가운 길에 따뜻함을 놓고 간 시인, 그 발자국에는 그리움, 기다림, 바다, 어머니, 애환 그리고 내가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들이 담겨 있지만 하나 확실한 건 시인이 발자국을 만든 건 부디 독자가 잘 걸어주기를, 자신의 시의 바다에서 길을 잃지 말길, 마음에 따뜻함이 감돌기를 바랐다는 것. 그 마음이 따뜻해서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아 쉼 호흡을 해 본다. 괜찮다, 괜찮다 라고.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가는 길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힘

말랑말랑한 힘

 

-<뻘> 의 전문

 

 <말랑말랑한 힘> 에서는 말랑이는 시들이 많다.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대쪽 같은 딱딱함이 아니라 말랑한 힘이 아닐까? 세상에는 강한 사람보다 약한 사람들이 더 많고, 그들은 가슴으로 우는 일이 많아 몸이 수분에 젖어 말랑말랑 하지 않을까? 말랑이는 가슴으로 세상을 보고 싶어진다. 소소한 것에서 발견하는 기쁨 혹은 위로 어쩌면 아픔을 잘 받아들이는 가슴이 되고 싶어진다.

 

물울타리를 둘렀다

 

울타리가 가장 낮다

 

울타리가 모두 길이다

 

-<섬> 전문

 

 이번 시집 역시 짧은 시들이 많다. 바다 쪽으로 한뼘 더 나아가 짧은 시를 적고 싶었다던 시인의 소원을 바다가 들어 준 탓일까? 이 시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시이다. 섬이 되고 싶어졌다. 울타리가 가장 낮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내 어머니는 되었지만 나는 힘들지도 모를 섬을 꿈꿔 본다.

 

여자 몸 속에 아이 하나 못 심고
사십이 다 되어 홀로 돌아와
살아온 길 잠시 벗어 보네
낯선 고향에서 쉬이 잠 오지 않네


 

-<귀향> 부분

 

 강화도에서 보낸 초반에 적은 것일까? 낯선 고향이라지만 시인은 이 시의 제목을 <귀향>으로 적고 있다. 그가 강화도를 마음의 고향으로 받아들인 것이겠지. 강화도에 가서 시인은 시를 적을 수 있고 마음을 위로 받았다고 했다. 강화도, 그 곳에 가보고 싶어진다.

 

결국

 도시에서의 삶이란 벼랑을 쌓아올리는 일

 24평 벼랑의 집에서 살기 위해

 42층 벼랑의 직장으로 출근하고

 좀더 튼튼한 벼랑에 취직하기 위해

 새벽부터 도서관에 가고 가다가

 속도의 벼랑인 길 위에서 굴러떨어져 죽기도 하며

 입지적으로 벼랑을 일으켜 세운

 몇몇 사람들이 희망이 되기도 하는

 

-<옥탑방> 부분

 

 24평 벼랑의 집에서 살기 위해, 42층 벼랑의 직장으로 출근하고 이 구절이 눈을 잡고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다. 사회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인의 시집을 아직 만나지 못한 지라 그 시집과의 만남을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말랑말랑한 세상,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현실을 말해야 하는 것도 시인의 몫이겠지. 시인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짊어주는 건 아닌지.

 

 

땅 아래서
딱딱한 것을 깨오고
뜨거운 것을 깨와
도시는 살아간다


 

 

딱딱한 것들을 부수고
더운 곳에 물을 대며
살아가던 농촌에도
딱딱한 건물들이 들어선다



 
뭐 좀 말랑말랑한 게 없을까


 

-<감촉여행> 부분

 

 뭐 좀 말랑말랑한 게 없을까란 시인의 말에 전 당신 시가 말랑말랑해요! 라고 시를 읽다 말고 외칠 뻔했다. 시로 인해 삶이, 세상이 조금 더 말랑말랑 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데...... 역시 강화도로 가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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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이름이 없다
위화 지음, 이보경 옮김 / 푸른숲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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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불면 사르르르 날라가는 잔디에 떨어진 나뭇잎들. 그 나뭇잎을 하나씩 주어들어 책 속에 집어 넣는다. 그렇게 집어 넣은 나뭇잎이 17개. 바람결에 사라져 버렸을 나뭇잎은 책 속에서 글이 되고 삶이 되어 마음을 울리는 나뭇잎이 되었다. 그 책의 주인은 위화, 나뭇잎을 글로 만든 마술사도 위화이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는가.

나에 대한 비하를 할 때면 누구한테나 듣는 소리. 참 와닿지 않는 위로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했다.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 많은 세상이 왜이리 힘드냐고, 왜 이리 삶에 글을 쓰는 것이 책한 페이지에 나를 적는 일이 왜이리 고되냐고 속으로 푸념을 하기도 하면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누구나 다 힘들다고 말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듣고 참 힘들었겠구나라고 말해주세요. - 라고 속으로 외치면서도 누구한테고 말하지 못한 나였다. 알고 있기에,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사람,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내 속마음을 저자가 들를리 없것만 왜 나는 이 책이 내 마음 같아서, 책 속의 주인공들의 아픔이 내 아픔 같아서 위로 받는 걸까? 위화의 단편 소설 <내게는 이름이 없다> 에는 17개의 이야기들이 아니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무거울 듯한 삶이,  삶이라고 하기엔 너무 무거운 듯한 우리네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조금은 상처받고, 조금은 우울하면서도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유쾌한 이야기. 웃음이 나는데도 가슴에 바람이 불게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적어내려 가며 위화는 울었을까? 웃었을까? 

 

 담담함 속에 감쳐줘 진 유쾌함과 감동.

그것을 글로 적는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이제는 아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이 글을 적는 동안 저자는 웃지도 못하고 혹은 가슴이 아려 한밤중에 자주 깼을 거라는 짐작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내 나이가 유쾌하지 않다고 여겼것만 이 책을 읽으며 유쾌한 내 나이를 쓰다듬어 본다. 조금은 더 볼 수 있게 되었구나. 가슴 속 설움, 아픔을 타인의 아픔으로 위로 받을 수 있게 되었구나, 라며 스스로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잊혀질 만한 사람은 없다. 우리는 주변 사람을 기억해야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고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이름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왜 이름으로 그를 부르지 않고 약한 그의 면만을 살펴보고 이름을 마구 지어 되는 가!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자신의 이름을 잊지 않는 세상에서 살게 해 주세요. 손가락질 보다는 악수를 해줄 수 있는 세상이 되게 해 주세요.

 

 쓰다보니 너무나 주관적인 서평이 되었다. 에효,,, 17개의 이야기 중 모두 다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부분이 좋다. 당신이 밟고 선 땅을 한 번쯤 내려다 보게 할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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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메레르 1 - 왕의 용 판타 빌리지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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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집이 마을과 떨어진 곳에 살아 친구가 없던 나는 바람이 살랑이는 날이면 집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누워 하늘을 보며 시간을 보내길 좋아하는 아이였다. 바람에 움직이는 구름을 보며 구름의 모습을 여러 동물로 상상해 보고는 했다. 가장 많이 상상한 동물은 용이었다. 여자 아이임에도 나는 용을 동경했다. 동화 속 공주들이 용에 갇혀 괴롭힘을 당한다는 이야기에도 진실은 용과 공주들은 행복하게 놀고 있을 것이라고, 공주들이 용과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왕자를 만나는 것을 잊은 것이라고 믿었다. 아마 할머니의 말씀 때문일 듯하다. 덩치가 클 수록 영리하고 착한 동물이 더 많은 법이라고. 그렇게 용을 좋아하게 되었다. 착한 아이가 아닌 나여서 착한 용을 좋아하고 동경하였다.
 

 용을 좋아해서 일까? 용이 나오는 책과 영화를 참 좋아한다. 용만큼 용맹하고 영리한 동물이 또 있을까 싶을만큼 책과 영화 속 용은 내 마음을 가져가 버렸다. (테메레르를 만나기 전까지 내가 좋아하는 용의 1순위는 '슈렉'에 나오는 용이었다.) 그런데 수 많은 용들에게 주었던 마음을 모아야 할 때가 왔다. 그 마음을 다 합치고, 새롭게 부풀어 오르는 마음을 더해서 사랑하고 싶은 용을 만났기에. 그 용의 이름은 테메레르, 테메레르를 만나기 전의 나는 용에 대해 전혀 모르는 아이와 같았다.

 

#테메레르와의 만남, 그 두근거림

 책의 배경은 나폴레옹의 정복활동이 활발했던 1800년대. 영국 해군 소속이며 렐리언트 호의 함장인 윌 로렌스는 프랑스 소형구축함을 손에 넣는다. 그 사건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데 그건 바로 창고에서 발견한 용의 알 때문이었다. 이 시기에는 용이 살았다. 살다만 뿐인가, 용을 이용한 전쟁도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전쟁의 승패는 용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용의 알을 발견했다는 것은 큰 기쁨. 하지마 그 기쁨은 오래 가지 못한다. 용의 알이 이미 부화하기 직전이었고 누군가는 비행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용을 조정하는 비행사는 용만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 척박하고 사생활이 없는 비행사의 생활.  그것은 숙명이자 운명이었고 의도치 않게 로렌스 대령은 용에게 선택당한다.

 

 < 갑판을 이리저리 살피며 돌아다니던 새끼용이 로렌스에게 다가와 뒷다리를 웅크리고 주저앉더니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로렌스를 욜려다보았다. 로렌스도 유감스럽고 당황한 눈빛으로 새끼용을 마주 보았다.

 새끼용은 눈을 몇 번 깜작였다. 눈동자는 짙은 푸른색이었고, 홍채가 세로로 길게 갈라져 있었다. 새끼용이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찡그리고 있어?>

 

 새끼용은 그렇게 로렌스를 택했고 로렌스는 새끼용에게 '테메레르' 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새끼용이 말을 할 줄 아는 순간, 로렌스가 새끼용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려 혼이 났다. 이 책은 용이 그저 부수적인 인물로 나오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기대에 두근거렸고(말도 하는데 작은 역할은 아니겠구나!) 용에게 이름을 지어줌으로서 그 용의 평생의 친구가 되는 것이 김춘추의 <꽃>에서 이름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방식이 좋았다.

 

 테메레르는 어느 용과는 달리 (용을 잘 알지 못하지만 로렌스의 용에 관한 지식을 토대로) 상당히 영리하고 몸짓도 하루가 다르게 커갔으며 로렌스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까만색의 용에 목욕을 좋아하는 용이었다. 이렇게 테메레르를 처음 만나는 순간, 나는 예감했다. 이 책을 다 읽을즘에는 이 용을 사랑하게 되겠구나. 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용과 사람의 교감,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이

 비행사가 되면 자신의 생활은 포기해야 한다고 한다. 그 만큼 비행사는 모든 것을 용 위주로 살아간다. 그 처신에 너무 한 것 아닌가? 라는 내 의문은 책을 읽으며 이해되기 시작한다. 용에게는 한 번 자신의 비행사가 된 사람가 자신의 전부가 된다. 용은 나라를 위해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등에 올라탄 비행사를 위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다. 비행사에게 용이 전부라면 용에게도 비행사가 전부이다.

 

 <"싫어, 로렌스. 그런 약속은 할 수 없어. 솔직히 말해서, 만일 당신이 그 끈을 놓치고 떨어졌다면 나는 그냥 쳐다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거야. 당신은 빅토리아투스와 그 승무원들의 목숨이 다른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여길는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달라. 나한테는 그들 목숨을 전부 합친 것보다도 당신 목숨이 훨씬 중요해. 그러니까 앞으로도 당신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다른 이들을 구하진 않을 거야. 그런 요청이라면 따를 수 없어. 그게 의무라고 해도 난 신경 안 써. 나한테는 세상 무엇보다도 당신이 중요하니까" >

 

 힘으로라면 한 군대의 공격력은 아주 간단히 무너지게 할 수 있는 수십 톤에 달하는 용이 작은 인간에게 복종하는 것은 자신과 인간 사이의 끈을 스스로 이었기 때문이다. 그 끈을 한번 묶는 순간 용은 그 인간이 죽는 날까지 배신하지 않고 곁에서 지켜주리라 마음 먹는다. 그런 용을 비행사 역시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게 되고 그 교감은 보는 이로 하여금 존경심을 불러 일으킨다.

 

 책을 읽는 동안 용과 인간의 교감을 보며 눈물도 흘려보고 환하게 웃어도 본 나는 정말 나만의 것을 갖고 싶어졌다. 테메레르와 로렌스의 우정을 지켜 본 이들이라면 내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책에 나온 수 많은 에피소드들을 나열하지 않는 건 독자가 용의 특성을, 그 영특함, 재치를 발견하는 기쁨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기쁨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

 

#용이 전쟁에 참여한다면? 그 웅장함을 함부로 상상하지 마라!

 전쟁영화 중에 입이 벌어진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내게는 반지의 제왕의 전쟁 장면이 그러하였는데 이 책에서 용이 전쟁에 침투되는 것을 보면 입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턱이 빠질지도 모른다. 수십 톤의 무게에 거대한 군함보다 더 큰 용의 등과 배에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탈 수 있는지 그 수에 놀라고 용들이 보여주는 묘기와 전략에도 놀라게 된다. 

 

 용들의 전쟁에는 이렇게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지만 품위가 있다. 싸움에 품위가 아니라 싸우는 자세에 품위가 있다. 용의 아름다운 날개짓과 거대한 꼬리와 몸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은 상상만으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어 상상의 바람을 불러 일으킨다. 책에서는 전쟁 장면 보다는 테메레르와 로렌스의 우정에 중점을 두었지만 몇 번의 전쟁장면은 그런 아쉬움쯤 한방에 날려 버린다.  그 속에 있고 싶다는 상상이 들게 만드는 묘사 속으로 한없이 빨려들어가는 나를 본다.

 

#묘사의 극치, 섬세한 구성, 책을 읽으며 영화를 보다

 이 책에 대해 이야기 하는 지금 내 마음은 안달이 나있다. 상상만으로도 테메레르를 형체를 그릴 수 있게 된 나는 누군가에게 용에 대해, 테메레르와 로렌스의 우정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싶어 마음이 급하다. (이건 마치 사랑을 처음 시작한 여자가 친구들에게 애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과 같다.)

 

 나오미 노빅, 그녀를 기억해야 한다. 판타지에서 이렇게 묘사를 잘 살리는 작가를 만나는 건 드문 일이다. 그녀의 책은 영화를 위한 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니 이건 영화를 보는 느낌으로 읽게 된다. 생생함을 위해 작가는 캐릭터의 외모 묘사나 심리 묘사를 탁월하게 하고 있으며 역사와 용을 조합시키는 구성이 전혀 어색함 없이 이루어져 있어 짜임새 있는 구성은 읽는동안 전혀 어색함 없이 다가온다. 아니, 오히려 정말 그 시대에 용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란 의심을 하게 될 정도다.

 

 책을 50페이지 정도 남겨두고 아침이 밝아올 무렵 나는 얼마나 가슴 아려했던가. 더 많이 테메레르를 만나고 싶다, 테메레르와의 시간이 꼭 50페이지만 남긴 것 같아 사랑의 유예기간을 받은 것처럼 애가 탄다. 그래도 읽어내려 갈 수밖에 없는 소설. 책을 덮으며 혼잣말을 한다. "2편도 나오겠지? 영화로 꼭 만들어 지겠지?"

 

 테메레르, 사랑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책, 빠져들고 빠져들 수밖에 없는 책, 반하고 반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가슴을 울리는, 가슴을 떨리게 하는 판타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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