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의 탄생 - 헌법으로 본 대한민국 건국사, 서해역사문고 8
이영록 지음 / 서해문집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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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제부터인가 국경일은 휴일로 인식되어 있던 내게 이번 제헌절은 내년부터는 쉬지 않는 국경일로 아쉬움을 주었다. 이제서야 궁금해진다. 50년이나 되는 기간동안 공휴일로 지정될 만큼 뜻 깊은 날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이 공포된 날로 정의되는 제헌절 그 시간이 걸어온 길을 엿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뿐이었고 만약 인터넷 책 카페의 책 소개가 없었다면 관심은 그저 관심으로만 끝났을 것이다.
 

 법이라면 대학 교양과목으로 설렁 들은 <법과 사회>가 전부였던 내게 이 책은 읽기도 전에 겁이 나게 했지만 작고 가벼운 책이 내 손에 들린 순간 그 겁은 날아가 버리고 책장을 넘기며 내가 모르는 역사의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왜적이 항복한답디다"고 하였다. 이 소식은 내게 희소식이라기 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 수년동안 애를 써서 참전을 준비한 것도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중략) 그런데 그러한 계획은 한번 실시해 보지도 못하고 왜적이 항복하였으니, 지금까지 들인 정성이 아깝고 다가올 일이 걱정되었다. <김구의 '백범일지'>

 

 1945년 여름, 희망의 목소리와 탄성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김구 선생님의 걱정어린 한숨이 환호 속에 묻힌다. 이 모습은 3년 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1948년 7월 12일 국회에서는 헌법 통과 가결을 선포하는 이승만의 말에 전원 기립하여 축하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문원, 임석규, 이종근 세 의원은 기립하지 않고 앉아있었다고 한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환호 속에 앉아 있는 그들의 얼굴의 드리운 그늘은 무엇을 의미한 걸까? 헌법은 어떠한 길을 걸었기에 환호하는 사람들도, 환호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리 밝은 얼굴이 아니었던 걸까? 유독 이승만의 얼굴에만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이유와 그의 얼굴에 승리를 띠운 미소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해방 후 3년간을 '혼동과 불안'으로 표현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그 기간은 우리나라를 둘러싼 미국과 소련의 대립뿐만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분열로 인해 마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밑에서 지켜보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결국 통일국가의 꿈은 무산되고 분단이 최종 확정되면서 단독정부수립이란 결정이 내려진다.

 

#씁쓸함이 남는 건국헌법

 

<한 국가를 세운다는 것은 가시적으로 전체를 통합하는 하나의 통치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한 국가의 법적 기초를 의미하는 헌법이란 가장 넓은 의미로는 국가의 조직과 구성에 관한 기본법이라 일컬어진다.> -p.112

 

 한 나라가 바로 서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헌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헌법은 그 나라의 성격과 이념, 체제를 말해준다. 헌법이 탄생하는 과정을 읽어 내려가며 '헌법을 정치와 법의 경계선에 있는 법'이란 저자의 말이 실감이 난다.

 

 국내 정세에서 우파의 승리는 우리 정치체제가 자유민주체제로 결정되는 분수령이 되었지만 농지개혁을  유상매입 유상분매 방침으로 굳어지게 되고 친일단죄란 과거청산의 문제 역시 대립의 한 축인 좌파가 탈락하면서 추동력이 사라지게 되고 명분은 남았다 해도 헌법에서는 처벌의 대상을 '악질적인 경우'로 한정하는 것으로 일단락 되어지고 만다.

 

 또한 건국헌법은 인권과 치안의 충돌에서 치안의 편을 들어줌으로써 많은 아픔을 낫게 하는데 그 중 조봉암 의원이 주장했던 '고문 금지 규정'이 삭제 되는 일이 벌어진다. 이 규정이 남겨졌다면 쓰라린 고문의 역사는 사라졌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내가 혀를 내두른 것은 대통령제를 이루고 싶은 이승만의 말도 안 되는 행동들이었다. 유일무이한 대통령 후보였던 이승만은 정부의 안정을 주장하여 놓고는 내각책임제가 되면 실권이 수상에게 돌아감을 염려하여 대통령제를 이루기 위해 안감힘을 쓴다. 그가 대통령제가 채택되지 않으면 대통령 하지 않겠다는 말에 씁쓸함이 입안에 맴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대로 헌법은 제정되었고 공포되었다. 조급함과 편법으로 뭉쳐진 헌법은 결국 9차 개헌을 단행하고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헌법으로 인해 근대적 입헌주의 국가로 탄생했다. 헌법의 가벼움에 얼마나 많은 이가 혀를 끌끌 찼을지 상상하지 않을 수 없지만 저자의 말대로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것처럼 우리 헌법은 내실을 다져가고 있는 중이라고 믿고 싶다.

 

 헌법의 탄생 과정을 쫓아가며 저자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은 차분한 설명은 읽기 편했다. 정세나 역사에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조금 벅찬 부분이 있기도 했지만 이 한 권으로 그 당시의 정세와 역사를 알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으로 인해 내년 제헌절부터는 헌법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공휴일이 아니라 아쉽지만.

 

 -헌법공동체로서 우리 정체성의 확인, 그 첫 작업이 바로 우리가 지나간 제헌사를 다시 되돌아보는 이유인 것이다.  -저자의 말,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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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님이 들려주는 축소지향의 일본인 세트 - 전2권 - 우리 아이들을 위한 지식의 샘
이어령 지음, 김준연 그림 / 생각의나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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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제부터인가 일본하면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문구가 생각난다. 잘 알 듯하면서도 내가 일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저 국사책에 나오는 딱 그정도 뿐이었다. 유독 일본이란 단어만 나오면 목소리가 커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나 역시도 다르지 않아서 그저 일본이라는 것에 고개를 돌리고 마는 일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문학을 좋아하는 나를 보면서 문득 궁금해진다. 내가 아는 일본은 대체 어떤 나라일까? 문학 속 그들은 마음이 여린 반면 역사 속 그들은 무자비하고 악랄하기 그지 없다. 대체 무엇이 그들의 진실된 모습일까?

 

 일본이란 나라를 무조건 미워하는 초등학생들을 볼 때면 그 모습이 어린 시절 내 모습 같아 제대로 일본에 대해 설명 해 주고 싶지만 정작 내가 아는 일본은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에 나라가 밉다고 그 나라 사람들까지 미워하면 안 된다고 매듭짓고는 말았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아이들에게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있는 책이 되어주었다. 이 책은 1980년 초에 일본에서 먼저 출간된 책으로 우리나라 10대들을 위해 전에 나온 책의 내용을 알기 쉽게 풀고 재밌는 그림을 추가해 읽기 편하게 만든 책이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어령 선생님은 일본을 '축소지향' 이라고 정의한다. 축소지향이란 말 그대로 일본은 '무엇이든 작게' 란 모토를 가지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이 특이한 점으로 인해 일본은 국제 경제사회에서 성공하였지만.)  작게 만들 되 그 속에 모든 것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이레코 (커다란 상자안에 점점 더 작은 상자들이 들어가 있는 상자) 상자는 점점 작아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자가 가지는 성질 역시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일본은 무엇이든 작게 만들지만 원래 가지는 특성을 살릴려고 애를 쓴다.

 

 이어령 선생님은 일본를 대표하는 6 가지 물건들을 통해 일본의 축소지향을 설명한다. 이레코와 쥘부채, 아네사마 인형, 도시락, 문장, 노멘 을 통해 축소지향 성격에 대해 듣다보면 일본이 가지는 성격과 역사를 이해하게 된다. 저자의 책을 읽다보면 일본의 물건이나 생각들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알고 있나에 놀라게 된다. 일본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만큼 저자는 축소지향형임을 나타내는 일본의 문학, 예술등 문화와 삶의 전반적인 것들을 예로 들어주며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시킨다. 하이쿠에 담긴 축소지향 성격에 혀가 내둘러졌다.

 

 일본하면 '모방의 나라' 라고 한번쯤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것 역시 일본의 축소지향적 성격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제 1위의 나라가 되려고 하지 않고 2위에 만족하는 나라가 되려고 한다. 1등이 만들어 놓은 것을 조금 더 편하고 소비자의 구미에 맞게 새로운 제품을 내놓고는 한다. 자동차나 라디오 등 일본은 분명 축소지향적 성격을 산업에도 적용시켜 굉장한 성공을 이끌어 내었다. 하지만 1등의 물건을 소비자의 구미에 맞춰 만들어 내는 일본으로서는 이제 1위의 자리에 앉아있는 일이 많음에도 그걸 즐기기 보다는 불안해하고 있다.

 

 이런 일본의 불안을 저자는 일본이 확대지향을 시도하다 실패한 경험으로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임진왜란이나 태평양 전쟁 등은 일본이 나라 밖을 떠나는 순간 우왕좌왕 하는 모습과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킴을 잘 보여준다. 일본의 국민성은 어쩌면 나라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본은 속으로 모일수록 강해지지만 밖으로 뻗어나갈수록 그 힘은 약해져 성공보다는 실패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일본의 약점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장점으로 승화시키길 저자는 바라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 승화의 길에는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에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사과하고, 아시아의 일등은 일본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속으로 알찬 일본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책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편집된 만큼 쉽고 만화가 수록되어 있어 재밌게 읽힌다. 그리고 내용 자체가 다양하고 많은 예를 들고 있어 읽는 동안 지루할 틈이 없다.

 

 아쉬운 점은 일본의 많은 문화를 너무 축소지향으로 몰아간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점이 남는 다는 것이다. 또한 객관적인 시선보다는 일본이란 나라에 편견을 가지고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한쪽으로 기운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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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사고치다
공성수 지음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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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수능 접수가 시작되었다. 고 3 학생들은 응시원서에 사진을 붙이면서 한숨을 내 쉴수도 있고, 붙어라 붙어라 중얼거리며 마법의 주문을 외울지도 모른다. 지금의 수능과 내가 8년 전에 본 수능은 차원이 다름은 응시료가 너무도 확연하게 알려준다. 높아진 응시료만큼이나 수능을 보는 학생들의 마음 부담 역시 높아진 것이 사실. 더군다나 나의 경우는 수능이 끝나면 해방이었지만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수능이 끝나자마자 더 큰 난관이라고 할 수 있는 논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11월 중반 수능이 끝나고 나서의 풍경은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 수능을 보자마자 아쉬움과 허탈함을 가족들과 맛있는 짜장면이나 탕수육으로 달래기 보다는 엄마와 함께 논술 학원을 알아보거나 이미 알아 본 논술 학원에 상담을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혹은 수능에서 실수를 많이 한 아이들은 엄마를 붙잡고 논술 과외를 시켜달라고 울먹거리기도 한다. 학창시절 내내 수능의 압박에서 탈출한 아이들을 기다리는 건 논술이란 가시밭길 이었다. 학생들은 가시밭길에서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다. 이 아이들을 구해줄 배를 띄어보낼 줄 이가 없을까?

 

 선배들을 바라보며 한 숨 짓는 후배들의 발걸음 역시 무겁기만 하다. 수능만 잡으면 된다고 애를 쓰며 하고는 있지만 선배들을 보면 논술로 당락이 결정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대체 논술은 언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후배들의 한숨을 그치게 해 줄 이가 없을까?

 

 <논술, 사고思考치다>의 저자 공성수 선생님은 논술이 코 앞에 닥친 학생들과 논술을 치러야 하는 세대인 학생들을 구해 줄 사고思考 치는 배를 몰면서 우리 앞에 섰다. 이름도 사고치는 배, 학생들과 논술로 제대로 사고 한 번 쳐보자고 달려 온 선생님과 논술 공부를 하다보면 어느새 가시밭길은 탄탄대로가 되는 느낌이고 한숨은 웃음으로 변하게 된다.

 

 논술을 잘 해야 좋은 대학에 간다고 장담은 못 하지만 논술을 못하면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 선생님은 논술로 인해 아이들이 더이상 가고 싶은 대학에 가지 못함을 통탄하면서 논술의 비급을 전해 준다.

 

  총 4장으로 나눈 책은

 

1강에서는 학원에서 가르쳐 준대로 쓴 학생이 논술로 떨어지는 경우 분석을 담고 있다. 태희의 실패담을 읽고 있노라면 자신이 실수하고 있는 논술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강에서는 논술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방법들에게 하이킥을 날려주는 내용이 담겨 있다. 틀에 박힌 생각에도 하이킥, 수능 끝난 후 논술 시작해도 된다는 말에도 하이킥, 책 한 권을 다 읽어야 한다는 것에도 하이킥을 날려주며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시며 준비 자세를 갖게 해 준다.  

 

3강에서는 논술 실제로 해 보는 실전훈련이 이루어진다. 구상하기와 개요 만들기에서 부터 통합논술에 대한 설명까지 꼼꼼하게 알려 준다. 특히 학생이 스스로 해 볼 수 있도록 다양한 예제를 말해주고 있으며 실수할 부분들을 되짚으며 알려 준다. 또한 실수 하더라도 겁내지 말고 그 실수를 돌아보고 한단계 나아가는 학생이 되도록 돕니다. 

 

 4강에서는 논술의 주제들을 간략하지만 요점만 집어서 이야기 해 주고 있다. 데카르트의 근대적 주체의 탄생부터 생명공학까지 총 17강에 이르는 내용들은 내가 읽기에도 도움이 되는 지식들이 많았다. 또한 그 주제를 설명하면서 선생님은 생각해 볼 주제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까지 알려주어서 친절한 선생님임을 잊지 않게 한다. 

 

 책을 다 읽은 후에 학생들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질 것이다. 우리는 선생님한테 좋은 배를 한 척 받았다, 그 배가 잘 가도록 바람을 불게 하는 것은 나의 몫. 스스로 얼만큼 많이 쓰고 생각하고 준비할 것인가에 따라 바람의 세기가 달라짐을 알기에 학생과 나는 노력 할 것이다. 책과 함께 준 <독서, 사고치다 -나의 48주 독서노트> 를 활용하면 더욱 높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제대로 사고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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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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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초까지 덥다는 일기예보의 어긋남이 감사할 만큼의 서늘한 바람이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고 있다. 그 바람이 좋아 가디건 하나 꺼내 들고 산책하다가 오밀조밀하게 짜여진 가디건을 멍하니 내려다 보고는 한다. 특별한 것 없이 하나의 패턴으로만 짜여진 가디건은 새로 산 가디건을 당당히 밀어내고 내 옷장을 참 오랜 시간동안 지키는 터줏대감이다. 화려하게 짜여진 가디건을 동경해서 사놓고도 자주 입지 못함은 내 옷이 아닌 듯한 기분 때문이었다.
 

 인간은 살아감에 있어 화려한 옷과 편안한 옷을 얼마나 구분할 수 있을까? 내 옷과 네 옷이 아닌 옷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에 타인의 삶이 내 삶이 되어주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하고, 타인의 삶이 내 삶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한다. 나보다 못한 삶을 경멸하기도 했으며 나보다 잘 사는 삶은 동경을 넘어서 시샘하며 그 곳을 향하기 위해 나만은 특별한 삶을 살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갔으며 살아가고 있는 지 알면서도 왜 삶의 비밀은 이다지도 찾기 힘들고, 방황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도 진저리 칠만큼 길을 헤매고 있다.

 

 책을 덮고 나서 서늘한 바람을 막아주는 가디건의 옷감을 보면서 필립이 찾고자 했던 인생의 비밀을 생각해 본다. 그가 찾고자 했던, 그가 깨닫고야만 인생의 비밀. 그 앞에서 나는 무방비가 되었다. 이 비밀을 내가 들어도 되는 것일까? 이렇게 아무것도 아니하고 그가 30년 가까이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을 나는 몇 시간도 들이지 않아 알아도 되는 것일까? 책이 주는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란 생각에 필립이 깨달음을 얻은 순간 난 책을 놓치고 말았다.

 

 책을 놓치고 내 눈을 채우는 것은 수레바퀴였다. 사람은 모두 수레바퀴인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굴러가고 있음에도 굴러감을 모르고, 돌부리가 눈 앞에 있음에도 너무 늦게 발견해 피하지 못해 그 아픔을 고스란히 견디어 내기도 한다.

 

 처음부터 튼튼한 수레살을 지닌 수레바퀴는 여전히 반짝 거리며 내 옆을 지나가기도 하지만 그 수레바퀴는 인생이란 길의 달콤함만을 맛 보며 흙이 주는 평안함을 알지 못하고 그저 더러운 곳을 지나치지 않기 위해 요리조리 피해다니느라 바쁘다.

 

 대다수의 수레바퀴는 튼튼하지 못했으며 빛이 나지도 않았다. 연약했고, 조금만 굴러도 눈물을 흘리는 여린 심성을 가졌으며 먼 곳을 내다보며 갈 길을 재촉하면서도 옆에 있는 다른 약한 수레바퀴를 마음에서 놓을 수 없어 여린 몸으로 굴려주고, 진흙탕길을 빠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문득 우리는 자신이 수레바퀴임을 자각하고 번뇌에 빠질지도 모른다. 지금 서 있는 곳이 진흙탕길이라면 더욱 번뇌는 심해지고 자신이 목숨 걸고 지켜준 수레바퀴가 다른 수레바퀴를 밀어주고 있다는 것에 좌절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행히도 둥근 수레바퀴라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흘러갈 수 있다. 인간의 굴레란 얼마나 절망스러우며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필립을 통해 그가 실패하지 않기를, 실패했더라도 좌절하지 않기를, 좌절 했더라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랐다. 밀드레드를 향한 필립의 행동에 욕을 하면서도 그를 버리지 않았으며, 백부를 향한 그의 검은 마음을 보면서도 그에게 회초리를 가하면서도 그의 이야기를 중간에서 끊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고뇌하고 번뇌하고 애를 썼기 때문이다. 살아가기 위해서,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 했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필립이였다면 책은 10페이지에서 끝이 나 버렸을 것이다. 필립이었기에 천 페이지가 넘는 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삶이 천 페이지라면 너무 작다고 할 수 있을 것이나 그의 삶은 계속 이어지고 있기에 그건 결코 적지 않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사로잡힌 감정들을 나열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인가. 필립이 나였을때도 있었으며 그가 내 아들 같았던 적도 있었으며 그가 내 친구였던 적도 있었다. 그를 제대로 알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와 함께 걸었다는 것만으로 나는 뿌듯해지려고 한다.

 

 언젠가 분명 다시 내 손에 들리게 될 이 책을 손으로 쓰다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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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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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얼마 살지는 않았지만 살아온 길을 뒤돌아 보면 반짝 빛나는 지점이 생긴다. 그 지점에는 아마도 이런 마음의 깃발이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세상을 다 가져라."

 

그런 나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꿈을 품을 수도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하며, 보다 유쾌하고 통쾌하게 세상을 뛰어 다녀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나이. 내게 그런 나이는 20살, 대학교 1학년이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사막에 눈이 내리게 할 수도 있다고 혼언장담할 수 있는 나이, 그 시절이 반짝 거리며 나를 부른다. 내 20살이.

 

 사막에 눈이 내리게 할 청춘들을 소개합니다.

 

-후후, 기타무라 -삶이란 것은 그저 그런 것이란 생각을 할 듯한 용모단정의 남자. 조금은 관조적으로 웃을 것 같은 그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조감형인 이 남자, 슬슬 삶에 열을 올려야 할 준비를 한다.

 

-크하하하, 도라이-생활 속 재미와 놀이를 찾는 것을 좋아하는 듯한 남자, 인생은 즐겁게가 모토일듯한 남자 그와 함께라면 사는동안 참 많이 웃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유쾌한 남자이다. 가볍지만은 않은 유쾌함이라 그가 좋다.

 

-...(웃은 것임), 도도-얼음공주라는 말이 딱 어울릴 듯한 여성.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미녀지만 그 미모를 돋보이게 하려하지 않는 무신경이 더욱 매력을 발산하게 한다. 무표정의 여왕급인 그녀와 친구가 되면 적어도 그녀가 무표정이더라도 기분이 좋은건지 나쁜 것인지는 알 수 있게 되니 속마음은 친절한 공주이다.

 

-빙긋이,  미나미-은은한 밝은 빛이 주위를 감싸는 듯한 존재감을 주는 그녀. 행복이란 선물 꾸러미를 들고 다닐 듯한 귀여운 아가씨. 순정파라서 눈물도 많지만 예상외의 초능력을 갖고 있는 소유자.

 

-왜 웃어야 합니까!, 니시지마-그룹에 한 명은 꼭 있을 것 같은 괴짜 중의 괴짜. 세상을 바꾸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되서 늘 투덜이는 남자. 거창한 시도가 아닌 스스로 온 힘을 다해 전력(물로 대부분 실패하지만)을 다하는 모습이 이제는 사랑스럽기까지 한 남자.

 

#함께여서 더욱 빛난다. 청춘!

 

"인간으로서 누릴 최대의 사치란, 인간관계의 풍요로움을 말한다." -p.599

 

 주인공 다섯 명과 또 다른 한명 하토무기라는 여성으로 이뤄진 이 집단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진다. 하긴 대학생들에게 이름은 조금 쑥쓰럽고 창피할 수도 있겠다. (더 좀비스는 고등학생이어서 잘 어울린 듯도 하니까.) 

 

 친구란 만나면 만날수록 좋은 만큼 신기한 느낌을 준다. 어떻게 친구가 된 걸까? 성격이 다른 친구들이라면 그런 느낌은 더하다. 어떻게? 니시지마에게 왜 친하게 된 겁니까? 라고 묻는다면 그는 우리는 사막에 눈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죠. 라고 답할지도 모른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친구들이 그에게 아유를 퍼붓는 건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젊음, 청춘.

스스로의 행동을 책임질 수 있는 청춘은 빛이 난다. 물론 갈지자로 걷기도 하고 무언가를 쏟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스스로 일어설 수 없다고 해도 옆에 있는 친구가 손을 내밀어 주고, 손을 잡을 용기가 있다면 청춘은 얼룩조차 아름답게 빛에 합류한다.

 

 우리는 불안전하다. 어느 나이나 불안전 한데 하물며 스무살은 얼마나 불안한가. 그 나이를 날아가지 않게 잡아주는 이가 친구이다. 그렇기에 친구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경험상 우리는 알고 있다. 친구만큼 소중한 건 없다고. (물론 예외가 있기도 하겠지만.)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보다말고 절대 덮을 일은 없으며 덤으로 친구와 함께 추억까지 덤으로 떠올릴 수 있다.

 

#이사카 코타로 식의 세상 구하기, 맘에 들었어!

-내가 할 수 있을만큼, 최선을 다해 구하자!

 

 "온 마음을 다해, 내 모든 것을 다 바쳐 해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p.151

 

 실제로 20살, 대학 1학년은 불안정한 나이이다. 울타리에서 훌쩍 밖으로 내보내졌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사막에 떨어진 것은 아니다. 울타리 밖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먹고 살기 힘든 사막은 아니다. 그곳에서 젊은이들은 방황을 한다. 밖에서 보는 세상이기에 울타리 속의 부당함이 더 잘 보이고 사막이 아니기에 용기를 내서 사회에 저항을 할 수 있다.

 

 물론 요즘 세상에 그런 젊이들은 많지 않다. 다들 사막에서 살아남기를 준비하느라 대학 생활동안 살 궁리를 하느라 바쁘고 그것도 아님 이번이 아니면 놀지 못한다라고 외치며 늘 놀 궁리만 하는 학생으로 나뉜다. 그런 젊은이들에게 이사카는 엉뚱하리만큼 매력없는 니시지마를 앞세우고 외친다. 손가락 하나로, 젊은이들 몇 명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그런 엄청난 일을 하라고 부추기는게 아니라 적어도 눈 앞에 있는 일들을 외면하지 말라고. 관심을 쏟으라고. 그것들이 여러분을 집어삼키기 전에!

 

 마왕을 통해 본 이사카는 분명 요즘 사회를 걱정하고 있다. 문학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믿든 믿지 않든 이사카는 노력하고 있다. 보다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이 닿기를 바라며 유쾌한 청춘 이야기 속에 은근히 적어내려가고 있다. 이사카는 즐겁게 최선을 다하는 젊은이를 꿈꾸고 있기에! 즐기지 않는다면, 소용 없음을 알기에.

 

외쳐보자, 즐겨라 청춘이여!

우리는 사막에 눈을 내리게 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태어났다.

 

 

덧붙이기)

이사카의 책에서 늘 뒤통수를 맞는 나로서는 이번에는 그런 일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500페이지를 넘어서면서 부터는 호언장담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기분 좋게 한대 맞았다. 시간이란 흐르고 있어서 멋진 것임을 모르고 있었다.

 

유쾌상쾌통쾌한 이사카의 책,

세상을 변화시켜보자라고 외치게 만든다. 친구들을 소집해야겠다.

(세상은 힘들지도 모르니 내 주변부터라도 변화시켜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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