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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의 탄생 - 헌법으로 본 대한민국 건국사, 서해역사문고 8
이영록 지음 / 서해문집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터인가 국경일은 휴일로 인식되어 있던 내게 이번 제헌절은 내년부터는 쉬지 않는 국경일로 아쉬움을 주었다. 이제서야 궁금해진다. 50년이나 되는 기간동안 공휴일로 지정될 만큼 뜻 깊은 날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이 공포된 날로 정의되는 제헌절 그 시간이 걸어온 길을 엿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뿐이었고 만약 인터넷 책 카페의 책 소개가 없었다면 관심은 그저 관심으로만 끝났을 것이다.
법이라면 대학 교양과목으로 설렁 들은 <법과 사회>가 전부였던 내게 이 책은 읽기도 전에 겁이 나게 했지만 작고 가벼운 책이 내 손에 들린 순간 그 겁은 날아가 버리고 책장을 넘기며 내가 모르는 역사의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왜적이 항복한답디다"고 하였다. 이 소식은 내게 희소식이라기 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 수년동안 애를 써서 참전을 준비한 것도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중략) 그런데 그러한 계획은 한번 실시해 보지도 못하고 왜적이 항복하였으니, 지금까지 들인 정성이 아깝고 다가올 일이 걱정되었다. <김구의 '백범일지'>
1945년 여름, 희망의 목소리와 탄성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김구 선생님의 걱정어린 한숨이 환호 속에 묻힌다. 이 모습은 3년 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1948년 7월 12일 국회에서는 헌법 통과 가결을 선포하는 이승만의 말에 전원 기립하여 축하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문원, 임석규, 이종근 세 의원은 기립하지 않고 앉아있었다고 한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환호 속에 앉아 있는 그들의 얼굴의 드리운 그늘은 무엇을 의미한 걸까? 헌법은 어떠한 길을 걸었기에 환호하는 사람들도, 환호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리 밝은 얼굴이 아니었던 걸까? 유독 이승만의 얼굴에만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이유와 그의 얼굴에 승리를 띠운 미소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해방 후 3년간을 '혼동과 불안'으로 표현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그 기간은 우리나라를 둘러싼 미국과 소련의 대립뿐만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분열로 인해 마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밑에서 지켜보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결국 통일국가의 꿈은 무산되고 분단이 최종 확정되면서 단독정부수립이란 결정이 내려진다.
#씁쓸함이 남는 건국헌법
<한 국가를 세운다는 것은 가시적으로 전체를 통합하는 하나의 통치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한 국가의 법적 기초를 의미하는 헌법이란 가장 넓은 의미로는 국가의 조직과 구성에 관한 기본법이라 일컬어진다.> -p.112
한 나라가 바로 서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헌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헌법은 그 나라의 성격과 이념, 체제를 말해준다. 헌법이 탄생하는 과정을 읽어 내려가며 '헌법을 정치와 법의 경계선에 있는 법'이란 저자의 말이 실감이 난다.
국내 정세에서 우파의 승리는 우리 정치체제가 자유민주체제로 결정되는 분수령이 되었지만 농지개혁을 유상매입 유상분매 방침으로 굳어지게 되고 친일단죄란 과거청산의 문제 역시 대립의 한 축인 좌파가 탈락하면서 추동력이 사라지게 되고 명분은 남았다 해도 헌법에서는 처벌의 대상을 '악질적인 경우'로 한정하는 것으로 일단락 되어지고 만다.
또한 건국헌법은 인권과 치안의 충돌에서 치안의 편을 들어줌으로써 많은 아픔을 낫게 하는데 그 중 조봉암 의원이 주장했던 '고문 금지 규정'이 삭제 되는 일이 벌어진다. 이 규정이 남겨졌다면 쓰라린 고문의 역사는 사라졌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내가 혀를 내두른 것은 대통령제를 이루고 싶은 이승만의 말도 안 되는 행동들이었다. 유일무이한 대통령 후보였던 이승만은 정부의 안정을 주장하여 놓고는 내각책임제가 되면 실권이 수상에게 돌아감을 염려하여 대통령제를 이루기 위해 안감힘을 쓴다. 그가 대통령제가 채택되지 않으면 대통령 하지 않겠다는 말에 씁쓸함이 입안에 맴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대로 헌법은 제정되었고 공포되었다. 조급함과 편법으로 뭉쳐진 헌법은 결국 9차 개헌을 단행하고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헌법으로 인해 근대적 입헌주의 국가로 탄생했다. 헌법의 가벼움에 얼마나 많은 이가 혀를 끌끌 찼을지 상상하지 않을 수 없지만 저자의 말대로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것처럼 우리 헌법은 내실을 다져가고 있는 중이라고 믿고 싶다.
헌법의 탄생 과정을 쫓아가며 저자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은 차분한 설명은 읽기 편했다. 정세나 역사에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조금 벅찬 부분이 있기도 했지만 이 한 권으로 그 당시의 정세와 역사를 알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으로 인해 내년 제헌절부터는 헌법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공휴일이 아니라 아쉽지만.
-헌법공동체로서 우리 정체성의 확인, 그 첫 작업이 바로 우리가 지나간 제헌사를 다시 되돌아보는 이유인 것이다. -저자의 말, p.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