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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소년기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
다케우치 마코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자전거 소년기(다케우치 마코토, 비채)
*가볍게 읽었다. 역시 자전거! 단순하고, 머릿속으로 이것저것 굴리다가 그냥 하고...별로 복잡하지 않은 주인공이 내 속에 있는 인물이랑 닮아서 더 편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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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때는 자전거로 간다. 어느새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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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리가 없다. 처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자마자 나는 무서운 체험을 한 것이다. 신이 나서 달리다가 내리막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가속이 붙어 서지도 못하고 쌩 달려 내려가 비탈 아랫집 산울타리에 처박혔다. 그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그리고 그때 그 마당에 있던 것이 그 집 외아들 소타였고, 그때부터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때문에 처음 자전거를 탄 즐거움도, 몸이 얼어붙는 공포도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친구가 다른 친구를 만난 이야기를 했다. 아주 어릴 때 산비탈을 내려와 고물상 같은 데가 있었는데 거기를 들어갔더니 그 애가 마당에 혼자 놀고 있었다고. 그냥 간단한 이야기인데 난 그 장면이 눈에 딱 그려진다. 사실 내 머릿속에서 과장되어서 푸른 비탈길을 달려서 내려오는 5살짜리랑 고물상 마당에 앉아 흙장난을 하던 꼬마를 생각나게 한다. 난 그 기억이 참 마음에 들어서 이따금은 내 기억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쇼헤이처럼 부딪히는 성격은 아니지만 이 장면이 참 마음에 들어서 내 기억인양 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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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닌 가제가오카 초등 학교에는 1학년은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면 안 된다는 묘한 교칙이 있었다. 그 전까지 아무 문제없이 탔는데 초등학생이 된 순간 금지당한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게 너무 많다. 그런 걸 규칙을 배우는 거라고 하는데, 이따금씩 이해가 안 간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학교 밖은 대낮에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다. 교문과 담은 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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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아사미는 길고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명백히 여자 머리카락인데 아사미 것은 아니었으니 당연히 내가 바람을 피웠다고 의심받았다. 게다가 사실이었으므로, 나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바람이 별 거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담담하게 아무렇지 않게 자기가 바람피운 사실을 쓴 게 재밌다. 뭐랄까, 바람 좀 폈다고 죽네사네 할 정도의 문제는 아닌 것같다. 어디까지나 남의 이야기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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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일어난 사람은 나였다. 자는 동안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부풀어오른 탓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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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고, 페달을 밟아 자기 세계를 넓혀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렸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바다까지 자전거 타고 가자고 했을 때, 소타는 먼 곳까지 가면 거기까지가 자기 영역처럼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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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친구가 재미있어 보이는 놀이를 시작하면 신경이 쓰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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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마음을 이어받아 달리는 기분은 혼자일때와는 전혀 달랐다. 길을 잃어도 계속 달릴 수 있었던 것은 그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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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점을 경계로 세계가 달라져 보이는 경험은 인생에 몇 번쯤 있을까.
나도 지금까지 그런 순간을 경험한 적이 몇 번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전거를 탔을 때에는 갑자기 세계가 넓어진 것 같았고, 새벽 바다에서 벌거숭이가 돼서 헤엄치던 때에는 파도와 바람과 하나가 된 느낌을 맛볼 수 있었다. 그 순간에 내 안의 뭔가가 달라지고 세계의 뭔가가 달라졌다. ...편지처럼 뭔가를 표현하는 행위도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 내가 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조금이나마 세계를 움직인 것 같은 기분조차 들었다.
잘 설명을 못 하겠지만, 그런 다양한 경험이 겹쳐서 내 아들을 자전거에 태워주고 싶다는 소망으로 이어졌다. 호쿠토가 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기분을 맛보기를 원했고, 너른 세계로 나아가기를 원했다. 그 아이가 자기 힘으로 세계를 바꾸는 쾌감을 알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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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씩 마음 속에 바람이 부는 느낌이 되살아난다. 잘 숙고해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듯이, 바람에 몸을 맡겨야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정이 있으니 무모한 짓을 하면 안 되는 것이 정론이겠지만, 가족 덕분에 모험에 나설 수 있다면 그만큼 고마운 일도 없을 것이다.
..자전거는 자기 힘으로 바람이 될 수 있는 탈것이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은 바람이 되는 기쁨을 다시금 가르쳐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내일도 자전거로 달려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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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면 왜 기분이 좋을까.
어린아이와 오래 같이 있다 보면 그런 근본적인 의문을 생각해보는 버릇이 생긴다. 없는 지혜를 쥐어짜 글을 쓴다는 작업을 매일 계속하다 보면 더욱 그렇다. ...
바람처럼 될 수 있으면 왜 기분이 좋을까. ...자기 몸을 써서 속도를 높여가는 느낌은 자전거가 아니면 느낄 수 없다.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기분 좋은 일이니, 자기 힘만으로 달리는 자전거는 역시 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