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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크 사냥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스나크 사냥(1992)
루이스 캐럴이 쓴 시라는 '스나크 사냥'이라는 이야기가 기본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 (시, 이야기? 서사시라는데 정확히 어떤 건지 모르겠다. 스나크 사냥 초판본을 샀을 때 북스피어에서 이 책을 얇게 만들어서 같이 줬다는 데 아깝다!! 북스피어는 넘 재밌는 작업들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음 밖에서 볼 때만 그런건가. 어쨌든 지금은 품절 상태네.)
이렇게 다른 것에서 취한 어떤 고리를 가지고 자기 이야기를 엮어가는 솜씨. 요새 읽는 미미여사의 책들에서 계속 놀라고 있다.
이것과 이것은 분명 여기 저기에 있는 것이거나, 이렇게 다른 사람이 창작한 것인데, 이게 이렇게 저렇게 엮이고, 거기다가 미미여사가 미친듯 이야기를 엮어서 수다를 떨어주는 느낌, 그런데 큰 그림 속에서 미미여사의 주제의식이 확실히 드러난다.
그 주제의식은?
"과연 우리는 괴물과 싸울때, 어떻게 해야 좋을까"
..."불가해한 현실이나 절대적인 악을 경험한 인간이 총을 드는 순간, 그들 역시 괴물이 되는 게 아닐까"
뒤에 있는 이렇게 소설과 출판사의 방향에 대해 많이 개입하는게 하나도 안 거슬리는 북스피어 김홍민 편집인의 글에서 미미여사의 인터뷰를 따와보면.
"나쁜 일은 눈에 잘 띄지만, 좋은 부분은 잘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세상이 전부 나빠졌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 최후로 남는 일, 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은 많은 사람들의 잠못 드는 밤을 위로해 주는 일입니다."
이제 장르문학에 발을 내딛고 있는 독자로써 읽어본 작품은 없지만 기리노 나쓰오란 작가의 말도 인상적이다.
"꿈이나 희망이 없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픽션에서까지 그런 걸 요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꿈을 향해 달려가라'든지, '너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다'라든지, 그런 말을 듣고 감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쉽게 넘어가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인간 유형으로 보자면, 난 완전 미미여사과다.
368쪽
아, 참. '스나크 사냥'이란 이야기 아세요? 이것도 슈지 씨가 해 준 이야긴데, 루이스 캐럴이란 사람이 쓴 아주 이상한, 긴 시 같은 건데 스나크라는 것은, 그 이야기에 나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이름이에요.
그리고 그걸 잡은 사람은 그 순간에 사라져 버리죠. 마치 그림자를 죽이면 자기도 죽는다는 그 무서운 소설처럼.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생각했어요.
오리구치 씨는 오오이 요시히코를 죽이려고 했다. 오오이를 '괴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총을 들어 그의 머리를 겨누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오리구치 씨 스스로도 괴물이 되었다.
오리구치 씨만이 아니다. 게이코 언니는 부용실 밖에서 총을 들고 있을 때 괴물이 되었다. 제가 그 편지를 쓰면 언니가 와 줄 거라고 생각했을 때, 오빠의 결혼식이 엉망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나는 괴물이 되어다. 오빠는, 고쿠부 신스케는 언니를 죽이려 했을 때 괴물이 되었다.
슈지 씨는-슈지 씨도 어느 순간엔가 괴물이 되었다. 그래서 괴물을 잡았을 때, 그리고 사건이 끝났을 때 우리들도 모두 사라져 버렸거나, 사라져 가고 있었던 게 아닐까....
자기를 버린 남자 앞에서 자살을 하려한 세키누마 게이코, 게이코를 버린 오빠가 위선적이라 생각하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노리코, 자기를 죽이려고 총을 들고 피로연장에 왔다고 생각하며 자기가 버렸는데 버려지지 않은 게이코에게 화가 나 그녀를 죽이려한 고쿠부 신스케.
자기가 책임지지 못한 부인과 딸이 비행젊은이들에게 죽고,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 좋은 사람 오리구치, 그를 막으려고 따라나선 소설가 지망생 슈지.
과잉보호하는 장모님 때문에 가족이 해체될 위험에 처한 가미야와 아들 다케오. 이 사람들이 이 주제로 하룻밤 인생이 바뀔만한 사건에 엮이는 주인공들이다.
'우리 이웃의 범죄'의 동생처럼 마지막에 맨날 비실되던 가미야의 부인이 위기 상황이 되니 오히려 건강해지고, 이제 중심을 찾아가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나쁜 일, 범죄, 사건의 이면에는 꼭 어둠만이 있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