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메레르 1 - 왕의 용 판타 빌리지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시절 집이 마을과 떨어진 곳에 살아 친구가 없던 나는 바람이 살랑이는 날이면 집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누워 하늘을 보며 시간을 보내길 좋아하는 아이였다. 바람에 움직이는 구름을 보며 구름의 모습을 여러 동물로 상상해 보고는 했다. 가장 많이 상상한 동물은 용이었다. 여자 아이임에도 나는 용을 동경했다. 동화 속 공주들이 용에 갇혀 괴롭힘을 당한다는 이야기에도 진실은 용과 공주들은 행복하게 놀고 있을 것이라고, 공주들이 용과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왕자를 만나는 것을 잊은 것이라고 믿었다. 아마 할머니의 말씀 때문일 듯하다. 덩치가 클 수록 영리하고 착한 동물이 더 많은 법이라고. 그렇게 용을 좋아하게 되었다. 착한 아이가 아닌 나여서 착한 용을 좋아하고 동경하였다.
 

 용을 좋아해서 일까? 용이 나오는 책과 영화를 참 좋아한다. 용만큼 용맹하고 영리한 동물이 또 있을까 싶을만큼 책과 영화 속 용은 내 마음을 가져가 버렸다. (테메레르를 만나기 전까지 내가 좋아하는 용의 1순위는 '슈렉'에 나오는 용이었다.) 그런데 수 많은 용들에게 주었던 마음을 모아야 할 때가 왔다. 그 마음을 다 합치고, 새롭게 부풀어 오르는 마음을 더해서 사랑하고 싶은 용을 만났기에. 그 용의 이름은 테메레르, 테메레르를 만나기 전의 나는 용에 대해 전혀 모르는 아이와 같았다.

 

#테메레르와의 만남, 그 두근거림

 책의 배경은 나폴레옹의 정복활동이 활발했던 1800년대. 영국 해군 소속이며 렐리언트 호의 함장인 윌 로렌스는 프랑스 소형구축함을 손에 넣는다. 그 사건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데 그건 바로 창고에서 발견한 용의 알 때문이었다. 이 시기에는 용이 살았다. 살다만 뿐인가, 용을 이용한 전쟁도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전쟁의 승패는 용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용의 알을 발견했다는 것은 큰 기쁨. 하지마 그 기쁨은 오래 가지 못한다. 용의 알이 이미 부화하기 직전이었고 누군가는 비행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용을 조정하는 비행사는 용만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 척박하고 사생활이 없는 비행사의 생활.  그것은 숙명이자 운명이었고 의도치 않게 로렌스 대령은 용에게 선택당한다.

 

 < 갑판을 이리저리 살피며 돌아다니던 새끼용이 로렌스에게 다가와 뒷다리를 웅크리고 주저앉더니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로렌스를 욜려다보았다. 로렌스도 유감스럽고 당황한 눈빛으로 새끼용을 마주 보았다.

 새끼용은 눈을 몇 번 깜작였다. 눈동자는 짙은 푸른색이었고, 홍채가 세로로 길게 갈라져 있었다. 새끼용이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찡그리고 있어?>

 

 새끼용은 그렇게 로렌스를 택했고 로렌스는 새끼용에게 '테메레르' 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새끼용이 말을 할 줄 아는 순간, 로렌스가 새끼용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려 혼이 났다. 이 책은 용이 그저 부수적인 인물로 나오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기대에 두근거렸고(말도 하는데 작은 역할은 아니겠구나!) 용에게 이름을 지어줌으로서 그 용의 평생의 친구가 되는 것이 김춘추의 <꽃>에서 이름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방식이 좋았다.

 

 테메레르는 어느 용과는 달리 (용을 잘 알지 못하지만 로렌스의 용에 관한 지식을 토대로) 상당히 영리하고 몸짓도 하루가 다르게 커갔으며 로렌스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까만색의 용에 목욕을 좋아하는 용이었다. 이렇게 테메레르를 처음 만나는 순간, 나는 예감했다. 이 책을 다 읽을즘에는 이 용을 사랑하게 되겠구나. 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용과 사람의 교감,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이

 비행사가 되면 자신의 생활은 포기해야 한다고 한다. 그 만큼 비행사는 모든 것을 용 위주로 살아간다. 그 처신에 너무 한 것 아닌가? 라는 내 의문은 책을 읽으며 이해되기 시작한다. 용에게는 한 번 자신의 비행사가 된 사람가 자신의 전부가 된다. 용은 나라를 위해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등에 올라탄 비행사를 위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다. 비행사에게 용이 전부라면 용에게도 비행사가 전부이다.

 

 <"싫어, 로렌스. 그런 약속은 할 수 없어. 솔직히 말해서, 만일 당신이 그 끈을 놓치고 떨어졌다면 나는 그냥 쳐다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거야. 당신은 빅토리아투스와 그 승무원들의 목숨이 다른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여길는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달라. 나한테는 그들 목숨을 전부 합친 것보다도 당신 목숨이 훨씬 중요해. 그러니까 앞으로도 당신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다른 이들을 구하진 않을 거야. 그런 요청이라면 따를 수 없어. 그게 의무라고 해도 난 신경 안 써. 나한테는 세상 무엇보다도 당신이 중요하니까" >

 

 힘으로라면 한 군대의 공격력은 아주 간단히 무너지게 할 수 있는 수십 톤에 달하는 용이 작은 인간에게 복종하는 것은 자신과 인간 사이의 끈을 스스로 이었기 때문이다. 그 끈을 한번 묶는 순간 용은 그 인간이 죽는 날까지 배신하지 않고 곁에서 지켜주리라 마음 먹는다. 그런 용을 비행사 역시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게 되고 그 교감은 보는 이로 하여금 존경심을 불러 일으킨다.

 

 책을 읽는 동안 용과 인간의 교감을 보며 눈물도 흘려보고 환하게 웃어도 본 나는 정말 나만의 것을 갖고 싶어졌다. 테메레르와 로렌스의 우정을 지켜 본 이들이라면 내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책에 나온 수 많은 에피소드들을 나열하지 않는 건 독자가 용의 특성을, 그 영특함, 재치를 발견하는 기쁨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기쁨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

 

#용이 전쟁에 참여한다면? 그 웅장함을 함부로 상상하지 마라!

 전쟁영화 중에 입이 벌어진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내게는 반지의 제왕의 전쟁 장면이 그러하였는데 이 책에서 용이 전쟁에 침투되는 것을 보면 입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턱이 빠질지도 모른다. 수십 톤의 무게에 거대한 군함보다 더 큰 용의 등과 배에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탈 수 있는지 그 수에 놀라고 용들이 보여주는 묘기와 전략에도 놀라게 된다. 

 

 용들의 전쟁에는 이렇게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지만 품위가 있다. 싸움에 품위가 아니라 싸우는 자세에 품위가 있다. 용의 아름다운 날개짓과 거대한 꼬리와 몸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은 상상만으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어 상상의 바람을 불러 일으킨다. 책에서는 전쟁 장면 보다는 테메레르와 로렌스의 우정에 중점을 두었지만 몇 번의 전쟁장면은 그런 아쉬움쯤 한방에 날려 버린다.  그 속에 있고 싶다는 상상이 들게 만드는 묘사 속으로 한없이 빨려들어가는 나를 본다.

 

#묘사의 극치, 섬세한 구성, 책을 읽으며 영화를 보다

 이 책에 대해 이야기 하는 지금 내 마음은 안달이 나있다. 상상만으로도 테메레르를 형체를 그릴 수 있게 된 나는 누군가에게 용에 대해, 테메레르와 로렌스의 우정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싶어 마음이 급하다. (이건 마치 사랑을 처음 시작한 여자가 친구들에게 애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과 같다.)

 

 나오미 노빅, 그녀를 기억해야 한다. 판타지에서 이렇게 묘사를 잘 살리는 작가를 만나는 건 드문 일이다. 그녀의 책은 영화를 위한 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니 이건 영화를 보는 느낌으로 읽게 된다. 생생함을 위해 작가는 캐릭터의 외모 묘사나 심리 묘사를 탁월하게 하고 있으며 역사와 용을 조합시키는 구성이 전혀 어색함 없이 이루어져 있어 짜임새 있는 구성은 읽는동안 전혀 어색함 없이 다가온다. 아니, 오히려 정말 그 시대에 용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란 의심을 하게 될 정도다.

 

 책을 50페이지 정도 남겨두고 아침이 밝아올 무렵 나는 얼마나 가슴 아려했던가. 더 많이 테메레르를 만나고 싶다, 테메레르와의 시간이 꼭 50페이지만 남긴 것 같아 사랑의 유예기간을 받은 것처럼 애가 탄다. 그래도 읽어내려 갈 수밖에 없는 소설. 책을 덮으며 혼잣말을 한다. "2편도 나오겠지? 영화로 꼭 만들어 지겠지?"

 

 테메레르, 사랑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책, 빠져들고 빠져들 수밖에 없는 책, 반하고 반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가슴을 울리는, 가슴을 떨리게 하는 판타지가 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