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랜덤소설선 13
박범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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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잠을 잘 수 없었다. 잠이 들면 가본 적도 없는 바이칼 호수가 나에게 빠져들라고 유혹했다. 자살, 죽음에 반항하는 것? 그럴 수 없었다. 아득한 투명함 속에 난 꿈에서 몇 번이고 떨면서 혼절했다. 가본 적이 없는 그곳, 바이칼 호수. 그곳의 깊이는 1천6백여 미터. 수심 2백 미터의 물만이 새로이 바뀐다고 한다. 1천6백여 미터 호수 밑바닥의 물은 이미 수천 년전에 흘러든 거라고 한다. 그 밑바닥에는 낡은 자전거가 들어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한 남자와 한 남자가 사랑한 여자의 이야기, 사실은 그 이야기만으로 단정짓기에는 너무 부족한 삶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 불멸의 나라에는.

 

 

<사람의 몸 어딘가에는 그 모든 기억을 저장해 놓는 거대한 호수 같은 장소가 있어서, 그 바닥에는 잊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무수한 과거가 가라앉아 있다. 그리고 무언가를 떠올리고, 무언가를 시작하려 할 때, 아무 생각 없이 문을 뜬 아침, 아주 먼 옛날 잊어버렸던 기억이 그 호수의 바닥에서 불현듯 둥실 떠오르는 때가 있다.> -파일럿 피쉬 中, 오사키 요시오
 
 바이칼 호수, 오사키 요시오란 작가는 바이칼 호수를 두고 인간에게도 그런 호수가 있다고 했다. 이 책을 읽고서 인간의 주름살이 그런 호수가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인간의 주름살을 시간의 흐름에 관한 흔적으로 정의한다면 주름살에는 시간이 담겨있다. 그 주름살 밑바닥에는 불멸의 시간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아기였을 때부터 우리는 주름살이 있었으니. 태어날 때 부터 인간에게는 불멸의 시간이 담겨있다고 한다면 대체 그 시간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 걸까? 불멸의 삶을 살아가는 법? 태어났으니 죽음에 대항하는 법?

 

 <주름>을 읽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생生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아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도, 어떻게 죽어야 겠다는 생각도 나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나는 김진영과 천예린을 향해 이를 바득바득 갈다가도, 애처롭게 쓰다듬다가도 그들을 죽이지 못해 애처롭게 비명을 지르기까지 했다. 날 보고 어쩌란 말인가?

 

 투명함이 깊어 무섭기까지한 바이칼 호수 앞에 서면 사람들은 죽음을 느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책에 내게는 무섭다. 인간의 존재와 존재의 이유 그리고 의미에 대해 투명하리만치 보여주는 이 책 앞에서 나는 빠져들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또 쓴다. 이마에 식은땀이 나고 가슴은 불편함을 기침으로 토로한다.

 

 삶을 살다보면 뜻하지 않은 바람이 나를 휘감아 어딘가로 떠나게 만든다고 그 바람을 조심하라고 말하며 이모는 바람따라 인도로 떠나고 말았다. 인도에서 이모는 무엇을 찾으려 했던 걸까? 왜 바람은 이모를 가만히 두지 못했을까? 인도에서 살고 싶다던 이모는 인도를 등지며 돌아오던 날 울고 또 울었다고 한다. 가슴의 바람을 잠재우지 못해 가슴을 움켜쥐면서. 그 바람이 자신을 평생 유랑자로 만들어주길 바라면서도 무서웠다며 이모는 바람을 잠재우기 위해 결혼을 했다고 했다. 지금도 가끔 한밤중에 깨어나면 그 바람이 불어온다고 한다. 잠을 자지 못하는 바람이.

 

 이모 말대로 살아가는 동안 내 존재를 뒤흔들 바람이 한 번쯤은 꼭 분다는 말에 나에게도 그런 바람이 부는 걸까라고 상상해 본다. 책의 주인공 김진영처럼 그런 바람이 나이 50이 넘어서 불면 어쩌나, 혹은 천예린처럼 살아가는 전부가 바람이면 어쩌나 라는 생각에 난 두려워진다. 분명 작가는 내게 강해지라고, 스스로를 찾아내기 위해,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흐르듯 죽지 않기 위해 가슴에 바람을 불어넣어 주는데 나는 그 바람을 자꾸만 손으로 막는다. 손으로 막는 바람이 얼마나 막아지겠는가.

 

 바람을 등지면 될 것을 등지지도 못하면서 고스란히 바람을 맞는다. 나는 흔들리고 싶어한다. 내 몸 속에 새겨질 시간의 주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싶어진다. 그래, 나는 삶 속에서 살고 싶다. 물 흐르듯이 아니라 물의 근원을 찾아 걷고 또 걸으며. 살고 싶다.

 

 내게 이 책을 준 이는 나를 걱정했다. 선물하면서도 걱정했을 그녀. 그녀가 없었다면 책을 읽는동안 나는 너무 외로워 바이칼 호수로, 북극해로 가는 그들을 따라가지 못했으리라. 그녀가 책을 읽는동안 내게는 손난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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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구리의 계절 1
야치 에미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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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읽으라고 하는 책들은 죽어라고 읽지 않으면서도 만화책은 죽어라 읽었던 학창시절, 친구와 가방 속에서 만화책을 꺼내 교환하는 것이 아침 일과였다. 그렇게 좋아했던 만화책을 대학교에 가면서 멀리하게 되었던 것은 왜일까? 어쩌면 만화책을 함께 볼 친구를 갖지 못한 것일까? 하긴, 만화책보다 더 흥미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더 설득력 있겠다.

 

 대학 생활에도 신선함보다 익숙함 혹은 지루함이 커가던 무렵 룸메이트와 만화책을 자주 빌려 보거나 만화방에 가고는 했다. 만화책이라는 것이 그렇듯 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중독이 강한지라 그 해 그 친구와 같인 살던 일년은 만화책을 본 시간이 텔레비젼을 보던 시간보다 많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만화 속 세상을 보고 또 보며 상상하고 또 상상하며 우리는 더이상 행복할 수 없을만큼의 행복을 느꼈다고 말하고는 했다. 아마 우리는 만화가 어린이의 전유물이라고 여기는 사람을 만난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도 우기고 또 우겼으리라.

 

 그랬던 적도 있는데 이십대 후반이 되면서는 만화 곁에 갈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함께 갈 친구가 없다는 것, 함께 빌려 볼 친구가 곁에 없다는 것, 키득 거리며 혹은 비명을 지르며 같이 볼 사람이 없다는 것이 서러워지던 때도 있었다. 혼자 가서 보기에는 무언가 어색한 나이. 그럼에도 만화가 주는 행복이나 즐거움은 그대로라 만화방 앞에 서서 밍기적 거리기를 여러 번이다.

 

 만화가 보고프나 볼 수 없는 내 맘을 그녀가 알았을까? 내게 만화책을 보내 준 그녀 역시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그녀의 맘이 너무 예뻐서, 만화책 내용이 좋아서 이 책을 받은 후부터 종종 펼쳐보게 된다. 만화책 리뷰를 할려고 했는데 쓰면서 보니 이건 이 책을 선물해 준 그녀가 내게 준 만화책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말하는 것 같다. 참 고마운 그녀가 내게 건네 준 만화 이야기를 해야겠다.

 

'언젠가'

'나도 할아버지처럼 인형을 만들 거야.'

'센'이라는 이름밖에 모르는 남자애.

 

 주인공 스구리는 어렸을 때 이웃집에 할아버지와 살던 센이라는 남자애를 대학을 졸업한 지금까지도 기억하며 마음에 방을 내주고 있다. 센이 주고 간 인형과 함께. 센이 인형 깍는 소리를 좋아했던 스구리 역시 목각인형 조각을 배우고 있다.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이사를 간 센이 스구리 앞에 나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장편이 될 거란 내 예상과는 달리 2 권으로 마무리 되었다.

 

 예쁘지 않은 주인공, 이게 이 작가의 특징이다. 예쁘지 않은 주인공이 만화가 끝나가면서 예뻐 보이는 것은 그 아이가 지닌 마음 때문이다. 여리면서도 곧은 심성을 가졌으며, 약하면서도 강인한 정신은 가진 아이. 남자가 인생을 바꿔주는 요즘 십대들이 보는 만화와 달리 혼자의 힘으로 꿋꿋하게 일과 사랑에 한 걸음 다가서는 모습이 마음을 울린다.

 

 책이건 만화책이건 어쩌면 이리도 마음을 울리는 것은 사랑스러워 보이는 걸까? 혼자 방에서 우울하게 뒹굴다 이 책을 보면은 창문을 활짝 열고 차가운 공기에 인사라도 하며 나도 어디론가 힘찬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 것 같다. 이것만으로 된 것 아닐까? 책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였으니.

 

 내게 이 책을 준 그녀가 내게 선물한 것은 만화책 이상이었다. 그건 만화책에 담긴 마음. 그 만화책을 읽으며 받은 감동. 또 다시 펼쳤을 때의 불어오는 추억과 미래에 대한 기대. 그리고 다시 내딛고 싶어지는 발걸음. 고마워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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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다립니다... 속 깊은 그림책 2
다비드 칼리 지음, 세르즈 블로크 그림, 안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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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던 적이 있다. 기다림만으로 살아가는 일은 고되고 외로울 것 같아 기다리는 것을 하지 않으려 한 적이 있다. 시간이 흘러 어느 작가의 말처럼 기다리는 일은 믿는 일보다 쉽기에 우리네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라는 말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정작 힘든 것은 믿는 일이었다. 믿음을 갖기에 힘이 들어 그저 기다리는 날들을 보내는 이가 어디 나 하나 뿐이겠는가.

 

 공책의 1/4 정도를 잘라내어 만든 수첩 같은 이 책을 만났을 때 제목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예쁘면서 가슴에 아린맛을 주는 것도 같은 <나는 기다립니다...> 란 책을 펼쳐드는 순간 빨간 털실 하나 따라가며 나도 주인공과 함께 기다림을 시작한다.

 

 나는 기다립니다... 얼른 키가 크기를.

 나는 기다립니다...사랑을.

 나는 기다립니다...케이크가 구워지기를.

 나는 기다립니다...크리스마스를.

 

 간략한 그림은 선으로 몇 개 그려넣은 듯한데 그 그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빨간 털실 덕에 그림은 따뜻하게 보인다. 이런 그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털실이 어디에 있을지, 다음 기다림은 무엇인지 상상해 본다.

 

 어렸을 때는 참 기다리는 게 많았구나, 라는 생각에 지금 내게는 어떠한 기다림이 남아있을까란 질문을 해 보며 기다림이 많은 나이는 행복한 나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 때는 나도 기다림에 지칠 때도 있었것만 요즘은 기다림이란 단어를 생각할 틈도 없이 빨리를 외치ㅁ 살아가고 있다. 기다리는 일은 이미 지쳐서 기다려야 하는 일은 지레 포기하고 얼른 손에 넣을 수 있는 일만을 하려 한다.

 

 책을 보며 나도 내 기다림의 책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사랑을 기다리고, 아기를 기다리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사는 삶을 기다리고, 행복한 일을 기다리고, 즐거운 이와 차 한 잔을 기다리는 일. 기다림만으로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어린이 그림책임에도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주는 부모님이 있다면 아마 부모님은 자신만의 기다림의 세계로 여행을 하고 있을 것이다. 책에 고마워하며, 아이에게 고마워하며.

 

 기다림 뒤에는 말줄임표가 붙는다. 기다림에는 마침표가 있을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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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용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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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앗, 번역가가 낯설다. 책을 든 순간 내 첫마디였다. 베르나르의 책은 이세욱 번역으로 정해진 것 아닌가로 오해될 만큼 대다수의 책이 같은 번역가로 기억하고 있던 내게 낯선 번역가의 이름이 책을 읽기 전에 흥미를 끈다. 하긴 아름다운 표지 디자인 만으로도 이 책을 손에 든 이가 얼마나 많을까? 그보다 베르나르의 이름만으로 이 책을 손에 든 이가 훨씬 더 많겠지만. 
 

 번역가가 다르다고 해도 베르베르는 역시 베르베르라는 친근감이 드는 책이었다. 아마 나무에서 만났던 뫼비우스의 그림덕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림이나 디자인을 중시하는 편이 아니라 그의 그림이 아니였다 해도 별 상관은 없었겠지만 나무를 통해 알려진 그의 그림에 반한 독자도 무시는 못할테니, 이름만으로 하늘을 찌를 듯한 베르베르와 뫼비우스의 만남은 책을 읽기도 전에 책을 읽는 이들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실은 나역시 이 책이 읽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 했던 탓에 선물을 받아서 얼씨구나 좋다고 읽은 사람 중 한명이다. 선물해 준 이에게 어찌나 감사하던지, 마음을 들킨 기분이라 부끄럽기도 했다.

 

 책을 1/3 쯤 읽었을 때 베르베르 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놀라운 소재에 입이 벌어지려 했다. 파피용이 프랑스어로 나비라는 뜻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제목 또한 멋지다는 생각을 하며 기대감은 파피용이 커지는만큼 덩달아 커지기 시작했다. 부디 내 기대감에 바람을 불어넣어주는 책이 되길 얼마나 바랐던가.

 

 책을 1/2 쯤 읽었을 때 내 기대감의 풍선의 바람이 파피용의 돛만큼 속도가 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베르베르,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까닭은 치밀함이었다. 모든 퍼즐이 다 맞아떨어질 듯한 빈틈 없는 구성은 읽는 이로 하여금 그에게 빠져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파피용은 퍼즐과 퍼즐 사이의 빈틈이 눈에 보인다. 딱 그 공간만큼 이 책에 품었던 내 기대감 풍선도 점점 내게서 떨어져 나가고 있다.

 

 책을 덮으며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다.

 

이것이 그가 책에서 던져주고자 했던 이야기 였나? 우리는 구원 받기를 원하지만 구원 받기 위한 행동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런 우리를 위해 그는 마지막 희망인 파피용을 띄웠고 우리는 그것이 희망인양 웃고 떠들다가 희망 뒤에 절망을 본다.

 

 기독교가 아닌 나는 노아의 방주를 이야기만 들었다. 세상에 사람들이 불어나 서로 헐뜯고 싸우자 믿음이 깊은 노아만을 불러 배에 세상에 존재하는 동식물을 한쌍씩 싣게 하고는 비를 내렸다고 하는 하나님. 더러운 것을 씻어내기 위해 내리는 비는 긴 시간동안 계속 되었고 더러운 인간 그리고 무엇도 휩쓸려 내려갔다고 한다.

 

 노아의 방주와 파피용은 무엇이 다를까? 파피용은 지구를 씻겨내는 대신 인간 스스로 살고자 길을 떠났다. 하지만 길 끝의 그 곳은 우리의 희망을 만족 시켜주었던가. 예측 하기 쉬운 결말은 절대 주지 않는 베르베르라고 믿었것만 이번 그의 책은 예측이 어느정도 가능했다. 가능한 예측, 그 속에서 생각해야 할 의미는 무엇일까? 그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소설은 희망을 이야기한다고 믿었던 내게 그가 말해주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내가 느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동안 이 물음에 답을 내리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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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피용] - 베르나르 베르베르
    from 별따는수야의 세상 밖으로 2007-11-06 20:54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는 정말 나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소설 '개미'를 읽고서 나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던 느낌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 그 작은 구석구석엔 더 작고 더 큰 세상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준 소설이었으니까. 그래서 그후로 나는 베르나르베르베르의 팬이 되었다. 뇌,나무 등등.. 읽을때마다 느껴지는 이 세로운 감정들. 그런 기대 때문이었을까? 그의 소설은 항상 과학적인 뒷바침에 의..
  2.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을 읽고
    from 맥, 기술, 영화, 도서 그리고 삶 2008-01-12 01:32 
    얼마전에 뒤늦게 읽은 개미.. 그리고 이번에 읽은 파피용.. 모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이다. 그리고.. 둘 다 재미있다.. 파피용은.. 간단히 지구에서 외계로 탈출하기 위한, 탈출한 후의 이야기이다.. 지난번의 개미도 그랬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유토피아에 대해 다시한번 그리고 있다.. 파피용호를 타고 외계로 탈출한 지구인들은 파피용호 안에서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끊임없이 유토피아를 갈망하지만.. 그와 함께 어..
 
 
 
슬로 굿바이
이시다 이라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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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혹은 내일 모레면 내 품에 안길 책이었다. 그럼에도 서점 속 그 무수히 많은 책들에서 이 책을 꺼내든 것은 책 속 표지에 빨려들 것 같아서, 이시다 이라의 끌림을 거부할 수 없어서 였다. 내게 안길 책이니 하나만 읽어야지란 생각에 이어폰을 귀에 꽂고 약간은 불편한 의자에 앉아 책장을 넘겼다. 친구와의 약속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 남았으니 그동안 요 책 맛만 보고 다른 책 사냥을 해야지 했다.
 

 책을 읽으며 난 서점에 있지 않았다. 잔잔한 멜로디와 함께 나는 청아한 바람이 불어오며 약간은 로맨틱해 보이는 테라스 의자에 앉아 달콤하면서도 진한 커피맛이 감도는 커피 한 잔을 앞에 둔 어느 이름 모를, 그곳에 가면 사랑을 만난다는 전설이 있는 노천 카페에 앉아 있는 나를 봤다.

 

나는 여지껏 살면서 책만큼 훌륭한 마법사를 본 적이 없다. 책은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만들기도 했고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게 만들기도 했으며 사랑을 하고 싶게끔 만들기도 했으며 사랑을 추억하게 만들기도 했다. 세상에 이런 마법사가 어딨겠는가. 한 권의 책 속에 한 가지 이야기만으로도 마법에 빠지는데 책 속에 열 가지 이야기가 있다면 어떠한 마법이 펼쳐질지 상상이 가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시다 이라, 사랑의 마법사이며 전령사이다. 어찌 사랑하지 않고 베길 수 있겠는가. 이시다 이라가 전하는 사랑의 마법약은 10개의 별사탕. 서점에서 한 개의 별사탕을 맛본 후에난 참을 수 없었다. 별사탕을 먹어 본 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하듯 하나만으로 입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이는 없다. 나 역시 책 장은 넘어가고 알록달록 다른 색깔의 다른 맛의 그리고 다른 마법의 별사탕을 입에 넣고 깨물어서가 아니라 살살 녹이기기 시작한다.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달콤하게 마법이 지속되길 기대하며.

 

이시다 이라의 <1파운드의 슬픔>이 30대의 사랑을 그린 것이라면 <슬로 굿바이>는 20대의 풋풋한 사랑을 그렸다. 20대의 사랑이 이리도 귀여웠구나, 이리도 간절하고 이리도 마음을 울리는 것이었구나란 생각을 해 본다. 내 20대의 사랑은 어땠을까? 10개의 사랑은 나의 사랑만이 아니라 나의 이별을 추억하게 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역시 20대나 30대나 소중하고 간절한 것이다. 나이가 들면 없어지리라 여겼던 설렘, 애달픔은 그 보다 더 깊어졌고 세련된 사랑을 할 것 같았지만 전보다 더 서툴렀다.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사랑, 사랑만큼 아무리 발음해도 낡지 않고 반짝반짝 빛나는 단어가 또 있을까? 10개의 사랑이야기를 들으면 질릴 수도 있겠다고 싶은데도 이리도 가슴은 설레이고 달콤하며 이시다 이라의 바람대로 나는 살짝 취기가 돌기까지 한다. 마치 사랑에 취해버린 소녀처럼. 마치 사랑을 처음하는 것처럼 사랑이 하고 싶어지려 한다.

 

 이 책에 담긴 사랑이야기가 모두 달콤하리라고 여긴다면 당신은 사랑의 씁쓸함을 잊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은 책에는 씁쓸함은 감돌지 않는다. 씁쓸함보다는 쟈스민 차를 먹고 난 뒤에 꽃맛이 남아있다고 할까? 사랑이 주는 여운, 그것이 씁쓸함이 아니라 향긋함이 될 수도 있음을 책을 통해 깨닫는다.) 당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랑을 제대로 하려면 그 전의 사랑과 제대로 이별해야 함을.

 

 그런 적이 있었다. 힘들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이별을 하며 감정을 무디게 하기 위해 울지 않았던 적도 있고 사랑하지 말아야지라고 주문을 외우며 사람을 사귄 적도 있었다. 제대로 이별하지 못하고 다음 사랑을 힘들게 하고 나를 힘들게 했다. 책은 그런 나를 떠올리게 했다.  책 속 한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이별여행은 하고 싶지 않지만 (이별 여행을 한다면 사랑하는 이를 웃으며 보내줄 수 없을 것 같다, 눈물로 보내주기는 싫기에.) 내 마음 속 그 사람에게, 소중한 사랑에게 인사를 건내야 할 때가 왔음을 알려 주었다. 슬로 굿바이, 지난 사랑에 조금 늦게 인사를 하는 나지만 나,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웃음이 나면서도 두근 거리는 행복하면서도 설레이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다 덮고 기다리는 친구를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내 손에는 친구에게 선물할 <슬로 굿바이> 가 들려있다. '친구야,  행복한 사랑을 하렴. 하늘에 녹아드는 구름처럼 달콤하고 귀여운 사랑을 하렴.' 내 메시지에  사랑 중인 친구는 함박 웃음과 함께 조금은 쑥쓰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밥을 사줬다. 고마워!

 

 이 가을, 우리 모두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며 강력추천 해 보는 책! 사랑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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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9-12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