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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의 아이 1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가라시 다이스케에 푹 빠졌다.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도 좋았지만, 그건 워낙 주제가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라 이 작가의 역량을 깨닫는 계기는 되지 못했다.
다음 <마녀>는
아, 이 사람 관심이 이렇구나 정도.
그리고 어제 <해수의 아이> 1권에서 4권까지를 읽고 아니 이런 작가가 있었다니!
뭔가에 꽂히는 순간이란 것은 참 묘하다.
인도를 6개월여 돌아다닐 때 나는 요가나 명상을 할 생각을
못했다. 인도라는 나라를 참 좋아했지만, 그냥 요가는 한
요소였을 뿐. 마찬가지로 네팔에 갔지만, 히말라야는 그냥
지켜보는 곳 뿐이었다. 그때도 히말라야 설산은 멋지고 가슴을 울렸지만 올라가겠다는 생각은 못했다. 그러고보면 소중한 것, 좋아하는 것을 찾아간다기보단 발견한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바로 옆에 있을지도 모르는 것을 발견하기. 깨닫기.
어쨌든 이가라시 다이스케를 발견했다. 거기다 오늘 찾아보니
기가 막히게도 남자다. 아니, 남자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는거야, 이런 감성을 가질 수 있는거야.
세상에 남자는 이렇고, 여자는 이렇다는 이야기는 다 ‘어떤’이라는 수식어를 꼭 붙여야 할 말.
만화의 내용은 인어의 모델이 됐다고 하는 듀공, 이 듀공이
키웠다는 아이 소라와 우미가 있다. 알고보면 세상엔 이렇게 바다에서 태어난 아이, 혹은 자란 아이가 많이 있는데, 이것을 통해 생명의 고향인 바다와
인간의 기원, 생명의 기원을 밝히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 만화는 인간이란 과연 무엇이며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세계 여러 곳에는 세상의 기원을 설명하는 다양한 신화들이 있다.
우주의
지배신이 바다에 정액을 흘리자 거대한 나찰이 되었다.
여성이
태양에 치부를 보이자 임신했다.
서양에도
달을 향해 오줌을 누면 임신한다는 미신이 있다.
인간이
바다거품에서 태어났다.
이런 이야기들은 어떻게 세상에 퍼져나가고, 오랫동안 이어올까.
우리가
말한 것, 행한 것은 바람이 물에 파문을 일으키듯, 이 세계에
흔적을 남기지. 그건 형태를 바꾸면서 퍼져나가 고래의 노래 한 구절로 형태를 바꾸어. 소립자의 진동 속에 실려서 전승되지.
그리고 세상은….
바다는
‘피안’이야. 그리고
여자의 몸은 피안과 이어져 있어. 여자의 몸은 피안에서 차안으로 생명을 끌어당기는 통로니까.
은하의
분포를 관측해서 우주의 입체지도를 만들면 우주의 거대한 구조는 마치 거품이 수도 없이 겹쳐진 형태야. 소용돌이치는
은하는 태풍과 닮았지만, 거미불가사리가 더 닮았을지도 몰라. 어떤
돌산호는 인간의 뇌와 똑같이 생겼어.
바다
생물 중에는 내장과 똑같은 것들도 많으니, 그것들을 모아다 조립하면 ‘인간’이 나올지도!
원료는
똑같잖아. 생물은 모두 수소와 산소, 탄소, 질소 같은 걸로 이루어져 있지. 그렇게 따지면 공기도 물도 똑같잖아. 우주가 탄생하고, 별이 태어나고,
성장해 죽어가는 것.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물질이 이 세상 모든 것을 이루고 있지. 단 한가지 존재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라.
생태계에서 하나의 생물종이 가지는 의미는 그냥 하나가 아닌데, 그
결정적인 이야기가 있다.
남극의 바다가 생명의 도가니인데, 남극트릴새우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지. 남극크릴새우 한 종류의 총 중량이 5억 톤 이상이라고 해. 남극크릴새우와 해양성 포유류를 제외한 세계의 수산자원을 모두 합쳐도 1억
톤밖에 안된다고 하니 고작 한 종류의 생물로는 어마어마한 양이지. 만약 남극크릴새우가 멸종한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남극크릴새우를 주된 식량으로 삼는 고래류, 물개류, 어류, 오징어며 펭귄은 엄청난 피해를 입겠지. 남극권의 생태계는 붕괴될 거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남극크릴새우가
사라지면, 지구의 기후 전체가 크게 뒤바뀌지. 남극크릴새우는
특수한 입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생물이 이용할 수 없는 극소 식물 플랑크톤을 먹이로 삼아. 그리고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배설물을 배설하지. 배설물은 이산화탄소를
담은채 배설물은 심해로 가라앉아. 크릴새우 전체로 따지면 막대한 양이야. 결과적으로 대기에서 엄청난 탄소를 격리하는
작용을 해. 이 시스템이 사라진다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증대해서…지구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별이 될 걸. 이 조그만 생물이 이 별에선 인간 따위보다도 훨씬 중요한
존재야. 세계의 주역은 인간이 아니야.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인간은
사라져도 지구는 무사하지만, 남극크릴새우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숲도.
이 작가가 그리는 바다는 살아있다.
몇 년 전 필리핀 앞 바다에서 스노쿨링을 했다. 바닷속는 아름다웠지만, 심해 깊은 곳은 어둠, 그 자체로 엄청난 공포감을 느꼈다. 결국 바다거북을 만날 기회도, 바닷속을 날 기회도 다 버리고 곧 올라와버리고, 바다에 대한 공포심만 더 강해졌지만, 그래서
더 바닷속은 꿈 같다.
마지막 5권을 기다려야 한다.
이 작가가 보여줄 결말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