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아빠 집 나갔다.
   

   주말의 이른 오후였고 전해오는 목소리는 오늘의 날씨만큼
   투명하리만치 맑았다. 어째서냐고,   묻지 않았다.
   옅은 비린내나는 곱창을 앞에 두고 연거푸 술을 마시고 전후사정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숨을 쉬다 마음을 다잡았다.

   
   각자 살아,   내가 말했고   그렇게 해야지,   엄마가 말했다.
   지쳤어 이젠,   내가 말했고   엄마도 그래,   엄마가 말했다.


   제대로 걸을 수 없을만큼 취했지만 택시를 불러 언니를 먼저 보내고
   동생이 일러 준 여관 이름과 방 호수를 곱씹으며 택시를 탔다.
   여관 간판을 바라보다 서 있기를 몇 분,
   아빠가 좋아하는 오뎅국물과 소주 한 병을 검은 봉다리에 담아
   여관 안으로 들어섰다.

   
 


 

 

   몇 호 가세요,   계단을 오르던 내 등에 대고 묻길래
   저희 아빠 방이요,   했다가   삼백삼호요,   했다.
   어리둥절해하길래   어제 들어 온 사람 몇 호예요,   물었다.
   아, 거기는 삼백육호. 

   문을 두드리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어, 문 앞에 주저앉았다.
   전화를 할 생각은 없었다. 전화하지 않겠다고, 찾아가지도 않겠다고
   엄마와 언니와 동생과 단단히 약속을 한 참이었다.
   그래 그냥 이렇게 앉아 있다 가자,   여자 남자들이 급하게
   다른 방으로 들어가기도 했고 나오기도 하며 나를 보았다.    

   삼십여분이 지났을까.
   주섬주섬 일어나 계단을 내려오며 아까 그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쳐, 앞으로 가 말했다.
   누가 찾아왔었다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집으로 가 방 한가운데 서서, 무슨일이냐 묻는 그이의 물음에
   
아빠가, 아빠가, 아빠가,   하며 울었다.


 

 

 



 


  
   
13일, 금요일이 되어서야
   남의 서재를 털어낸 책이 도착했다.
   단연,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를 집었고
   책을 훑어보다 목차를 보며 시인을 골라냈다.
   하나 둘, 손가락을 접어가며 알은체를 할 만한
   시인을 찾는데 둘에서 끝이다. 이름은 눈에 익지만
   알은체를 할만하지는 않다. 참담함에
   김경주의 페이지를 펼친다.
김경주, .. .
   
   


  

 

 



  

   



   고등학교 시절,
   서태지의 자퇴로 인해 학생들 사이에서 자퇴가 유행처럼 번졌다며 자신도
   자퇴를 하고, 배에 올라 마도로스의 꿈을 꾸었다고한다.
   하지만 결핵에 걸리는 바람에 그것도 여의치 않았고, 어찌어찌하여
   지방 삼류대를 들어갔지만 그것도 때려치우게 되었으며 그 후로도 몇 번의
   대학을 다니다말다를 반복하면서, 그렇게 쭉 하릴없이 양아치로 살았다고.
   도피처처럼 가게 된 군대에서 문학도였던 친구가 보내준 다섯권의 시집 덕분에
   난생 처음으로 '시'라는 것을 읽게 되고 휴가를 잘 보내주지 않던
   군대에서 시간이 죽도록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시집들을
   아주 천천히 밀독하며,  시를 알게 되었다 한다.
   그렇게 다소 늦게 시를 쓰기 시작하여, 삼 년간 밥 먹고 잠 잘 때 빼고는
   시 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김경주시인.
   
시를 쓰는 테크닉과 기술들이 많이 쌓였기때문에 등단은 생각보다 쉽게 하였지만,
   
등단 이후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고민들과 커다란 공허함, 부끄러움,
   앞으로의 막막함과 두려움이 대단했다며,
더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시간상 들려주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또한, 덧 붙이며   

 

문학은 재능이 아니라 용기라는 말 골방 미스테리가 되지 말라는 말
사유한다는 알리바이를 대지 말라는 말
일등이 아닌 고유함이 되라는 말
다시, 감수성을 키우라는 말
  

 

  발췌-http://blog.naver.com/djddlove/80128193768

  * 

   

 

 

 木蓮 / 김경주 

 

마루에 누워 자고 일어난다
12년 동안 자취(自取)했다

삶이 영혼의 청중들이라고
생각한 이후
단 한 번만 사랑하고자 했으니
이 세상에 그늘로 자취하다가 간 나무와
인연을 맺는 일 또한 습하다
문득 목련은 그때 핀다

저 목련의 발가락들이 내 연인들을 기웃거렸다
이사 때마다 기차의 화물칸에 실어온 자전거처럼
나는 그 바람에 다시 접근한다
얼마나 많은 거미들이
나무의 성대에서 입을 벌리고 말라가고 서야
꽃은 넘어오는 것인가
화상은 외상이 아니라 내상이다
문득 목련은 그때 보인다

이빨을 빨갛게 적시던 사랑이여
목련의 그늘이 너무 뜨거워서 우는가

나무에 목을 걸고 죽은 꽃을 본다
인질을 놓아주듯이 목련은
꽃잎의 목을 또 조용히 놓아준다
그늘이 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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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5-16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문학은 용기일까요? 흠..

June* 2011-05-16 16:49   좋아요 0 | URL
 
 
 아니요 ,
 라고 대답하지만 그에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어요 .. .
 

아이리시스 2011-05-18 17:35   좋아요 0 | URL
신형철 평론집은 좋았어요? 저도 사려는 중인데..