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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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 이모. 왜 아기들은 자다가 일어났을 때 내가 엄마야라고 이모 목소리를 똑같이 따라하며 달래면 그 깜깜한 어둠 속에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라며 우는 것일까? 내 질문에 아이들은 냄새로 엄마인지 아닌지 누구보다 잘 안다고 했다. 세상에서 자신에게 꼭 필요한 사람,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아기는 몸으로 알고 있었다.
 

 아이가 어려서 그리 많이 우는 것은 자신이 운 것보다 훗날 엄마를 더 많이 울게 할 것을 알기 때문은 아닐까?

 

 엄마를 잃어버렸다.

상상할 수 있나, 당신은? 당신의 엄마가 일상 속에서 사라져버린 것을...? 아니, 어쩌면 당신은 그리고 나는 엄마가 일상에서 사라졌더라도 몰랐을 것이다. 누군가가 알려주기 전까지는. 2년 전만 해도 엄마와 떨어져 살던 그 시절 엄마를 잃어버렸다고 해도 스스로는 알 수 없었을지 모른다, 어이없게도. 일주일에 한 번의 전화가 그 시절 엄마와 나를 이어주었으며 그 통화조차 짜증으로 일관하던 시절이었으니. 하지만 달라졌을 것이다, 당신도 나도. 엄마를 잃어버렸다면. 밥을 먹다가도 울었을 것이며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다 몇 시간이 지나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을 것이며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가슴을 쥐어뜯었을 것이다, 차라리 그 편이 덜 아프다며.

 

 엄마를 잃어버리고 이야기 시작된다. 한 가족에서, 한 개인에게서 엄마란 어떠한 존재인지 너무나 담담한 어조로 적혀있다. 간결한 문체, 수분기를 거둔 것이 분명한 그 문체 앞에서 운다. 소리를 내며, 끅끅 거리며 독자가 운다. 어찌하여 작가는 독자들의 가슴에 바람을 내고 비를 들이붓는 것인가. 아니, 작가는 그저 엄마를 이야기 했다. 당연히 우리 곁에 있는 엄마를 잃어버리게 한 것 그것만 한 것인데 이리도 가슴에 눈이 내린다. 사박사박 그 눈을 밟고 엄마가 오길 바라며 독자는 그저 운다. 내 엄마를 잃어버린 것처럼.

 

 책을 읽으며 한 밤에도 나는 조용히 엄마의 방을 찾았다. 심장이 뛰는 소리를, 엄마의 코 고는 소리를 들어야 가슴에 바람이 불지 않을 것 같아서. 엄마 옆에서 자도 서럽다. 서른이 코 앞인 딸이 한 밤에 울자 엄마는 놀라 아프냐고 묻는다. 엄마는 늘 묻는다. 밥은 잘 먹니, 잠은 잘 자니, 어디는 아프지 않니, 바람이 찬데 방은 따뜻하니라고 늘 묻는다. 그 물음에 웃으며 답한 적이 몇 번인가. 그 물음에 왜 똑같은 말을 계속하게 하냐고 화를 낸 적은 얼마나 많던가. 그저 엄마한테 미안해서 운다는 말에 엄마는 피식 웃으며 등을 쓸어주신다. 미안할 게 뭐냐고, 늙어서 너희한테 잘해줄 수 없는게 더 미안하다는 엄마의 말에 서럽도록 운다. 울음에 묻혀 나오지 않는 말, 미안해, 미안해 엄마. 

 

 엄마가 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엄마가 되면 안될 것 같은 두려움이 엄마를 보면 생긴다는 친구들의 말에 고개가 끄덕끄덕. 어찌하여 부모란 주고 주고 또 주어도, 퍼내고 퍼내도 또 퍼내려하는 것일까. 자신의 살을 헤집고 또 헤집으며 아프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자식은 바라는게 당연하고 엄마는 주는게 당연한 것인가. 어쩌자고 그게 당연하다며 믿고 자란 것일까. 어렸을 적 나도 엄마의 나이가 되면 엄마처럼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엄마처럼 부지런해지고, 엄마처럼 헤진 옷을 입어도 창피하지 않고, 엄마처럼 고기는 먹고 싶지 않고, 엄마처럼 새로 산 물건은 싫어할 줄 알았다. 엄마는 그랬으니까. 자식이란 얼마나 영악한 생각을 하는 생물인가. 나를 낳았던 때의 엄마의 나이를 넘었음에도 여전히 새 물건이 좋고 고기가 좋고 게으르다. 엄마 역시 여전히 부지런하시다. 그리고 더 많이 늙으셨다. 그 사실에 깜짝 놀라며 엄마의 주름살을 세고 흰머리를 뽑는다.  늙지마, 엄마해도 엄마는 늙는다. 그래서 또 운다.

 

 책은 우리의 엄마를 말하고 있다. 똑같이 울면서 세상에 나와 형제를 가지고 엄마를 가지고 아빠를 가졌던, 단발머리 소녀시절을 보내고, 꽃내음에 가슴 설레하던 우리의 엄마를 말하고 있다. 한번만, 한번만 더 이 책으로 엄마를 떠올렸다면, 엄마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작가가 이 책을 적어내려가기 위해 울었을 가슴에 따뜻한 손 한 번 올려준 것은 될 수 있을까. 올해 내가 만난 어떤 책보다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해 준 책이었다. 

 

 세상 어떤 온기도 엄마의 온기만큼 따뜻한 것은 없다고, 세상 어떤 냄새도 엄마의 냄새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세상 어떤 좋은 소리도 엄마의 목소리만큼 나를 사랑하는 감정을 담아낼 수는 없다고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누구나 안다. 하지만 지극한 그 사실을 당신의 엄마에게 말한 적 있는지......엄마를 당신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요?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요? 잃지 않기를. 일상에서 그리고 마음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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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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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도서관 바닥에 앉아있는 것이 행운이었다. 내 눈 높이에 이 책이 있었으니까. 만화책이라 여겼던 표지와 웃음 나는 제목에 책을 다시 꽂으려다 (얼마나 크나큰 실수를 할 뻔 했는가) 출판사가 궁금해졌다.  도서관의 책들은 꼭 출판사를 가려두는 관계로 책의 맨 뒤 페이지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만다. 책이 출간된지 3달이 되지 않아 7쇄란다! 한동안 책을 읽지 못했던 시간동안 소설계에는 어떠한 폭풍이 몰아쳤던 것일까? 심장이 두근거린다. 대체 이 책은 어떤 빛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란 기대. 책이 주는 설렘만큼 행복한 설렘이 또 있을까, 마치 느긋한 오후에 선물 받은 따뜻한 커피 같다.
 

 도서관 문 닫기 20분 전. 책을 펼쳐 읽는 순간 그 공간에 아무도 없음은 축복이었다. 혼자서 키득키득, 큭큭큭, 히히힛, 하하하, 혼자서 낼 수 있는 웃음 소리를 모두 내며 웃고 또 웃었다. 책 한 페이지마다 웃음을 터트려 본 적이 언제인가? 오쿠다 히데오를 만났을 때도 이렇게 웃었던가. 아니, 이 책이 그 배는 나를 웃긴다. 재미있네라는 생각을 할 틈도 없다. 이미 대여할 책 세권이 옆에 있는 지금 내게 남은 시간은 짧다. 그저 나는 읽고 웃는다. 사서 아저씨가 웃음을 참고 나를 툭툭 칠 때까지. 책을 다시 꽂는 손이 애처롭다. 대여한 책 중 한 권을 내려놓자니 이 녀석들이 애처롭다. 사서 아저씨가 나를 보는 눈길은 장난스런 애처로움이 넘친다. (네 나이가 몇인데 이러냐는,,  눈빛이다...;;;) 차가워졌는지도 몰랐던 얼어버린 엉덩이를 툭툭 털며 문을 연다. 아, 완득, 너를 두고 내 어찌 집으로 갈 수 있으리!!!

 

 그럼에도 집으로 왔다. 서점으로 달려가려 했으나 아주 작았던 서점 하나도 얼마 전 문을 닫아버렸다. 이 작은 읍내는 이제 서점도 없다!!! 내 맛난 사탕가게가 문을 닫아 버린 것이다. 아아, 완득, 내 너를 어찌 하리오!!! 일주일 이 시간동안 내 너를 잊지 않으리오! 너를 손에 펼치는 날이 오기 전까지 네 이름을 가슴에 새기리라!!

 

 일주일을 기다렸다. 완득이를 만나기 위해. 엄마는 완득이, 완득이 하는 내 모습에 책을 사서 보라 했고, 커피마시면서 완득이 얘기만 하는 친구는 짜증을 내며 인터넷으로 주문하라 했지만 완득이를 도서관 그 바닥에서 읽고픈 마음이 강했던 것은 왜일까? 편하게 읽고 싶지 않았다. 애가 타도록 그리워한다음에 읽고 싶었다. 20분간 만났던 완득이에게 알려주고 싶다. 너를 만나기 위해 일주일을 기다라며 보내는 나를. 쉽지 않은 너의 삶을 쉬운 방법을 써서 읽지는 않겠다고. 일주일을 기다리는 것, 서점을 가지 못하는 것 이거라도 해야했다.

 

 # 재미를 원한다면 기꺼이 드리지!!

  분명 완득이의 환경은 어둡다. 바라보는 내 시선이 어둡다. 난장이라 불리는 아빠와 피가 섞이지 않은 말 더듬이 삼촌, 어디있는지 몰랐던 엄마, 선생인지 의심가는 똥주까지. 그럼에도 우선 한바탕 웃고 보자고 한다, 작가가. 그래서 웃었다. 미친듯이 웃었다. 하나님께 똥주 죽으라고 빌고 비는 완득이의 행동이 웃겼다. 분명 사악한 마음인데도 그 순수함이 웃음을 자아낸다. 알거 다 아는 녀석이 하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원하는 일이 생기자 하나님께 빌고 비는 모습과 그 말투가 폭소를 자아낸다. 똥주와의 티격태격에 쓰러지는 기본이다. 방이었으면 데구르르르~ 구르는 연습을 한참을 했을 것이다. (왜 초등학교때 구르기 시험 볼 때 이 책이 없었는지!! 그럼 잘했을텐데!!!) 읽게 해야 한다. 책으로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야기 하려면 책을 읽게 해야 하는 것, 그러기 위해 웃음으로 독자를 사로잡은 이 작가의 이름을 잊지 못할 것이다.

 

# 숨박꼭질, 나를 찾아내요!

 어렸을 때 가장 싫었던 놀이는 숨박꼭질이었다. 잘 숨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나를 찾아내지 않을 것 같아서. 나를 못 찾았음에도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 같아서. 가까이 있음에도 나가지 못하고 아이들 웃음소리에 내 이름이 불러지길 원하는 씁쓸한 간절함을 알고 있어서. 이런 나에게 "못 찾겠다. 꾀꾀리!!" 는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인가. 나갈 수 있는 순간이 생긴 것 얼마나 다행인가. 등이 식은땀으로 다 젖어버리게 만드는 놀이, 숨박꼭질. 지금도 잘 하지 못하는 놀이.

 

 완득이가 숨어있는 아이였다고? 책을 중반부나 읽고서야 주인공의 아픔이, 아비의 슬픔이, 어미의 회한이, 똥주의 참뜻이 보인다. 책은 웃긴데 마음은 아파온다. 완득이 말처럼 웃으면서 울까봐 겁이 난다. 아프게 울 것 같아서 겁이 난다. 완득이처럼, 그의 아버지, 어머니처럼.

 

 완득이의 꾀꼬리는 우리의 똥주 선생님이다. 사람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쉽사리 보이지 않아서 다리를 놓아야 할 때가 많다. 가족임에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에 마음을 보여주지 못하는 일이 많다. 그 사이에 똥주가 다리를 되어준다. 세상과의 다리도 되어준다. 똥주, 얼마나 다정한 꾀꼬리의 이름인가.

 

# 세상이 변하길 기다리지마, 네가 먼저 변해, 세상은 너로 인해 돌아가니까.

 세상은 돈다. 내가 없으면 세상은 돌지 않는다. 내가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세상은 정녕 올 것인가. 그럴리 없다고, 내가 주인이 될리없다고, 내 맘대로 되지 않는게 세상인데 그게 말이냐 되냐고 묻는다. 내가 나에게. 하지만 시도해야 한다. 살아있음을 느껴야 한다.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누구도 나에게 핀잔을 주지 못할만큼 열을 내야 하는 것이다. 책 속 주인공들처럼. 우리 할머니 말씀대로 믿어도 될까말까인 문제들이 넘쳐나는데 왜 믿지 않는가. 믿어야 한다. 완득이로 인해 세상은 나로 인해 돌기 시작하고 나는 발을 놀리고 훅을 날린다.

 

 책 속에는 희망이 있고 그 희망을 가슴에 품는 독자가 있다. 가을 바람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게 맞서 싸울 수 있는 뜨거움을 가슴에 담게 해 준 책이었다.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답게 변할 것이다,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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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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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고 싶어진다. 내가 이 책을 만나는 동안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이야기가 하고 싶은데 말을 할 수 없다. 설명하려하면 할수록 내 뜻과는 어긋난다, 마치 사랑처럼.
 

 너무나 투명한 장소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세 사람, 너무나 신선한 공기로 가득 채워진,  하지만 당신이 발을 들여놓는 순간 금이 간다. 당신한테만 보이는 평온하게 웃고 있는 세 사람에게는 금이 보일리 없다. 당신은 그들을 보며 안절부절. 금은 점점 길어지고 굵어질텐데 무언가는 분명 깨지고 피가 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마시는 샴페인은 별처럼 반짝이며 달콤한 냄새를 풍긴다, 이런.

 

 사랑은 둘이서만 하는 것인줄 알았다. 사랑도 셋이 할 수 있으면 참으로 행복하겠다며 소리지르며 운 적이 있는 나로서는 사랑은 둘이서 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사랑이 셋이 되면 아프다고, 아리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사랑도 어쩌면 셋이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니까. 마치 밤하늘의 별이 모든 소원을 들어줄 듯 반짝거리는 것처럼.

 

 투명한 빗방울에 맞아봤어요? 투명한데도 그 크기나 강도가 세서 맞으면 아픈 빗방울.투명한 빗방울에 맞았을 때 순간 놀라고 만다. 그 투명한 아픔이라니. 더운 공기가 차분히 가라앉은 늦여름 오후, 커다란 나무 밑을 지나가는 세 사람 위로 후두둑 소리와 함께 빗방울이 떨어지자 달리기 시작한다. 그 발걸음들이 경쾌해 발자국마다 무지개가 뜰 것 같다. 

 

 책을 읽을 때도, 책을 손에서 놓았을 때도 난 상상에 빠진다. 주인공들이 내게는 풋풋하다. 소녀같은, 소년같은 그 해맑음, 그 투명한, 그 생생함에 눈물이 날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아픈데도 불구하고 손가락 사이로 기분 좋은 바람이 분다. 대체 내가 걱정하는 것은 무엇인걸까?

 

 유리 상자에 넣어두면 참 좋을 세사람. 그 세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다름 아닌 나다. 나의 편견에, 나의 고집스런 인식 때문에 가슴 졸이고 세 사람을 궁지로 몰아간다. 내가 그들의 부모가 되고 내가 그들의 친구가 된다, 이런.

 

 예쁜 소설, 예쁜 주인공들, 반짝반짝 빛나는 그래서 애달픈...조금만 더 행복함을 누리기를......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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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년이 서 있다 민음의 시 149
허연 지음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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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이 곳에는 비가 내리고 이 곳에서 조금 더 멀고 높은 곳에서는 눈이 내렸다. 어제 비가 내렸기에 안심했다. 흐린 날이 좋아지고 스산함에 위로받고 달콤함 보다는 쓴 커피가 끌리는 요즘이라 모처럼의 휴일 (약간의 처리할 일이 있었지만)을 기대했다. 서늘함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아빠의 사랑의 결정체인 따뜻한 방에서 지내는 것이 익숙해졌기에 두꺼운 외투를 팔에 걸치고 한 동안 들고 다니는 시집을 다른 가방에 넣고 밖으로 나서는 순간 아득해진다.
 

 이리도 밝은 햇살이라니, 현관 문 앞에서 문득 부끄러워졌다. 무채색의 내 옷 차림이, 생기 없이 푸석거릴 내 머리카락이, 무엇하나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점점 옅어가는 내 눈동자가. 햇살 아래서 죄도 없는 운동화 끝으로 땅만 콕콕 찍어대는 것이다. 따뜻한 거실이 문을 열고 있는 나로 인해 식어가고 그 차가움에 놀라 나오신 아빠가 왜 그러냐하는데도 땅만 콕콕.  따스히 어루만지는 햇살이 무서워서라는 말을 못하고 내 가방 안에서 콕콕 대는 무언가가 있어 가방을 안고 밖으로 나간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과 같다는 것이 내가 읽는 방식이다. 읽는 책이 시집일 경우 그 여행은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지며 벗어나기 힘이 든다. 어찌하여 이리도 저자의 마음이 되기란 힘이 든 것인지, 그는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썼기에 난 그 마음 근처에 한 발자국도 갈 수 없는 것인지......

 

 굳은 채 남겨진 살이 있다. 상스러웠다는 흔적. 살기 위해 모양을 포기한 곳. 유독 몸의 몇 군데 지나치게 상스러운 부분이 있다. 먹고살려고 상스러워졌던 곳. 포기도 못했고 가꾸지도 못한 곳이 있다. 몸의 몇 군데

 

(중략)

 

 사랑했었다, 상스럽게

 

                         -살은 굳었고 나는 상스럽다 詩부분

 

 굳은 살이 부끄러웠다. 일년 내내 바구니를 들고 다니느라 손바닥에는 어느샌가 굳은 살이 배겼다. 여자 손에 배긴 굳은 살이 부끄러워 혼자 차 안에서 울었다. 열심히 사는데 왜 몸은 부끄러워지는 것일까. 살기 위해 애를 쓴다는 것 그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어딨다고 시인의 사랑했었다라는 말에 왈칵 눈물이 난다.

 

 숨 막히게 아름다운 세상엔 늘 나만 있어서 이토록 아찔하다

                            -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 詩 부분

 

 허연의 시집을 읽으며 단풍이 절정에 달했으며, 단풍이 낙엽이 되고, 차가운 바닥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가을을 다 보내며 시를 읽는다. 시집 하나 읽는 것이 이리도 힘든 일임을 알면서도 시 하나 읽을 때마다 가슴에 차가운 얼음을 집어넣고 녹이기 시작한다. 나는 사람이다, 뜨거운 체온을 가진. 얼음이 녹아 물이 되면서 내 가슴은 더욱 차가워지지만 상처는 아물어간다. 덧나지 않아 아물어 간다.

 

 처음에 허연의 시는 내게 깊은 수렁을 선물하는 듯했다. 하나 읽고 나면 기운이 쏙 빠지는, 기대할 것 없는, 기댈 것 없는 삶을 사는 내가 되는 것 같아서 아니 그런 나를 들킨 것만 같아서 두려움에 떨며 읽었다. 마치 전쟁을하듯 시를 읽는다. 나만이 싸우며 시를 읽는다. 그 치열함에, 그 옹졸함에 하늘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했다.

 

 기억처럼 더러운 것은 없다

 사막까지 따라오는.

               -나비의 항로 詩 부분

 

 나비가 되고 싶지 않은 이가 어딨을까. 우리 몸에 날개가 있더라면 하고 바라지 않는 자가 어딨을까. 한 때는 날개를 가졌을지도 모르는 인간이란 존재는 날지 못하기에 연약했다, 속으로만. 날 수 없기에 강해졌다, 밖으로만. 시인의 등을 떠민 것은 세상인가? 사람인가? 혹은 시인의 날개였나? 기억하는 동물이라 인간은 서럽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서글픔을 알게 되고 시인의 아픔을 알게 되고 시인의 허무를 조금 맛 본다. 아무맛도 없는 그래서 슬픈 눈물조차 나올 수 없는 맛 앞에서 사는 것은 의미가 모호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을 내 딛는다. 강렬한 햇살 앞에서도, 은은한 달빛 아래서도 어딘가에 있을 소금 냄새를 찾아 발을 내 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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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김진기 지음, 김재홍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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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를 본 적이 언제인가요? 비가 내린다고 해도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 엄마는 비가 내릴 때마다 무지개를 볼 수 있는 마법을 가지고 계시답니다. 부러우신가요? 엄마가 알려준 마법을 저도 해보려 하지만 잘 되지 않아 조금은 속이 상하기도 한답니다. 하긴 이 정도 속상한건 아무것도 아니지요. 매일마다 저를 놀리는 친구들만 하겠어요, 휴-  친구들은 저를 많이 놀린답니다. 저를 놀리는 건 괜찮은데 우리 엄마를 놀리는 건 정말 속상해요. 친구들말은 어느 것은 사실이고 어느 것은 정말 아니거든요.
 

 아, 우리 엄마의 마법의 궁금하시다고요? 그럼 이제부터 여러분께도 그 마법을 알려드릴게요. 우선 빗방울이 또르락 또르락 흐르는 창문에 귀를 기울이시다가 또르락 소리가 톡- 톡 -으로 잠잠해질 때 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비가 잠이 들고 나면 무지개가 찾아오거든요. 비는 샘이 많아 무지개 다리가 놓여 우리와 만나는 걸 질투해요. 그래서 비님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요.

 

 그리고 비가 잠이 들고 나면 눈을 감아보세요. 까만 그곳에서 여러분이 봤던 무지개를 색으로 떠올리는 거예요. 아, 마음으로요. 마음으로 떠올려야 해요. 아주 행복한 기억 속 무지개라면 더욱 좋겠지요. 하긴 무지개를 볼 때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어요. 그렇게 눈을 감고 보는 무지개는 세상 어느 것보다 아름답다고 해요, 엄마는요.

 

 전 엄마에게 말을 해주지 못했어요. 눈을 뜨고 보는 정말 너무나 아름답다고. 눈물이 날만큼 예쁘다고요. 하지만 엄마의 무지개는 더욱 예쁠지 몰라요. 엄마는 마음으로 무지개를 띄우니까요. 마음으로 띄우는 무지개는 얼마나 예쁠까요? 엄마 마음은 온갖 색들이 칠해져있는걸요. 엄마의 예쁜 마음과 아름다운 색들로 인한 무지개는 정말 아름다울거예요.

 

 우리 엄마가 알려준 마법 한 번 해보지 않으실래요? 그 마법이 통했다면 하나만 더 기억해주실래요?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요. 우리 엄마는 세상의 색을 마음으로 보는 아주 멋진 엄마라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엄마라는 것을요. 

 

                               -화가 날 때 빨강 아이가 되는 아이 올림

 

 

 서정적인 음악이 흘러나올 것 같은 수채화 그림들이 참으로 예뻤던 책이다. 그림들만큼이나 잔잔한 책의 내용은 소리없이 떠서 가슴 속에 큰 감동을 주는 무지개처럼 뜨거운 무언가를 가슴에 품어주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해서 세상을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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